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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간의 ‘고객제표 시범사업’ 최종 보고서

“재무제표에 보이지 않는 정보-인사이트
고객제표 속에 영업 전략 숨어 있었다”

김형수,정리=김윤진 | 404호 (2024년 11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약 6개월 동안 진행된 고객제표 시범사업은 기업들에 몇 가지 공통적인 시사점을 남겼다. 모든 업종에서 자산고객을 자본고객과 부채고객으로 나눠 관리하는 것이 유의미한 분류 방안으로 확인됐고 대개 자본고객이 부채고객 대비 구매력이 높았다. 대다수 업종에서 고객 수가 감소하고 있었는데, 특히 국내 소비재 시장의 전반적인 약세를 반영해 B2C 업종 내 감소세가 두드러졌다. 고객 관점의 손익계산 방법론은 여전히 부재했고 고객흐름 평가는 영업 방식이나 영업 채널에 대한 성과 평가나 페인 포인트를 포착하고 영업 전략을 정비하는 데 유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자사 상품 판매를 외부 몰과 자사 몰을 함께 운영하는 소비재 기업에서 자사 몰 고객의 수익성이 오히려 떨어지는 패러독스가 발견되기도 했다. 이처럼 고객제표는 기업의 문제를 진단하고 우수 고객군의 기여도를 파악하거나 이탈 징후를 포착하는 등 고객 중심 전략 수립에 필요한 통찰을 구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



기업이 진정한 고객 중심의 경영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경영의 진단과 평가부터 고객 중심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출범한 고객제표(Customer Statements)1 가 2024년 4월 1호(390호) DBR 스페셜 리포트를 통해 공개된 지 6개월가량 흘렀다. 고객제표는 재무제표의 한계를 보완함으로써 기업의 고객전략을 근본적으로 개편할 수 있는 기회와 근거를 제시하는 고객 중심의 전사적 경영성과평가 시스템으로서 재무제표와 유사한 평가 메커니즘을 갖는다.

처음 접하는 독자들을 위해 요약하자면 고객제표는 고객상태표, 고객손익계산서, 고객흐름표, 고객변동표 등 4개의 세부 제표로 구성된다. 재무제표의 재무상태표에서 자산의 현황을 자본과 부채로 관리하듯 고객제표의 고객상태표는 총고객을 의미하는 자산고객을 자본고객과 부채고객으로 관리한다. 재무제표의 손익계산서가 총매출액에 대한 매출원가와 판매관리비를 통해 영업이익을 산정하듯 고객제표의 고객손익계산서는 자본고객과 부채고객에 대한 변동비와 고정비를 각각 고려해 고객별 공헌이익과 고객 영업이익을 산정한다. 재무제표의 현금흐름표가 기업 자산의 핵심인 현금의 흐름을 현금 창출 방식에 따라 평가하듯 고객제표의 고객흐름표는 자산고객의 핵심인 자본고객의 흐름을 고객 창출 방식에 따라 평가한다. 그리고 재무제표의 자본변동표가 전기 대비 당기의 자본 변동 상황을 변동 항목에 따라 분석하듯 고객제표의 고객변동표는 전기 대비 당기의 고객 변동 상황을 등급별 변동 형태에 따라 분석한다.

고객제표가 공개된 후 학계와 업계에서 많은 관심을 보였다. 고객제표 사업을 주관하는 한국CRM디지털마케팅협회와 DBR(동아비즈니스리뷰)이 개념을 처음 소개한 이후 비즈니스 관련 국내 최대 학회 중 하나인 한국경영학회와 한국경영정보학회가 즉각 후원 학회로 나서 학술적 연구개발에 큰 힘을 실어줬고 주요 대학의 MBA나 경영자 과정, 또 경영 관련 기관 및 기업에서도 고객제표라는 새로운 개념을 전파하기 위해 강연이나 공청회를 열었다. 기업 사보(社報)를 통해 고객제표를 다룬 경우도 있다. 최근 한 그룹사는 그룹 내 60여 개의 계열사 사장단과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관련 강연을 진행하기도 했다.

고객제표를 공개하며 개인적으로 염려했던 부분이 있었다. 이 새로운 경영성과평가 시스템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과정에서 재무제표의 한계를 지적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재무나 회계 분야의 연구자, 실무자들이 탐탁지 않게 생각하지 않을까 하는 부분이었다. 그러나 이 역시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놀랍게도 많은 관계자는 고객제표의 의미에 흔쾌히 동의해줬을 뿐만 아니라 격려를 해주는 한편 다양한 자문도 제공했다. 재무나 회계를 연구하는 교수나 기업에서 CFO를 담당하는 임원들도 마찬가지였다. 기회가 된다면 앞으로 재무회계 분야 전문가들과 적극적인 공조를 이뤄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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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제표 시범사업의 경과

고객제표 시범사업은 고객제표를 본격적으로 국내 기업에 적용하기 전에 고객제표 기초 모델의 실무적 적용 타당성을 검토하고 주요 업종별 특성을 고려한 표준화된 고객제표 모델을 완성하기 위해서 진행됐다.2 한 기업의 고객제표 발행 과정에는 겉에서 보는 것보다 많은 작업이 소요되기에 고객제표 사업단은 당초 5개 업종에 한해 1개 기업씩만 시범사업 참여 기업으로 선정하기로 계획했다. 그러나 예상보다 많은 기업이 관심을 보이면서 18개 업종에서 23개 기업이 참여 신청을 했고 내부 논의를 통해 확대 적용해 결과적으로 12개 업종에서 13개 기업을 선정, 시범사업에 착수하게 됐다. 신청 기업에 대한 수용(accept)이나 거절(reject)은 1) 업종의 유의미성 2) 기업 규모 3) 고객정보 수집 및 분석 역량 등에 근거해 전문위원들 간의 논의를 통해 결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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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제표 시범사업은 기업별로 필자를 포함한 전문위원 2~3명과 분석연구원 1명으로 총 3명 내지 4명의 연구진이 배정돼 진행됐다. 착수 미팅을 포함한 4차례의 워크숍을 통해 해당 기업에 적합한 고객제표 모델을 수립하고 해당 모델의 측정지표 리스트를 기업에 전달했다. 측정지표에 대한 데이터 집계와 입력은 참여 기업 측에서 담당했다. 측정지표 입력 과정에서 여러 차례 검증과 재분석이 수행되면서 한 기업당 당초 예상했던 6주 기간보다 3~6주가량 더 소요되는 경우가 많았다. 측정지표 입력과 데이터 검증 과정이 종료되면 구글 클라우드의 루커스튜디오(Looker Studio)3 로 구현된 고객제표 대시보드 시스템으로 고객제표를 발행해 고객사에 전달했고 담당 전문위원들이 고객제표 결과에 대한 해석과 문제점, 개선 방향 등을 정리한 보고서를 작성해 최종 보고회를 진행했다.


무엇을 발견했나
(Findings and Lesson Learned)

6개월간 고객제표를 다양한 업종의 기업에 적용하면서 기업에도, 우리 연구진에게도 매우 흥미롭고 의미 있는 사실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비록 개별 기업에 전달된 이슈 사항이나 인사이트를 일일이 나열하기는 어렵지만 이 아티클에서는 최소 몇 개 기업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된 주요 시사점을 중심으로 간략히 정리해 보고자 한다. 물론 여기에서 언급하는 시사점들은 고객제표의 기업 사례 연구를 통해 제시하는 것인 만큼 가설 검정을 통해 통계적인 유의성이 확보된 내용은 아니라는 점을 미리 밝혀둔다.

1) 자본고객의 중요성 확인

총고객을 의미하는 자산고객(Asset Customer)을 자본고객(Equity)과 부채고객(Liability Customer)으로 나눠 관리하는 것은 모든 업종에 유의미한 분류 방안인 것으로 확인됐다. 자본고객을 단순히 매출액 기준으로 분류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업종에서 자본고객은 부채고객 대비 구매력이 높았다. 물론 자본고객의 중요도는 업종에 따라 큰 편차를 보였다. 자본고객의 상대적 중요도를 나타내는 자본고객 매출 기여지수는 최저 1.1에서 최고 3.8까지 분포돼 있었고, 평균은 2.3 수준이었다(자본고객 매출 기여지수가 1일 때 자본고객과 부채고객의 중요도는 동일). 이동통신과 유틸리티 업종의 경우 자본고객의 비율이 70%를 넘어 안정적인 사업 기반을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자본고객 매출 기여지수는 가장 낮은 수준인 1.1 수준에 머물러 현재의 주력 상품만으로는 고객 매출 성장의 한계가 있음을 보여줬다. 반면 화장품이나 식음료와 같은 소모품성 소비재의 경우 자본고객의 비율이 10~20%대로 낮지만 자본고객의 매출 기여지수는 3.0 수준에 가까워 마케팅 역량에 따라 수익성이 크게 개선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자본고객의 중요성이 확인된 만큼 기업은 부채고객의 자본고객화에 힘써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막연하게 부채고객을 자본고객으로 전환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관점의 접근만으로는 부족하다. 자본고객의 분류 기준점 근처에서 누락된 부채고객들을 선별해 해당 기준을 높일 수 있는 마케팅 전략을 수행하는 등 구체적인 접근이 이뤄져야 한다. 가령 리테일 업종에서 자본고객 분류 기준 중 하나로 ‘월평균 방문 빈도 4회’를 설정하면 방문 빈도가 월 4회 미만인 고객들은 모두 부채고객으로 빠지게 된다. 이럴 때 월 3.5회 이상의 부채고객들을 대상으로 방문 빈도를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춰 마케팅 활동을 전개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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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B2C 업종의 전반적인 고객 감소

이번 시범사업에서는 당해 년도에 대한 고객제표만을 발행했기 때문에 모든 지표에서 시계열적 변화를 파악할 수 없었다. 하지만 고객흐름표의 고객 순유입과 순유출을 평가하기 위해 전년도의 고객 수를 파악해야 했기에 부가적으로 기업별 고객 수의 변화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대부분의 업종에서 고객의 수가 감소하는 현상이 나타났는데 유난히 B2C 업종에서의 고객 수 감소가 두드러졌다. B2C 업종에 해당하는 대부분의 기업에서 고객이 4~5% 감소하는 패턴을 보였으며 일부 소비재 기업에서는 고객 수가 전년 대비 18%나 감소했다. 고객 수 자체의 급격한 감소는 다른 어떤 지표보다 나쁜 징조이고 다른 모든 경영지표에 악영향을 미치기에 이 기업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한편 B2B 업종의 경우에는 고객 수 변화가 크지 않으나 대리점이나 온라인 쇼핑몰과 같은 파트너 유통채널을 통해 최종 소비자에게 상품을 판매하는 B2B 기업의 경우 파트너 채널을 통한 매출액이 유의미하게 감소하는 패턴을 보였다. 이는 해당 파트너사에서 판매하는 개인 소비자의 고객 수가 줄었거나 소비자의 구매력이 약해졌다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전반적인 고객 수 감소는 당기에만 나타난 일시적인 현상일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업종에서 나타난 현상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국내 소비재 시장의 전반적인 약세를 반영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다. 일반적으로 고객의 매출 감소보다 고객 자체의 감소가 더 큰 위험 요소이기 때문에 기업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것인지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고객 관계를 유지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3) 고객 관점의 손익계산 방법론 부재

재무제표상의 손익계산서에서 보고되는 영업이익률은 기업 전체에 대한 포괄적 손익 정보이기 때문에 이질적인 고객 유형에 대한 손익의 편차를 보여주지 못하는 ‘평균의 함정’을 내포할 수밖에 없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고객제표의 고객손익계산서에서는 고객상태표에서 분류한 자본고객과 부채고객에 대한 공헌이익(률)과 영업이익(률)을 개별적으로 산출한다. 시범사업 결과로 자사의 고객손익계산서를 받아 본 기업들은 유틸리티 서비스 업종을 제외하고 대부분 자사의 자본고객과 부채고객의 수익성이 큰 편차를 보인다는 점에 놀라는 기색이었다. 포괄적 영업이익률이 14.3%였던 한 B2B 서비스 기업의 경우 자본고객의 영업이익률은 30.7%에 이르지만 부채고객의 영업이익률은 -13.5%였다. 14.3%라는 수치는 고객을 고려하지 않고 뭉뚱그려져 나타난 공허한 숫자였음을 알게 된 것이다.

한편 고객제표 발행 시의 난제 중 하나는 고객손익계산서를 위해 기존의 매출원가와 판관비 항목을 변동비와 고정비로 재분류해 고객 유형별로 계상하는 과정이었다. 이 작업의 난이도는 전적으로 기업 규모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알게 됐는데 기업 규모가 클수록 관리회계 체계가 비교적 잘 정립돼 있어 상대적으로 작업이 수월해졌다. 그러나 대기업이라도 고정비에 대한 고객 유형별 계상은 여러 차례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변동비는 각 고객 유형별 매출액 비율에 따라 분리 적용하면 되기 때문에 비교적 분류가 용이하지만 고정비는 매출 수준에 관계없이 소요되는 일종의 매몰비용(sunk cost)이기 때문에 고객 유형별로 공평(even)이 아닌 공정(fair)하게 분류하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참여 기업과 전문위원들 간의 많은 논의 끝에 계약 기반 사업의 경우 고객의 수에 따라, 비계약 기반 사업의 경우 거래(transaction) 또는 매출건수에 따라 고정비를 분리 계상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4) 고객흐름 평가는 영업 전략 정비의 출발점

고객흐름 분석의 목적은 전체 고객 중 자본고객이나 식별고객의 흐름을 영업 방식이나 영업 채널에 따른 고객 유입과 유지, 유출 현황을 통해 파악하려는 것이다. 고객흐름표 작성을 위해 어떤 기준을 적용할 것인지에 대한 결정은 업종의 특성과 고객흐름 정보 파악의 용이성, 기업 내부의 전략적 필요성에 의해 결정됐다. 생활가전 기업의 경우 일반영업, 특별영업, 제휴영업과 같은 영업 방식으로, 대형마트 리테일 기업의 경우 대· 중· 소 등 매장 규모로, 소모품성 소비재 기업의 경우 직영· 통제가능· 파트너 등 영업 채널에 따라 유형을 구분했다. 그리고 계약 기반의 용역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의 경우 영업과 계약의 형태를 결정하는 수의계약, 지명입찰, 경쟁입찰 방식에 따라 고객흐름이 분석됐다.

고객흐름표 분석 경험을 통해 연구진이 알게 된 부가적인 사실은 고객흐름표가 우리가 의도했던 순수한 고객 수급 현황을 파악한다는 의미 외에도 기업에는 영업 방식이나 영업 채널에 대한 성과 평가나 페인 포인트(pain point)를 포착한다는 의미가 더 크다는 점이었다. 영업 방식이나 채널에 따른 고객흐름의 증감을 파악하는 것은 고객상태표로 설명되지 못하는 자본고객 및 부채고객의 전년 대비 증감의 이유를 정확하게 알려줄 뿐만 아니라 주요 영업 방식이나 영업 채널들의 모객 현황을 모니터링함으로써 영업 및 채널 전략 정비에 대해서도 직접적인 피드백을 준다. 대형마트 기업에서는 소규모 매장에서의 고객흐름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리고 계약 기반의 용역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의 경우 기존에 안정적인 사업 기반을 제공했던 수의계약을 통한 고객 수는 13% 하락한 반면 상대적으로 영업 중요도가 떨어진다고 생각했던 경쟁 입찰을 통한 고객 수는 24%나 증가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 기업은 수의계약 기반 고객사가 대부분 소속 그룹의 계열사를 통해 창출된 고객이기 때문에 더 이상 그룹사 내 매출이 안정적으로 보장되지 않는다는 데 경각심을 갖게 됐다. 한편 이동통신 산업에서는 공교롭게도 이동통신 3사 중 2개 회사가 참여해 내부적으로 비교가 가능했는데 둘 중 한 업체에서 직영 채널(소매직영, 고객센터, 자사 몰) 대비 파트너 채널(대리점, 대형 유통, 외부 몰)의 의존도가 매우 높아 고객 충성도 관리에 잠재적 위험 요인이라는 점이 발견됐다. 이동통신 서비스의 경우 파트너 채널에서는 통신 3사의 상품을 모두 취급하고 있기 때문에 상품 가격이나 프로모션 수준에 따라 통신사 전환이 더 쉽게 일어나고 이는 고객유지율이나 고객이탈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실제로 파트너 채널 의존도가 더 높았던 회사의 고객이탈률은 9.5%였고 다른 한 곳의 고객이탈률은 2.4%에 지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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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자사 몰 패러독스 현상

고객제표 분석 과정에서 연구진이 발견한 또 하나의 중요한 사실은 자사 몰 패러독스가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자사 몰 패러독스란 자사의 상품 판매를 위해 외부 몰이나 리테일 업체뿐만 아니라 자사가 직접 운영하는 독립적인 쇼핑몰을 함께 운영하는 소비재 기업에서 자사 몰 고객의 수익성이 오히려 떨어지는 현상이다. 소비재 기업들이 자사 몰을 운영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자사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 높은 고객을 확보하고 중장기적으로 고객 확보 및 유지비용을 절감함으로써 수익성 높은 고객으로 전환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자사 몰을 운영하는 5개 시범사업 참여 기업 중 4곳에서 자사 몰 고객들의 수익성이 외부 채널 고객들의 수익성보다 떨어지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유는 명확했다. 외부 채널에서 판매하는 자사 상품에 대한 가격을 자사 몰이라고 해서 더 비싸게 팔 수도 없거니와 일반적으로 자사 몰에서는 각종 멤버십 보상이 부가적으로 제공되고 포장 및 배송비 역시 오롯이 본사의 몫이 된다. 즉 매출액 대비 변동비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큰 것이다. 기업에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피력했지만 연구진의 의견은 달랐다. 4개 회사의 공통점은 멤버십을 운영하고 있지만 고객 충성도 확대를 위한 전략적인 CRM 활동은 거의 없다는 점이었다. 만약 자사 몰 고객에 대한 영업이 외부 채널 영업처럼 그저 수동적인 구매 대응만으로 이뤄진다면 자사 몰의 운영 타당성은 결코 확보될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이 반복된다면 결국 CRM을 위한 자사 몰이나 멤버십의 운영이 부질없다고 예단하기 쉽다. 이렇게 되면 외부 채널에 대한 의존도는 다시 높아지고 결국 고객 기반의 로열티 경영과 멀어지게 될 것이다.

자사 몰로 획득한 고객은 소중한 존재다. 이런 고객들에게는 관계 진화 과정에 기반한 고객 여정을 설계하고 각 여정 단계별 고객 충성도를 확대하는 CRM 마케팅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고객이 주로 구매하는 상품 외의 연관 상품을 적극 추천해 교차 판매를 도모함으로써 관계의 유형을 늘리고 구매금액대별 보상 수준을 차별화해 객단가를 높임으로써 관계의 수준을 두텁게 해야 한다. 그래야 자사 몰로 유입된 고객을 충성도 높은 고객으로 전환할 수 있다. 자사 몰을 운영하는 시범사업 참여 기업 5개 중 한 곳은 이미 이렇게 하고 있었다. 자사 몰 패러독스가 적용되지 않는 기업이다.


고객 파레토 지수로 우수고객그룹의 경쟁력 파악

상위 20% 고객이 전체 매출의 80%를 차지한다는 파레토 법칙은 모든 업종에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다. 은행, 증권, 신용카드와 같은 금융업종이나 럭셔리 브랜드나 고급 소비재 업종, 부동산 컨설팅이나 의료 및 건강관리 서비스 업종의 경우 상위 20% 고객이 전체 매출 80%가 아니라 90% 가까이 점유하기도 한다. 반면 일반 소비재의 경우 상위 20% 고객이 전체 매출의 50% 남짓 정도만을 설명하기도 한다. 보는 관점에 따라 파레토 법칙은 고객 파레토 비율과 매출 파레토 비율로 구분된다. 고객 파레토 비율은 고객을 기준으로 보는 파레토 비율로서 상위 20% 고객이 전체 몇 %의 매출을 설명하는지를 보여주고 매출 파레토 비율은 매출을 기준으로 전체 80%의 매출을 상위 몇 %의 고객이 설명하는지를 보여준다. 같은 내용이지만 주목하는 지표가 다른 것이다. 고객제표의 고객변동표에서는 우수고객그룹의 기여도를 업종별로 쉽게 비교해보기 위해 고객 파레토 비율을 이용해 고객 파레토 지수라는 것을 사용했다.

고객 파레토 지수 = 상위 20% 고객의 실제 매출비율÷상위 20% 고객의 이론적 매출비율(80%)

상위 20% 고객의 실제 매출비율이 80%를 차지하면 고객 파레토 지수는 1이 되며 80% 이상이면 1 이상이 된다. 이번 시범사업에 참여한 업종 중 고객 파레토 지수가 1을 넘는 업종은 B2B 대상의 전문품 유통업종이 유일했다. 이 기업의 고객 파레토 지수는 1.17로 상위 20% 고객이 전체 매출의 93.6%를 차지했다. 이 기업 외에도 B2B 업종 대부분이 높은 고객 파레토 지수를 기록했으며 리테일, 소비재, 유틸리티나 이동통신 업종 순으로 고객 파레토 지수가 낮아졌다.

기업이 고객 파레토 지수를 점진적으로 개선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은 당연한 논리다. 그러나 위 결과는 어떻게 보면 업의 특성상 고객당 매출 증대 노력에 대한 결실이 업종별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암시하기도 한다. 업종 내에서 기업별 고객 파레토 지수를 비교하면 자사의 우수고객군에 대한 상대적인 경쟁력도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보내지 말았어야 할 고객들

어느 기업이나 고객이탈4 은 불가피한 현상이다. 그리고 고객이탈의 정도는 업종의 특성뿐만 아니라 같은 업종 내에서도 고객관리 역량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인다. 이번 고객제표 시범사업의 결과도 이런 상황을 여실히 보여줬다. 전반적으로 과점 산업에 해당하는 이동통신이나 유틸리티 서비스 산업의 고객이탈률은 평균 5.4%로 가장 작은 편에 속했고 B2B 업종이나 오프라인 리테일의 고객이탈률은 평균 13.7% 정도였다. 그리고 소비재 업종의 경우 예상대로 평균 67.1%의 높은 이탈률을 보였다. 유사한 업종이라도 기업의 고객관리 역량에 따라 이탈률의 차이가 유의미하게 나타난다는 점도 확인됐다. 이동통신업체 중 한 곳은 2.4%, 다른 한 곳은 9.5%였고 B2B 업체 중 한 곳은 16%, 다른 한 곳은 21.1%의 고객이탈률을 보였다. 소비재 업종 내 편차는 더 컸다. 생활가전과 같은 내구성 소비재 업종은 무려 90%에 육박했고 같은 소모품성 소비재 업체라도 한 곳은 38.4%, 다른 한 곳은 79%의 고객이탈률을 기록했다.

고객이탈이 심각한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많은 기업이 여전히 ‘고객이탈 불감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기업들과 면담을 해보면 대부분 첫째 ‘우리 업종은 원래 그렇다’, 둘째, ‘고객이 떠나가는데 무슨 수가 있나’, 셋째, ‘이탈한 고객만큼 신규 고객으로 채우니까 사업이 유지되는 것 아닌가’라는 등의 답변을 내놓는다. 세 가지 대답 모두 틀렸다. 첫째, 원래부터 그런 업종은 없다. 다소 높은 고객이탈률을 보이는 업종이라도 앞서 기술한 바와 같이 기업마다 그 비율은 천차만별이다. 둘째, 고객이 떠나가는데 별수가 없다는 기업에는 기본적인 이탈 관리라도 해본 적 있는지 되묻고 싶다. 떠나갈 고객을 미리 예측하고, 이탈 방지 캠페인을 모색하면 분명히 비율은 개선된다. 셋째, 신규 고객으로 빈자리를 채우면 된다는 기업은 기존 고객 한 명을 유지하는 비용보다 새로운 고객 한 명을 영입하는 비용이 몇 배 더 크다는 고객 경제학의 기초조차 모르고 있는 것이다.

만약 로열티가 높은 우수고객 집단에서 고객이탈이 크게 발생하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고객변동표에서는 매출 5분위 등급별 고객의 모든 변동 상황을 체크하기 때문에 각 등급별 고객이탈의 수준을 확인할 수 있는데 최상위 5분위 그룹에서 최하위 1분위 그룹으로 내려갈수록 고객이탈률은 커지게 마련이다. 전체 이탈고객의 절반 수준이 1분위 계층에서 발생하며 최상위 그룹에서의 고객이탈은 전체 이탈의 3~4%를 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만약 5분위와 같은 우수고객 집단에서 전체 이탈고객의 5% 이상이 발생한다면 그로 인한 경제적 기회손실액은 상당하다. 이런 현상은 13개 참여 기업 중 9곳에서 나타났다. 이 기업들의 경우 4, 5분위 이탈고객 수는 전체 고객의 1~2% 수준밖에 안 됐지만 이로 인한 경제적 기회손실액은 총매출액의 15~23% 정도를 차지할 정도로 그 규모가 컸다. 최소한 우수고객그룹에 대해서만이라도 이탈 징후를 포착하는 예측 모형의 이탈 조기 경보 체계를 만들고 단계적인 이탈 방지 활동을 모색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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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 기업들의 반응과 후기

기업별로 9주에서 최대 12주까지 소요된 고객제표 프로젝트가 종료된 후 고객제표 사업단에서는 참여 기업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시행했는데 그중 공개할 수 있는 몇 가지 항목을 정리해 봤다. 설문조사 응답에는 이번 공식적인 시범사업 참여 기업뿐만 아니라 고객제표 공개 이전에 실험적으로 참여했던 일부 기업의 응답도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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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의 절차상 루커스튜디오 기반의 고객제표를 참여 기업에 먼저 발행한 뒤 전문위원의 해석과 이슈 사항 정리, 전략적 제언이 포함된 진단보고서를 1~2주 뒤 작성해 최종 보고를 진행했다. 대부분의 기업에 부정적인 이슈 사항이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각 기업의 임직원들이 고객제표의 효용성에 대해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참여 기업들의 반응과 후기를 모두 기재할 수 없지만 몇 가지 내용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무엇보다 각 부문 임직원들이 고객제표 결과를 통해 많이 놀란 면도 있지만 경각심을 갖고 단계적인 혁신을 할 수 있는 자극이 된 것 같다.”
- 유틸리티 서비스 업종 대표이사

“그저 포인트 적립만 해주면 될 줄 알았던 우리 회사 멤버십의 문제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전문위원들과 지속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하면서 개선 방향을 찾기로 했다.”
- 리테일 기업 경영전략 본부장

“사실 우리도 고객 중심 경영을 외치고 있지만 여전히 제품 중심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했다. 당장은 어렵겠지만 고객유형별 관리회계 체계를 정비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 생활가전 재무회계팀 상무

“처음엔 우리와 같은 B2B 업종에 고객제표가 적용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는데 오히려 우리에게 더 필요한 것 같다. 특히 고객사와의 계약 방식에 따라 고객흐름을 분석한 결과는 우리의 영업 전략에 중대한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 B2B 서비스 기업 영업담당 전무

“혁신적인 모델이다. 특히 실무자들이 전략을 기획하고 실천함에 있어 재무제표보다 훨씬 많은 정보와 인사이트를 주는 것 같다.”
- 소모품성 소비재 기업 마케팅본부장

고객제표 시범사업에 참여한 기업들은 ‘프런티어’라 할 만한 혁신 기업이라 생각한다. 흥미로운 주제일지라도 기존에 해보지 않았던 것을 추진한다는 것은 기업 입장에서 쉬운 결정이 아니다. 암묵적으로 알고 있지만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이슈들이 표면화되는 것을 염려했을 수도 있고 설문조사나 단순한 고객 데이터 분석쯤으로 생각했다가 예상보다 업무의 범위가 광범위하고 번거로운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됐을 때 중단하고 싶었을 수도 있다. 실제로 시범사업에 참여했지만 결국 끝내지 못한 채 중단한 기업도 일부 있다. 그렇기에 고객제표 시범사업을 완수한 기업들은 새로운 시작에 대한 의지뿐만 아니라 아픈 곳도 기꺼이 들여다보겠다는 용기를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시범사업은 종료됐지만 이제부터야말로 고객제표의 본격적인 시작이다. 시범사업을 통해 고객제표의 적용 타당성이 확보됐고 프레임워크와 프로세스에 많은 개선이 이뤄졌다. 업종별 차이에 기반한 고객제표 패턴을 분류할 수 있게 되면서 평가지표와 측정지표의 표준화도 용이해졌다. 고객제표를 고객경영 성과평가 체계의 글로벌 표준으로 안착시키기 위해 노력하면서 그 과정에서 얻어진 다양한 사례와 통찰력을 기업 및 연구자들과 공유할 예정이다.
  • 김형수

    김형수hskim8035@gmail.com

    한성대 산업경영공학부 교수

    김형수 한성대 산업경영공학부 교수는 ㈔한국CRM·디지털마케팅협회의 협회장을 맡고 있으며 현재 고객 중심의 전사 경영평가체계인 고객제표의 사업단장을 맡고 있다. 20년 이상 다양한 업종의 CRM과 고객전략 관련 컨설팅과 자문을 수행해오고 있으며 50여 편의 저명 국내외 학술지 연구논문과 전문 서적을 집필했다. 주요 연구 분야는 고객분석, 고객전략, CRM, 행태예측 인공지능 모델링, 멤버십 프로그램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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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리=김윤진truth311@donga.com

    동아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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