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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전략 이론종합

까다로운 소비자는 ‘감춰진 축복’

문휘창 | 27호 (2009년 2월 Issue 2)
‘경쟁 전략’을 ‘경쟁자를 물리치는 전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이는 매우 잘못된 생각이다. 경쟁 전략의 핵심은 ‘자신의 경쟁력을 높이는 전략’이다. 쉽게 말해 전자는 ‘제로섬 게임’이고, 후자는 ‘윈윈 게임’이라는 뜻이다.
 
현재와 같은 경제적 극한 상황에서는 특히 제로섬 게임 관점에서 경쟁 전략에 접근해 기업 경쟁력을 높이려는 시도가 많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은 자칫 잘못하면 경영자들에게 위험한 시사점을 줄 가능성이 있다. 전쟁에서는 내가 이기기 위해 반드시 상대방이 져야 하지만, 경영에서는 상대방이 이기든 지든 상관없이 나는 성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한국이 중국과 일본 사이에 끼어 고전을 면치 못한다는 ‘샌드위치 위기론’이 만연하는 현상에 관해서도 우려를 표하고 싶다. 이 역시 올바른 관점이 아니다. 한국은 물론 중국과 일본도 망하지 않을 것이고, 모두 발전할 것이다. 따라서 ‘샌드위치 위기론’과 같은 비관론이 아니라 어느 국가의 어느 기업이 더 발전하려면 어떠한 경쟁 전략을 가져야 하는가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무책임한 위기론, 전통적 비교우위론, 막연한 블루오션 전략 등은 모두 현 상황에 맞는 올바른 경쟁 전략이 아니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기업의 경쟁력을 진정으로 높일 수 있는 경쟁 전략’에 관해 논의하고자 한다. 경영자들이 흔히 저지를 수 있는 4가지 오류를 지적한 뒤 이에 관한 올바른 시각을 제시해 보겠다.
 
올바른 경쟁 전략의 첫째 핵심은 비교 우위(comparative advantage)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비교 열위(comparati-ve disadvantage)를 해결하는 것이다. 제2차세계대전 이후 가장 두각을 나타낸 국가는 독일·이탈리아·일본이었다. 세 나라는 모두 패전국이지만 이들 국가의 기업들은 상대적으로 열악한 조건을 극복하면서 경쟁력을 높여갔다.
 
일본은 자원이 부족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가볍고(輕), 얇고(薄), 짧고(短), 작게(小) 만들어야 했다. 이 덕분에 일본 기업들은 자원과 공간을 절약했고, 고도 기술도 발전시킬 수 있었다. 제2차세계대전이나 1970년대 석유 파동 등 위기 때마다 일본 기업의 경쟁력은 더욱 높아졌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항상 에너지가 부족해 애태우던 일본 기업들은 결국 에너지 효율이 높은 하이브리드 자동차 분야의 선두주자로 떠올랐다.
 
독일은 제2차세계대전에서 패한 뒤 거의 모든 것을 잃었다. 영국이나 프랑스는 식민지가 있었지만 독일은 애당초 식민지가 별로 없었기 때문에 천연 섬유를 조달할 수 없었다. 이에 독일 기업은 ‘식민지 대신 화학(chemistry rather than colonies)’이라는 슬로건을 걸고 합성 섬유와 합성 염료 등의 화학공업을 발전시켰다.
 
경쟁 전략의 둘째 핵심은 무조건 크거나 새로운 시장을 찾는 것이 아니라 까다로운 소비자를 만족시키는 것이다.
 
이탈리아는 유럽의 다른 국가들에 비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R&D) 투자 비용이 매우 낮다. 석·박사 학위를 보유한 고급 인력도 매우 부족하다. 또한 이탈리아 소비자들은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이탈리아인들은 다른 유럽인에 비해 각자 소지한 개인용품의 숫자는 적지만 고급 품질의 제품을 선호한다. 때문에 이탈리아 기업은 고도 기술 집약적 산업이 아닌 소비재 명품 산업으로 눈을 돌렸으며, 현재 세계 명품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이탈리아산 여성용 명품 구두에 관한 재미있는 얘기가 있다. 보통 여성들은 구두를 구입할 때 3켤레 정도를 신어보고 구매 결정을 내린다. 그런데 이탈리아 여성들은 적어도 12켤레를 신어본 뒤에도 구두의 디자인·재질·색상 등에 대해 까다롭게 군다고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생산자 입장에서는 물건을 잘 만들지 않으면 팔 수가 없다.
 
이탈리아의 명품 신발, 프랑스의 화장품, 독일의 기계류, 미국의 의료 산업이 발전한 것은 모두 자국 소비자가 이 분야에서 매우 까다롭게 굴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한국의 인터넷 산업이 세계 최고가 된 것도 바로 소비자 요구수준이 세계 최고로 높았기 때문이다.
 
경쟁 전략의 셋째 핵심은 경쟁자를 물리치는 것이 아니라 강한 경쟁자에게 적절한 전략으로 대응하는 것이다.
 
제2차세계대전 후 세계에서 가장 빈곤한 나라이던 한국은 현재 선진국 문턱에 와 있다. 한국인은 필요에 따라 협력과 경쟁을 능수능란하게 구사할 수 있는 매우 우수한 민족이다. 실제 국내 기업이 직면했던 치열한 경쟁 환경이 한국 경제를 지금의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전자산업의 예를 보자. LG전자 등 국내 업체와의 피 튀기는 경쟁이 없었다면 오늘날 삼성전자의 경쟁력이 이 정도로 향상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과거 한국 정부는 산업 구조조정을 한답시고 특정 산업 분야의 기업을 통폐합한 적이 있었지만 모두 실패했다. 경쟁이 경쟁력을 만들기 때문이다.
 
이는 스포츠 비즈니스 등 다른 산업에서도 통용되는 진리다. 1970년대 세계 체조를 지배하던 루마니아의 나디아 코마네치, 1990년대 초 피겨 스케이팅의 1인자였던 우크라이나의 옥사나 바울은 좋은 경쟁자가 없었기 때문에 곧 쇠퇴했다. 이 때문에 김연아 선수가 아사다 마오 같은 선수를 경쟁자로 둔 것은 행운이다. 경쟁은 경쟁자들로 하여금 나태함에 빠지지 않게 하고 상호 학습 효과도 유발한다. 경쟁이 있어야만 경쟁 우위를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방향으로 혁신을 이뤄낼 수 있다.
 
경쟁 전략의 넷째 핵심은 무조건 블루오션을 찾는 것이 아니라 관련 분야의 레드오션에서 아이디어를 얻는 것이다.
 
블루오션 전략 자체를 나쁘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이를 너무 강조하다 보면 많은 실패와 낭비를 가져올 가능성이 있다. 실제 많은 기업의 성공 사례를 분석해 보면 순수한 블루오션 전략을 사용했다기보다 기존의 레드오션 시장에서 사용하던 전략을 약간 변형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디스크 운영체계(DOS)는 대형 컴퓨터의 테이프 운영체제를 약간 변형한 것이다. MS의 윈도 시스템 역시 애플컴퓨터의 그래픽 모드를 벤치마킹해 발전시킨 것이다. 불량률을 줄이는 과학적 경영 기법으로 유명한 ‘식스 시그마’는 원래 미국의 모토로라가 개발했다. 그러나 이를 더욱 발전시키고 세계 표준 경영 기법으로 만든 회사는 다름아닌 제너럴일렉트릭(GE)이다. 현재 우리나라 기업을 포함한 세계 수많은 기업이 식스 시그마를 도입해 사용하고 있다.
 
블루오션 주창자들은 옛 것을 버리고 무조건 새로운 것을 찾을 생각을 하라고 한다. 그러나 어려운 때일수록 고민만 할 것이 아니라 기존의 최고를 잘 공부하고 이를 조금만 발전시키면 새로운 최고가 될 수 있다. 많은 경영자가 고민하는 문제의 해답은 이미 레드오션 안에 있다.
 
완전히 새로운 혁신은 없다. 모두 관련 분야를 발전시켜 성공했다. 구텐베르크는 포도를 눌러서(press) 포도주를 만드는 기술에서 인쇄술 아이디어를 얻었다. 일본 자동차의 핵심 경쟁력은 자동차 기계 기술에 전자 기술을 접목한 것이다.
 
인류 역사상 최고로 머리가 좋은 과학자인 아이작 뉴턴은 다음의 말로 레드오션 전략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내가 다른 사람보다 더 멀리 볼 수 있었다면, 그것은 거인들의 어깨 위에 올라서 보았기 때문이다(If I have seen further, it is by standing on the shoulders of giants).”
 
결론적으로 성공적인 경쟁 전략은 △비교 열위를 해결하고 △까다로운 소비자를 상대하며 △강한 경쟁자와 겨루고 △관련 분야의 레드오션에서 벤치마킹하는 것이다. 물론 현재의 어려움을 해결해야 하고, 까다로운 소비자를 상대해야 한다는 것이 보통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점들은 불행이 아니라 오히려 ‘감춰진 축복(blessing in disguise)’이다. 바로 현재의 문제점이 혁신을 하도록 압력을 가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지 않고 진정한 성공을 이룬 기업은 하나도 없다. 내외적으로 변화에 대한 저항이 강하고 많은 비용이 필요해 변화를 시도하지 못하는 경영자에게 현재의 ‘극한 상황’은 변화를 시도할 수 있는 최적의 기회다. 평화 시대가 아닌 압력과 도전의 시대가 왔을 때 기업은 더욱 발전할 수 있다.
  • 문휘창 문휘창 | - (현)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 (현) 국제학술지 편집위원장
    - (전)미국 워싱턴대, 퍼시픽대, 스토니브룩 뉴욕주립대, 헬싱키 경제경영대, 일본 게이오대 등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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