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과 기업의 위기 대응은 가능한 최악의 방향에서 사람들에게 보여질 것이라고 가정하십시오(Assume you and your organization’s handling of the crisis will be portrayed in the worst possible light).” 이는 잭 웰치 GE 전 회장이 2005년 내놓은 <위대한 승리(Winning)>라는 책에서 한 말이다. 일본 도요타 자동차의 아키오 도요타 사장이 지금 잭 웰치를 만난다면 꼭 새겨야 할 말이다.
‘도요타 사태’가 계속 악화되고 있다. 보다 못한 도요타 사장이 2월 9일 직접 <워싱턴포스트>에 기고한 칼럼에서 “지난 20년 동안 미국 내에서 팔린 도요타 자동차의 80%는 아직도 미국 내 도로를 달리고 있다”라고 말하며, 미국 내 소비자들을 설득하고 나섰지만, 좀처럼 부정적 여론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미국 <타임>의 온라인판은 1월 29일 역대 최대 리콜 10대 리스트를 발표하면서 현재 진행 중인 도요타 가속페달 리콜을 1위로 올려놓았다. 이번 리콜 사태는 성공 여부를 떠나 규모나 영향을 고려해볼 때, 향후 위기관리 교과서의 주요 케이스로 등장하게 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우리 기업들은 여기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위기를 맞이한 기업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나름대로의 위기 대응책인 ‘서바이벌 키트(survival kit)’가 필요하다. 지금까지 전개된 리콜 사태와 도요타의 대응으로부터 배드 뉴스 관리(bad news management)에 필요한 ‘서바이벌 키트’ 항목 다섯 가지를 살펴보자.
1.‘머피의 법칙’은 농담이 아닌 현실이다.
사람들이 농담처럼 하는, 그러나 위기관리 전문가들은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법칙이 바로 머피의 법칙(Murphy’s law)이다. “일이 꼬이려면, 항상 꼬이게 되어 있다”라는 다소 ‘재수 없게’ 들리는 이 법칙은 단순한 푸념 이상이다. 위기 예방에 있어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던지기 때문이다. 회사에 문제가 되는 이슈가 발생했을 때, 이를 ‘머피의 관점,’ 즉 잭 웰치의 조언처럼 최악의 각도에서 살펴보고 미리 조치를 취하라는 것이다.
미국 <뉴욕 타임스>는 과거에 비해 안전 이슈에 대한 도요타의 대응 속도가 느려졌다고 비판하면서 과거 사례와 비교했다. 1989년 도요타가 미국 내에서 렉서스를 처음 출시하고, 문제가 발견되었을 때, 도요타는 즉각 팀을 꾸려 문제를 해결했으며, 심지어는 소비자 가정에 방문하여 차를 수거해오는 노력까지 했었다. 당시에는 출시하자마자 문제가 발견되면 향후 마케팅이나 영업에 발생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걱정해서 이런 조치가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사태 전개를 보면 도요타가 최악의 시나리오를 미리 고려하면서 최선의 선제 조치를 한 것으로 보기는 힘들다. 머피의 법칙은 기업에게 최악의 시나리오를 기반으로, 방어책을 미리 강구할 것을 요구한다.
2.위기를 불러오는 것은 제품상의 결함이 아닌,
문제 처리 과정에서 보여주는 태도이다.
소비자들의 신뢰와 만족은 제품의 장점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발생했을 때, 기업이 소비자들을 위해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에도 달려 있다. ‘위기(危機)’라는 단어가 위험과 기회를 뜻하는 두 글자를 동시에 갖고 있듯이, 제품상의 결함이 발생했을 때, 기업이 이를 어떻게 다루는가에 따라 기회가 될 수도 있다.
1997년 독일 메르세데스는 당시 출시한 소형 전륜구동차의 안전성 문제가 제기되자, 즉시 조사를 시행해 문제가 된 차량을 모두 리콜하고, 수개월간 생산을 중단시키는 선제적 조치를 취했다. 이를 통해 메르세데스는 해당 모델에 전자 안전 통제 장치를 기본으로 장착했고, 이때 보여준 조치를 통해 소비자들의 신뢰를 획득, 판매에서도 훌륭한 성적을 거뒀다.
1월 27일 미국 의회에서 도요타 담당자는 가속페달의 문제점을 영국과 아일랜드에서 2009년 봄에 처음 알았다고 말했다가, 나중에는 2008년 12월에 알았다고 번복한 것과 대조되는 장면이다.
현재 도요타에 대한 부정적 여론은 가속 페달의 문제점보다는, 이에 대한 도요타의 소비자 안전 조치가 최선이었는지에 대한 의심이 더 발목을 잡고 있다. 이는 도요타 소비자 안전과 관련한 문제점을 회사가 먼저 제기하고 솔루션을 제공하는 형국이라기보다는 미국과 일본의 정부나 언론이 앞서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1000만 대라는 역사상 최대 리콜을 감행하면서도 도요타가 “소비자 안전을 위해 회사가 피해를 무릅쓰고 리콜을 한다”라는 여론을 조성하지 못한 데에는 제품의 문제점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주도권을 제대로 발휘하거나 전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