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부 출범과 더불어 탄생한 ‘공룡 부처’ 가운데 대표적인 곳이 지식경제부다. 옛 과학기술부, 정보통신부, 산업자원부 업무를 흡수해 설립된 지식경제부는 산하 관련 부처 공무원이 1000명이 넘고, 각종 관리 감독 관련 기관이 480여 개에 이른다. 그야말로 한국의 미래 경쟁력을 실무적으로 책임지는 핵심 경제부처다.
지식경제부가 최근 발표한 신성장 동력 산업 육성 방안에 따르면 앞으로 5년 동안 22개 핵심 산업에 민관 협력으로 총 99조 원이 투자되고 88만 개의 일자리가 창출된다고 한다. 성장에 목이 마른 기업과 국민 입장에서는 반가운 소식이지만 과연 투자만으로 신성장 동력이 확보되는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야 한다.
영국 무역산업부가 매년 발표하는 연구개발상황표(R&D Scoreboard) 2007년 자료는 전 세계 R&D 투자 상위 1250개 기업의 순위를 보여 준다. 이 자료에 따르면 미국 기업이 509개로 가장 많고, 투자 금액도 전체 투자의 40.4%를 차지하는 218조 원(약 1816억5000만 달러)이다. 2위는 일본으로 220개 기업이 전체 투자의 17.7%인 95조 원(795억6000만 달러)을 투자했다. 7위에 오른 한국은 21개 기업이 15조 원(124억8000만 달러)을 투자하고 2.8%를 차지했다. 교육과학부 발표자료에도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R&D비는 3.47%로 이스라엘과 스웨덴에 이어 세계 3위다.
한국의 GDP가 세계에서 13위인 것과 비교하면 한국기업들의 R&D비는 다른 나라에서 부러워할 정도로 높다. 그러나 R&D비 규모가 크다고 해서 그 기업이 사업에서 반드시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R&D비는 낭비될 수도 있고, 잘못 사용될 수도 있다. 지나치게 많은 R&D비는 연구자를 나태하게 만들고, 비용을 줄이기 위한 혁신이나 창조적인 노력보다 기존 방식에 의존하게 만들 수도 있다. 같은 R&D비라도 경영자가 과학과 기술에 대해 가진 열정과 전문성, 기업이 가진 R&D 메커니즘에 따라 성과는 크게 달라진다.
2008년 8월까지의 실적을 기준으로 한국의 10대 수출 품목은 석유제품, 선박 및 해양구조물(조선), 자동차, 무선전신기기(휴대전화), (메모리)반도체, 평판디스플레이, 철강, 합성수지, 자동차부품, 컴퓨터 등이다. 품질경쟁력과 원가경쟁력을 기준으로 10대 수출 제품을 분류하면 한국이 품질과 원가 모두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조선, 반도체, 평판디스플레이, 철강과 품질 및 가격이 동시에 세계 1위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나머지 제품으로 나뉜다.
세계 1위는 아니지만 세계시장에서 상당한 경쟁력을 가진 제품들의 경쟁력 원천은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 그룹인 석유제품과 합성수지는 생산설비와 가공 능력으로 경쟁력을 갖고 있고, 둘째 그룹인 휴대전화·컴퓨터·자동차·자동차부품은 디자인과 조립기술 면에서 세계 1위 기업들을 열심히 쫓아가고 있다.
품질과 원가 면에서 동시 세계 1위를 자랑하는 반도체, 평판디스플레이, 조선, 철강산업을 이끌고 있는 우리나라 기업들은 제품에 대한 원천기술 면에서 하나같이 세계 최고 경쟁력을 지니고 있다.
제품경쟁력의 원천은 R&D
반도체는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평판디스플레이는 삼성전자와 LG디스플레이가 각각 양강 체제를 구축해 서로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원천기술의 자체 개발, 절묘한 투자시점의 선택, 과감한 투자 규모로 품질 및 원가경쟁력에서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수년 동안 무역수지 흑자의 원동력으로 매년 20조 원이 넘는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는 조선은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으로 구성된 국내 3대 기업과 이를 뒤따르는 여러 조선회사가 공정 관련 신기술을 끊임없이 개발해 세계 최고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철강은 포스코가 끊임없이 원천기술 개발에 투자해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2007년 상용화에 성공한 파이넥스(FINEX) 공법은 19세기 후반 영국에서 용광로 공법이 나온 이후 큰 변화가 없던 제철기술의 역사를 100년 만에 새롭게 쓴 차세대 기술이다. 포스코는 또한 끊임없는 공정기술 개발을 통해 세계 철강산업에서 최고 수준의 원가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반도체·평판디스플레이·조선·철강에서 삼성전자, 하이닉스, LG디스플레이,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포스코가 현재의 생산성과 미래의 핵심 기술을 바탕으로 품질과 원가 면에서 독보적인 세계 경쟁력을 갖게 된 원인은 R&D 투자 규모, R&D에 대한 경영자의 열정과 전문성, 이들 기업에 내부적으로 구축되어 있는 독특한 R&D 메커니즘에서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