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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1. 워케이션, 일하고 싶은 기업을 만드는 비밀

“창의적 업무 가능” “힐링 효과로 역동성 높아져”
워케이션이라 쓰고 혁신이라 읽는다

김경필 | 350호 (2022년 08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워케이션이 MZ세대 인재 확보를 위한 필수적인 복지 혜택으로 떠오르고 있다. 워케이션을 통해 기업은 직원들의 긍정적인 태도와 창의적인 성과를 이끌고, 개인은 일과 삶의 균형을 찾고, 지역사회는 경제가 활성화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해외와 달리 한국은 아직 도입 초기이지만 ‘기업 주도 관광지 연계형’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으며 앞으로 ‘기업 주도 지역 연계형’으로 발전해 나갈 전망이다. 워케이션을 성공적으로 도입하기 위해서 기업은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작게 시작하고 업무 원칙과 목표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또한 관리자의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태도가 워케이션의 성패를 결정할 것이다.



요즘 MZ세대가 선호하는 빅테크 기업이나 스타트업의 채용 공고를 보면 재택근무뿐 아니라 워케이션이 차별화된 복지 제도나 근무 환경으로 소개되기 시작했다. 인재 확보는 4차 산업혁명처럼 빠르게 변화하는 경영 환경에 대비하는 시작점이다. 기업의 관리자들은 MZ세대 인재들이 재택근무를 최고의 근무 형태로 여긴다는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됐다. 팬데믹 이후 재택근무 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현대모비스는 지난 2021년 사내 인트라넷을 통해 재택근무 도입 1주년 기념 설문 조사를 진행했는데 여느 설문 조사보다 많은 인원인 1087명이 참여했다. 직원들은 재택근무의 업무 효율성이 기존 근무 방식보다 높은 이유로 첫째, 출퇴근하며 오가는 시간과 지출이 줄어서, 둘째, 방해 없이 일에만 집중할 수 있어서, 셋째, 불필요한 회의나 외부 미팅이 줄어서, 넷째, 갑자기 주어지는 업무 지시가 줄어서 등을 꼽았다.

MZ세대가 누구인가? 대학내일이 발간한 ‘밀레니얼-Z세대 트렌드 2022’에 의하면 이들은 자신의 선택에 따라 주변을 통제하고 자신만의 성과를 내는 데 익숙하다. 수업도, 야자(야간 자율 학습)도, 급식의 우유 맛까지도 외부의 통제나 지시가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며 성장했다. 이런 성향의 MZ세대가 외부의 통제나 지시가 아니라 자신의 집에서 자신의 선택과 통제하에서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재택근무를 선호하는 것은 당연하다. 분리된 공간에서 자신의 계획하에 필요한 대화를 통해 비대면으로 빠르게 진행하는 재택근무는 생산적일 뿐만 아니라 번거로운 출퇴근 시간도 절약할 수 있다. 이런 재택근무에 대한 선호도는 반대로 현재의 사무실 근무 환경은 불필요한 회의가 많고 관리자의 통제가 과도해 업무 효율을 낮춘다는 이들의 인식을 반증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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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케이션의 기대 효과

1.기업: 긍정적 태도와 창의적 성과

워케이션에 관심을 가지면서도 효용성에 대해서는 의문을 갖는 대기업 임원들의 질문을 받을 때마다 필자는 ‘몽블랑(Montblanc) 펜’을 떠올린다. 개인이나 법인에 금융 자문을 하고 관련 상품을 판매하는 재무 컨설턴트가 40만 원이 넘는 몽블랑 펜을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더 많은 계약을 성사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고객은 몽블랑으로 쓴 글씨가 아니라 몽블랑을 쓸 정도의 성공한 컨설턴트를 신뢰한다. 그래서 몽블랑 펜은 재무 컨설턴트의 필수품이 됐다. 즉, 몽블랑 펜은 단순히 정해진 일의 효율을 높이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장기적인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도구다.

워케이션도 마찬가지다. 워케이션은 일상적인 단순 업무를 더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필요한 제도가 아니다. 그보다는 기존 문제를 새로운 방식으로 해결하거나 창의적으로 할 때 도움이 될 수 있다. 워케이션을 도입하는 기업들은 이렇게 일하는 방식이 곧 기업의 장기적인 경쟁력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기대한다.

필자와 팀원들은 2021년 11월 제주에서 일주일간 워케이션을 체험했다. 제주 애월 인근에 공유오피스 시설을 갖춘 J리조트가 숙소였다. 시험적으로 진행하는 워케이션이었기에 일단은 팀 단위 워크숍을 계획하고 일정의 40%는 개인 업무를, 30%는 팀 단위 업무나 외부 비대면 회의를 진행하도록 했다. 또 나머지 30%는 내년도 사업 기획과 이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들을 논의하기로 했다. 시행 결과, 특히 사업 기획의 성과가 좋았다. 워케이션 3일 차에 개인 업무를 마치고 4일째 되는 날 제주 바다 앞 야외 카페에 모여 내년도 신규 사업에 대해 논의했는데 팀원들의 에너지는 서울 사무실에서와는 달리 제주 바다의 시원한 파도처럼 역동적이었다.

“목표는 더 상향해도 좋을 것 같아요. 대신 프로젝트에 대한 과도한 책임감이나 부담감을 낮출 방법을 찾아주세요!”

“신규 영역 개척을 위해 메타버스(metaverse)와 같은 낯선 프로젝트를 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한번 해보죠!”

동료들은 새로운 영역에 도전해보자는 필자의 의견에도 긍정적으로 화답했다. 이처럼 적극적이면서도 자유롭고 에너지가 넘치는 긍정적 분위기는 모든 팀장이 원하는 이상적인 회의 문화일 것이다. 많은 워케이션 경험자는 워케이션을 통해 일상적인 업무보다는 기존 사무실에서 해결하지 못한 신사업이나 신상품 기획, 다음 시즌 홍보 계획 등 창의적 업무를 할 때 효과적이었다고 증언한다. 답답한 사무실을 벗어나 자연이 어우러진 워케이션 공간의 환경은 긍정적이며 창의적인 에너지를 발산하며 해결하기 어려웠던 문제를 푸는 데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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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공간의 변화를 통해 창의적 업무 성과를 올리는 전략은 글로벌 경제를 이끄는 구글, 애플과 같은 실리콘밸리의 기업이 활용하는 전형적인 전략이다. 아마존, 구글의 공통점 중 하나는 모두 차고에서 시작됐다는 점이다. 창업 초기 변변한 책상이나 테이블도 없었지만 그들은 차고 안 당구대 위에서 일하고 먹고 자유롭게 이야기하면서 세상을 바꿀 창의적인 상품과 서비스를 만들었다. 작은 차고가 창의적 인재들의 자유로운 소통을 이끌었다. 그 후 스타트업에서 성공한 초창기 마이크로소프트와 휴렛패커드 같은 기업은 한때 직원의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 개인 방을 제공했으나 이제는 모든 벽을 허물고 다시 소통을 강조한다. 나아가 구글은 창의적인 인재의 영감을 불어넣기 위해 사무실을 테마파크나 놀이터처럼 꾸며 놓는다. 이런 사무실 공간의 변화는 국내 기업은 물론 전 세계 기업의 사무 공간 구성에 영향을 미쳤다.

차고에서 개인 룸, 다시 벽을 허문 소통의 공간을 넘어 놀이터 같은 공간으로 변화한 실리콘밸리의 사무 공간 전략은 팬데믹으로 인해 새로운 변화를 맞고 있다. 줌(Zoom)의 CEO 에릭 위안(Eric S. Yuan)은 2022년 1월, ‘근무 전환 서밋(Work transformation summit)’에서 “오늘날 ‘근무’는 더 이상 (오프라인) 장소 자체만을 뜻하지 않는다”면서 “근무 장소는 협업하는 공간으로 새롭게 정의될 것”이라고 말한다. 현재 실리콘밸리의 상당수 기업은 고정된 사무실이 아닌 개인이 선택한 최고의 장소에서 근무하게 함으로써 창의력을 극대화시키고 있다. 기업이 아닌 직원이 근무지를 선택하는 시대가 본격화된 것이다.

2. 근로자: 일과 삶의 균형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2019년을 기점으로 우리나라는 워라밸(work-life balance, 일과 삶의 균형) 사회로 변모하고 있다. 그동안 대한민국 국민은 일을 가정보다 우선시해 왔는데 2019년 일과 가정생활 중 중요도와 관련해 ‘둘 다 비슷(44.2%)’하다가 ‘일을 우선(42.1%)’한다는 지표보다 처음으로 높아졌다. 그리고 2021년에는 그 격차가 더욱 크게 벌어졌다. 2018년 OECD에 따르면 한국은 멕시코와 코스타리카 다음으로 일이 우선인 ‘늦게까지 일하는 사회’였다. 이처럼 업무 강도가 높은 대한민국에서 일과 삶의 균형을 어떻게 맞출 수 있을까? 워케이션이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근로자 개인은 물론 자녀 양육이 중요한 기혼 근로자들은 자녀와 함께 참여하는 워케이션을 통해 가족과의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 특히 업무를 끝내고 바로 휴가를 즐길 수 있다는 점과 퇴근 후 휴가지에서 개인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점이 큰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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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워케이션 참가자들을 인터뷰해보면 일에 지친 한국의 근로자들이 워케이션을 통해 기대하는 것은 의외로 소박하다. 이들은 노트북, 책상, 와이파이, 커피, 그리고 전경만 좋으면 어디든 일할 수 있다고 말하고 좋은 전망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다고 증언한다.

“좋은 뷰에 노트북만 있으면 어디에서든 일할 수 있어요! 워케이션에서 큰 것을 기대하는 게 아니에요. 단순히 자연경관만 좋아도 힐링이 된 것 같아요.”

-30대 초반 여성, 워케이션 경험자

따라서 기업은 워케이션 프로그램이라고 해서 너무 거창하거나 까다롭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쉽게 말해 노트북과 책상, 자연환경만 있더라도 일에 기울어진 근로자의 삶이 좀 더 균형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3. 기업과 지역사회: ESG의 실현

2021년 CJ ENM이 사내 최초의 ‘ESG 리포트’를 발간하면서 3개 중요 축으로 지구(planet), 사람(people), 비즈니스(business)를 설정하고 특히 사람, 인재 확보 차원에서 워케이션을 중요 전략으로 포함시킨 것이 눈에 띄었다. 2021년 CJ ENM은 시범적으로 제주도에 매월 10명씩을 보내면서 1인당 숙소비 200만 원을 지원했다. 그리고 업무 효율과 구성원 만족도에 대한 긍정적인 효과를 바탕으로 앞으로 더 많은 임직원에게 기회가 돌아가도록 제도를 점진적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CJ ENM은 ‘워케이션 ⇒ 즐겁게 일하는 문화 ⇒ ESG 달성 ⇒ 기업 경쟁력 강화’라는 가치 사슬을 통해 워케이션이 임직원들의 업무 환경을 개선함으로써 기업 경쟁력을 강화시키는 좋은 대안임을 이야기하고 있다.

나아가 기업의 워케이션 도입은 그 자체로 지역 경제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워케이션 참가자가 일주일에서 한 달 동안 머무는 동안 참가자들이 도심에서 지출했을 비용을 온전히 지역에서 사용하기 때문이다. 기업이 지역 경제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지자체와 기업의 니즈를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ESG 방안이라고 할 수 있다. 워케이션의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효과는 일본 등의 해외 사례를 통해 더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한국형 워케이션의 발전

1. 북미•유럽형 워케이션

유럽과 북미에서는 오래전부터 개인 휴가자나 디지털 노마드(digital nomad)를 중심으로 워케이션이 우리보다 먼저 중요한 업무 형태로 자리 잡았다. 유럽과 북미에서 워케이션이 먼저 활성화된 이유는 30일 또는 그 이상의 긴 휴가제도와 유연 근무제의 정착 때문이다. 시간적 여유와 업무 유연성이 큰 유럽과 북미 근로자들은 자국은 물론이고 해외에서 오랜 기간 휴가를 보낼 수 있다. 필요하면 휴가지에서 노트북과 인터넷을 통해 사무실로 복귀할 필요 없이 일을 진행할 수 있어 더욱 긴 시간 휴가를 즐기거나 휴가지에서 업무를 수행할 수 있었다. 이런 배경으로 유럽•북미형 워케이션은 기업의 필요보다는 개인이 더 길고 연속적인 휴가를 즐기기 위해 발전한 측면이 크다. 다른 한편, 창의적으로 일하는 환경이 중요한 디지털 노마드들은 아예 사무실을 세계 각지의 휴가지로 옮겨 일하면서 워케이션을 즐긴다. 이렇게 유럽•북미형 워케이션은 기업보다는 개인 또는 디지털 노마드와 같은 프리랜서의 주도로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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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유럽과 미국에서는 개인 단위의 디지털 노마드 및 프리랜서를 타깃으로 해 워케이션에 필요한 숙박, 업무 공간, 네트워킹 등의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회사들이 성업하고 있다. 미국, 중남미, 포르투갈에 기반을 둔 여행 회사 셀리나(Selina)는 부티크 호텔과 호스텔이 융합된 리빙 스페이스와 수준 높은 코워킹 스페이스를 제공해 워케이션 이용자들의 선호도가 높은 기업이다. 특히 대도시는 물론 자연환경이 좋은 해변과 산 등 고객의 취향에 맞는 지역에서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액티비티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셀리나의 고객은 개인의 자유로운 의사결정에 따라 장소를 정하고 일하거나 휴가를 즐긴다. 이와 더불어 셀리나는 ‘셀리나 기브스 백(Selina gives back)’이란 사회공헌 활동 프로그램도 제공하는데 이 프로그램을 통해 참가자들은 해변 청소 등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활동을 할 수 있다. 지역사회 봉사활동에 참여하는 고객에게 셀리나는 다른 셀리나 프로그램에서 사용할 수 있는 일종의 화폐, ‘로열티 토큰’을 제공해 보상한다. 이를 통해 참가자들이 해당 지역에서 일하고 휴가를 즐기는 것을 넘어 지역사회와 교류할 수 있도록 돕는다. 워케이션은 비교적 장기간 지역사회에 머무는 경험으로 짧은 기간 머무르는 관광이나 틀에 박힌 기업 연수 프로그램과 다르다는 점을 잘 활용한 프로그램이라고 볼 수 있다.

2. 일본형 워케이션

개인 주도로 성장한 서양형 워케이션과 달리 일본형 워케이션은 정부-지자체-기업-근로자 모두의 이해관계를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성장했다. 유럽과 북미의 근로 환경과는 달리 일본은 휴가 일수가 적고, 기업 문화가 보수적이고, 근로자들은 부여받은 휴가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할 정도로 업무 강도가 세다. 아울러 프리랜서와 같은 고용 형태도 유럽과 비교해보면 상대적으로 적다. 이런 환경에서 워라밸에 대한 사회적인 요청이 커지면서 일본 정부 차원에서 휴가 제도를 장려하기 시작했다. 또한 인구 소멸 문제가 심각한 지자체들이 적극적으로 나섰다. 특히 일본 나가노현은 개인 업무 공간과 회의실은 물론 3D 프린터 등 최신 시설을 갖춘 공유 오피스를 마련함으로써 기업 단위 고객이 자연에서 쉼을 얻는 동시에 완벽한 업무 환경에서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일본의 야노경제연구소는 2025년 일본의 워케이션 경제 규모가 2021년 대비 5배 성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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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예로 일본능률협회 매니지먼트센터(JMAM)가 정기적으로 10여 개의 지역에서 주최하고 있는 러닝 워케이션(Learning Workation) 프로그램은 ‘기업-근로자-지자체’가 협력해 워케이션을 통해 업무 추진과 역량 강화는 물론 지역 상생까지 실천한 대표적 케이스다. 일본능률협회는 수도권 기업의 차세대 리더 후보자 등을 대상으로 지역 과제를 함께 해결함으로써 학습하는 프로그램을 워케이션 형태로 개최했다. 다양한 지역 과제를 주제로 한 학습 프로그램이 있는데 한 예로 ‘벌레 먹은 목재를 어떻게 브랜딩할 수 있을까’도 있었다. 도움이 절실한 지역 임업 업계가 가진 문제를 지자체가 간파하고 워케이션 프로그램을 통해 도심의 기업들에 문제해결을 요청한 것이다. JMAM의 워케이션은 지역 문제에 친숙한 지자체가 기업의 ESG 니즈를 연결해 기업이 자연스럽게 사회 공헌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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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한국형 워케이션의 특징과 전망

북미, 유럽 기업들보다 휴가 기간이 짧은 우리나라 기업에서 한국형 워케이션은 일본처럼 기업-근로자-지자체-정부가 협력해 성장하는 방향으로 설정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워케이션이 기업의 인재 확보, 개인의 워라밸에 대한 욕구 충족, 지방 소멸의 효과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판단이다.

다른 한편, 한국은 현재 MZ세대 인재들의 재택근무에 대한 요구가 크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일본보다 훨씬 더 빨리 워케이션이 대중화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BTS와 오징어게임 등 한류를 통해 한국의 엔터테인먼트 기업이 글로벌 문화를 주도하고 있고, 반도체와 스마트폰은 물론 쿠팡, 배민, 토스와 같은 역동적인 혁신 기업들이 경제를 주도하는 한국은 창의적 젊은 인재에 대한 욕구가 일본보다 더 절실하다. 최근 MZ세대가 선호하는 재택근무와 워케이션 도입에 대한 기업의 의사결정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는 점도 이를 반영한다. 네이버와 카카오는 2022년 4월만 해도 재택근무에 대한 의사결정을 하지 못해 망설이다가 재택근무를 희망하는 강력한 사내 설문 조사에 놀라 7월에 전면 확대를 결정했다. 배달의민족 운영사인 우아한형제들은 한발 더 나아가 2023년부터 원격근무 장소뿐 아니라 시간에 대한 제한도 풀겠다고 밝혔다. 여행지는 물론 해외 체류도 가능한 진정한 의미의 워케이션이 가능한 환경을 선도적으로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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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초반만 하더라도 한국형 워케이션은 개인이나 프리랜서가 주도하는 개인 주도 관광지 연계형(B 유형)에 머물러 있었다. 일정이나 근무시간이 자유로운 프리랜서가 비대면 시대를 맞아 재택근무지를 벗어나 여행지에서 일하는 정도다. 다만 한국의 프리랜서 규모가 크지 않기에 워케이션이 활성화되기는 어려웠다. 그런데 일부 기업이 워케이션에 참여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2021년 새로운 근무 형태에 관심이 많은 스타트업이나 대기업이 도입한 워케이션은 기업 주도 관광지 연계형(C 유형)이다. C 유형이 기대되는 이유는 기업의 참여로 일정 규모의 수요가 확보되면 관광 업계와 지자체가 관심을 갖게 돼 미흡한 워케이션 인프라의 개선과 확충이 이뤄지고, 워케이션 인프라가 개선되면 더 많은 수요자가 참가하면서 워케이션의 공급과 수요가 지속적으로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화생명은 2021년 재빠르게 워케이션을 도입해 워케이션이 낯선 초기 관광 업계나 지자체까지 워케이션에 관심을 갖게 한 좋은 사례로 꼽힌다. 한화생명이 참여할 즈음 강원도가 본격적으로 워케이션에 관심을 갖게 됐고 관광 업계는 한화생명이나 강원도 워케이션 참가자를 위한 관광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한화생명은 대표적 서핑 휴가지인 강원도 양양에 있는 한화리조트 산하 브리드호텔에서 자사 직원 대상 ‘리모트워크 플레이스(RemoteWorkplace)’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직원들은 숙소, 간단한 음식 및 활동비를 지원받으며 워케이션을 즐길 수 있다. 자유로운 환경 속에서 자유롭게 근무한다는 워케이션의 본질에 초점을 맞춰 도서관형 카페, 옥상 정원, 요가 프로그램 등 다양한 콘텐츠 또한 적극적으로 제공했다. 한화생명은 서핑의 성지인 양양의 특성에 맞게 직원들이 서핑이나 요가와 같은 액티비티를 즐길 수 있도록 ‘9 to 6’에서 벗어나 유연한 근무시간을 적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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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극적으로 한국형 워케이션은 개인이 주도하는 B 유형에서 시작해 기업이 주도하는 C 유형이 먼저 도입되고 기업 주도 지역 연계형(D 유형)으로 발전할 것이다. 관광지에서 진행하는 C 유형의 장점은 관광지가 주는 호기심으로 참가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어 초기에 도입하기 유리하다. 현재 워케이션 장소로 유명 관광지인 제주도나 강원도가 각광을 받는 이유다. 다만 C 유형의 단점은 비용이 저렴하지 않고 일주일 이상 진행할 경우 일에 집중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다. 한 달 이상 워케이션을 진행할 경우, 합리적인 가격에 한적한 자연에서 진행할 수 있는 D 유형이 적합하다. 지역 연계형은 주민과의 교류가 자연스럽게 이뤄짐으로써 지역사회를 활성화하는 ESG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즉, D 유형은 장기 체류를 통해 기업-근로자-지자체가 함께 교류하며 성장할 수 있고 가장 이상적인 유형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은 아직 워케이션 도입 초기 단계에 있지만 D 유형의 워케이션 형태는 행정안전부가 지원하는 청년마을 사업에서 이미 경험할 수 있다. 전국에서 진행되는 청년마을 사업은 행안부가 지방 청년들의 유출을 방지할 뿐 아니라 도시 청년들의 지역 정착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2 그중 청년마을에서 제공하는 워케이션 프로그램은 ‘기업-근로자-지자체’가 교류하고 상생할 수 있는 좋은 예로 꼽힌다. 현재 충남 서천과 강원도 강릉, 경남 거제 등에서 경험할 수 있으며 와디즈에서 펀딩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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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예로 충북 서천군 한산면은 지역의 유휴 공간을 ‘한산 디지털 노마드 센터’라는 공유 오피스로 리뉴얼해 하드웨어를 지원하고 서천의 청년마을 청년들은 워케이션 프로그램3 을 개발해 운영한다. 그리고 기업은 근로자의 워케이션을 지원해 근로자가 창의적 업무 성과를 높일 뿐만 아니라 일과 삶의 균형을 찾을 수 있도록 한다.

무엇보다 독특한 점은 청년마을이 제공하는 지역 연계형 ESG 프로그램이다. 지역사회 서천 청년들이 마을 어른들과 교류하면서 자연스럽게 탄생한 지역사회 연계 프로그램이 지역사회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예를 들어, 도심에서 온 마을 청년 또는 워케이션 참가자가 주최하는 SNS나 컴퓨터 교육에 지역 어르신들의 관심이 많다. SNS 사용법이나 컴퓨터 기술이 도심에서는 누구나 아는 지식이지만 서천 마을의 어르신들에게는 배우고 싶은 지식이기에 마을에서 인기가 높다. 이렇게 서천 청년마을은 셀리나처럼 기업이 지역사회와 연계해 직원들이 사회 기여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ESG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아울러 서천에서는 1500년 된 양조 비법을 자랑하는 전통 소곡주 양조장과 함께 전통 명인이 운영하는 양조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참가자들은 전통적인 지역 문화를 체험함으로써 창의적 상품을 개발하거나 신사업 아이디어를 구상할 때 필요한 새로운 영감을 얻을 수 있다.

워케이션의 도입을 위한 제언

1.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시작하라.

당장 워케이션의 대규모 도입을 검토하기보다는 파일럿 프로그램을 운영해보고 그 성과를 평가해 점진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CJ ENM, 야놀자, 토스랩 잔디 등의 기업은 2021년 워케이션 파일럿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이를 통해 워케이션 도입 시 예상되는 문제점을 발견하거나 본격 시행에 앞서 제도를 정비하고 워케이션을 통한 업무 성과에 있어 목표 수립에 관한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할 수 있었다. 워케이션 제도나 규정 또는 지원 서비스를 완벽히 갖추고 시행하려고 하기보다는 파일럿 프로그램을 통해 점진적으로 보완해 나가는 것이 낯선 제도를 빠르게 정착시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미 재택근무를 시행하는 기업이라면 파일럿 프로그램을 어렵지 않게 준비할 수 있을 것이다. 워케이션 파일럿 프로그램은 도입 초기임을 고려해 일주일 정도가 좋다. 프로그램이 준비되면 대상자를 선발한다. 파일럿 프로그램의 대상자는 형평성을 고려해 선착순 신청을 받거나, 동기 부여나 사내 호기심 유발을 위해 포상형으로 진행해도 좋다. 포상형으로 진행 시 기대감이 높아져 워케이션에 대한 관심도가 빠르게 확산될 수 있다.

2. 업무 원칙을 구체적으로 정의한다.

워케이션 파일럿 프로그램을 운영할 때 무엇보다도 업무 원칙과 목표를 구체적으로 정의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선 휴가 중 일하는 것이 아니라 일하고 휴가를 즐기는 업무 형태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 취지가 좋은데 도입했을 때 업무 성과가 좋지 않으면 나쁜 인상을 심어줌으로써 본격 도입하는 데 지장을 줄 수도 있다. 파일럿 프로그램의 운영을 마치면 참가한 직원의 설문 조사를 거치며 보완점을 점검한 후 본격적으로 워케이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업무용 협업 툴 잔디(JANDI)를 제공하는 토스랩 잔디는 워케이션을 떠나기 전에 자신들만의 워케이션 원칙을 만들고 이를 잘 지켜 업무 성과는 물론 개인의 휴가도 만족스럽게 진행할 수 있도록 사전에 충분히 소통을 했다. 이들이 세운 10가지 원칙에는 안전은 물론이고 자유로우면서도 성과를 중시하는 스타트업 특유의 문화가 담겨 있다. 8시간이라는 업무 시간은 반드시 준수하되 업무 공간은 자유롭게 하고, 퇴근 후에는 개인 시간을 존중하는 업무 원칙은 낯선 장소에서 자칫 흐트러지기 쉬운 업무의 기준을 잡아준다. 아울러 업무 중 30%는 워케이션 특성에 맞게 창의적인 일에 집중했다. 비용 지출도 워케이션이라는 특수성에 맞게 점심은 팀 경비로 하고 저녁은 개인 지출로 해 낮 시간은 업무 시간이며 저녁 시간은 개인 시간임을 분명히 한 점이 눈에 띈다. 토스랩 잔디처럼 안전하고 자유로운 환경에서 업무를 하면서 책임감 있는 성과를 내고 개인의 휴식과 여행을 보장하는 워케이션 원칙을 만들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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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경영자의 태도가 워케이션의 성패를 좌우한다.

재택근무를 시행하는 기업이라면 워케이션은 준비된 것이나 다름없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워케이션은 사무실을 벗어나 집 대신 휴가지에서 근무하는 근무 형태일 뿐이다. 재택근무 인프라, 업무 및 보안 체계가 갖춰져 있다면 워케이션은 이미 절반은 성공한 것이다. 오히려 가장 큰 장애물은 경영자나 일부 관리자의 잘못된 시선이다.

관리자가 워케이션을 업무가 아니라 휴가로 인식하거나 비대면 업무 효율성에 대해 의문을 품는 등 원격 근무를 불신하면 팀원들이 알아서 워케이션 신청을 꺼릴 수 있다. 특히 승진을 앞둔 예비 승진자들은 관리자들이 워케이션을 그동안 공공연히 행해져 왔던 휴가성 연수나 교육으로 오해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에 신청을 포기하기도 한다. 이런 오해는 워케이션 주관 부서인 인사팀에서 노력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최고경영자는 물론 기업 관리자들과 일선의 팀장이 워케이션 도입에 먼저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태도를 보일 필요가 있다.


김경필 모라비앤코 글로벌본부장 value.pil@gmail.com
필자는 기업 전략 수립 컨설팅, 경영자 코칭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한양대 화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카네기멜런대에서 MBA 학위를 취득했다. 삼성증권, SK, 유니타스클래스를 거쳤다. 주요 저서로는 『워케이션』 『야생의 고객』 『쿨 마케팅』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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