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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년 역사 듀폰, 나일론을 버리다

이원희 | 31호 (2009년 4월 Issue 2)
혁신인가, 무모한 도전인가
애플이 아이폰을 매각한다는 상상을 해본 적 있는가. 도요타가 자동차 사업을 팔아버리겠다고 한다면? 아마 혁신이 아니라 무모한 도박으로 여겨질 것이다. 그런데 이 무모한 도박에 뛰어든 대기업이 있다. 바로 200년 역사를 자랑하는 듀폰이다.
 
듀폰과 나일론의 결별 선언
듀폰은 1802년 화약 제조업체로 출발해 남북전쟁을 거치며 화약 산업의 독보적 기업으로 성장했다. 듀폰에 제2의 도약을 선사한 것은 나일론이다. 1940년 듀폰은 최초의 합성섬유인 나일론 개발에 성공했다.
 
나일론 스타킹이 시장에 나왔을 때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불과 두세 시간 만에 400만 켤레가 동이 날 만큼 대성공을 거둔 것. 당시 뉴욕타임스에 ‘3만 명의 여자들이 나일론 스타킹을 쟁취하기 위해 전투에 몸을 던졌다’는 기사가 실릴 정도였다. 이후 테플론과 라이크라 등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화학섬유 제품을 계속 히트시키면서 듀폰은 세계 최고의 화학섬유 기업으로 성장해왔다.
 
섬유 사업은 듀폰 전체 매출의 25%를 담당하는 핵심 사업이었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 듀폰은 회사의 심장인 나일론과 섬유 사업을 매각하겠다는 충격적 선언을 했다.
 
변화를 진두지휘하라
1997년 49세의 나이에 듀폰의 최고경영자(CEO)로 뽑힌 채드 홀리데이는 이 대담한 변화를 진두지휘한 장본인이다. 홀리데이에게도 섬유 사업부의 의미는 각별했다. 듀폰 입사 직후 초년병 시절을 보낸 ‘고향’과도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그는 “듀폰의 200년 역사는 과거와 결별하는 과정의 역사다. 성장이 있는 곳으로 언제든지 떠나는 게 듀폰의 전략”이라고 과감히 선언했다. 1998년 듀폰은 코노코 등 알짜 자회사 매각을 시작했으며, 2004년에는 최고 핵심 사업인 섬유 사업을 코흐 인더스트리라는 회사에 매각했다.
 
이후 듀폰이 향한 곳은 엉뚱하게도 옥수수밭이었다. 2004년 듀폰은 77억 달러의 거금을 들여 종자회사인 파이어니어를 사들인 후 가뭄에 잘 견디는 옥수수, 병충해에 내성을 지닌 옥수수, 에탄올 수율이 높은 옥수수 등 갖가지 옥수수를 재배하기 시작했다. 이외에도 듀폰은 1998년부터 2004년까지 무려 600억 달러에 달하는 인수합병(M&A)을 단행했다. 회사의 포트폴리오를 완전히 바꾼 셈이다.
 
듀폰의 이 같은 행보를 전 세계가 주시했다. 일각에서는 ‘200년 듀폰 역사의 최대 도박’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2007년 듀폰의 농산물·식품 분야 매출은 68억 달러를 기록, 기존 주력 사업인 기능성 소재류의 66억 달러를 능가했다. 전체 매출 중 34%를 최근 5년 안에 나온 신제품에서 만들어낼 정도로 대단한 성공을 거뒀다. 듀폰이 화학섬유회사에서 생명공학 산업 소재, 전자정보 통신을 중심으로 한 ‘종합 과학기업’으로 탈바꿈하는 순간이었다.
 
혁신이 필요했던 이유
듀폰이 200년 동안 어렵게 지켜온 업종을 버리고 굳이 위험한 도전을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듀폰은 1974∼1975년 세계 석유파동으로 연간 30% 이상의 매출 감소를 겪으며 큰 위기에 처했다. 강도 높은 구조조정과 경영 효율화를 통해 겨우 위기를 극복했지만, 경영 방식 개선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만으로는 21세기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듀폰이 섬유 사업으로 성장하던 1980년대에는 세계 섬유 산업의 성장률이 세계 경제 총생산(GDP) 증가율의 2, 3배에 달했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세계 섬유 산업의 중심지는 중국 등 개발도상국으로 완전히 옮겨갔다. 섬유 산업 성장률 또한 GDP 증가율 수준 혹은 그 이하로 떨어졌다. 더 큰 도약을 내다보기 힘든 상황이었고, 시장의 변화 속도는 갈수록 빨라지고 있었다.
 
결국 듀폰은 카멜레온 식의 변화만으로는 생존할 수 없는 시대라는 점을 파악하고, 완전히 새롭게 태어나는 나비 식의 변태가 필요함을 절실히 느꼈다. 그리하여 21세기에는 식량 산업이 새로운 화두가 될 것이라 확신하고 과감히 업종 전환을 택했다.
 
비즈니스 3.0 시대에 과거 청산이 중요한 이유
듀폰에는 과거의 성공을 과감히 포기할 수 있는 결단력과 함께 100년 미래를 내다보는 눈이 있었다. 그 덕분에 핵심 사업을 과감히 떨쳐내고, 기존의 성공에 안주하려는 안이한 태도를 거부하며 지속적으로 변신하는 데 성공했다. 과거의 성공이 미래 발전에 장애물로 작용한다면 아무리 찬란한 과거 유산이라 할지라도 과감히 청산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제 한국 기업들도 과거의 성공 방식에 연연하지 말고 새로운 성공 방정식을 찾아야 할 때다. 바야흐로 ‘비즈니스 3.0’ 시대가 다가왔기 때문이다. 비즈니스 1.0은 분업과 표준, 대량 생산과 규모 확대의 시대였다. 비즈니스 2.0은 리엔지니어링, 6-시그마 등 각종 경영 기법을 활용한 진보와 혁신의 시대다.
 
그렇다면 비즈니스 3.0 시대란 무엇일까? 경영의 3대 축인 사업 분야, 사업 방식, 조직 문화 차원에 걸쳐 고객 가치를 창출하는 방식을 변화시키는 ‘창조와 혁명’의 시대다. 성공을 위해 핵심 산업마저 과감히 포기한 듀폰의 ‘창조적 전환’이야말로 비즈니스 3.0 시대에 걸맞는 혁신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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