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커피 전문점 시장은 누구나 인정하는 대표적인 레드오션 시장이다. 스타벅스나 커피빈과 같은 외국계 대형 프랜차이즈를 필두로 할리스·엔제리너스·파스쿠치·맥카페 등 기타 프랜차이즈와 중소 브랜드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고급스런 이미지와 쾌적한 인테리어로 젊은 층을 사로잡았다. 소비자들은 밥보다 더 비싼 가격을 마다하지 않고 수입 커피 브랜드에 환호하고 있다.
이 와중에도 묵묵히 맛과 품질로 승부하며 외국계 ‘골리앗’에 맞서는 국내 토종 커피 전문점이 있다. 커피 마니아들이 인정하는 ‘허형만의 커피집’이다. 허형만 사장은 식품공학을 전공하고 국내 한 대형 커피업체에서 약 20년 동안 근무했다. 그는 2001년에 다니던 커피 회사를 그만두고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주택가에 조그만 가게를 열었다.
큰 길 부근에 위치한 것도 아니고, 수입 커피점처럼 대대적인 광고를 하지도 않았으며, 매장 평수도 8평(약 26.5㎡)에 불과한 이 조그마한 가게의 매출은 연 4억 원에 육박한다. 허 사장과 부인, 오후에만 일하는 파트타임 직원이 낸 성과로는 믿기 어려울 정도다. 한 집 건너 40∼50평(약 130∼165㎡) 규모의 대형 외국 커피 전문점이 들어차 있는 강남에서 도대체 어떻게 이런 성공을 이뤄냈을까.
커피를 인테리어로 승부해선 안된다
‘허형만의 커피집’은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상가에 위치하고 있다. 한국의 트렌드를 좌우하는 압구정동에 위치하고 있으니 ‘허형만의 커피집’ 역시 매장 외장부터 남다를 것이란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아파트 상가 1층에 위치하고 있다지만 소규모 가게들이 워낙 빡빡하게 들어차 있어 간판조차 찾기 어려웠다.
매장으로 들어선 순간 더욱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8평 남짓한 규모의 매장에는 테이블이 불과 3개밖에 없었다. 게다가 자가 로스팅 기계와 세계 각지에서 수입한 생두 자루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어 흡사 동네 방앗간 분위기마저 풍겼다. 우아한 인테리어, 감미로운 음악 선율, 화려한 명품으로 치장한 세련된 20대 여성들이 앉아 있는 커피 전문점의 전형적인 모습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저 역시 큰 길가 대형 매장을 내고 싶었지만 퇴직금으로 매장부터 기계설비, 인테리어까지 다 하려니 여기에 가게를 내는 것도 무척 빠듯했습니다. 게다가 상가 1층에는 저희 집 말고도 모두 음식점이 들어차 있습니다. 공인중개소에서 그러더군요. ‘여기 들어온 음식점치고 잘 된 곳이 별로 없는데 이 커피집이 얼마나 갈지 걱정했다’고요. 창업 후 2년 동안 이 아파트 거주민 고객이 별로 없을 정도였습니다.”
이 조그마한 가게가 까다로운 커피 마니아들로부터 최고의 커피점으로 인정받은 비결은 단연 맛이다. 그는 스스로를 ‘커피人’이라고 부른다. 단순히 에스프레소 기계를 사용해 커피를 뽑아내는 바리스타가 아니라 커피 생두(green bean) 고르기, 로스팅(roasting·볶기), 블렌딩(blending·섞기), 커피 추출 등 커피 제작의 전 과정을 책임지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상호에 자신의 이름을 넣은 것도 맛에 관한 신의를 지키겠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허 사장은 커피 맛을 자신하는 가장 큰 이유로 최상의 재료 구입과 그만의 독특한 즉석 로스팅을 들었다.
“원두 커피는 생두를 즉석에서 볶아서 만든 식품입니다. 자연스레 시간이 지날수록 본래의 맛과 향이 떨어지죠. 수입 프랜차이즈의 커피가 원두 본연의 맛과 향을 낼 수 없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외국 본사에서 한국에까지 재료가 오는데 걸리는 시간을 감안하면 아무리 진공 팩을 이용해 공수해도 향미가 변하는 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게다가 원두 종류에 따라 그에 맞는 각각의 로스팅 기법이 있고, 설령 같은 원두를 쓴다 해도 어떤 방법으로 얼마의 시간을 들여 로스팅 하느냐에 따라 커피의 향·맛·색깔 등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획일화된 로스팅으로는 제대로 된 커피 맛을 낼 수 없다는 뜻이죠.”
모든 고객에게 친절할 수는 없다
수입 커피점에 비해 마케팅 파워에서 밀리는 소형 가게들이 유명해진 것은 결국 소비자들의 입소문 덕분이다. 그러나 이 같은 구전 마케팅은 위험성도 상당하다. 가게에 온 사람들이 블로그나 인터넷 카페에 조금만 좋지 않은 글을 올려도 상당한 파급 효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까칠한 고객에게 더 잘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허 사장은 오히려 ‘모든 고객에게 친절할 수는 없다는 것이 내 신조’라고 답했다. 입소문이 중요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고객에게 무작정 친절할 수 없으며, 이것이 성공에 도움을 주지도 않는다고 설명했다.
“저희 가게에서는 원칙적으로 리필을 안 하지만 종종 리필을 요구하는 고객이 계십니다. 그때 ‘사장님. 이 커피 너무 맛있는데 조금만 더 먹을 수 없을까요’라고 하는 분과 ‘청담동 어느 집은 제가 말하기도 전에 리필부터 해 주는데 여긴 왜 이래요’라고 하는 분이 있습니다. 저도 사람인데 전자의 고객께 리필을 안 해 드리겠습니까. 그러나 후자의 고객은 어차피 제가 잘 해 드린다 해도 충성 고객이 될 확률이 낮습니다. 이런 분들에게 잘 해 드리기보다 전자의 고객과 같은 분에게 더욱 좋은 커피와 서비스를 제공하자는 것이 제 철학입니다. 고객 역시 자신이 행동하는 만큼 대접받아야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