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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경영과 브랜드 전략

유익한 즐거움의 힘에 눈떠라, 구겐하임처럼....

박신의 | 62호 (2010년 8월 Issue 1)
 
 

문화예술경영은 예술이 갖는 자기 성찰력과 자기 변화력, 창의성을 사회화(socialization)하는 활동이다. 일반적으로 현대적 개념의 문화예술경영은 1960년대 미국에서 태동했다. 당시 미국에서 벌어진 문화 붐(Cultural Boom) 현상이 직접적인 요인이었다. 댄스 컴퍼니나 박물관, 오페라단, 오케스트라, 극장 같은 예술단체 및 시설이 급증하면서 예술 활동의 경제적 특수성에 대한 인식과 효율적 대처가 필요했다.
 
1966년에는 ‘예술경영연구소(Arts Administr-ation Research Institute)’가 하버드 경영대학에 설립됐다. 1970년대 들어 연구소는 예술경영서머스쿨을 개최하거나 예술경영 관련 저서를 발간하며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기업과 예술경영의 연관성을 주제로 논문을 게재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이러한 움직임은 당시 미국의 경영학에 많은 영향을 줬고, 1972년 <캘리포니아 매니지먼트 리뷰>가 ‘예술을 위한 경영’을 특별 섹션으로 다루기도 했다.
 
문화예술경영은 범위가 매우 넓고 실질적인 응용과 적용 가능성이 높다. 일단 투자 대비 수익 창출에서 불균형을 가져오는 모든 문화예술 관련 시설 및 사업이 문화예술경영의 대상이 된다. 즉 박물관과 미술관, 극장을 비롯한 공연예술 영역의 시설 및 각종 아트센터, 예술 축제와 예술시장 전반의 문제를 다룬다.
 
또 사회적 관계에서 벌어지는 모든 문화예술 활동, 이를 테면 예술을 통한 다양한 사회 통합 효과를 목표로 하는 문화예술교육과 예술의 가치를 매개로 한 다양한 기업 활동이 모두 포함된다. 기업 메세나와 기업의 문화마케팅, 다양한 사적 영역에서의 파트너십 등이 그것이다. 이 글에서는 구겐하임미술관, 태양의 서커스 등 성공적인 문화예술경영과 브랜딩 전략을 편 예술 단체들의 사례를 분석하고 기업들에 주는 교훈을 살펴본다.
 
구겐하임미술관-디렉터십과 브랜드 전략
미술관의 글로벌 프랜차이징을 선도한 미국 뉴욕의 구겐하임미술관은 문화예술경영에서 브랜드 전략의 성공사례로 꼽힌다. 구겐하임은 현재 전 세계 다섯 곳에 분관이 있다. 베니스(1979년), 스페인 빌바오(1997년), 베를린(1997년), 라스베이거스(2001년), 아랍 에미리트 아부다비(2013년) 등이다. 특히 빌바오 구겐하임은 개관 이후 2003년까지 6년간 빌바오 시에 약 10억7000만 유로에 이르는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해 투자 대비 세 배의 높은 수익을 가져다 주었다. 또 엄청난 수의 관광객 유치로 고용창출과 지역경제 활성화는 물론 시민들의 삶의 질도 향상시켰다. 쇠락해가던 공업도시의 이미지를 완전히 탈바꿈시킨 성과를 안겨준 주역으로 평가된다. 빌바오 시는 1997년 5억 달러를 들여 구겐하임 미술관을 완성했고 향후 25년간 미술관의 운영비, 작품 구입비, 인건비 등을 제공한다.
 

이러한 성공 배경에는 구겐하임재단의 토머스 크렌스 관장과 그의 디렉터십(directorship)이 있었다. 1980년대 구겐하임이 겪었던 재정난을 타개하기 위해 예일대학 MBA 출신인 그가 내린 진단과 처방은 매우 혁신적이었다. 그는 다른 미술관들과의 경쟁 구도를 전환하기 위해 구겐하임만의 브랜드를 공격적으로 확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나의 미술관, 다섯 개의 분관’이라는 기치 아래 그는 구겐하임의 우수한 컬렉션을 투자 대상으로 삼았다. 실제로 현대미술을 주로 전시하는 구겐하임은 살아있는 작가들의 작품을 컬렉션으로 하는 만큼 분관을 소화할 만큼 충분한 작품 수급과 관리가 가능했다. 반면 고고미술 컬렉션을 다루는 루브르는 이런 점에서 확장에 한계가 있었다. 복제를 하지 않는 바에는 결국 원품을 대여하는 방식을 취해야 하기 때문에 컬렉션의 이동에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다.
 
크렌스 관장의 공격적인 경영방식은 효과를 나타냈다. 1997년 빌바오의 성공은 전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해 이른바 ‘빌바오 이펙트(Bilbao Effect)’라는 말이 만들어질 정도였다. 특히 프랭크 게리의 독특하고 과감한 디자인은 그 자체로 강력한 뮤지엄 브랜드의 대명사로 인식됐다. 빌바오 분관이 큰 성공을 거두면서 구겐하임 분관을 유치하기 위한 국가 간 경쟁이 치열해졌다. 컬렉션을 통한 관리 및 운영권 독점은 구겐하임의 경쟁력이자 자산이다. 크렌스 관장은 박물관 운영에 있어 ‘브랜드’라는 개념을 도입하고 철학이 아닌 전략에 기반한 경영 혁신을 적용해 많은 사람의 지지와 벤치마킹의 대상이 됐다.
 
특히 구겐하임은 1999년 다각적인 브랜드 개발을 위해 월트 디즈니의 방식을 차용했다. 디즈니는 모든 연령대가 함께할 수 있는 ‘유익한 즐거움’을 추구하는 전략을 펼쳤다. 크렌스 관장은 컬렉션의 월드 투어와 버추얼(virtual) 미술관을 구축, 관람객과의 접촉 기회를 극대화했다. 이는 라스베이거스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구현됐다. 구겐하임을 멀티 테마파크 형태로 ‘베니스 리조트-호텔-카지노’ 복합건물에 배치한 것이다. 러시아의 에르미타주 미술관과 협정을 맺고 글로벌 규모의 전시 기획과 컬렉션을 공유하는 방식을 통해 브랜드 통합(brand inclusion)과 브랜드 확장(brand extension) 전략을 동시에 추진했다.
 
하지만 20년을 지속해 온 이러한 기업형 마케팅 전략은 현재 일단락된 상태다. 크렌스의 디렉터십은 박물관과 미술관의 투자 가치를 더 없이 상승시켰지만 구겐하임 내외부에서는 “크렌스 관장이 명품급인 구겐하임 브랜드를 앞세워 추진했던 ‘외형 확장’의 피로감이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진단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분관의 순회 전시를 위한 ‘기획전시 대량생산 체제’는 블록버스터 전시회가 갖는 장점과 단점을 고스란히 가져왔다. 다시 말해 진정한 의미의 작가 발굴이나 작품 개발보다는 문화관광적 맥락에서 보여주기 식의 전시에 치중하게 됐고 미술관 본연의 임무가 소홀해졌다는 지적이 일각에서 제기됐다. 순회전시로 인한 작품 손상과 보존 문제 역시 만만치 않았다.
 
결국 구겐하임미술관 재단은 2009년 2월말 정통 큐레이터 출신인 리처드 암스트롱에게 구겐하임을 맡겼다. 암스트롱 관장은 지난 20년간 전 세계 미술계에 글로벌 확장 정책과 미술의 대중화 전략을 전파하는 데 기여했던 토머스 크렌스 관장과는 전혀 다른 성향이어서 관장 선임 시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무엇보다도 그는 크렌스의 브랜드 전략에 대해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오히려 외형적 확장보다는 미술관이 지적으로 성장하고 이를 통해 사회적 변화를 꿈꾸고 실천하는 데 주력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를 위해 구겐하임 미술관의 역할을 새롭게 정비했다. 이를 테면 뉴욕은 프로그램 기획의 핵심 기능으로, 베를린은 유럽에 대한 거점으로서의 역할을 부여했다. 큐레이터의 기획력과 활동에 비중을 더하면서 전시회가 전 세계 다양한 인종에 대한 지적이고 사회적인 다양성을 체험하는 계기로 삼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브랜드 전략을 통해 얻게 되는 미술관의 재원 조성과 수익 창출은 당면과제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문화예술의 가치와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한 목표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기가 쉽지 않다. 한편으로는 크렌스의 과감한 기업 경영식 전략이 필요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암스트롱의 예술에 대한 신념과 미술관의 사회적 사명감에 기반한 전략도 필요하다. 이와 관련, 미국과 영국에서는 두 개의 관리구조를 공존케 하는 방식으로 조직을 만들기도 했다. 즉 ‘예술감독(artistic director)’과 ‘경영감독(administrative director)’의 이중 체제를 두는 형식이다. 재정 자립도를 이루어낸 잉글리시 체임버 오케스트라와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대영박물관이 일시적으로 이런 체제를 갖춘 적이 있다. 크렌스 전 구겐하임 관장은 사임 후에도 아부다비 구겐하임미술관과 국제업무 자문에는 계속 응할 예정이어서 이 두 디렉터의 다른 행보가 어떤 형태로 드러날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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