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에서 배우는 경영

雷地豫: 단순-간결함이 세상을 바꾼다

331호 (2021년 10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주역의 64괘는 점괘의 실패 사례는 제외하고 성공 사례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만들어졌다. 그 덕분에 주역이 제시하는 의사결정의 방향성과 메시지는 정확성이 높은 동시에 단순하고 간결하다. 주역 64괘 가운데 뇌지예(雷地豫)괘는 혁신이 간결하고 단순한 형태로 시작된다는 가르침을 준다.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한 혁신적 기술과 아이디어 역시 복잡한 사고나 지식이 아닌 사물의 본질을 단번에 꿰뚫는 간결한 직관에서 비롯됐다. 이 같은 순간적인 깨달음을 얻기 위해선 창고에서 개발에 몰두한 실리콘밸리의 천재들처럼 삶을 단순히 만들고 내공을 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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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령’과 ‘점거’. 두 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두 단어가 주역에서 유래됐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 같다. 두 단어에는 뜻밖에도 ‘점칠 점(占)’을 쓴다. 점령은 占領으로, 점거는 占據로 쓴다. 연유가 뭘까?

기원전 3000년경 중국의 고대국가에서는 점이 유행했다. 점을 전문적으로 치는 점인(占人) 집단이 존재했다. 왕은 이들이 친 점의 의미를 최종적으로 해석할 권한을 갖는 판관이었다. 점의 종류에는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거북의 등 껍데기를 불로 지져서 치는 갑골점, 다른 하나는 산가지를 이용해서 치는 주역점이었다. 은나라(상나라) 때까지는 갑골점이 좀 더 유행했지만 주나라 이후부터는 주역점이 점의 정통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았다. 왕들은 이웃 국가를 상대로 전쟁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점을 쳤다. 점을 친 결과 점괘가 길한 것으로 나오면 전쟁을 수행해 이웃 국가의 영토를 점령하거나 점거해 직접 다스렸다. ‘점령’이나 ‘점거’에 점칠 점(占)을 쓴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법률적인 소유권을 가진다는 의미로 쓰이는 ‘점유’에 점칠 점(占)이 쓰인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점(占)자는 점 복(卜) 자 밑에 입 구(口) 자가 결합된 형태인데 이는 갑골점과 관련이 있다. 전쟁 과 같은 국가의 중대사가 있을 때 왕은 복수의 점인에게 점을 치게 했다. 점인들은 날카로운 칼을 이용해서 거북의 등 껍데기에 ‘일주일 후 A국을 상대로 전쟁을 하려 하는데 승산이 있겠는가?’ ‘내일 B국을 향해 군사를 출정시키려 하는데 괜찮겠는가?’와 같은 글귀를 먼저 새긴다. 그리고 불에 달군 막대기를 이용해 이 글귀를 지지는데 불에 지져진 거북의 등 껍데기는 열기(熱氣) 때문에 여러 방향으로 균열을 일으킨다. 점인들은 균열된 거북의 등 껍데기를 쟁반에 담아 왕에게 바치고, 왕은 글귀의 균열 상태를 보고 점괘의 길흉을 최종적으로 판단한다. 대체로 등 껍데기에 발생한 글귀의 균열 방향이 나란하고 규칙적이면 길한 것으로 보고, 지그재그 형태로 불규칙적이면 흉한 것으로 해석한다. 거북의 등 껍데기에 새긴 글귀가 균열한 방향과 형태(卜)로 갈라졌는지 보고 거기에 담긴 메시지를 입(口)으로 해석하는 것이 바로 점(占)의 유래다.

1936년 은나라 말기의 수도였던 안양(安陽) 샤오툰(小屯)의 은허(殷墟) 유적지에서 1만7000여 개의 갑골문이 무더기로 출토됐다. 이 자료들을 보면 거북의 등 껍데기에는 주문을 나타내는 글귀뿐만 아니라 그 결과까지도 기록돼 있다. 길하다는 점괘에 따라 수행한 전쟁이 실제로 이웃 국가의 점령으로 이어진 경우에는 ‘미션 석세스(mission success)’를 의미하는 글귀가 추가로 새겨져 있다. 그 반대의 경우에는 ‘미션 임파서블(mission impossible)’을 의미하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갑골문의 기록에는 전쟁뿐만 아니라 혼인이나 사냥, 낚시, 농사, 일기예보 등의 일상적인 삶과 관련된 데이터도 많다. 지금까지 출토된 갑골문의 수는 모두 15만여 개에 이른다. 즉, 고대국가의 왕들은 국가를 경영하는 과정에서 크고 작은 일에 모두 점괘를 활용했고 그 결과를 자료로 남겼다.

여기서 눈여겨볼 점은 실패한 결과가 적혀 있는 갑골문의 경우 그 수가 매우 적다는 사실이다. 이는 당시의 점인들이 용해 점을 잘 쳤기 때문이 아니라 실패한 사례들은 참고 자료로서 가치가 떨어져 데이터 아카이브에서 자연스럽게 탈락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점괘를 최종적으로 해석할 권한을 가진 왕의 입장에서 볼 때 이런 실패 사례들은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었으므로 의도적으로 삭제했을 수도 있다.

이처럼 실패한 기록은 삭제하고 성공한 사례들을 모아서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행위를 끊임없이 반복하다 보면 의사결정의 알고리즘이 단순화되고 간결해진다. 수천 년간의 빅데이터가 축적되면서 성공률은 100%에 근접하게 되는데 이런 과정을 거쳐서 탄생한 응축된 의사결정 알고리즘 맵(map)이 바로 주역의 64괘다. 주역 64괘의 괘사와 효사가 고도로 상징화된 메시지로 구성된 것도 이 때문이며 주역이 오늘날까지도 생명력을 유지하는 비결 역시 메시지의 단순함과 간결함에 있다. 주역의 괘사와 효사가 복잡하고 구체적인 문장으로 진술돼 있다면 어떨까. 천변만화하는 우주의 섭리와 사물의 원리를 완벽하게 다 담아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다면 주역 역시 어느 시점부터는 용도 폐기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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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혁신적인 기술도 단순함과 간결함에 그 생명이 있다. 애플을 창업한 스티브 잡스는 미니멀리즘을 디자인에 입혀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탄생시켰다. 구글 홈페이지에는 작은 검색 창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 나머지는 사막처럼 텅 비어 있다. 구글의 창업자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심플한 네모 박스 하나로 검색 시장을 석권했다. 구글은 단순함과 간결함을 앞세워 복잡한 전략을 구사했던 야후를 단숨에 제치고 실리콘밸리의 정상에 올랐다.

반짝이는 혁신 아이디어는 복잡한 사고나 지식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사물의 본질을 단숨에 통찰하는 간결한 직관력에서 비롯된다. 주역 64괘 가운데 뇌지예(雷地豫)괘는 이러한 원리를 잘 보여준다. 우레를 상징하는 진괘(☳)가 위에 놓이고 땅을 상징하는 곤괘(☷)가 아래에 놓이는 복합 괘로 땅 위에서 번개가 번쩍하고 치는 모양을 형상화했다. 번개는 ‘우르르 쾅’ 하는 천둥소리를 예고한다. 그래서 뇌지예괘의 괘사에는 ‘미리 예(豫)자’가 쓰인다. 번개는 기존의 관습적인 사고의 틀을 단숨에 격파하는 행위를 상징하고, 뒤따르는 천둥소리는 그에 따라오는 혁신적인 깨달음을 상징한다. 뇌지예괘가 보여주듯이 혁신은 번쩍하는 번개처럼 간결하고 단순한 형태로 시작된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이 같은 깨달음을 ‘습명(襲明)’이라고 표현한다. 앞에 쓰인 습(襲)자는 엄습할 습자다. 혁신은 머리를 싸매고 낑낑거릴 때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부지불식간에 번개처럼 훅하고 엄습해 온다. 인류의 역사를 바꾼 모든 혁신적인 깨달음은 습명이었다. 목욕탕에서 넘쳐흐르는 물을 보고 부력의 원리를 발견한 아르키메데스의 깨달음도 습명이었고, 머리 위에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중력의 원리를 발견한 뉴턴의 깨달음도 습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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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 배경에도 이런 습명의 운명적 깨달음이 있었다. 고등학교 동창인 빌 게이츠를 만나러 가던 폴 앨런은 우연히 하버드대 광장 가판대에서 ‘파퓰러 일렉트로닉스(Popular Electronics)’라는 잡지에 실린 알테어 컴퓨터 광고를 봤다. 알테어는 MITS라는 회사가 내놓은 컴퓨터로 인텔이 개발한 제3세대 마이크로프로세서 8080을 장착하고 있었다. 알테어는 당시 해커들이 즐겨 보던 TV 드라마인 ‘스타트렉(Star Trek)’에 나오는 미지의 땅 이름이었다. 메모리 용량은 고작 250바이트에 지나지 않았고 키보드나 모니터, 마우스도 없었다. 그러나 가격이 400달러로 비교적 저렴했기 때문에 해커들의 구미를 자극했다. 폴 앨런은 알테어 광고를 보는 순간 뇌리에 영감이 번개처럼 훅 하고 스쳤다. 그는 ‘유레카’를 외치면서 대학교 기숙사로 달려가서 빌 게이츠에게 알테어용 베이식 프로그램을 만들자고 제안한다. 폴 앨런의 제안은 빌 게이츠의 내면에서 잠자고 있던 IT에 대한 열정을 한순간에 일깨웠다. 빌 게이츠는 즉각 하버드대를 중퇴하고 폴 앨런과 함께 창업에 나선다. 이렇게 탄생한 기업이 바로 마이크로소프트다.

그러나 습명이 저절로 또는 공짜로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랜 세월 축적된 데이터가 주역이라는 단순하고 혁신적인 의사결정 맵을 탄생시켰듯이 무수히 많은 노력과 땀, 시행착오가 축적돼 실리콘밸리의 혁신을 탄생시켰다. 래리 페이지나 폴 앨런, 빌 게이츠와 같은 천재들은 고교 시절부터 컴퓨터를 붙들고 살았다. 밤을 새워 가며 컴퓨터 프로그램과 씨름했고, 그 과정에서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IT 분야의 내공을 길렀다. 간결한 직관의 힘, 혁신적인 아이디어, 번개 같은 깨달음은 축적된 내공과 기술력이 없이는 저절로 주어지지 않는다. 장자도 이렇게 말한다.

“물이 깊지 않으면 큰 배를 띄울 수 없다. 水之積也不厚 則 負大舟也無力(수지적야불후 즉 부대주야무력)”
- 장자 ‘소요유’ 편

혁신하고 싶으면 주역점을 치기 전에 먼저 내공을 기르고 기술력부터 키워야 한다. 주역은 운명을 바꾸는 방법을 일러주지만 운명 그 자체를 바꿔주지는 않는다. 내공을 기르고 기술력을 키워 운명을 바꾸기 위해서는 우선 주변의 삶을 간소하게 정리해야 한다.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것들을 다 하면서는 한 분야의 최고가 될 수는 없다. 한 우물을 깊이 파야 내공이 길러지고 직관력도 생긴다. 실리콘밸리의 천재들이 창고에서 창업을 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창고에서의 삶은 단순하다. 먹고 자는 시간을 빼면 오로지 기술 개발에만 몰두할 수 있다. 이런 단순함과 간결함의 힘이 애플과 구글,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혁신 기업들을 탄생시킨 것이다.


박영규 인문학자 chamnet21@hanmail.net
필자는 서울대 사회교육학과와 동 대학원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중앙대에서 정치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승강기대 총장과 한서대 대우 교수, 중부대 초빙 교수 등을 지냈다. 동서양의 고전을 현대적 감각과 트렌드에 맞게 재해석하는 일에 관심을 갖고 있다. 저서에 『다시, 논어』 『욕심이 차오를 때 노자를 만나다』 『존재의 제자리 찾기; 청춘을 위한 현상학 강의』 『그리스, 인문학의 옴파로스』 『주역으로 조선왕조실록을 읽다』 『실리콘밸리로 간 노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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