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달러짜리 휴대전화의 교훈

30호 (2009년 4월 Issue 1)

우리가 전례 없이 힘든 경제 상황에 직면했다는 사실은 누구나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기업 중역들은 지난 2000년 세계적 불황이 닥쳤을 당시 들었던 얘기와 놀라우리만치 비슷한 조언을 듣고 있다. 특히 서구 기업들은 위험 평가, 위기 대처 방안 마련, 핵심 부문 주력, 비용 절감을 비롯해 예기치 못한 상황에 맞닥뜨릴 준비를 하고 있다. 그들은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는 방법이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 믿고 있는 것 같다. 공개적으로 말하지는 않지만, 기업들의 목표는 위기를 견뎌내고 살아남는 것이나 시장점유율을 빼앗기지 않는 것 정도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방법들은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금 세상은 규제 완화, 점차 낮아지고 있는 무역 장벽, 눈부신 기술 발전, 인구 증가, 도시화 등으로 인해 급격히 변해가고 있다. 10여 년 전에는 먹혀들었던 전략이라도 이제 더 이상 해결책이 될 수 없는 상황이 돼버렸다. 예전에는 경기가 나빠지면 이미 자리를 잡고 있는 기업들이 이득을 보기도 했다. 규모의 경제와 탄탄한 고객층을 형성한 기존 업체들은 얼마든지 신생 업체들보다 이득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세상이 달라졌다. 개도국 기업들이 서구 기업들의 시장점유율을 빼앗으려 하거나, 심지어 서구 기업 자체를 사들이려는 실정이다. 뿐만 아니라 불황으로 산업의 역학관계가 바뀔 수도 있다. 맥킨지와 보스턴컨설팅그룹이 공동으로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지난 2000년 세계적인 불황이 닥쳤을 때 각 업계에서 상위 25% 안에 들던 기업 중 3분의 1이 급격한 하락세를 겪었다. 5년이 흐른 후 다시 살펴보니 고작 10%만이 원래의 입지를 되찾았다. 오늘날 상위 25% 안에 드는 기업 중 15%는 불황을 겪으면서 단숨에 상위권으로 치고 올라온 기업들이다.
 
시류를 아는 기업들은 불황으로 인한 위협뿐 아니라 기회를 포착할 줄도 안다. 성장을 거듭해 위기를 거쳐 한층 경쟁력 강한 기업이 되는 게 목표다. 1930년대 대공황 때도 GE, 켈로그, P&G 등이 경쟁업체를 누르고 업계 1위로 올랐다. 이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역경을 강점으로 바꿔놓았는데, 간단히 분석해보니 이들의 성공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대공황이 미국 경제를 뒤흔들 당시, 이들은 모두 고객이 지불한 돈보다 더 나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누릴 수 있도록 해주는 전략을 개발했다. 즉 불황으로 심각한 타격을 입은 고객들이 똑같은 자원을 가지고 더 많은 결과물을 만들어냄으로써 효율성을 높이도록 했다. 또 자원을 적게 들여도 똑같은 결과물을 내놓아 능률을 높일 수 있는 제품 및 서비스를 성장의 발판으로 삼았다.
 
최적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가치를 뽑아내는 것’이 다시금 기업 전략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비단 불황 때문만은 아니다. 선진국에서 지난 10여 년 동안 가계 수입은 늘어났지만 그 혜택을 본 사람은 상위 20%뿐이었다. 나머지 가계의 구매력은 그대로거나 오히려 작아졌다. 가령 미국에서도 대다수 사람들은 부동산 대출, 교통비, 공과금, 의료보험 등을 모두 내고 나면 돈을 빌리지 않고서는 기존의 생활 수준을 유지하기 힘들다. 좀더 최근 상황을 보면, 임금 상승률은 낮아지고 일자리는 줄어들어 소비자들이 허리띠를 졸라맬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면서 많은 소비자들이 가치를 중시하게 됐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할인점 월마트의 시장점유율은 높아지는 반면, 고급 유통 체인의 시장점유율은 낮아지는 추세다. 고급 승용차 시장의 불황과는 별개로, 소형 승용차나 연비가 높은 자동차 매출이 지난 5년간 증가 추세를 보이는 것도 전혀 놀랍지 않다. 크레디트 스위스가 최근 발표한 연구 자료에 따르면, 2007년 서유럽에서 가격 대비 가치를 중시하는 브랜드의 시장점유율이 2%포인트 상승한 반면, 고급 브랜드의 시장점유율은 그만큼 하락했다.
 
개도국 소비자들은 예전부터 가격 대비 가치를 중요하게 여겨왔다. 대다수가 최근에야 소비 계층이 됐고, 실소득 규모도 그리 크지 않다. 크레디트 스위스는 중국에서 기본적으로 꼭 쓰는 비용보다 가계 수입이 높은 사람들이 2008년 5500만 명에서 2013년 2억1200만 명으로 늘어날 것이라 보고 있다. 하지만 이들 대다수의 연간 수입은 5000달러를 약간 웃도는 수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시장 조사 기관인 인포메이션 리소시즈는 2020년이 되면 전체 인도인들 가운데 5%가 연간 4000달러 이상 가계 수입이 생길 것으로 내다보면서도, 4000달러를 많이 웃도는 수준은 아닐 것이라고 설명한다. 한편 중국과 인도의 중상위 계층 소비자들은, 욕구는 커지고 물가는 나날이 높아지는 가운데 수입은 제한돼 있어 불필요한 지출과 낭비를 자제하게 된다. 개도국에서 활동하는 기업들은 경쟁우위를 얻기 위해 비용 절감을 중시하게 된다. 그래서 기기나 서비스를 구매할 때 그만큼 가치가 있는지 꼼꼼히 살피게 된다.
 
따라서 개도국이나 선진국 어느 쪽에서든 지출 금액에서 최적의 가치를 뽑아내는 게 중요하다. 이런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기업들은 어떤 역량을 갖춰야 할까? 본 연구 결과, 비용 절감 기법을 선보이기 위해 노력하기보다 비용 혁신 역량을 키워야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즉 창의적 방식으로 비용 구조를 재설계해 고객들에게 적은 비용으로도 예전보다 훨씬 많은 것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국내외 시장에서 낮은 가격으로 공략하는 경쟁업체들과 정면 대결하기보다 고가 시장에 진출하거나 고급 시장을 창출해왔던 미국, 유럽, 일본 기업들에게는 그다지 좋지 않은 소식일 수도 있다. 개도국에 기반을 두고 있는, 시류를 아는 재빠른 기업들은 이미 대중 시장(mass markets)을 뚫고 들어가기 위해 비용 혁신 역량을 갖추고 있는 만큼 기존의 고급화 전략은 더 이상 실용적이라고 볼 수 없다. 다국적 기업들이 개도국의 경쟁업체들, 혹은 자사의 해외 지사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불황을 잘 이겨내거나 오랜 기간 경쟁력을 유지하기 힘들 수도 있다. 

 
비용 혁신을 위한 3가지 방법
원래 ‘혁신’이라 하면 새로운 제품 및 서비스를 개발하거나 기존 제품 및 서비스에 새로운 기능과 특성을 더하는 것과 관련 있다. 어느 쪽이든, 혁신을 택한 기업에서는 고객들이 기꺼이 추가로 돈을 낼 것이라고 기대하게 된다. 기능적으로는 좀더 우수하거나 변화가 없지만 가격을 낮춘 제품 및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법으로 혁신을 하겠다는 생각은 기존의 방식과 다르다. ‘왜 이미 시장에 형성돼 있는 것보다 낮은 가격에 물건을 팔려고 연구하는 걸까?’라고 생각하며 이런 아이디어 자체를 어리석다고 생각하는 중역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재빠른 개도국 기업들은 가치를 중시하는 대다수 자국 시장 고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이런 전략을 채택한다.
 
개도국 대기업들은 처음에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인건비를 바탕으로 값싼 제품 및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법을 택했다. 하지만 요즘은 추가적으로 경쟁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비용 혁신에 눈을 돌리고 있다. 요즘같이 경제 상황이 좋지 않을 때 개도국 기업들은 이런 역량을 통해 자국 시장에서 선전할 수 있다. 또한 선진국에서 가격 대비 가치를 중시하는 시장에 파고들기 위해 활용할 수도 있다.
 
비용 혁신 전략을 사용하면 몇 가지 측면에서 기존 제품이나 서비스에 비해 부족해 보이지만 가격이 싸고 사용이 간편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어 시장에서 놀라운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뒤에서 좀더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이 전략을 사용하면 게임의 법칙을 바꾸거나, 기존의 이윤 모델을 파괴하거나, 기존 선두 업체들이 제대로 대응할 만한 준비가 돼 있지 않은 시장을 키워나갈 수 있다. 이를 통해 선두 업체들의 자산, 역량, 경험을 쓸모없게 만들어버릴 수도 있다.
 
개도국 대기업들은 다음 방법들을 활용해 비용을 혁신할 능력을 키워나가고 있다.
 
대중적 가격으로 첨단 기술을 판매하라 기업들은 복잡한 제품을 만들거나, 얼리어답터만을 위해 최신 기술을 종종 쓴다. 초반에는 최신 기술을 몇몇 시장에만 선보이다가 시간이 흐른 뒤 주류 시장에 내놓는 방식을 사용하면, 제품 주기가 진행되는 동안 계속 가치는 최대로 높이고 연구개발(R&D) 투자 효용은 극대화할 수 있다. 하지만 개도국의 일부 대기업들은 처음부터 낮은 가격에 최신 기술을 대중 시장에 선보이기도 한다.
 
중국 기업 BYD는 책정된 가격에서 최적의 가치를 뽑아낸 덕분에 세계 배터리 시장의 선두 업체로 성장할 수 있었다. 리튬 이온 배터리를 사용하면 휴대전화, 전기 자동차 등 배터리의 힘을 빌려 움직이는 기기를 오랜 시간 쓸 수 있다. BYD가 배터리 제조 부문에 뛰어들었던 1994년 당시에는 일본 기업 4곳이 배터리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다. 이 업체들이 생산하는 값비싼 리튬 이온 배터리는 고가의 제품에만 사용됐다. BYD는 무작정 성과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기보다 리튬 이온 배터리 제조에 쓰이는 값비싼 원자재 대신 저렴한 대체재를 사용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뿐만 아니라 습도 및 온도가 일상생활 환경과 같은 조건에서도 리튬 이온 배터리를 생산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해 공장 내부에 값비싼 ‘건조실’을 지을 필요가 없어졌다. 결국 단위당 배터리 생산 비용을 40달러에서 12달러까지 낮춤으로써 성능이 낮은 니켈 카드뮴 건전지에 비해 경쟁우위를 얻게 됐다. BYD가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할 수 있는 리튬 이온 배터리를 개발하면서 이 배터리 가격은 점차 내려갔다. 2007년 BYD가 생산하는 리튬 이온 제품은 무선전화기용 배터리 시장의 75%, 장난감용 배터리 시장의 38%, 전동 도구용 배터리 시장의 30%, 휴대전화용 배터리 시장의 28%를 차지하게 됐다. 산요와 소니는 노트북용 리튬 이온 배터리가 폭발하는 사고로 제품을 수거해야 했지만, BYD는 저비용 생산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리콜을 실시한 적이 없다.
 
인도 기업들도 최신 기술을 대중 시장에 선보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REVA 전기 자동차 회사(RECC)의 전기 자동차들은 모두 인도의 중저가 자동차 시장을 목표로 한다. 인도 방갈로르에 위치한 마이니그룹과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AEV가 합작해 1994년 탄생한 RECC는 2001년 6월 REVA(Revolutionary Electric Vehicle Alternative의 줄임말로 ‘혁신적인 전기 자동차의 대안’이라는 뜻)를 내놓았다. 최고 시속 50마일을 자랑하는 소형 해치백(hatchback) 모델인 REVA는 완전히 충전되면 시내 주행 상황에서 약 50마일을 달릴 수 있다. 운영 비용은 1마일당 1센트가 조금 넘는 수준이다. REVA는 현재 영국에서 ‘지-위즈(G-Wiz)’라는 이름으로 8000파운드에 판매되고 있다. 그 외 몇몇 유럽 국가에서도 판매되고 있으며, 현재 미국에서도 시험 판매 중이다. REVA는 비슷한 모델들 가운데 특히 GM이 2010년 출시를 목표로 개발 중인 시보레 볼트와 각축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REVA보다 덩치가 큰 볼트는 전기, 휘발유, 에탄올을 모두 사용할 수 있는 하이브리드 자동차 모델로, 한번 충전한 후 40마일가량 달릴 수 있으며 이후에는 휘발유나 에탄올 엔진을 쓴다. 하지만 예상되는 볼트의 미국 판매 가격은 3만4만 달러로, 영국에서 판매되는 REVA 가격의 2배가 넘는 수준이다. RECC는 사세 확장을 서두르지 않고 있지만, 세계적 불황으로 인해 REVA의 저렴한 가격 및 운영 비용이 매출 상승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몇몇 개도국 대기업들은 낡고 오래된 기술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해 하이테크 시장을 쇄신하고 있다. 중국 기업 종싱 메디컬은 직접 디지털 영상기술(Direct Digital Radiography·DDR)을 새로운 방법으로 활용해 의료기기 시장을 재편했다. DDR은 X선을 컴퓨터 분석이 가능한 디지털 신호로 바꿔놓았고, 그로 인해 오랫동안 사용돼온 화학 과정을 건너뛸 수 있게 됐다. DDR 시스템에는 흉부 검사와 같은 일반 진료에 유용한 라인스캔(linescan) 기기와 심장 검사 같은 정교한 검사에 가장 도움이 되는 평판 영상 시스템 2가지가 있다. GE와 필립스는 개당 가격이 30만40만 달러에 이르며 최고의 이윤을 안겨줄 가능성이 높은 평판 영상 시스템 개발에 집중하고 있었다. 반면 종싱 메디컬의 모회사 차이나 에어로스페이스는 1998년 러시아 과학회가 보유하고 있던 라인스캔 기술을 사들인 뒤, 방사선 수요가 가장 큰 곳인 병원의 진료 과정에서 꼭 필요한 DDR 기기를 개발했다. 평판 영상 시스템은 개당 비용이 15만20만 달러에 이르는 데 반해 DDR 시스템 설치 비용은 2만 달러 정도에 불과하다. 1999년 종싱 메디컬은 제한된 예산 내에서 의료 장비를 사야 했던 중국의 수많은 중소 병원들이 지불할 수 있는 가격으로 DDR 기기를 내놓아 시장으로부터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시장점유율이 떨어지자 GE와 필립스는 평판기기 가격을 10만15만 달러가량 낮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싱 메디컬은 지금까지도 중국 시장에서 50%의 시장점유율을 확보하고 있다. 반면 GE는 10년 전에 비해 가격을 절반 수준으로 낮춰 경쟁하고 있고, 필립스는 중국에서 관련 제품을 철수했다. 종싱 메디컬은 이윤을 재투자해 10초가 걸리던 영상 스캔 시간을 2초로 줄이고, 환자들이 좀더 편안하게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배려하는 등 라인스캔 기기 성능을 꾸준히 개선하고 있다.
 
[HBR TIP] 개도국 이용하기
 
선진국 기업들은 개도국 시장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재고해 전략을 세움으로써 가격 대비 최적의 가치를 제공하는 시장에 침투할 방법을 찾을 수 있다.
 
- 단순히 싼 노동력을 공급하는 시장 이상으로 개도국을 대할 수 있다
사례: 로지텍은 저렴한 노동력을 활용하기 위해 중국에 글로벌 제품 설계 센터를 설립했다. 중국 엔지니어들은 신속하게 제품을 개발할 뿐 아니라, 상대적으로 저렴한 생산이 가능하도록 제품을 설계할 수 있다.
 
- 다국적 기업들은 해외 자회사에서 개발된 제품을 자국 시장에 내놓아야 한다
사례: 인도에 있는 휴렛팩커드(HP) 실험실에서는 현지 소매업체들이 재고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는 단순하면서도 저렴한 기기를 개발하고 있다. HP는 미국 중소기업들에 이 기기를 팔면 수익이 꽤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 선진국 기업들은 개도국의 저비용 마케팅 기법을 자국에서도 활용해야 한다
사례: 대만 기업 에이서는 아시아 여러 공항의 고객용 짐수레에 자사의 이름을 적어둬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으로 자사 제품을 효과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 선진국 기업들은 개도국의 대기업과 협업할 수 있다
사례: 미국의 쓰리콤은 중국의 화웨이(華爲)와 손을 잡고 네트워크 사업 부문에서 시스코와 경쟁하고 있다. 두 회사는 합작을 통해 시스코보다 낮은 가격에 다양한 신제품과 서비스를 선보일 수 있게 됐다.
 
- 서구 기업들은 개도국에서 규모가 커지고 있는 대중 시장에 투자해야 한다
사례: 중국 진출 초기에 노키아는 고급 휴대전화 시장을 공략했다. 하지만 현지 업체들이 가격은 저렴하고 기능은 좋은 제품들을 차례로 내놓으면서 노키아의 시장점유율은 떨어졌다. 노키아는 전략을 바꿔 중저가 시장을 공략함으로써 다시 업계 선두 자리를 되찾았다.
 
선택의 폭을 넓히거나 맞춤형 제품을 판매하라 다양한 제품이나 맞춤 상품, 혹은 서비스를 원하는 소비자들은 보통 값비싼 추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규모의 경제’에만 집중하는 대다수 선진국 기업들이 고객에게 다양한 선택권을 주면 회사 운영이 손쓸 수 없게 흐트러져버릴 것이라고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고객이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해주려다 보면 생산 라인을 바꾸기 위해 추가로 시간을 써야 하고, 쓸모없어진 재고 때문에 손해를 봐야 한다. 하지만 개도국 기업들은 ‘범위의 경제학’을 익힌 덕분에 다양성 및 고객 맞춤의 규칙을 변화시킬 수 있었다. 우선, 개도국 시장은 상대적으로 인건비가 저렴하므로 맞춤형 디자인을 개발하고 생산 라인을 바꿀 직원들을 다수 채용할 수 있다. 둘째, 개도국 기업들은 질 높은 제품을 공급하기 위해 자동화를 갖추는 한편 사람이 직접 생산에 참여하는 등 유연하게 대처하기도 한다. 셋째, 중국이나 인도는 서구에 비해 틈새시장이 훨씬 큰 편이라 기업들이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면서도 이윤을 낼 수 있다.
 
대표적 사례로 중국의 굿베이비를 들 수 있다. 모두 1600종에 달하는 유모차, 어린이용 카시트, 요람, 보행기, 유아용 놀이 울타리, 어린이용 의자, 세발자전거, 어린이용 두발자전거를 생산하는 굿베이비는 경쟁업체보다 무려 4배나 많은 종류의 상품들을 합리적인 가격에 판매하고 있다. 상하이(上海)에 위치한 굿베이비는 울퉁불퉁한 바닥에서도 간단히 사용할 수 있는 유모차에서부터 단 2번의 동작만으로 간단하게 접을 수 있는 유모차까지, 실제로 고객의 욕구를 모두 충족시킬 수 있는 제품을 만든다. 뿐만 아니라 유모차계의 롤스로이스라 할 수 있는 600달러짜리부터 단돈 30달러의 저렴한 종류까지 다양한 가격대의 유모차를 판매한다. 굿베이비에서 초기에 내놓은 유모차 중에는 하나 가격에 2가지 기능이 있는 어린이용 카시트 겸용 유모차도 있었다. 4억 달러 규모의 굿베이비가 이처럼 다양한 상품을 내놓을 수 있는 것은 아낌없는 R&D 지출 덕분이다. 굿베이비는 세계 장난감 업계 R&D 투자 수준의 2배에 달하는, 연간 수익의 4%를 R&D에 투자하고 있다. 현재 중국, 독일, 프랑스, 영국, 미국, 일본에 있는 R&D 센터에서 220명의 디자이너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으며, 평균적으로 매일 2개의 신제품이 나오고 있다. 2008년 굿베이비는 중국 유모차 시장의 80% 및 미국 유모차 시장의 25%를 장악했다.
 
다양성은 개도국 기업들이 선두 자리를 지키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인도의 유나이티드 스피리츠는 인도 최대의 세계적 주류 회사다. 10억 달러 규모를 자랑하는 이곳은 맥주와 와인뿐 아니라 위스키, 럼, 진, 보드카 등 총 140종에 이르는 주류 브랜드를 내놓고 있다. 그리고 총 151개에 이르는 각종 브랜드와 3000개에 달하는 재고 관리 단위(Stock Keeping Unit·SKU)를 관리한다. 이 회사는 사실상 모든 가격대의 주류를 공급하기 때문에 거의 모든 사회경제적 계층의 소비자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인도의 담배 제조회사 ITC도 이 교훈을 가슴 깊이 새겨두었다. 2000년대 초, 50억 달러 규모의 ITC는 즉석식품 및 식료품 부문으로 사업을 다각화해 밀가루, 양념, 과자 등을 팔기 시작했다. 또한 생활용품 사업에도 뛰어들어 향수, 비누, 샴푸, 컨디셔너, 샤워 젤, 데오도란트 등도 시장에 선보였다. ITC는 식품과 생활용품 부문에서 모두 대다수 다국적 경쟁업체들보다 훨씬 다양한 제품을 내놓고 있다. 그 덕분에 인도의 소규모 소매 매장에서 가장 눈에 띄게 진열되고 있을 뿐 아니라 진열대 대부분을 차지해 경쟁업체 제품을 구석으로 밀어냈다.
 
전 세계 항구용 크레인 시장에서 54%의 시장점유율을 확보하고 있는 상하이 젠후아 항만기기(ZPMC)도 다양성을 추구하고 고객 맞춤 서비스를 제공해 성공했다. 이 회사는 중국의 기술 인력 인건비가 저렴하다는 사실에 착안해 약 800명의 설계 담당 엔지니어를 고용했다. ZPMC의 엔지니어들은 혁신적 기술의 실험이나 우수한 기능 개발보다 표준 디자인을 고객의 요구에 맞춰 수정하는 데 주력했다. 각 항구마다 구조도, 운영 방식도 다르기 때문에 이 회사는 고객의 다양한 요구를 모두 충족시키기 위해 여러 크레인 모델을 선보이고, 고객이 원하는 맞춤형 솔루션을 신속히 제시했다. 이런 노력의 결과, ZPMC는 경쟁업체들이 갖지 못한 우위를 얻게 됐다.
 
틈새시장을 대중 시장으로 키워라 대부분 기업들은 틈새시장을 ‘자신의 특별한 요구 사항을 충족시키는 제품 및 서비스를 얻기 위해 기꺼이 높은 비용을 지불하고자 하는 소수의 고객으로 구성된 시장’이라고 정의할 뿐이다. 가격이 지나치게 높게 형성돼 있거나, 가격에 비해 제공되는 가치가 높지 않은 탓에 그동안 숨겨져 있던 잠재 수요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미국 시장에 진출한 지 10년이 채 안 돼 와인 냉장고 시장의 60%를 장악한 중국의 하이얼 같은 우수 기업들은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잠재 수요를 활용하고 틈새시장 규모를 키우는 방법으로 뛰어난 성과를 올리고 있다.
 
틈새시장이 놀랄 만큼 가치가 큰 시장으로 성장할 수도 있다. 중국 최대 DVD 플레이어 제조회사인 신커(新科)는 2002년 세계 시장에 진출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소니, 파나소닉, 삼성 등과 정면 대결을 원치 않았던 신커는 우선 휴대용 DVD 플레이어 시장에 집중하기로 했다. 신커가 휴대용 DVD 플레이어 시장이 매력적이라고 판단한 3가지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이는 가정용 DVD 플레이어보다 가격이 상대적으로 높아 고객들에게 경쟁업체들보다 좀더 많은 가치를 제공할 수 있었다. 둘째, 대부분의 제조회사들이 휴대용 DVD 플레이어를 비싸게 내놓아 고객들이 선뜻 지갑을 열지 못하는 상황이라 이에 대한 수요가 잠재돼 있었다. 셋째, 사용자가 자동차나 기차에서 DVD를 이용할 때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불법 DVD 사용을 막으려고 자사에서 직접 개발한 오류 수정 기술을 활용할 수 있었다. 신커는 몇 달 만에 경쟁 제품보다 3050%가량 저렴한 휴대용 DVD 플레이어를 출시했다. 발표 자료에 따르면 신커가 휴대용 DVD 플레이어 시장에 진출한 후 5년 동안 시장 규모가 무려 10배나 커졌고, 신커는 30%의 시장점유율을 확보하며 업계 선두 업체로 자리매김했다.
 
높은 이윤을 고집하기보다 매출 분량을 늘리는 데 집중한다고 해서 손해를 보지는 않는다. 지금은 어부나 농부들도 휴대전화를 사용할 만큼 인도 어디서나 휴대전화를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휴대전화 서비스가 처음 시작된 1995년에는 상황이 달랐다. 당시 1세대 휴대전화 운영회사들은 국유 유선전화 회사들보다 더 많은 요금을 부과했다. 뿐만 아니라 휴대전화 단말기 값이 무척 비싸 개통을 하려면 5001000달러를 지불해야 했고, 전화를 걸 때마다 약 32센트를 내야 했다. 대다수 인도인들에게 이 금액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큰 액수였다. 그러다 2002년 이후 바티 에어텔, 릴라이언스 텔레콤 등 인도의 선두 이동통신 회사들이 시장 규모를 키우고 업계를 통합하기 위해 가격을 낮추기 시작했다. 프리미엄 시장에서 출발했던 휴대전화 사업이 단기간에 대중 시장으로 진화한 것이다. 2007년 바티 에어텔과 릴라이언스 텔레콤 가입자는 각각 6500만 명과 1억 명에 이르렀다. 가격 인하에도 불구하고 이 회사들은 여전히 많은 이윤을 내고 있다. 이 두 회사가 고객 1명으로부터 얻는 수익은 서구 회사 수익의 25% 수준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들은 저비용 비즈니스 모델을 선택한 덕분에 경쟁업체들보다 한층 높은 이윤을 얻고 있다.
 
[HBR TIP] 비용 혁신의 3가지 유형
 
개도국 기업들은 국내외 시장에서 가격 대비 가치를 중시하는 시장을 장악하고, 낮은 노동 비용뿐 아니라 우수한 비용 혁신 역량도 활용하고 있다.
 
- 대중적 가격으로 최첨단 기술을 판매하라
BYD는 리튬 이온 배터리 생산 비용을 대폭 절감해 성능이 떨어지는 니켈 카드뮴 건전지를 대체함으로써 세계 배터리 시장의 선두 업체로 성장했다.
 
- 고객이 선택할 수 있는 폭을 넓히거나 맞춤형 제품을 판매하라
유나이티드 스피리츠는 총 140개에 달하는 다양한 가격대의 주류 브랜드를 출시하는 융통성 있는 방식으로 인도 최대 주류업체의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 틈새시장을 대중 시장으로 키워라
중국 가전업체 하이얼은 과감한 가격 인하 전략으로 미국 시장에 진출한 지 10년도 안 돼 와인 냉장고 시장의 60%를 장악했다. 이에 따라 규모가 작은 틈새시장을 많은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대중 시장으로 키울 수 있었다.
 
다국적기업의 대응 전략
선진국 기업들은 대체로 자국에서 거대 개도국 기업들에 대응하는 방법으로 ‘고가 시장에 집중’하는 쪽을 택한다. 하지만 이 전략은 효율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고가 시장은 규모 자체가 크지 않아 대중 시장을 잃으면 투자할 만한 대상을 찾기 힘들 수도 있다. 생산 수준은 급격히 낮아지고 제조 원가는 높아지는 것이다. 반면 개도국의 경쟁업체들은 생산 규모를 늘려 R&D 및 제조 인프라 구축에 소요되는 비용을 분산한다. 그들은 대중 시장에서 얻는 수익이 고정 비용과 맞먹기 때문에, 고가 시장에 진출할 때 변동비에 해당되는 낮은 금액을 가격으로 책정해 틈새시장을 대중 시장으로 성장시킨다. 그 결과 기존 업체들은 가격대가 더 높은 시장으로 후퇴하고 불리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미국, 유럽, 일본 회사들이 가격대가 높은 초고가 시장으로 옮겨가는 대신 적당한 수준의 가격과 그에 따른 가치를 원하는 세계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다음 5가지 접근법 중 하나 이상을 선택하면 된다.
 
개도국 시장의 저렴한 자원을 확보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라 선진국 기업들은 대부분 비용 절감을 위해 중국, 인도와 같은 개도국에서 직·간접적으로 자원을 확보한다. 지속적 성장을 원한다면 R&D에서 고객 서비스에 이르는 가치 사슬 중 더 많은 단계를 개도국으로 옮기는 등 좀더 대담한 행보를 취해야 한다.
 
컴퓨터 주변기기 제조회사 로지텍의 사례를 살펴보자. 로지텍은 1994년 중국 쑤저우(蘇州)에 글로벌 생산 센터를 설립하면서 아일랜드와 미국의 공장을 폐쇄했다. 하지만 이 대담한 선택도 경쟁우위를 지키기에는 충분하지 않음을 깨닫고, 2005년에 다시 대규모 제품 설계 센터를 쑤저우에 설립했다. 현재 80명의 디자이너가 쑤저우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로지텍이 제품 개발 공정 대부분을 쑤저우로 옮기고 있음을 감안하면 디자이너 수는 조만간 2배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로지텍과 비슷한 방법을 택하는 기업들이 많아 해외 기업들이 중국에 설립한 R&D 센터의 수는 지난해 무려 700개에 달했다.
 
일부 대형 정보기술(IT) 회사들도 세계화 기지를 해외로 옮기고 있다. 2007년 12월 시스코는 방갈로르에 세계화 센터를 설립하고, 최고세계화책임자(CGO)를 파견했다. 시스코의 CGO는 새로운 경로와 시장, 프로세스,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기능 부서 리더들과 협력하는 한편,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해 시스코의 세계화 전략을 수립한다. 인텔은 시스코보다 한발 앞서 2005년 8월 자사의 채널 플랫폼 그룹을 상하이로 옮겼고, 덕분에 저렴한 가격에 뛰어난 기술을 원하는 선진국 시장 일부와 개도국 시장의 수요를 늘릴 수 있었다. 시스코와 인텔은 각각 인도와 중국에서 확보한 비용 혁신 역량을 세계 시장에서도 활용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사실 실리콘밸리의 본사는 개도국 시장과 멀리 떨어져 있는 데다, 한물간 기술 제품을 몇 푼 안 되는 가격에 팔기보다는 많은 돈을 받고 하이테크 제품을 판매하는 쪽을 선호하기 때문에 비용 혁신 역량을 갖추기는 힘들 수도 있다.
 
개도국에서 제품을 개발한 다음 자국 시장에 선보여라 해외 자회사에서 개발한 혁신의 잠재력을 충분히 활용하는 다국적기업은 거의 없다. 모체가 되는 조직이 가장 중요하고, 자국이야말로 모든 혁신의 원천이라는 생각을 좀처럼 버리지 못하는 탓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복잡한 현실에 직면한 일부 선구적인 다국적기업들은 자사의 혁신 전략에서 개도국 시장의 역할을 재조명하고 있다.
 
2006년 영국 런던의 주류회사 디아지오는 홍콩에 혁신 그룹을 설립했다. 이 그룹은 디아지오가 세계 시장에 내놓을 혁신적 상품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기술을 찾아내고, 아시아에서 나타나는 트렌드를 포착하는 역할을 맡았다. 유니레버는 오랫동안 인도를 혁신의 원천으로 여기고, 인도에서 생산한 제품을 세계 시장으로 수출하고 있다. 250명이 넘는 유니레버 연구진이 방갈로르와 뭄바이의 R&D 센터에서 근무하며 600여 개의 특허를 확보하는 등 뛰어난 활약을 보이고 있다. 이 2개의 R&D 센터에서는 최근 엄격한 미국 환경보호국 기준을 충족시키는 저렴한 정수 시스템 ‘퓨어잇’ 개발을 지휘했다. 힌두스탄 유니레버는 2008년 인도에서 퓨어잇을 출시했고, 향후 아프리카나 남미 등의 개도국들에서도 판매할 계획이다.
 
인도의 HP 실험실에서도 영세업자들의 재고 관리를 도와주는 간단하면서도 저렴한 ‘숍 오너스 매니지먼트 어시스턴트’를 개발했다. 이 기기는 소매 소프트웨어가 깔려 있는 리눅스 기반 컴퓨터로 매장 주인들이 재고를 관리하고, 바코드가 붙어 있는 상품 및 그렇지 않은 상품을 동시에 관리하며, 일부 기본적인 보고서를 작성하는 데 유용하게 구성돼 있다. 인도의 영세업자들에게 팔 목적으로 이 상품을 개발한 HP는, 고객이 확보하고 있는 재고 수준을 파악할 때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에 도매업체 및 제조업체들도 이 기기를 원한다는 것을 알았다. HP는 개도국 시장에서 이 기기를 판매할 계획이며, 선진국에서도 기존의 재고 추적 시스템을 구매할 여력이 없는 중소기업들을 중심으로 수요가 늘어나리라 추정하고 있다.
 
선진국 시장에서와 마찬가지로 개도국 시장에서도 브랜드에 투자하라 개도국에서는 정치 쿠데타, 초(超)인플레이션, 불황, 환율 널뛰기 현상 등이 심심치 않게 나타난다. 선진국 기업들은 이처럼 변동이 심한 환경에서 개도국 기업들이 택하는 마케팅 전략과 브랜드 관리 기법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가령 서구 기업들은 브랜드를 탄탄히 하기 위해서는 텔레비전 광고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개도국 기업들은 적절한 수준의 가격 대비 가치를 지닌 상품을 내놓으려면 텔레비전 광고에 많은 돈을 쏟아부을 수 없다. 따라서 선진국 기업들도 개도국 시장에서 원하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텔레비전 광고 이외의 대안을 찾아야 한다. 안타깝게도 대다수 개도국 시장에서는 광고 수단으로 인터넷을 사용하기도 힘들 때가 많다.
 
대만의 컴퓨터회사 에이서는 기발한 방법을 생각해냈다. 이 회사는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아시아 공항들에서 사용되는 고객용 짐수레 및 카트에 자사의 이름을 적어 넣었다. 항공료를 낼 수 있는 출장객이나 여행객은 모두 노트북을 살 수 있는 잠재 고객으로 볼 수 있다. 에이서의 잠재 고객들은 자동차에서 내려 게이트에 도착할 때까지, 혹은 짐을 찾아 출구로 갈 때까지 약 510분 동안 짐수레를 밀면서 에이서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읽게 된다. 즉 에이서라는 이름과 슬로건이 잠재 고객에게 노출되는 시간은 30초에 불과한 텔레비전 광고에 10번이나 20번 노출되는 시간과 같은 셈이다. 결국 이 광고 기법은 비용 대비 효과가 매우 크다고 볼 수 있다.
 
개도국 대기업들이 선진국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비용 효율성을 높이는 전술을 택할 때도 있다. 하이얼은 2004년 7월 미국에서 신규 에어컨 라인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타겟과 손을 잡았다. 하이얼과 타겟은 뉴욕 타임스 스퀘어에 하이얼 제품만으로 가득 찬 임시 타겟 매장을 세운 후 무료 배송 서비스와 함께 홍보 행사들을 진행했다. 하이얼은 단 7시간 만에 총 7000대의 에어컨을 팔았고, 이 놀라운 기록은 언론 보도로 이어지는 한편 인터넷에서도 많은 관심을 불러 모았다.
 
자사의 역량과 개도국 대기업의 역량을 결합하라 다국적기업들은 오래전부터 개도국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현지 회사들과 손잡고 합작기업을 설립해오고 있다. 하지만 이제 선진국의 다국적기업들은 각각 자사의 기술과 현지 회사들의 비용 혁신 역량을 결합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지금껏 다국적기업들이 선호해왔던 불공정한 합작기업의 설립 대신, 개도국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이고 그 가격에 가장 적절한 가치를 지닌 제품을 만들어 선진국 시장을 공략할 수 있는 협력 방식을 택해야 한다.
 
2003년 협력을 결심한 쓰리콤과 화웨이는 시스코의 세계 시장점유율을 빼앗을 날이 오기를 희망했다. 쓰리콤은 두 회사의 합작을 위해 자사의 브랜드, 세계적 유통망, 미국과 유럽 고객에 대한 정확한 지식, 그리고 중국 회사인 화웨이의 제품 라인을 보강할 수 있는 역량을 투입했다. 화웨이는 자사의 제품 라인, 제법 큰 개도국 시장점유율, 비용 경쟁력이 뛰어난 서비스 역량, 설계·엔지니어링 자원을 활용했다. 쓰리콤은 화웨이와의 합작을 통해 자사의 제품 범위를 넓혔고, 그 결과 시스코를 상대로 뛰어난 경쟁력을 자랑할 수 있게 됐다. 마찬가지로 쓰리콤과 손을 잡은 덕에 화웨이는 자사의 기술을 단기간에 세계 시장에 선보이고 브랜드 인지도를 높일 수 있었으며, 다국적기업으로 성장해 나가는 법을 익혔다. 합작이 성공적임을 깨달은 두 회사는 2008년 합병을 결정했지만, 미국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반대로 성사되지는 못했다. 그러나 향후에는 적자에 허덕이는 미국 정부가 이 같은 거래를 막기가 쉽지 않을 수도 있다.
 
새로운 역량이 필요하다면 인수를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2001년 10월 에머슨 일렉트릭은 7억5000만 달러를 주고 아반시스를 사들였다. 아반시스는 통신장비 공급업체와 데이터 센터에서 사용하는 전원 공급 장치를 생산하는 회사로, 관련 분야에서 세계 선두 업체 중 하나로 꼽힌다. 당시 전문가들은 에머슨 일렉트릭이 너무 많은 돈을 지불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에머슨은 아반시스가 자사의 제품군과 보완이 되는 제품군, 젊고 역량 있는 인재 등을 갖추고 있어 자사가 세계 시장에서 사업을 키워나가는 데 도움이 된다고 주장했다. 이 예상은 적중해 2008년 에머슨 네트워크 파워는 2007년보다 11% 높은 36억 달러의 매출을 올렸으며, 마진율은 12.6%에 이르렀다. 휴대용 기기에 사용되는 운영 시스템 제조회사 팜소스도 2005년 중국 기업 차이나 모바일소프트를 사들였다. 당시 차이나 모바일소프트는 10여 개 애플리케이션, 스마트폰 및 다기능 휴대전화에 사용되는 운영 소프트웨어, 휴대기기용 리눅스 등 휴대전화에 사용되는 다양한 소프트웨어를 개발해오고 있었다. 차이나 모바일소프트를 인수한 결과, 팜소스는 세계 어느 시장에서나 원하는 가격대에 휴대전화 소프트웨어를 공급할 수 있게 됐다. 이 인수 결과는 2005년 5월, 3억2400만 달러의 거액을 주고 팜소스를 인수하겠다는 일본의 휴대기기용 소프트웨어 공급업체 액세스의 결정에도 영향을 미쳤다.
 
개도국에서 점차 규모가 커지고 있는 대중 시장에 투자하라 예전에는 서구의 수많은 다국적기업들이 개도국 시장에서 규모는 작지만 수익성이 높은 고가 시장에 집중했다. 특히 개도국 시장에 진입할 때 이 전략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선진국 시장의 성장이 둔화되고 있는 만큼 이제 더 이상 개도국 시장을 ‘없어도 그만이고 있으면 좋은 존재’쯤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개도국 시장은 단순히 최대 성장 잠재력을 갖고 있는 시장이 아니다. 손을 잡고 함께 일할 개도국 출신 다국적기업을 찾아내지 못하면 서구의 다국적기업들은 후회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는 개도국의 다국적기업들이 마음껏 규모를 키우고 많은 경험을 쌓도록 내버려두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따라서 선진국 기업들은 개도국 시장에서 그 규모가 점점 커지고 있는 대중 시장에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
 
노키아의 중국 진출 사례를 보면 이 전략이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잘 알 수 있다. 휴대전화 제조회사 노키아는 중국 진출 초기에 마진이 큰 고가 시장에 주력했다. 하지만 1999년 95%에 이르렀던 해외 업체의 휴대전화 시장점유율이 2003년에는 45%까지 떨어지자 노키아는 이 전략을 재고해야 했다. 그 무렵 노키아를 비롯한 다국적 휴대전화 회사들은 대중 시장 투자를 결심했고, 그 결과 해외 업체들의 시장점유율은 2007년 다시 65%까지 올라갔다. 고객들에게 다양한 휴대전화 모델을 공급하는 현지 경쟁업체들에 밀려난 경험이 있는 서구의 다국적기업들은 예전에 비해 상당히 많은 수의 제품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요즘 문자를 보낼 때 손으로 직접 쓴 한자를 인식하는 기능까지 제공하고 있다.
 
저렴한 비용으로 다양한 제품을 내놓는 방법을 익힌 노키아는 요즘 중국에서 매달 2, 3개의 새로운 모델을 선보이고 있다. 노키아는 지금껏 자국 시장에서 그래왔던 것처럼 초반에 규모가 작은 시장을 목표로 이윤이 높은 제품을 선보인 다음, 수요가 늘어나면 점차 가격을 낮추는 방법을 더 이상 쓰지 않는다. 대신 중국 현지 회사들처럼 자사에서 내놓는 제품이 많은 수요를 창출해 결국 많은 수익을 얻을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투자하고 있다. 20022006년 노키아가 중국에 투자한 금액은 57억 달러에 이른다. 노키아는 소매가격이 40달러가 채 되지 않는(통신회사로부터 전혀 보조금을 받지 않음) 휴대전화로 대중 시장 중에서도 중저가 시장을 공략했고, 심지어 8달러짜리 휴대전화를 내놓기도 했다. 그 결과 고가 시장을 장악하는 동시에 저가 시장에서도 1위를 차지해 2006년 기준으로 중국 휴대전화 시장에서 40%의 시장점유율을 확보하고 있다.
 
중국 시장에서 입지를 굳히기 위해 노키아는 중국 전역에 흩어져 있는 여러 도시에서 총 100개의 유통업체와 계약을 하고, 300개의 프랜차이즈 매장을 열었다. 또 동부 연안 지역에 머물러 있는 대다수 서구 경쟁업체들과는 달리, 중국 각지에서 노키아 제품을 알리기 위해 5000명이 넘는 영업사원을 채용했다. 뿐만 아니라 중국에 있는 4개의 합작기업을 하나의 지주회사로 통합했는데, 이 지주회사는 노키아의 5개 지역 사업부 중 하나다. 노키아의 중국 현지 총책임자는 핀란드 에스푸 본사에 있는 휴대전화 부서 최고책임자에게 직접 보고를 한다.
 
개도국 기업들은 ‘가격 대비 최적의 가치’라는 등식을 바꾸고 있다. 하지만 선진국 기업들이 미래 수입에 대해 압박감을 느끼고 서구의 대형 다국적기업들은 위협에 직면해 있음을 고려해볼 때, 이제 마음가짐을 바꿀 때가 됐다. 장기적인 경쟁우위를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비용 혁신 역량을 키우고 싶다면, 불황이 저절로 사라질 때를 기다리기보다 지금 당장 개도국 시장의 역할을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
 
피터 J 윌리엄슨(p.williamson@jbs.cam.ac.uk)은 영국 케임브리지대 저지 경영대학원에서 국제 경영을 가르치는 교수이며, 지저스 칼리지에서 연구 활동도 하고 있다. 밍 정(mzeng@alibaba-inc.com)은 중국 항저우(杭州)에 위치한 알리바바그룹의 전략 담당 부사장 및 베이징(北京) 청콩 경영대학원 부교수를 맡고 있다. 두 사람은 하버드대 출판부에서 2007년 발간한 <Dragons at Your Door: How Chinese Cost Innovation Is Disrupting Global Competition>을 공동 집필했다.
 
번역 김현정 jamkurogi@hotmail.com
 
편집자주 이 기사는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 2009년 3월 호에 실린 피터 J 윌리엄슨 영국 케임브리지대 저지 경영대학원 교수 등의 글 ‘Value-for-Money Strategies for Recessionary Times’를 전문 번역한 것입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289호 Boosting Creativity 2020년 1월 Issue 2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