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8월 이창용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앞으로 과도한 차입매수(LBO)를 허가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LBO는 기업 인수합병(M&A) 때 필요한 비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차입으로 해결하는 방식을 말한다. 즉 금융위의 발표는 앞으로 남의 돈을 빌려 M&A를 하지 말고 자신의 자금만으로 분수에 맞는 M&A를 하라는 선언이다.
금감원은 왜 이런 선언을 했을까. 가장 큰 이유는 과도한 차입을 통한 M&A 때문에 많은 기업이 어려움에 빠졌기 때문이다. 대표적 회사가 유진그룹과 금호아시아나그룹이다.
유진그룹은 서울투자증권을 매입한 뒤 유진투자증권으로 이름을 바꿨지만 다시 매각을 준비하고 있다. 글로벌 신용위기로 주식시장 상황이 좋지 않고, 기업의 현금 보유 능력도 떨어진 상황에서 쉽게 매수자를 찾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2006년 말 대우건설을 매입한 이후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최근 한화그룹이 대우조선해양 인수의 우선협상대상자로 뽑히자마자 한화그룹 주가가 폭락했다는 사실은 투자자들이 무리한 자금을 동원하는 M&A를 얼마나 우려하는지를 잘 보여 준다.
금호아시아나 유동성 위기, 왜 풋옵션이 문제인가
이 가운데 금호아시아나가 당면한 문제는 매우 독특하다. 금호아시아나 유동성 위기의 핵심은 풋옵션 또는 풋백옵션이다. 풋옵션은 일정 자산을 약정한 날자에 정해진 가격으로 팔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기업 M&A 때 주로 발생하는 풋백옵션은 풋옵션과 구조가 같지만 원래의 매각자에게 ‘되판다(back)’는 뜻을 강조하고, 일반적인 풋옵션과 구분하기 위해 풋백옵션이라 부른다.
회계 전문가가 아니면 도대체 사소한 회계 처리가 왜 이렇게 큰 문제를 야기하는지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이 회계 문제가 그룹의 생사를 가를 수 있는, 게다가 그 규모 또한 3조∼4조5000억 원의 막대한 자금에 관한 것이라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이 때문에 9월 초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비상경영 사태를 선언하고 그룹의 비주력 계열사인 금호생명 등을 매각해 필요 자금을 확보하겠다고 발표했다. 즉 부채 만기가 돌아오는 내년 말까지 금호아시아나그룹 전체가 현금을 착실하게 마련하겠다는 선언을 한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금호아시아나그룹 계열사의 재무제표를 아무리 들여다봐도 이 막대한 부채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현재 금호아시아나의 재무제표에는 이 부채가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2008년 6월 말 현재 금호아시아나그룹 주력회사인 금호산업의 부채는 약 3조 원, 부채 비율은 약 240%다. 금호타이어의 부채는 약 1조8000억 원, 부채 비율은 약 210%다. 아시아나항공의 부채는 약 4조6000억 원, 부채 비율은 약 460%다.
금호아시아나그룹 전체의 부채 비율은 약 250%다. 어떤 기준에서 봐도 부채 액수 자체와 부채 비율 모두 매우 높다. 게다가 세계 경제 상황이 계속 나빠지고 있으므로 2008년 말 기준 부채 비율은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이 부채 규모가 앞에서 설명한 풋옵션에 의한 최소 3조∼최대 4조5000억 원의 부채를 전혀 포함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앞에서 언급한 3개 회사가 이 기록되지 않은 부채를 1조 원씩 추가 부담한다고 가정해 보자. 이 경우 3개 회사 모두 부채 비율이 평균 100%포인트 이상 증가한다. 금호산업, 금호타이어, 아시아나항공의 부채 비율이 각각 320%, 330%, 550%에 이른다는 의미다.
물론 금호아시아나그룹이 금호생명 등의 보유 자산을 매각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설 것이므로 실제 부채 비율이 이 정도까지 증가하지는 않을 것이다. 설사 그렇다 해도 부채 비율의 절대적 수준이 높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대우건설 M&A 과정 중에 생겨난 풋옵션
이 풋백옵션이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살펴보자. 2006년 금호아시아나가 대우건설 주식을 인수할 당시 금호아시아나는 자력으로 모든 인수자금을 조달할 수 없었다. 때문에 미래에셋, 팬지아데카, 티와이스타, 국민은행, DKH, 칸서스 등 여러 재무적 투자자(FI)들과 함께 공동 인수라는 방식을 택했다. 이들은 금호아시아나와 공동으로 2만6200원에 대우건설 주식을 구입했으며, 주식의 의결권은 금호아시아나 측에 위임했다.
당시 재무적 투자자가 투자한 총 금액은 약 3조5000억 원으로 금호아시아나가 동원한 2조9000억 원보다 더 많았다. 대신 이들은 금호아시아나와 계약을 맺었다. 2009년 12월 15일금호아시아나가 이들이 보유한 주식을 3만4000원에 되사주기로 한 것이다.
이 시점까지는 불과 1년이 남았다. 현재 대우건설 주가는 급락에 급락을 거듭해 약 8000원에 불과하다. 금호아시아나가 재무적 투자자가 보유한 주식을 모두 3만4000원에 되사려면 무려 최대 4조5000억 원의 자금이 필요하다. 현재 주가와 3만4000원의 차액만큼만 지급한다 해도 3조 원이 든다. 앞에서 언급한 3∼4조5000억 원의 자금은 이러한 계산을 통해 나온 수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