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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카테고리’ 혁신 전략

품목별 ‘맞춤형 구매전략’ 세워라

이지은 | 19호 (2008년 10월 Issue 2)
요즘 기업은 미국발 금융위기로 촉발된 ‘난세(亂世)’에서 살아 남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며 열심히 비용을 줄일 방안을 찾고 있다. 직원들에게 휴가를 적극 권장해 인건비를 줄이는 경우도 있고, 에너지 사용 감축을 위해 전 직원의 중지를 모으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소극적인 대응으로는 경쟁력 있는 기업이 될 수 없다. 세계 최고의 기업들은 경기가 어려울수록 회사의 지출구조를 혁신해 수익률과 성장률을 동시에 높이는 전략을 구사한다.
 
기업의 지출구조를 혁신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이 글에서 소개하는 구매 혁신이다. 구매원가 절감은 다른 어떤 방법보다 수익성 향상에 주는 효과가 크다. 일반적으로 매출 10억 원, 영업이익률 20%의 회사가 1억 원의 매출 향상을 달성했을 때 영업이익은 10%(2000만 원) 늘어난다. 반면에 같은 회사가 1억 원의 구매원가 절감을 달성하면 영업이익은 50%(1억 원) 늘어나게 된다.
 
또 구매는 기업의 원가 측면에서 볼 때 전체 매출 원가의 60%를 차지하는 중요한 부분이다. 물류와 연구개발(R&D, 인건비 포함) 등 공급사슬 관리 부문으로 범위를 확장할 경우 구매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제조원가의 90%에 이른다. 이를 감안하면 구매 부문이 전략적인 기업 운영의 주체가 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기업들은 그 동안 구매를 단순히 생산 프로세스를 지원하는 기능 정도로만 치부해 왔다. 그 사이 선진 글로벌 기업들은 구매 역량을 끊임없이 개선해 경쟁력을 강화해 왔다. 그나마 최근 들어 구매에 대한 인식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한국에서 구매의 역할은 여전히 제한적이다.
 
구매 카테고리 전략을 수립하라
현재 쓰이고 있는 전략적인 구매의 방법은 너무나도 다양하다. 물량을 집중해 협상력을 끌어올리거나 공급사를 줄여 볼륨 디스카운트를 유도하는 것은 이미 ‘고전’에 속한다. 기업의 구매 담당자들은 세분화되고 발전된 구매 전략을 업무에 적용하고 있다고 하지만 처음의 기대와는 달리 실패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실패의 원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결정된 전략을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것이다. 철, 수지 등의 원재료나 저항, 콘덴서 같은 범용 전자부품의 구매 품목(카테고리)이 다르면 카테고리를 둘러싸고 있는 상황도 달라진다. 따라서 전략의 효과와 적용에 따른 성과도 품목에 따라 완전히 달라지는 경우가 생긴다.
 
이때 필요한 구매 혁신 방법론이 바로 ‘구매 카테고리 전략’이다. 이 전략은 구매 품목을 전략적으로 분류한 뒤 각 품목에 맞는 내·외부 환경을 진단하고, 각 구매 카테고리에 특화된 장기 구매 방침을 규정하는 것이다. 구매 카테고리 전략은 담당자 개인의 직관과 경험이 아니라 객관적인 데이터를 분석해 과학적으로 접근하는 방법론이다.
 
구매 카테고리 전략의 수립은 크게 4단계로 이뤄진다.(그림1)
 
첫 번째 단계는 회사의 기존 구매 카테고리 분류를 재검토하는 것이다. 이는 구매 품목을 회계 코드에 따라 단순히 대부품·소부품 식으로 구분하는 작업이 아니다. 구매 카테고리를 분류하는 목적은 자재에 따라 중요도와 공급사의 업계 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상황에 맞는 구매 전략을 세워 원가절감의 방침을 분명히 하려는 데 있다.
 
자재가 단순히 기계적으로 분류돼 있거나, 하나의 품목군으로 구성하기 어렵거나, 복수의 품목군으로 분산돼 있는 경우 기업은 적절한 구매 전략을 세우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 때문에 기존의 분류 체계가 있더라도 구매 카테고리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를 하는 것이 좋다.


구매 카테고리를 분류하면서 유의해야 할 포인트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먼저 구매 카테고리는 가능한 한 크게 파악하는 것이 좋다. 일반적으로 구매 부서 담당자가 구매 카테고리를 재검토할 경우 원부자재 분류가 너무 상세해지는 경향이 있다. 상세한 분류는 특정 자재의 공급 리스크 회피 등 어떤 면에서는 유효하지만, 개별 부품의 사항에만 초점을 맞추기 쉽고 전략적 자유도를 잃게 된다는 단점이 있다. 근시안적 시각 때문에 경쟁력 있는 공급사를 찾지 못하는 일도 일어날 수 있다. 예를 들어 자동차 업체가 기계 부품의 가공 공정별로 공급사를 관찰하면 특정 가공 공정에서 대체 협력업체를 찾는 것이 어렵다. 그러나 가공 공정이 아니고 기계 부품 전체라는 큰 범위에서 카테고리를 파악하면 다른 가공업체의 설비를 이용하거나 여력이 있는 공장 자원을 이용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다음으로 모든 구매 카테고리에 일관된 분류 기준을 적용해서는 안 된다. 구매 카테고리의 분류 기준에는 여러 패턴이 있을 수 있다. 기업은 해당 품목의 특성이나 라이프사이클, 제품구조, 제조공정 중에서 원가 절감에 가장 도움을 주는 방향으로 분류 기준을 설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두 번째 단계에서는 중점적인 혁신 대상이 될 구매 카테고리를 선별한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모든 카테고리를 혁신 대상으로 삼을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실행의 난이도와 효과라는 양면을 분석해 중점적으로 개혁할 구매 카테고리만 선별해야 한다는 말이다.
 
중점 카테고리로 선택된 구매 카테고리는 전사의 관리 아래 두는 것이 좋다. 각각의 사업 부문이 독자적인 정책을 취하지 않고, 전사의 전략과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정합성을 보이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전사적 전략의 장점은 사업간 부품을 공통화해 교섭창구를 일원화할 수 있고, 부품당 구매액이 커져 볼륨 디스카운트를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공급사 입장에서도 생산성이나 영업상의 효율이 향상되는 이점이 있다.
 
물론 이때 조직 내부는 그만큼 자유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현장의 구매 담당자들은 불만이 생길 수도 있다. 따라서 중점 카테고리는 객관적인 분석에 의해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형태로 선정하는 게 중요하다.
 
세 번째 단계는 중점 카테고리의 특성을 분석하는 단계다. 여기서는 구매 실적 데이터 분석과 함께 구매 카테고리를 둘러싼 외부 환경과 자사의 구매 상황을 초기 단계에서부터 정리한다. 구매 카테고리의 특성을 확실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자재 특성, 공급사 업계 특성, 자사의 구매 상황 차원에서 다각적인 분석을 해야 한다. 각 자재의 라이프사이클이나 공급사의 시장 점유율 등도 고려해야 한다. 예를 들어 기업 규모가 작은 공급사가 중심이 되는 구매 카테고리가 있다면 기술력이 확실한 공급사를 전략적으로 키워 협력을 강화하고 이를 통해 원가 구조를 낮출 수 있는 방안을 고려할 수도 있을 것이다.(그림2)
 
마지막으로는 앞에서의 세 단계를 거쳐 수집한 정보를 종합적으로 파악해 이를 기초로 구매 카테고리의 특성에 맞춘 전략을 수립한다.
 
이 같은 구매 카테고리 재분류 작업을 성공적으로 실천한 사례가 바로 스웨덴 볼보 그룹이다. 볼보는 1999년 승용차 부문을 매각하고, 2000년 들어 트럭 등 상용차 부문에 집중하는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볼보는 액센츄어와 함께 동력 전달계와 전기 부품 등 가장 큰 단위의 구매 카테고리별로 8개 전략을 만들었다. 그리고 제품기획(Planning), 제품개발(Product development), 구매(Purchasing)를 담당하는 ‘3P’ 조직을 중심으로 개혁을 추진했다. 우선 설계와 생산, 구매 부서에서 독자적으로 부품을 구매하는 기능이 3P가 중심이 된 전사적인 조직으로 흡수됐다.


3P
조직은 카테고리별 원가 절감 목표를 분기, 반기, 연별로 책정한 뒤 기존 협력사와 구매 상담을 진행해 목표를 달성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이와 동시에 신규로 경쟁력 있는 공급사를 전 세계 대상으로 조사했다. 이를 위해서는 스웨덴, 프랑스, 미국의 구매 카테고리 전문가로 구성된 글로벌 구매 개혁 팀을 만들었다. 또 신규 공급사 발굴, 부품 표준화에 의한 물량 집중, 중국 등 인건비가 저렴한 저비용 국가(Low Cost Country)로부터의 구매 확대 등의 다각적인 정책을 펼쳤다. 이 같은 프로그램을 실시한 지 7개월 후부터 직접적인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전체 구매액 5억8000만 달러 중 70%인 4억1500만 달러에 이르는 부품들의 구매 조건을 재협상해 기존의 공급원가를 더욱 낮출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전체 구매액의 10%가 넘는 6000만 달러를 절감할 수 있었다. 이는 볼보가 2001년 영업이익 마이너스 6000만 달러를 기록한 이후 흑자로 돌아서고, 2년 뒤인 2003년에는 그룹 차원에서 3억4000만 달러의 흑자를 달성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한편 구매 카테고리 전략은 해당 부품을 이용할 예정인 최종 제품의 로드맵이나 그 기초가 되는 부품 기술의 로드맵, 최신의 기술 동향까지를 포괄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책정한 구매 카테고리 전략을 상품 기획 부문이나 설계 부문과 공유할 수 있는 공통의 언어로 만들고 서로 논의할 수 있어야 한다. 설계 부문의 기술 스펙(specification)을 생산이나 기획 부서가 이해할 수 있게 하려면 카테고리 전문가의 조율이 필요하다.
 
전사적으로 구매 혁신을 추진하라
구매혁신을 구매 부문의 업무로만 맡기는 기업이 많다. 그러나 구매 분야의 중요성을 안다면 결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이는 조직 전체에 너무나 중요한 인사 업무를 인사담당 부서에만 맡길 수 없는 이유와 같다. 따라서 기업은 구매 혁신에 사내의 모든 업무 부문을 참여시켜야 한다.
 
전사적 관점은 여러 사업 부문이 공통된 공급사와 집중적인 교섭을 하게 해 준다. 또 공장 간 원부자재의 표준화와 공용화, 물류의 재검토 등을 가능하게 한다. 만성 적자에 시달리던 닛산은 구매, 설계, 생산, 물류, 판매 등 여러 부문이 참가하는 다기능 협력 팀(Cross Functional Team)을 만들어 전사 최적의 관점에서 대책을 검토하고 철저하게 실행에 옮겼다.(그림3)
 
전사적 구매 혁신을 위해서는 내부 협업을 통한 가치 창출이 중요하다. 이때 구매 부서는 상품기획·제품 개발·공급사 선정 ·제조·보수·서비스 등 제품 라이프사이클 전반에 걸쳐 사내 여러 부서의 구매 요구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면서 협력을 해 나가야 한다.
 
예를 들어 구매 카테고리 전략은 기술 동향 파악을 통해 상품 기획이나 설계 부문에 도움을 줄 수 있다. 구매 카테고리 전문가는 환경 분석을 통해 항상 특정 부품이 들어가는 최종 제품의 로드맵이나 그 기초가 되는 부품 기술 진화 등 최신의 기술 동향을 파악하기 때문이다. 구매 부서는 또 상품 기획 담당 부서가 기술의 선진성에 눈길을 빼앗겨 안정적인 부품 공급을 간과하는 실수를 막을 수도 있다.

미국의 한 기기 생산 업체는 부품 및 플랫폼 표준화를 통해 원가를 기록적으로 절감했다. 여기서 크게 활약한 사람들이 바로 구매 부문의 인력이었다. 이 회사는 표준화 추진 활동에 맞춰 구매 부문의 인력을 증원했다. 구매 담당자들은 설계자가 제품을 설계할 때 불필요한 기능이 들어가지는 않은지, 업계 표준 부품을 채택할 여지는 없는지 등을 분석하고 확인했다.


구매 부문의 인재를 육성하라
한 기업이 특정 부서를 중요하게 여기는지 알려면 그 부서의 사내 위상과 처우를 보면 된다. 세계 최고의 원가 경쟁력을 자랑하는 휴대전화 제조사 노키아는 연구개발(R&D) 부서와 구매 부서를 같은 선상에 놓고 대우한다. 당연히 각 조직의 수장이 받는 연봉과 처우도 비슷하다.(노키아 휴대전화의 평균 판매가는 삼성전자를 포함한 세계 주요 휴대전화 제조업체 중 가장 낮지만 영업이익률은 가장 높다)
 
반면에 우리 기업들은 아직 구매 조직을 핵심 부서로 대우하지 않는다. 액센츄어의 조사에 따르면 국내 주요 기업 중 구매 담당 임원이 있는 회사는 조사 대상의 절반도 되지 않았다. 심지어 한 고객사 담당자는 “구매 조직이 갖가지 노력을 동원해 구매비용을 줄여도 ‘왜 진작 구매 비용을 줄이지 못했느냐’ 는 상부의 질책이 쏟아진다”며 한숨을 쉬었다. 구매 부서는 여전히 생산 등 관련 부서의 요구에만 끌려 다니고 있으며, 설계나 생산 부서의 요구에 신속하게 대응해 제 시간에 부품을 공급하는 것만으로 구매 기능은 충분하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
 
구매 조직의 경쟁력을 키우는 출발점은 최고경영자(CEO)가 인식을 전환하고, 핵심 인재를 구매 부서에 배치하는 것이다.
 
구매의 중요성을 인식한 선진 기업들은 이미 10여 년 전부터 구매담당최고임원(CPO)이라는 직책을 별도로 두고 있다. 뛰어난 핵심 인재가 구매 부서에 배치되는 것은 물론 구매 부서 출신자가 CEO가 되는 경우도 많다. 일본 도요타는 구매부 출신인 와타나베 가쓰아키(渡邊捷昭)를 사장 자리에 앉혔다. 프랑스 푸조의 장 필리프 콜린 사장도 구매담당 부사장 출신이다. 닛산의 부활이 구매 조직의 부활에서 시작했다는 것도 잘 알려진 얘기다.
 
경영자급이 아니더라도 기업들이 구매 부문 인재 육성과 관련해 우선적으로 실천해야 할 일이 있다. 바로 구매 전문가를 육성하는 일이다. 구매 전문가는 실제 구매 업무에 필요한 지식 및 분석 능력과 함께 전체 공급사슬을 관리하고 생각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는 자사의 비용 구조와 구매 프로세스, 제품 설계로부터 양산에 이르는 제품 라이프사이클은 물론 고객 수요까지도 포함한다.
 
최근에는 앞에서 언급한 구매 카테고리 전략의 담당자인 카테고리 매니저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카테고리 매니저는 부서의 벽을 넘어 전사의 특정 구매 카테고리에 대한 원가절감, 안정적인 구매, 기술전략 등의 책임을 지는 관리자를 말한다.
 
카테고리 매니저는 직무 책임이 큰 만큼 강력한 권한도 가진다. 수립한 전략을 실천에 옮기기 위해서는 사업 부문의 구매 활동 전반에 관여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 공급사를 선정하고 집중하는데 제약을 받아서도 안 된다. 이를 위한 권한이 없다면 카테고리 매니저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
 
원재료를 구입해 물건을 만드는 제조 기업은 원가를 낮추는 능력이 곧 경쟁력이다. 기업은 원가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출발점이 구매에 있다는 인식을 갖고 강력한 구매 조직을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구매 파트가 전략적인 기업 운영의 주체가 되어서 총체적 비용 측면에서 경쟁적 우위를 창출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말이다.
 
구매에 대한 단순한 관심만으로는 부족하다. 이제 우리나라 기업들도 서비스나 품질의 가치사슬에서 구매 기능을 제일 앞쪽에 위치시키고, 구매 조직을 중심으로 전사적인 체질 개선을 끊임없이 추진해야 한다.
 
우리 기업들이 구매 혁신에 눈을 뜨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는데 이 글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
 
필자는 서울대 사범대와 서강대 경영학과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1991년 액센츄어코리아에 입사한 뒤 지금까지 글로벌 전자 업체를 대상으로 컨설팅 업무를 담당해 왔다. 현재 구매, R&D, 생산, 물류 등을 포괄하는 공급사슬 전반에 대한 컨설팅 책임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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