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사우스웨스트항공의 사례를 속속들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우스웨스트항공의 진정한 경쟁력 원천은 그다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실제 필자가 대기업 관리자와의 워크숍에서 사우스웨스트항공과 관련한 질문을 했을 때 대부분은 ‘펀(Fun) 경영이 유명한 회사’ ‘허브 켈러허라는 경영자의 유머러스함’ ‘바니걸스 복장을 하고 승객을 놀래줬다는 일화’ 등을 떠올렸다. 이는 사우스웨스트항공의 핵심 경쟁력과는 거리가 있다.
이 회사가 세상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1998년 처음으로 발표된 ‘포천 100대 기업(미국 경영 전문지 <포천>이 선정하는 미국의 일하기 좋은 100대 기업)’ 순위에서 1위를 차지한 것이 결정적인 계기였다. 지방 중소 항공사가 기라성 같은 대기업을 모두 제치고 미국에서 가장 일하기 좋은 기업에 선정됐기 때문에 당연히 매스컴의 주목을 받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마치 양파 껍질을 벗겨내듯 불가사의한 사실들이 드러났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사우스웨스트항공은 적은 인원으로 많은 승객을 실어 날랐다. 여객기당 투입되는 평균 인력(지상 요원과 기내 요원)이 131명인데, 이 회사는 79명에 불과했다. 직원당 고객 수는 2318명으로 업계 평균인 848명을 훨씬 웃돌았다. 다른 항공사의 여객기가 착륙 후 재이륙까지 평균 45분이 걸렸지만 이 항공사는 단 15분에 모든 준비를 마치고 하늘로 올라갔다. 이 회사는 여객기 조종사들에게 높은 연봉을 보장하지도 않았다. 후발 주자였고, 중소 항공사에 불과했던 까닭에 조종사 평균 연봉의 4분의 3 수준만 지불했다. 그러나 이직률은 다른 경쟁사보다 낮은 2% 미만으로 억제됐다.
하지만 서비스는 탁월했다. 미국 항공업계에서는 고객 불만율, 수화물 유실률, 정시 이착륙이라는 3가지 지표를 가지고 가장 우수한 항공사에게 트리플 크라운이라는 상을 주는데, 이 항공사는 유일하게 7회 연속 이 상을 받았다. 이외에도 좀처럼 쉽게 수긍이 가지 않는 기록들은 무수히 많다.
미국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의 제프리 페퍼 교수는 “특이한 기업 문화와 다양한 프랙티스에서 저력이 나온다”고 분석했다. 그는 “불행하게도 신문 지면이나 TV 카메라를 통해서는 결코 비춰지지 않으며, 이렇게 쉽게 모방될 수 없기 때문에 진정한 경쟁 우위 요소가 된다”고 지적했다. 특별한 조직 문화는 직원들에게 강한 동기부여를 해주며, 몰입도 향상과 성과 증진을 가져온다. 효과적인 동기부여가 이뤄지려면 반드시 훌륭한 기업 문화를 갖고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조직원들에게 최적의 동기 부여를 가능케 하는 조직 문화는 무엇이고, 어떻게 이런 문화를 만들어야 할까.
몰입 체감의 법칙
먼저 몰입의 문제를 생각해보자. 조직이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직원의 업무 몰입도를 높여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여의치 않다. 직장인들은 출근과 동시에 많은 업무와 접한다. 익숙한 업무는 직원들을 매너리즘에 빠지도록 만들고 낯선 업무는 적지 않은 심적 부담을 준다. 필자는 지난 8년 동안 국내 200여 개 기업의 문화를 진단하고 바람직한 방향으로의 변화 관리를 컨설팅했다. 이 과정에서 ‘몰입 체감(遞減)의 법칙’을 파악했다. 즉, 외부 개입이 없다면 자연 연령이 높아짐에 따라 자기 일(업무)에 대한 몰입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유년기 아이들에게는 뛰노는 것이 일이다. 동네 공터에서 신나게 놀고 있는 아이들을 관찰하다 보면 자기 일(놀이)에 한껏 몰입돼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한여름에는 땀을 뻘뻘 흘려가면서, 한겨울에는 꽁꽁 얼어붙은 손을 비벼가면서 아주 즐겁게 뛰논다. <표1>에서 보는 것처럼 아이들의 몰입도는 매우 높다. 많은 기업에서 직원들에게 일을 놀이처럼 즐겨야 한다며 주장했던 것은 아이들을 관찰한 결과와 같은 맥락이다.
아이들은 성장하여 중고등학생이 된다. 학생에게는 공부라는 과업이 주어진다. 학생이 보여주는 일(공부)에 대한 몰입은 유년기 아이들이 보여줬던 몰입에 비해 현저히 낮아질 수밖에 없다. 몰입을 방해하는 요인들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예컨대 연예계의 아이돌 스타들, 오락실의 게임기, (남학생에게는) 버스에서 마주친 예쁜 여학생 등이 몰입을 방해하는 대표적인 요인들이다. 그렇지만 변함없는 든든한 스폰서(부모)와 학업 및 생활을 지도하는 튜터(선생님)들이 몰입 방해 요인을 극복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배려한다.
중고등학생은 더 나이가 들어 성인이 된다. 학생에게 주어졌던 몰입 방해 요인은 성인이 되면서 대체로 극복될 수 있다. 정상적인 성인에게는 게임에 빠진다거나 팔등신 영화 배우에게 정신이 팔리는 등의 방해 요인들을 적절히 통제하는 능력이 생긴다. 그러나 학생 시절의 몰입 방해 요인과는 비교할 수 없는, 훨씬 강도 높은 새로운 몰입 방해 요인이 등장한다. 그것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바로 성인에게 부여되는 다중적 역할이다.
성인은 자식으로서, 배우자로서, 부모로서, 친구로서, 조직원으로서 수많은 역할을 해야 한다. 아이에게는 보살핌이 있고 학생에게는 조건 없는 지원이 있지만, 성인은 자기 책임하에 모든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일부 기업에서 도입했던 멘토 시스템도 무한정 지원해주는 것은 아니다.
기업은 직원들에게 전적으로 일(업무)에 몰입하라고 요구하지만, 다중적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직원은 근무 시간 중에도 눈치껏 자녀의 귀가를 신경 쓰고 배우자 생일 선물을 고민하며 노모의 건강을 챙기지 않을 도리가 없다. 당연히 업무에 대한 몰입은 놀이 혹은 공부에 대한 몰입에 비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개인차는 있겠지만, 자연 연령의 증가에 따른 몰입 체감은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는 동일한 조건이다.
반복의 무료함과 목적의식
그렇다면 성과의 차이는 어디에서 나오는가. 떨어지는 몰입도를 보완해주는 것은 뚜렷한 목표(목적)의식이다. 아이들은 강한 몰입 상태에서 뛰놀지만 그 놀이를 통해 무엇을 배워야 한다거나 친구를 잘 사귀어야 한다는 식의 목표를 갖지는 않는다. 그저 뛰노는 것이 즐겁고 모든 것이 신기하게 느껴질 뿐이다.
학생에게 주어진 일은 아이들의 놀이와는 다르다. 여러 가지 몰입 방해 요인에도 불구하고 흔들리지 않도록 다잡아주는 것은 ‘왜 공부를 해야 하는가’ ‘왜 성적을 높여야 하는가’ 하는 문제들과 관련한 자기 생각의 정립이다. 그것은 지능 지수 차이 이상의 결정적인 성공 요인이 된다.
성인에게는 더욱 체감된 몰입도를 보완하기 위해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차원의 강한 목표의식, 달성 욕구, 계획 조직화 역량 같은 것들이 요구된다. 사실 당장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직장인들에게 ‘일을 놀이처럼 즐기라’는 주술적(?)인 권고는 공허한 메아리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궁극적으로 업무가 즐겁기 위해서는 ‘왜 일을 하고 있는가’란 질문에 스스로 답할 수 있어야 한다. 때론 힘들고 짜증나지만 목표에 한 발씩 다가서고 있다는 느낌이야말로 일하는 즐거움의 본질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