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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인판매 그 미묘한 게임

김남국 | 2호 (2008년 2월 Issue 1)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할인(discount)’판매에 나서는 기업이 늘고 있다. 많은 유통 업체들은 정기적인 세일 행사를 실시하고 있으며 인터넷 기업처럼 아예 상시 할인 체제를 갖춘 경우도 적지 않다. 영업 실적 악화와 재고 증가로 ‘눈물을 머금고’ 할인 판매에 나서는 기업들도 상당수다. ‘폭탄 세일’이나 ‘공장 폐업’ 등 현란한 문구도 자주 등장한다.
 
이처럼 할인이 보편적인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되면서 ‘가격인하=판매량 증가’라는 공식을 믿는 마케터들도 급증했다. 하지만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꼭 참고해야 할 논문이 있다. 제프리 스티벨(Jeffrey M. Stibel) 웹닷컴 최고경영자(CEO)가 ‘MIT슬론매니지먼트리뷰’에 기고한 논문이 그것이다.
 
스티벨 CEO는 할인 판매를 잘못하면 매출에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선 정보의 배열이나 구조에 따라 효과가 달라지는 ‘구조화 효과(framing effect)’를 마케터들이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구조화 효과란 ‘조삼모사(朝三暮四)’와 유사한 개념이다. 야구에서 ‘3할 대 타율을 기록했다’는 것과 ‘70%는 안타를 치지 못했다’는 것은 같은 의미다. 하지만 3할 대 타자는 훌륭해 보이지만, 70%나 진루에 실패한 타자는 무능해 보인다. 정부가 ‘교육 예산에 1조원을 투입한다’고 선전하지 ‘국민 1인당 약 2만원씩을 투입한다’고 홍보하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구조화 효과는 소비자들의 구매 심리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 실제 스티벨 CEO가 ‘넷제로’라는 인터넷 접속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실험한 결과, 가격을 9.95달러로 정했을 때가 10달러는 물론이고 9달러일 때보다도 더 좋은 성과를 냈다. 또 ‘미디어웍스’란 회사에서 실험해보니 제품을 공짜로 주고 4.95달러의 배송료를 받은 경우가 제품 가격으로 4.95달러를 받고 배송을 무료로 해주는 것에 비해 훨씬 효과가 좋았다.
 
제품의 특징도 고려해봐야 한다. 소비자들은 자동차 같은 제품을 구매하기 전에 엄청나게 많은 정보를 조사한다. 이런 상품에 대해 가격 할인을 해줄 경우 소비자들은 실제 가치가 얼마나 더 높아지는지를 알기 위해 추가적으로 복잡한 계산을 해야 한다. 따라서 정보 처리량이 많아져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다. 실제 자동차를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가격 할인을 해줬을 때보다 무료 정비 서비스 기간을 연장시켜준 경우의 판매량이 두 배나 높았다고 한다.
 
반면 복잡한 계산을 하지 않고 즉흥적으로 구매하는 제품이라면 가격할인이 더 큰 효과를 낸다. 대개 범용상품(commodities)의 경우 가격 하나만 비교해서 구매를 결정하는 소비자가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인터넷 접속 서비스는 1990년대에 범용상품이 아니었지만 2000년대 들어 경쟁이 심해지고 서비스 품질이 비슷해짐에 따라 사실상 범용상품으로 변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AOL은 사용기간 연장 혜택을 줬고 넷제로와 주노온라인 등 후발 업체는 가격 할인을 해줬다. 그 결과 AOL의 시장점유율은 하락했고 넷제로와 주노온라인의 점유율은 높아졌다.
 
스티벨 CEO는 “소비자는 객관적인 제품의 가치가 아니라 자신들이 느끼는 가치에 근거해 구매 결정을 내린다”며 “가격 할인이 제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을 바꾸지 못한다면 효과를 보지 못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 김남국 김남국 | - (현)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장
    -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편집장
    - 한국경제신문 사회부 정치부 IT부 국제부 증권부 기자
    - 한경가치혁신연구소 선임연구원
    marc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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