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부문에서 촉발된 위기가 실물경제로 확산되면서 기업의 평판 관리는 지난 수십 년간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부정적 평판을 받는 기업 및 산업은 종종 대중의 분노를 사고 있으며, 입법기관과 규제당국의 감시를 받을 가능성이 더 높다. 민간 부문에 대한 신뢰도는 보호무역, 규제 등 주요 경제 정책을 수립하는 데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다행히 많은 고위 경영진이 기업 평판 문제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대부분의 경영진은 일부 금융회사들이 소비자와 주주, 규제당국, 납세자들과의 사회적 약속을 저버림으로써 기업 전체 이미지에 광범위한 타격을 입고 있음을 인지하고 있다. 맥킨지 쿼털리가 2009년 3월 전 세계 고위 경영진을 대상으로 수행한 설문조사에서 기업에 대한 대중의 신뢰도가 하락했다고 대답한 응답자가 전체의 85%에 달했다. 또 자유 시장에 대한 대중의 지지가 약화됐다고 대답한 응답자도 72%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2009년 ‘에델만 신뢰도 지표조사(Edelman Trust Barometer)’에서도 세계 20개국 응답자 중 62%가 “1년 전에 비해 기업들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졌다”고 응답했다.
이렇게 기업 평판 문제의 심각성 및 경영 전반에 미치는 영향도가 커지는 것은 단지 최근의 경제 위기 때문만은 아니다. 인터넷 등 미디어 확산과 비정부기구(NGO) 등 이익단체들의 영향력 증대, 광고의 신뢰도 하락 등 일련의 근본적 환경 변화가 주요 원인이다. 기업의 일거수일투족은 더욱 신속하게 노출 및 감시되고 있으며, 전통적 PR 방법들은 평판 관리에서 이전과 같은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제 긍정적인 평판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바뀐 환경에 맞는 새로운 대처 방법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기업들은 새로 발생하는 이슈들을 충분히 파악할 수 있도록 ‘경청의 기술’을 높여야 한다. 이를 통해 핵심 이해관계자들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지지자 네트워크를 구축해 핵심 타깃 계층을 효과적으로 공략할 수 있다. 이를 효과적으로 실행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평판 관리 활동을 수행하는 데 적합한 조직적 기반을 구축해야 한다. 일부 기업들은 이해관계자들의 우려 사항을 더욱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 첨단 분석 기법을 활용하여 고객을 태도 및 성향 중심으로 세분화하고 있다. 또 개별 부서를 초월한 팀을 구성해 평판 관리와 관련된 위협 요인을 폭넓게 수집하고 신속한 대응에 나서고 있다.
이러한 노력에 걸림돌이 되는 조직적 장벽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최고경영자(CEO) 등 고위 리더십의 강력한 의지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고위 경영진이 적극적 의지를 갖고 이를 추진할 경우 변화무쌍한 환경에서도 차별화된 평판을 구축해 이해관계자 및 일반 대중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을 것이다.
기업 평판 관리 환경의 변화
이번 금융위기는 기업의 평판 관리와 관련한 2가지 중대한 변화에 대한 기업들의 대응이 얼마나 미흡한지를 극명하게 보여줬다. 그 첫 번째 변화상은 NGO와 시민 활동가, 온라인 네트워크 등 간접 이해관계자 세력의 성장이다. 실제로 국제연합(UN)이 인정한 NGO 단체의 수는 1980년대 초 1000개 미만이었으나, 최근 4000개 이상으로 대폭 늘어났다. 간접 이해관계자 세력들은 기업들이 인간의 얼굴을 한 글로벌화 추진, 기후 변화, 비만, 인권 침해, 에이즈와 같은 사회적 문제들에 대해 더 적극적인 관심을 보일 것을 요구하고 있다.
둘째, 미디어 기술과 인터넷 등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방식의 확산은 이해관계자들이 기업의 활동을 더욱 신속하고 면밀하게 관찰할 수 있는 도구들을 제공하고 있다. 이제 열악한 노동 조건과 같이 특정 지역에서는 용인돼왔던 이슈들이 ‘시민 기자’와 블로거들에 의해 포착돼 다른 지역에서는 대중적 격분을 일으키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 결과 이전에는 프로세스나 인력, 시스템상의 실패에 기인한 운영상 리스크로 간주되던 문제들이 이제는 막대한 비용을 초래하는 기업 평판 리스크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은행의 거래 데이터 유출은 은행의 평판에 치명적 타격을 입히게 된다. 제약회사의 임상실험에서 투명성이 조금이라도 미흡할 경우 파국적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 머크의 바이옥스(1999년 출시돼 2만7000명에게 심장질환 부작용을 일으킨 소염진통제로, 2004년 머크사가 자진 회수하고 허가가 취소됨) 사례는 이를 잘 보여준다. 특히 금융 부문의 리스크 관리 부실로 일어난 천문학적 손실을 충당하는 데 국민의 혈세가 투입되고 있는 현 상황에서, 부정적인 기업 평판은 경영에 심각한 여파를 가져올 수 있다.
기존 평판 관리 방법의 문제
다양하고 분산된 오늘날의 환경에서 기업들은 평판을 저해할 수 있는 조직 전반의 리스크 요인들을 파악해 고도의 기법으로 분석한 후, 완화 대책을 수립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유형의 제휴 파트너, 정부, 시민 사회단체, 소비자 등 수많은 이해관계자들을 대상으로 한 대응책을 세워야 한다. 여기서 성공의 관건은 전사적 조율 및 조속한 실행 능력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