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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디자인

‘無보상’에 더 끌린다?

윤재영 | 395호 (2024년 6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아침 기상을 돕고 운동을 꾸준히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등 사용자들의 행동을 유도하는 서비스를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행동하고 싶은 ‘동기’가 유발될 때(Trigger), 그리고 일어난 행동에 대한 ‘피드백(Feedback)’과 ‘보상(Reward)’이 제공될 때 사용자의 행동이 일어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런 통념과 다른 학계의 연구 결과가 속속 제시되고 있다. 스탠퍼드대 연구에 따르면 재정적 보상이 행동 유도에 효과적일 것이라는 통념과 달리 무보상이 사람들의 행동을 더 유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람들이 행동 자체에 목적과 의미를 두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내재적 동기), 돈과 같은 외재적 보상이 주어지면 오히려 독으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사용자들의 행동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무조건적인 보상보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효용을 따져 보상을 설계할 필요가 있다.



사람들을 설득해 행동으로 이어지게 도와주는 온라인 서비스들이 있다. 아침 기상을 돕고 운동을 꾸준히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챌린지 서비스가 대표적이다. 건강한 식단으로 식사할 수 있도록 돕거나 일할 때 집중력을 높여주기도 한다. 외국어 학습, 독서, 저축, 에너지 절약, 환경보호, 수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자들의 행동을 유도하는 서비스들이 있다. 이 같은 서비스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설득’과 ‘행동 유도’ 방법들은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발전해왔다. 당시 수사학은 사람을 설득하기 위한 주요 요소로 설득이 충분히 논리적인지(로고스), 감정적으로 끌림이 있는지(파토스), 설득자의 인품이 신뢰할 만한지(에토스) 등을 꼽았다.1

이후 20세기로 넘어오면서 행동 유도를 위한 다양한 방법이 본격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했다. 심리학자와 경제학자들은 사람의 의사결정 과정을 탐구해 행동심리와 행동경제학의 기틀을 마련했고 21세기에는 행동 유도를 위한 설득 기술(Persuasive Technology)2 과 너지(Nudge)3 가 각광받기 시작했다. 이는 디자인 분야에도 큰 영향을 미쳐 오늘날 온라인 서비스의 조언, 셀프 모니터링, 경쟁, 보상, 감정 호소 등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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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의 행동을 유도할 때 범하는 실수들

행동 유도 방법이 오랜 시간에 걸쳐 연구돼온 만큼 이론상으로 이 방법을 경험한 사람들은 운동을 많이 해 건강해져야 하고, 에너지 절약 행동이 누적돼 환경이 나아져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사람의 행동을 이끌어낸다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행동을 유도하는 서비스들을 실제 사용해 보면 역시나 기대에 못 미치곤 한다. 실제로 영국과 미국 정부가 재정적 보상을 제공해 시민들의 운동 활동량을 늘리려 기획한 프로그램도 효과가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4 다양한 행동 유도 방법이 오랜 시간 연구를 통해 입증돼왔고 실제 서비스에 적용되고 있지만 그 효과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회의적으로 보는 연구들도 적지 않은 상황이다.5

행동 유도와 관련한 학계의 연구들은 주로 ‘행동 유도 방법이 얼마나 효과적인지’에 초점을 맞춰왔다. 이런 방법이 언제, 왜 실패하는지, 어떤 역효과를 만들어 내는지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부족했다. 이에 행동 유도에 대한 면밀한 이해와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상황이다. 일반적으로 행동하고 싶은 ‘동기’가 유발될 때(Trigger), 그리고 일어난 행동에 대한 ‘피드백(Feedback)’과 ‘보상(Reward)’이 제공될 때 행동이 일어난다고 알려져 있다.6 행동 동기를 유발하는 방법과 피드백, 보상 등을 활용하는 데 어떤 문제가 있길래 사용자 행동 유도에 실패하는 걸까.

1. 사용자들이 몰라서 안 하는 게 아니다

행동을 유도하기 위해 ‘왜 행동해야 하는지’를 안내하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일반적으로 해당 행동이 얼마나 유익한지에 대해 알려주면 자연스럽게 행동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은 이미 운동, 건강 식단 유지, 독서, 에너지 절약 등이 왜 중요한지를 상식적으로 알고 있다. 많은 경우 몰라서 못 하는 게 아니라 너무 바쁘거나 이런 행동을 당장 하고자 하는 동기가 부족해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이다. 아는 이야기를 반복해 강조하면 잔소리처럼 들릴 수 있어 오히려 역효과만 생길 수 있다. 이 경우에는 개인화된(Personalized) 정보로 접근하면 보다 효과적이다.7 셀프 모니터링(Self monitoring) 기법으로 사용자에게 자신의 운동량, 전기소비량, 모바일 사용량, 흡연량, 수면 패턴과 같은 객관적 데이터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사용자가 자신에 대해 미처 몰랐던 사실을 발견하고 스스로 성찰해 행동을 개선할 수 있다.

2. 기계가 감성적으로 호소하면 마음이 동할까

사용자에게 지나치게 감성적으로 접근하는 경우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사용자가 달리기를 시작하고 목표를 이뤄냈을 때 앱 서비스 내에서 “잘했습니다!”라고 칭찬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이때 사용자는 사람이 아닌 앱 서비스가 하는 이 칭찬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의문스러울 수 있다. 나쁜 말은 아니니 잠깐 기분이 좋을 순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칭찬의 의미를 느끼지 못해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다른 예로 언어 학습 서비스에서는 사용자가 언어 학습을 꾸준히 하지 않으면 캐릭터가 슬퍼하며 울기도 한다. 알고리즘에 의해 캐릭터가 눈물 흘리는 시늉을 하는 것이다. 이 캐릭터가 슬퍼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공부를 해야 하는 걸까? 사용자의 기쁨과 슬픔 등 감정을 활용해 행동을 유도하려는 의도이지만 이런 전략이 장기적으로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감정에 호소하는 전략이 행동 유도에 효과적이라는 연구는 상당히 많지만 대부분은 흥미에 기반한 단기적 효과를 측정한 연구다. 장기적 관점에서 실효성을 측정한 심도 있는 연구가 필요한 이유다.
 
비슷한 예로 사용자가 죄책감을 느끼도록 하는 서비스도 있다. 생산성 앱에서 사용자가 집중하지 않으면 캐릭터 강아지를 굶기기도 하고8 에너지를 낭비하면 앱에서 빙하가 녹아 북극곰을 위태롭게 하기도 한다.9 이런 서비스 설계는 목표 행동을 해내지 못했을 때 사용자에게 잠깐 감정 변화를 줄 순 있겠지만 사용자로 하여금 지속적으로 불편한 감정을 느끼게 해 바람직한 서비스 설계라고 보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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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보상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행동에 대한 보상(Reward)이 잘못 설계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일반적으로 보상 효과가 미미한 경우 일의 양에 비해 보상이 너무 적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스탠퍼드대의 연구10 11 는 의외의 결과를 내놓았다. 예상되는 보상(Expected reward), 무(無)보상, 깜짝 보상(Surprise reward) 등 보상을 세 가지로 나눠 실험한 결과, 예상되는 보상보다 무보상이 사람들의 행동을 더 유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무보상과 깜짝 보상 사이에는 유의미한 차이가 없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보상이 있는 것보다 없는 게 차라리 나을 때도 있는 것이다. 해당 연구는 아동의 그림 그리기로 실험했지만 이후 성인을 대상으로 진행했던 다양한 행동 실험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타났다.12 사람들은 어떤 행동을 할 때 그 자체에 목적과 의미를 두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내재적 동기), 돈과 같은 외재적 보상이 주어지면 오히려 독으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달리기를 장려하기 위해 금전적 보상을 제공할 경우 사용자 입장에서 당장 좋을진 모르지만 막상 뛰다 보면 달리기가 돈을 벌기 위해 해야 하는 일처럼 인식돼 결국 흥미를 잃고 포기하게 될 수 있다. 따라서 사용자들의 건강을 증진시키기 위해서는 무조건적인 보상보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효용을 따져 보상을 설계할 필요가 있다.

4. 적극적인 개입이 효과적일 것이라는 착각

한국과 영국 등에서 쓰레기가 사회적 문제가 되자 쓰레기통을 없애거나 작게 만들었다.13 14 이렇게 하면 사람들이 쓰레기를 덜 버릴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쓰레기 무단 투기가 빈번해지는 등 상황이 악화됐고 결국 다시 쓰레기통의 크기와 수를 늘렸다. 목적을 위해 행동을 강제할 경우 역효과가 나타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비슷한 예로 청소년들의 게임중독을 막기 위해 심야 시간 게임 이용을 강제적으로 제한했던 ‘셧다운제’ 역시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논란 끝에 폐지된 바 있다.15 아동의 건전한 모바일 사용을 위해 부모가 아이의 스마트폰을 모니터링하거나 강제적으로 제어하기도 하는데16 이런 방법이 가족 간의 갈등을 야기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적잖이 보고되고 있다.17 이처럼 행동을 유도하는 적극적인 개입은 아무리 좋은 취지라 할지라도 사용자 입장에서는 강압적으로 느낄 수 있고, 특히 강제성이나 권위에 민감한 사람일수록 반감이 더욱 커질 수 있다.18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행동 유도 디자인은 가능할까

지금까지의 행동 유도 연구가 편향됐다는 지적이 하나둘씩 나오고 있다. 통제된 실험실 환경에서 진행된 연구들이기에 많은 변수가 혼재된 현장에서는 효과가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잘 알려진 행동 이론들 역시 대부분 거시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기 때문에 각각의 특수한 상황에서는 기대만큼 효과를 내지 못하거나 역효과가 생기는 경우도 많다. 특수한 개별 상황에 대해 고려한 세부적인 행동 모델과 디자인 전략이 후속 연구로 정립될 필요가 있는 이유다.

동일한 행동 전략이라도 사람마다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기에 사용자 그룹별로 효과를 검증하고 그룹별로 다르게 접근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사용자 행동 유도 전략을 개발하는 팀은 단기 효과와 성과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는데 아무리 좋은 전략이라도 반복 사용하면 효과가 반감되므로 장기적인 효과로 이어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사용자의 외재적 동기보다는 내재적 동기를 유발할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사용자에게 미션을 주는 방식이 아닌 사용자 스스로 목적과 목표를 세우고 다짐하며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한다면 자기효능감이 높아져 내적 보상 또한 커질 수 있다. 결국 해야 할 일을 당장 하게 만드는 방법이 아닌 장기적 관점에서 행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서비스 설계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래야 사용자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한 행동 유도가 가능할 것이다.
  • 윤재영ryun@hongik.ac.kr

    홍익대 디자인학부 교수

    필자는 로드아일랜드 디자인스쿨(RISD)에서 시각디자인 학사를, 카네기멜론대에서 HCI(Human Computer Interaction) 석사와 컴퓨테이셔널 디자인(Computational Design)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실리콘밸리에서 UX 디자인 리서처로 근무했다. 주 연구 분야는 사용자 경험(UX), 인터랙션 디자인(HCI), 행동 변화를 위한 디자인 등이며 현재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사용자를 유인하고 현혹하는 UX 디자인에 관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저서로 『디자인 트랩』 『디자인 딜레마』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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