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일 년 전 실행된 한 설문조사를 통해 중국에 진출한 한국기업 중 30% 가량이 철수를 고려하고 있다는 결과가 발표됐다. 그러나 최근 이러한 통계치가 무색하게 많은 한국 기업이 경쟁적으로 자사의 중국 사업에 대해 공격적이고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금융위기의 공포감을 어느 정도 극복한 기업들이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북미나 유럽시장에 비해 지속적 고도성장을 구가하고 있는 중국에 다시금 눈을 돌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차이나 러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또 한중 수교 20년이 다 되어가지만, 중국을 성공적인 생산기지로 삼으면서 동시에 내수 시장까지 잘 개척한 기업은 극소수다. 특히, 한국에서 내수산업을 중심으로 성장했던 기업들은 수많은 시행착오에도 불구하고 중국에서 명확한 사업 방향을 수립하는 데 지속적인 어려움을 겪는다. 또 수출을 통해 해외시장 경험을 축적한 기업들조차도 대외적 발표와는 달리 중국 시장에서 어려움을 겪는 사례가 많다. 이런 실수를 답습하지 않고 성공적인 중국 진출 가능성을 높이려면 다음의 몇 가지 사항들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업종선택’ 보다는 ‘사업개발의 플랫폼’이 중요
중국에는 전 세계의 유동성뿐 아니라 지식 및 아이디어가 몰려들고 있어 전혀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를 시장에 제시한다는 게 생각만큼 쉽지 않다. 또 거의 모든 산업분야가 전 세계 평균 이상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무엇을’ 하느냐는 것보다는 ‘어떻게’ 하느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외국기업의 중국 시장 진출 성공사례 중 상당수가 - 일례로 식품산업, 중위 기술(Mid-tech) 기반의 기계산업, 부품 산업 등의 성공사례 - 이러한 접근방법으로 성과를 낸 것으로 파악된다.
‘우리는 특정 업종에서 한국시장을 성공적으로 장악했고, 해당 업종의 중국시장이 급속히 성장하는 데다, 중국 고위직 관료층과의 시까지 있으니 중국에서의 성공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면 이미 반은 실패하고 들어가는 셈이다. 이런 기업들은 중국 진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자사의 상품이나 서비스가 현지에서 그다지 새로운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또 중국에서는 다른 해외시장에서의 경쟁업체 수보다 10배가 넘는 국내외 업체들과 치열한 사투를 벌여야 한다. 일례로 중국에는 인가된 농약제조기업만 2800여 개(비인가 기업까지 합치면 약 6000여 개 추정), 맥주회사 350여 개, 자동차 기업 100여 개가 난립해 있다. 금과옥조와 같이 여겼던 한국에서의 사업 모델이 중국에서 전혀 통하지 않아 막대한 투자비만 날리는 일이 빈번히 일어난다.
이런 실수를 방지하려면, 한국에서의 성공사례나 주력사업에 구애 받지 않는 ‘룰 브레이킹(Rule Breaking)’, 즉 고정관념으로부터의 탈피가 필요하다. 자기 회사의 강점을 ‘업종’이 아닌 ‘기능’ 이나 ‘보유 자원’ 측면에서 찾을 필요가 있다. 이런 접근방법은 특히 한국 내수시장이나 규제산업에의 의존도가 큰 기업의 중국 시장 진출에 있어 더욱 효과적이다.
먼저 마케팅, 연구개발(R&D), 생산 또는 물류의 효율성, 애프터서비스(A/S) 네트워크 구축 및 관리, 금융프로그램 등 기능적 측면에서의 자사의 역량을 먼저 냉정하게 파악해야 한다. 또 이런 강점을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는 업종과 품목, 진출 대상 지역을 선정한다. 이후 내·외부 조달이 필요한 요인들을 주간 또는 일간 활동계획 수립이 가능한 수준으로 면밀히 파악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확보할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표1 참조).
예를 들어 GE는 중국 시장에서 글로벌 시장에 대한 접근성이 좋고, 항공 및 에너지 분야의 기술이 탄탄하다는 기능적인 역량을 충분히 활용했다. GE는 중국 정부와 협력해 사업 분야를 개척했다. 항공 및 에너지 분야에서 중국 국유 기업과 제휴해, 중국은 물론 해외 시장을 공동으로 개척할 수 있었다. 기존 고정 관념대로 접근했더라면 GE는 주력 산업을 중국에 진출시키는 선에 그쳤을 것이다.
한국 기업인 두산인프라코어와 현대중공업도 마찬가지다. 기존 고정관념대로라면, 중국의 건설기계 시장에서 브랜드 파워가 높되 고가인 외국 기업 제품과 가격이 상대적으로 낮은 중국 로컬 기업 제품으로 양분화됐다는 점을 고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 회사는 유연한 연구개발(R&D) 역량을 갖추고 있었으며, 개도국 고객 니즈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다. 이를 활용해 중저가의 ‘미드-엔드(mid-end) 시장’을 만들어내 가격 대비 성능을 높였고, 판매 모델도 현지화했다. 또 금융 역량을 활용해 자금력이 달리는 고객에게는 금융 프로그램을 제공해 제품의 매력도를 높였다.
네슬레 역시 기존 고정관념에 따른다면 물류나 유통 인프라가 깔린 지역에 우선 진출하고, 글로벌 브랜드를 활용하는 데 그쳤을 것이다. 하지만 네슬레는 저개발국에서의 원자재 조달 및 유통망 관리 능력이라는 자원을 이용했다. 또 네슬레가 보유한 8500여 개의 브랜드 중 10개 이상의 국가에서 판매되는 브랜드가 1% 미만 일정도로 브랜드 현지화를 잘 시키는 기능적인 역량이 뛰어났다. 네슬레는 이런 역량을 활용해 낙농 원유를 수입하기 위한 냉장 조달 시스템을 구축, 영세 낙농업자에 대한 신시장을 창출해 생산량을 현지에서 비약적으로 늘렸다.
컨트롤 타워, 관료적 의사 결정 체계 극복해야
이와 같은 일련의 활동에 가장 필요한 핵심역량은 기획력 및 실행관리 능력, 즉 중국 현지에서의 강력한 컨트롤 타워(Control Tower) 기능이다. 이를 ‘사업 개발의 플랫폼’이라 부를 수 있다.
아직 중국 사업에서의 가시적 성공 경험이 없는 기업이라면 시 역시 위와 같은 관점하에서 확보해 나아가야 막연한 기대로 자원을 낭비하거나 시행착오를 겪을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 시와 관련해서는 많은 경우 중앙정부나 정계 고위 인사들과의 인맥보다 업종별 산업협회나 학계의 전문가들과의 생산적 교류가 사업에 실질적인 도움을 준다는 점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