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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s go CVC: 네이버 ‘D2SF’

투자 심의 거치지 않는 빠른 의사결정으로
성장 가치 높은 ‘아웃라이어’에도 투자

김윤진 | 353호 (2022년 9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네이버의 스타트업 투자를 담당하고 있는 ‘D2SF(D2 스타트업 팩토리)’는 재무적 회수보다는 오로지 네이버와의 전략적 시너지를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타 CVC와 다르다. D2SF는 초기 기술 스타트업들을 발굴한 뒤 이들과 협력할 수 있는 네이버 내 사업부를 찾아서 연결하는 네트워크의 ‘허브’ 역할을 자처한다. 그리고 포트폴리오의 절반은 당장의 시너지가 분명한 인라이어(Inlier), 절반은 당장은 연결고리가 없지만 기술적 가치가 큰 아웃라이어(Outlier) 기업에 투자함으로써 네이버의 차세대 성장 동력을 달아줄 기술 생태계를 양성한다. 수십 개 현업 부서와 한 달에 한 번씩 정기, 비정기 미팅을 수시로 가짐으로써 네이버 내 기술, 시장 전문가들에 심사를 아웃소싱하되 최종 투자에 있어서는 전권을 쥐고 빠른 의사결정, 간소화된 프로세스라는 작은 조직의 이점을 극대화하고 있다.



“클로바, 파파고부터 제페토에 이르기까지 네이버 안의 50개 정도 팀과 현재 협력하고 있습니다.” (박민우 크라우드웍스 CEO)

AI 학습용 데이터 수집•가공 플랫폼 스타트업 ‘크라우드웍스’의 성장은 네이버 AI 기술의 성장과 그 궤도를 같이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기도 분당에 있는 네이버 제2 사옥의 스타트업 전용 공간에서 만난 크라우드웍스의 창업자 박민우 CEO는 “네이버의 스타트업 투자 조직인 ‘D2SF(D2 스타트업 팩토리)’가 처음 물고를 트고 네이버의 AI 플랫폼 클로바를 비롯한 사내 여러 조직과 다리를 놔준 덕분에 네이버 안에서 데이터가 필요한 사실상 모든 영역에 크라우드웍스가 관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크라우드웍스는 2017년 7월, 회사 설립 3개월 만에 네이버의 CVC(기업 주도형 벤처캐피털)인 D2SF로부터 초기 투자를 유치한 뒤 2018년 시리즈A, 2019년 시리즈B, 2021년 프리 IPO 후속 투자를 유치하고 내년 코스닥 상장을 앞두고 있을 정도로 초고속 성장을 구가했다. 이제는 코스피 시총 상위 30개 IT 기업의 70%를 고객사로 확보한 회사로 컸다. 하지만 여전히 크라우드웍스는 네이버의 50여 개 팀과 협업하고 있을 정도로 양사는 불가분의 공생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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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과 네이버를 잇는
‘시너지 매핑(Synergy Mapping)’

2015년 출범 때부터 D2SF를 이끌고 있는 양상환 리더가 크라우드웍스의 박민우 CEO와 처음 만난 순간부터 투자를 확정하기까지 전체 프로세스에는 보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이렇게 빠른 의사결정이 가능했던 까닭은 D2SF의 수장인 양 리더가 네이버 조직 내부의 페인 포인트(pain point)를 정확히 알고 있었고, 크라우드웍스가 제안한 비즈니스에서 이를 해소해줄 열쇠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당시 네이버의 큰 골칫거리는 몸값 비싼 사내 AI 엔지니어들이 모델링을 하거나 리서치를 할 귀한 시간의 60% 이상을 AI 학습용 데이터를 라벨링(labelling)1 하는 데 할애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즉, 사진 속 사물이 고양이인지, 개인지 변별하는 것과 같은 단순노동에 고급 인력의 시간 대부분이 투입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크라우드 소싱(crowd sourcing)을 기반으로 대규모 인력 풀을 동원해 데이터를 수집, 가공하겠다는 크라우드웍스의 사업 모델은 대단히 획기적이었다. 이를 접하는 순간 양 리더는 이 스타트업이 네이버 AI 데이터 전처리에 드는 막대한 시간과 비용을 단축해줄 해법이 될 것이란 가능성을 포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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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D2SF는 크라우드웍스와의 1차 미팅 직후 일주일 만에 네이버 AI 기술 연구조직을 이끄는 하정우 네이버 AI연구소장과 3자 대면을 주선했고, 이 2차 미팅 직후 자금을 집행했다. 그리고 투자와 동시에 전사 인프라를 동원해 크라우드웍스 초기 서비스 구축을 전방위적으로 도왔다. 네이버의 엔지니어들과 UX, UI 디자이너들이 달라붙어 로고부터 제품 및 서비스 개발까지 지원한 것이다. 그렇게 완성된 크라우드웍스의 플랫폼은 수천만 건의 데이터 제공은 물론 사람의 손이 필요한 모든 노동집약적 업무를 뒷받침하며 네이버 AI 기술 고도화의 마중물이 됐다. 지난 3년간 파파고 번역 서비스에 필요한 한국어 등 12개 언어 데이터 수집 및 가공을 모두 담당했으며 제페토에서 사용자들이 만들어 등록하는 아이템들의 저작권 침해 여부 검수도 대행했다. 양 리더는 “크라우드웍스가 없었다면 네이버 AI의 기반을 쌓아 올리는 데 시간이 엄청나게 걸리거나 지금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오늘날의 클로바나 파파고의 성능을 크라우드웍스가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이 같은 네이버와 크라우드웍스의 협력은 초기 기술 스타트업과의 시너지 창출을 목표로 ‘전략적 투자’만을 목적으로 하는 D2SF의 방향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D2SF가 다른 CVC들과 가장 차별화되는 점은 스타트업이 어느 정도 성장하면 이익을 회수하는 ‘재무적 투자’에 눈을 돌리지 않고, 오로지 네이버와의 사업 연관성을 찾아 양사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만 집중한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 D2SF는 한 스타트업과 네이버 내 여러 조직을 연결하든, 네이버 조직 하나와 여러 스타트업을 연결하든 거미줄처럼 촘촘한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해가고 있다. 전략적 협력을 매개하는 이들의 역할은 한마디로 ‘시너지 매핑(Synergy Mapping)’이다. 그 결과 D2SF는 2015년부터 현재까지 약 7년간 스타트업 총 1335곳과 네이버 조직 사이에 다리를 놓았으며 이 중 약 163곳이 실제 시너지를 냈거나 현재 만들어가는 중이다. 투자 스타트업 99곳만 놓고 보면 이 중 약 67%가 네이버와 시너지를 냈다.

이렇게 실제 투자를 단행한 스타트업보다 사내 조직과 연결한 스타트업 숫자가 훨씬 많은 것에서도 투자 건수 자체를 목적으로 삼지 않고 핵심성과지표(KPI)에도 반영하지 않는 D2SF의 운영 철학을 엿볼 수 있다. 돈을 버는 게 목적이라면 다른 벤처캐피털(VC)이 운용하는 펀드에 출자를 하면 되지 직접 투자를 할 필요가 없다는 설명이다. 이렇듯 D2SF의 투자란 네이버의 신성장 동력을 찾고 시너지를 극대화하기 위해 잠재적 기술 스타트업의 텃밭, 즉 기술 생태계를 키우는 수단에 불과하다.

작은 조직의 ‘린(Lean)’한 의사결정과 프로세스

D2SF가 국내외 유수의 CVC들과 달리 별도 법인으로 독립하지 않고 사내의 작은 조직으로 활동하는 까닭도 재무적 이익보다 전략적 시너지가 목적인 것과 관련이 깊다. 사업부 가까이에서 수시로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사내에 필요한 기술을 탐색하고 적재적소에 파트너와의 만남을 주선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스타트업 투자 및 협력의 생명이 ‘속도’에 있는 만큼 린(lean)한 의사결정과 프로세스라는 작은 조직의 이점을 극대화하려는 목적도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렇게 작은 조직에 머물러 있는 D2SF가 매년 1000여 개 이상의 기술 스타트업의 투자를 검토하면서 옥석을 가리는 동시에 이들을 네이버 전사와 잇는 시너지 매핑까지 수행할 수 있는 걸까?

실제로 D2SF의 심사역은 단 4명뿐이다. 그마저도 양상환 리더를 포함한 2명은 기술 전공자가 아니며 코딩조차 해본 적 없는 문과 출신이다. 첨단 기술을 가진 스타트업들을 평가하고 발굴하는 데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의외의 인적 구성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D2SF는 스타트업의 전반적인 측면을 빠르게 스크리닝(screening)한 뒤 기술 전문성이 필요한 심사는 네이버 내부 인력에 ‘아웃소싱’함으로써 이런 공백을 메우고 있다. 더 깊이 있는 기술적 판단이 요구될 때는 네이버 각 사업부의 전문가들을 즉각적으로 호출해 자문을 구하는 식이다.

세부적인 의사결정 프로세스는 다음과 같다. 먼저, 스타트업과의 첫 미팅에서는 D2SF 심사역이 1차적으로 기업과 안면을 트고 사업의 성장성과 중장기 시너지 측면에서 더 깊이 살펴볼 가치가 있는 기업을 솎아낸다. 다음으로, 두 번째 미팅에서는 사내 유관 기술 조직과 함께 어느 정도 경쟁력이 있는 기술인지, 네이버가 보유한 기술과 유사하거나 이해 상충은 없는지 등을 검토한다. 양 리더는 “첫 번째 미팅 이후 두 번째 미팅을 얼마나 빠르게 잡는지가 의사결정의 속도를 결정한다”면서 “세 번째 미팅까지 가지 않고 현업 부서와 논의 직후 일주일, 길어도 보름 안에 최종 결정을 내리는 편”이라고 말했다. D2SF 팀 전원이 주 3회씩 진행하는 회의에서 이런 결과를 공유하고, 끈질긴 질의응답과 이의 제기를 통해 합의점에 도달하면 곧장 투자가 집행된다.

바쁜 현업 부서 리더들의 일정을 쪼개어 만나고 신속하게 의견을 청취하는 ‘허브’ 역할을 수행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는 ‘사내 커뮤니케이션’이다. 네이버 출신이 아닌 심사역을 쉽사리 채용하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D2SF는 기술, 사업 조직과의 긴밀한 끈을 유지하기 위해 네이버 내 약 10개 조직의 임원 또는 실무 리더들과 매월 1회씩 정례 미팅을 가지고, 20개 이상의 조직과는 간헐적으로 미팅하면서 외부에서 접하는 스타트업에 대한 소식을 수시로 업데이트한다. 엄격한 보고 형식을 갖추거나 자료를 만드는 게 아니라 간단히 구두로 기술이나 시장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는 식이다. 최근 만났거나 투자한 스타트업들의 주요 성과와 최신 스타트업 트렌드를 담아 사내 임원 및 리더들에게 정기 뉴스레터를 보내 새로운 협업 수요를 발굴하기도 한다. 이 과정을 통해 D2SF는 각 사업부가 어떤 기술 스타트업을 물색하고 있고, 어떤 페인 포인트를 호소하는지, 현재 검토 중인 스타트업에 대한 시각은 어떤지 자문을 구할 수 있다.

반대로, D2SF가 역으로 사업부를 설득하는 경우도 있다. 현업에서 요구가 없더라도 “이런 기술을 가진 스타트업을 봤는데 이 시장이 커질 것 같고, 심상치 않은 신호가 나오고 있으니 협력해보는 것은 어때”와 같은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전달한다. 이런 커뮤니케이션을 거치면서 각 사업부는 미처 몰랐던 새로운 기술 및 시장 동향에 대해 배우는 동시에 열린 자세로 외부와의 협력 가능성을 타진해 볼 수 있다.

단, 최종 투자 의사결정의 전권은 D2SF가 가진다. 커뮤니케이션은 충분히 하되 최소한 투자 집행에 있어서는 D2SF가 모든 권한과 책임을 쥔다는 의미다. 경영진을 포함한 네이버 내 리더와 구성원들에게는 투자 검토 단계부터 사전 공유를 통해 충분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투자 이후에는 투자 사실과 향후 시너지 방향에 대해 공유한다. 사전사후 공유를 통한 공감대가 있기 때문에 투자심의위원회를 열지도, 표결을 거치지도 않는다. 모두 빠른 의사결정 및 간소화된 프로세스의 이점을 살리기 위한 장치다. 양 리더는 “전사적 협의체나 자문기구 형태로도 운영해 봤지만 3개월 만에 작동하지 않음을 깨닫고 없앴다”면서 “사공이 지나치게 많으면 결정은 못하고 시간만 소모된다”고 말했다. 심사에 필요한 기술 전문성은 아웃소싱을 통해 조달하더라도 투자에 대한 전권은 D2SF에 위임하는 게 가장 효율적이라는 전사적 공감대가 있다는 설명이다.

끝으로, 단순 투자를 넘어 인수합병(M&A)까지 할 만한 좋은 스타트업을 발견하는 경우에는 해당 시장 및 기술 조직에 결정 권한을 넘기지만 이렇게 궁합이 잘 맞는 사업부를 찾아 적극적으로 M&A의 필요성을 설득하는 것까지도 D2SF의 몫이다. 2017년 네이버 클로바가 인수한 대화엔진 설계 기업 ‘컴패니AI’, 2019년 네이버웹툰이 인수한 동영상 인식 인공지능 ‘비닷두(V.DO)’, 2020년 스노우가 인수한 음악 추천 AI ‘버즈뮤직’ 등이 모두 D2SF가 발굴해 M&A의 초석을 마련한 경우에 해당한다.

전략적 투자자만이 줄 수 있는 가치 제안

이처럼 전략적 투자자로서 D2SF는 ‘네이버만이 줄 수 있는 가치 제안’에 집중한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다시 말해, 다른 재무적 투자자들이 더 잘할 법한 일, 즉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거나 타깃 시장을 찾아 피벗(pivot)을 해주는 등의 정형화된 액셀러레이팅 서비스를 제공하지는 않는다. 네이버가 가지고 있는 고유하고 희소한 인적 및 물적 자원, 기술 및 경험에의 접근을 보장하고, 네이버 안에서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과 만나 사업 방향을 논의하거나 네이버와의 협력 레퍼런스를 지렛대로 삼을 수 있도록 기회를 열어줄 뿐이다. 사업 개발에 대한 통찰이 필요하면 그에 해박한 내부 전문가를 연결해주는 식이다. 마찬가지로 해외 진출이 필요하면 네이버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동원해주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네이버가 큰 플랫폼 기업인 만큼 스타트업이 가진 기술을 적용해 볼 수 있는 테스트베드는 널려 있다는 게 D2SF의 설명이다. 양 리더는 “스타트업들에도 항상 네이버 내 리더들을 만나면 단순히 회사를 소개하는 데 그치지 말고 네이버가 그 기술과 시장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적극적으로 질문하라고 주문한다”면서 “큰 시장을 상대로 비즈니스를 해본 사람들에게 질문하고 공부하다 보면 자생력을 기르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D2SF는 스타트업들이 네이버가 무엇을 줄 수 있는지 정확히 예측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정기적으로 뉴스레터를 보내는 등의 정보 제공 활동도 수행하고 있다.

한편 스타트업들이 전략적 투자자를 만날 때 가장 경계하는 기술 약탈 등에 대한 염려나 선입견을 불식하는 것도 CVC가 해야 할 역할이다. 이에 D2SF는 사내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어떤 스타트업의 기술이나 사업 모델이 네이버와 경쟁 관계에 있다는 신호가 포착되면 2차 미팅까지 가기 전에 모든 절차를 중단하고, 관련 자료를 폐기하고, 해당 스타트업에 정확한 상황을 고지한다는 원칙을 따르고 있다. 창업자들에게 “네이버에서 비슷한 사업을 하고 있는 것이 감지되니 투자나 협력을 더 진전하지 않고 무효화하겠다”는 점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하는 식이다. 만약 이해 상충을 솔직히 알리지 않으면 나중에 네이버 제품 및 서비스가 출시됐을 때 뒤통수를 쳤거나 기술을 빼앗겼다는 오해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투명성이 핵심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D2SF 출범 초기만 해도 스타트업들이 심사 전 NDA(비밀 유지 각서) 체결을 요청하는 등 네이버와의 협력이나 투자 유치에 두려움을 내비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하지만 투명성과 관련해 긍정적인 평판을 쌓은 덕에 이렇게 요구하는 경우를 찾아볼 수가 없게 됐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양 리더는 “이런 정책이 있었기에 지난 7년간 D2SF와 스타트업 간에 큰 잡음을 일으키지 않고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신뢰를 쌓을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아웃라이어(Outlier)’ 투자를 통한 신시장 탐색

D2SF가 투자한 포트폴리오들의 특징은 몇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모두가 기술 스타트업이다. ‘사람을 보는 투자’보다는 ‘기술을 보는 투자’에 가깝다. 양 리더는 “한두 번 미팅을 했다고 사람을 다 알 수는 없다. 창업자가 사업에 얼마나 몰입하고, 팀 빌딩을 할 역량이 있는지 등을 간파하기도 어렵다”면서 “초기 투자의 성공은 불확실성을 얼마나 잘 헤징(hedging, 회피)하는지에 달려 있기 때문에 불확실성이 가장 큰 사람을 판단의 지표로 삼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네이버가 기술에 대한 이해가 높은 회사인 만큼 기술만 보고 투자 결정을 내리는 게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는 게 D2SF의 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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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포트폴리오사 대부분이 인프라 기술, 특허를 기반으로 시장 적응력이 높은 기업들이다 보니 최근 고금리 환경에서 경기가 위축되고 성장 기업들이 저평가를 받고 있음에도 2022년 8월31일 기준 D2SF의 투자 팀 99곳의 기업 가치는 3조4000억 원에 이른다. 1년 만에 1조 7000억 원에서 2배가량 뛰었을 정도로 외부 시장의 수요나 트렌드의 영향을 받지 않는 단단한 하방 경직성을 보여주고 있다. 포트폴리오사의 후속 투자 유치 금액도 7200억 원으로 1년 전 3600억 원의 2배이며, 이들의 생존율은 98%에 달한다.

둘째, D2SF는 기술 기업 중에서도 시리즈A까지의 ‘초기’ 스타트업에만 투자를 한다. 전략적 투자자로서 네이버와 스타트업의 사업 방향 및 목표를 하나로 일치시키고 정렬(alignment)하려면 복잡하게 얽힌 이해관계를 조율해야 하는데 초기 기업일수록 그 과정이 수월하기 때문이다. 이미 네이버 안에도 유관 부서와 이해관계자들이 너무 많은데 스타트업마저 규모가 비대하면 갈등 조정에 너무 많은 시간과 비용이 투입되고 협력 속도가 저하될 위험이 있다. 이에 실제로 투자 기업의 65%는 네이버가 첫 번째 시드 투자자로 참여한 극초기 스타트업들이다.

셋째, 당장 사업 연관성이 높고 협력 가능성이 보이는 ‘인라이어(Inlier)’ 기업과 당장은 연관이 없지만 기술적 가치가 높은 ‘아웃라이어(Outlier)’ 기업에 대한 투자 비중이 반반이다. 주력 투자 산업군만 봐도 AI, 커머스 등 2개는 당장 네이버 클로바, 네이버 쇼핑 등 기존 사업과 직결되지만 헬스케어, 블록체인, 메타버스 등 3개는 기존 사업과의 연결고리가 약한 편이다. 이는 다시 말하면 네이버가 매년 스타트업 투자 포트폴리오의 55∼60%를 단기적인 시너지가 예상되지 않는 기업으로 채우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아웃라이어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인라이어로서 구체적인 시너지가 발생하는 사례들을 많이 목격하면서 포트폴리오에서 아웃라이어가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는 게 D2SF의 설명이다. 실제로 지난 7년간의 D2SF가 투자한 99개사를 검토해보면 투자 시점에는 이들 기업의 약 45%와만 협력이 성사될 것으로 점쳤지만 결과적으로는 약 67%와 협력이 성사됐다.

유전체 분석 스타트업 ‘아이크로진’은 투자 시점에 상상도 못했던 시너지가 창출된 대표 사례 중 하나다. 처음 D2SF가 아이크로진에 투자하던 2018년에만 해도 네이버에 디지털 헬스케어 사업부가 존재하지도 않았고 기존 비즈니스와 유전체 분석 간 어떤 접점도 찾을 수 없었다. 인간의 건강 정보의 핵심적인 부분을 유전체가 차지하고 있는 만큼 기술적 가치가 높고, “언젠가는 네이버와의 연결고리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가능성이 투자로 연결된 경우였다. 하지만 그 ‘언젠가’는 생각보다 빠르게 찾아왔다. 아이크로진은 네이버 클라우드와 함께 유전체 분석을 위한 통합 플랫폼을 클라우드 환경에서 제공하고 있으며 국내를 넘어 태국 등 해외 진출까지 공동으로 꾀하고 있어 더 큰 시너지가 생길 여지도 무궁무진하게 생겨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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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아웃라이어 투자가 중요한 까닭은 미래를 함부로 재단하거나 예측하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양 리더는 “당장 눈앞에 보이고 기업에 필요한 기술만 찾아서 계약을 맺고 보급하는 데 그친다면 이는 아웃소싱 업무와 다를 바 없다”면서 “전략적 투자는 앞으로 가야 할 길의 디딤돌을 쌓아 올리는 작업이기 때문에 당장 눈에 보이는 시너지가 없더라도 더 멀리 바라보려 한다”고 말했다. 새로운 기술과 시장의 기회를 가볍게 두들겨본다는 마음가짐으로 ‘가보지 않은 길’에 과감히 발을 내딛는 게 아웃라이어 투자의 목적이다.

커뮤니티 기능과 기술 기업 생태계 활성화

강남 스타트업 전용 공간에 이어 올해 분당 신사옥에도 스타트업 전용 공간을 마련한 D2SF는 물리적 공간의 점유를 통해 팬데믹으로 위축된 커뮤니티의 불씨를 되살리고 스타트업과 스타트업 간, 스타트업과 네이버 임직원 간의 만남을 활성화하기 위한 시동을 걸고 있다. 그동안 3만7630명 이상의 스타트업 관계자가 D2SF가 제공하는 공간을 거쳐 가긴 했지만 팬데믹 이후 만남이 끊긴 바 있다. 이에 D2SF는 스타트업의 신사옥 입주를 계기로 이들이 네이버와 자극을 주고받고 조직 안에 더 깊이 침투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계획이다. 공간의 콘셉트도 ‘협력(Collaboration)’과 ‘실험실(Laboratory)’을 결합한 ‘컬래버레터리(Collaboratory)’다.

이처럼 신사옥에서는 입주 스타트업에 공간을 무상으로 임대하고 삼시세끼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강남에서와 마찬가지로 네이버 클라우드, 모바일 테스트존 등을 활용할 수 있도록 각종 혜택도 제공한다. 가령, 크라우드웍스 역시 2017년 강남 사옥 입주 시절 클라우드 인프라를 수억 원어치 사용하면서 성장의 기반을 닦고 크라우드 소싱 플랫폼으로서 록인(lock-in) 효과를 톡톡히 거둔 바 있다. 박민우 CEO는 “당시에는 그런 네이버의 클라우드 인프라의 효용과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 잘 가늠할 수 없었는데 월 수천만 원 상당의 클라우드 비용을 직접 지불하고 나서야 비로소 얼마나 큰 지원을 받아왔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면서 “이제는 네이버 클라우드에 비용을 꼬박꼬박 지불하며 되갚고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물리적 공간을 운영함으로써 D2SF가 기대하는 순기능은 바로 기술 생태계와 커뮤니티의 부활이다. 실제로 약 2년 전 D2SF가 네이버 공간에 1년 이상 입주했던 스타트업과 그렇지 않은 스타트업 간의 성장 속도를 비공식적으로 비교한 결과, 입주 기업의 성장률이 비입주 기업의 약 6∼10배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표본이 60개 정도에 불과하지만 같은 기간 성장 속도가 몇 배일 정도로 유의한 격차가 발견된 것이다. 이는 스타트업과 스타트업 간, 스타트업과 네이버 간 대면 만남을 통해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협력의 기회를 모색하는 게 성장의 기폭제가 될 수 있다는 시사점을 준다. 양상환 리더는 “좋은 개발자 풀을 확보하고 기술 기업 생태계를 풍성하게 만들어야 네이버도 지속적으로 성장 동력을 달 수 있다”면서 “큰 기업의 성장이 정체되는 것을 막지는 못하더라도 최대한 그 과정이 더디게 진행될 수 있도록 하는 게 우리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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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2SF는 학생 창업 생태계를 활성화하고 학생 창업자와 관계를 맺는 데도 전력을 다하고 있다. 직접 학교들을 찾아다니면서 숨어 있는 예비 창업팀을 발굴해 투자하기도 한다. 가령, 현재 네이버와 긴밀하게 협업하고 있는 국내 유일의 자율주행 시뮬레이터 스타트업 ‘모라이’ 역시 카이스트 출장 당시 발굴한 학생 창업팀이다. 이처럼 국내에 기반이 약한 기술 창업의 토양을 닦고, 좋은 개발자들이 생각의 씨앗을 발아할 수 있는 커뮤니티 조성이야말로 D2SF의 주된 목표 중 하나다. 양 리더는 “전략적 투자를 통해, 그리고 기술 네트워크를 통해 회사의 성장에 도움을 주고 네이버 안의 다양한 사업, 기술 조직들이 임팩트를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게 우리의 사명”이라고 강조했다.


김윤진 기자 truth3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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