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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2. 부산의 명란 제조기업 ‘덕화푸드’

R&D, 크라우드펀딩, 브랜드 쇼룸…
라이프스타일로 확장된 ‘건강한’ 명란

배미정 | 281호 (2019년 9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100% 대일본 수출 기업이었던 부산의 명란 제조기업 덕화푸드가 지역성을 활용해 내수 시장 개척에 성공한 스토리를 분석한다.
1. 국내에서 유일하게 명란 단일 상품 제조에 전념, 명란의 고유한 역사성을 R&D에 반영해 한국식 제법을 복원했다.
2.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명란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바꾸는 데 성공, 단일 반찬에서 요리의 식재료,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로 덕화명란의 브랜드를 확장시켰다.
3. 과거의 흔적이 남아 있는 부산 동구 초량동에 만든 브랜드 쇼룸 ‘데어더하우스’를 통해 명란의 역사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지역과 상생하는 ‘네오(neo)미식’의 가치를 전파하고 있다.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배지윤(고려대 한문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부산 동구 초량동은 ‘풀밭의 길목(草梁)’이란 지명에 담긴 뜻처럼 오래전부터 바다와 내륙을 잇는 길목 역할을 했다. 굽이굽이 휘어진 산자락에 일본인들은 왜관을 세워 정착했고, 한국전쟁 시절 피난민들은 판자촌을 형성하면서 마을을 일궜다. 부산역을 중심으로 신도시가 조성된 부산항 일대와 달리 구봉산 자락은 현재도 작은 주택들이 빼곡히 자리잡으며 지난 세월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그 경사진 산복도로의 끄트머리, 어느 골목 깊숙한 곳에 덕화푸드의 명란 브랜드 쇼룸 ‘데어더하우스(therethehouse)’가 자리 잡고 있다.

언뜻 보면 여느 평범한 가정집처럼 보이는 ‘거기 그 집’에는 덕화푸드가 1993년 창업 이래 26년간 오로지 명란만 고집하면서 추구해온 음식에 대한 태도와 비전이 오롯이 담겨 있다. 벽돌 주택의 2층에 들어서면 낯익어 더 정겨운 거실과 부엌이 손님을 맞이한다. 방문객은 이곳에서 명란을 활용한 다채로운 레서피의 셀프쿠킹, 덕화푸드가 추구하는 국내산 친환경 식재료와 슬로푸드의 음식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 창업주인 장석준 선대 회장에 이어 2대째 덕화푸드를 이끌고 있는 장종수 대표는 2018년, 덕화푸드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브랜드 쇼룸을 만들 장소로 이곳, 초량을 택했다. 남포동이나 서면 같은 번화가가 아닌 초량을 쇼룸으로 선택한 이유는 이 지역이 부산과 더불어 부산의 대표 음식인 명란의 역사성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장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데어더하우스에는 초량이란 지역처럼 명란에 담긴 역사성을 계승, 발전시키겠다는 대표의 의지가 담겨 있다. 장종수 대표는 “명란 시장은 일본이 압도적으로 크지만 사실 명란의 원조는 일본이 아닌 한국이다. 일제 강점기 부산 초량 등지에 머물던 일본인이 일본에 돌아가 부산에서 먹던 명란을 재현해 만든 제법이 바로 일본의 유명한 ‘가라시멘타이코(매운 명란)’다. 현재 국내 명란도 대부분 ‘가라시멘타이코’ 제법에 기초해 제조되고 있는데 한국식 전통 제법을 계승해 발전시키는 것이 덕화푸드의 중요한 사명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부산에서 시작된 명란의 고유한 지역색과 역사성은 덕화푸드가 명란 단일 제품에만 올인하면서 지속적으로 비즈니스를 혁신하는 동력이 되고 있다. 덕화푸드는 명실상부한 국내 1위의 명란 제조업체다. 명란젓 단일 품목만 생산하는 곳은 국내에 몇 군데 없는데 덕화푸드가 가장 크다. 부산 토착 업체이지만 창업 초기부터 제품의 100%를 일본에 수출해 창업 초기부터 국내보다 일본에서 더 유명했다. 일본은 명란의 최대 소비국으로 규모가 한국의 9배에 달한다. 덕화푸드는 식약청의 해썹(HACCP, 식품위해요소중점관리기준) 인증을 받은 4%대 저염 명란을 최초로 개발해 일본 진출에 성공, 2004년 1000만 불 수출탑을 수상하는 등 한국 명란 회사로 유일하게 일본에서 인정받았다. 하지만 일본에서 인정받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탄탄한 수출 기업으로 커가던 중 아베노믹스의 타격을 받고 사세가 급격히 기울게 된다. 엔화 가치가 급락하고 일본 수출이 끊기면서 매출이 3분의 1로 줄어드는 위기를 겪었다. 갑작스런 대외적 충격에도 불구하고 덕화푸드는 명란 단일 제품 생산을 고집하면서 기술 개발과 제품 혁신에 천착, 최근 내수 시장을 개척하는 데 성공했다. 덕화푸드가 새롭게 브랜딩한 ‘덕화명란’은 이제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명란으로 자리매김했다. 현재 덕화푸드의 연간 110억 원대 매출액은 100% 국내 판매로 이뤄지고 있다.

2대째 덕화푸드를 이끌고 있는 장종수 대표는 선대 회장의 뜻을 이어받아 명란의 맛과 기술 개발과 투자를 지속해나갈 뿐 아니라 최근 브랜드 쇼룸을 만들고 새로운 식문화 라이프 스타일을 제시함으로써 국내 명란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DBR이 장종수 덕화푸드 대표, 오한나 덕화푸드 브랜딩 담당 이사와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덕화푸드가 걸어온 길과 혁신 노하우를 분석했다.



명란, 단일 제품에 올인
일본에서 배운 기술 축적의 힘
덕화푸드의 경쟁력은 국내에서 독보적인 명란 제조 기술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덕화푸드는 1993년 창업 이래 26년간 오로지 명란 하나, 즉 단일 식품만을 취급하고 있다. 국내 다른 업체들이 여러 가지 젓갈 중 하나로 명란을 취급하는 것과 대조적인 행보다. 덕화푸드가 이처럼 명란에만 천착하게 된 계기는 처음부터 명란 최대 소비국인 일본 시장을 겨냥했기 때문이다. 현 장종수 대표의 부친이자 덕화푸드를 창업한 장석준 회장은 창업 이전부터 20년 이상 수산 회사에 근무하면서 일본의 앞선 기술력과 시스템을 벤치마킹하는 데 힘썼다. 장 대표는 “어린 시절 귀가한 아버지의 옷은 늘 색소로 더럽혀져 있었고 생선 비린내가 났다. 남들은 ‘페인트 아저씨’라고 놀렸지만 그런 시선에 개의치 않고 오로지 더 나은 수산물 가공과 제조에만 몰입했던 장인이셨다”고 전했다. 장 회장은 상무로 재직 중이던 수산기업 삼호물산이 부도가 나자 2년 뒤 동료 40여 명을 모아 1993년 덕화푸드의 전신인 덕화유통을 창업한다. 창업 초반에는 명태포, 가자미 등 다양한 수산 가공식품을 일본에 수출했지만 명란 시장의 성장세와 높은 부가가치에 주목, 2000년대부터 명란에 올인, 명란 제조기술 개발에 전념했다. 전 세계 명란의 90% 이상이 소비되는 일본 시장에서 승부를 보려면 덕화푸드도 명란 단일 제품의 기술 개발에 매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에는 공식적으로 200여 개가 넘는 명란 회사가 오로지 명란 제조에 매달려 경쟁하고 있다. 그만큼 다양한 제법과 상품이 개발되면서 명란 시장은 거대한 산업으로 발전했다.

장 회장은 일본을 보면서 늘 제조 현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한다. 증권회사를 거쳐 공기업의 자금 운용 담당자로 일하던 아들 장 대표를 2006년 본사로 불러들이기에 앞서 일본의 명란 회사인 후쿠사야로 6개월간 연수를 보낸 것도 제조업의 힘이 현장에 있음을 가르치기 위해서였다. 장 대표는 명란 제조 공장에서 다른 외국인 노동자들과 함께 일하면서 명란 공정의 밑바닥부터 배웠다. 그는 “중국 유학생과 섞여서 일했는데 밖에서는 청결을 그다지 신경 쓰지 않던 중국 노동자들도 공장에 들어가면 보통 일본 사람들보다 훨씬 더 깨끗한 사람으로 변신해 각자의 임무를 다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런 엄격한 시스템이 일본 제조업의 힘이며, 그 안에서 수십 년간 축적된 암묵적 지식이 전수되는 현장을 경험했다”고 말했다.


R&D연구소, 암묵적 지식의 체계화
일본이라는 거대한 시장은 라이벌이자 롤모델로서 덕화푸드가 20년 이상 흔들리지 않고 명란에 집중하게 만드는 자극제 역할을 했다. 당장 생존이 시급한 중소기업임에도 불구하고 2009년 사내 부설 연구소를 별도 설치해 R&D에 대한 선제적 투자를 강화한 것도 일본 기업처럼 탄탄한 기술력을 갖춰야만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룰 수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장종수 대표는 “하루하루 생산량을 맞추기에도 바쁜 공장은 기존의 익숙한 방식과 새로운 트렌드에 대비하기 힘들다. 더 나은 맛과 더 나은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기존 조직과는 완전히 다른 별동대 같은 연구 조직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일찍이 기술력을 강조해온 덕화푸드는 염도 7∼10%의 재래식 명란과 차별화된 4% 저염도 명란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또 명란 제조 과정에 국내 최초로 컨베이어벨트를 도입해 일본만큼이나 철저한 위생 조건을 갖추면서 생산성도 높이는 공정 시스템을 구축했다. 덕화푸드의 우수한 기술력은 일본에서 먼저 인정했다.



2009년 세븐일레븐의 모회사이자 일본의 대형 유통 그룹인 세븐앤드아이홀딩스가 덕화푸드와 독점 PB 계약을 체결했다. 일본 전역에 덕화푸드가 개발한 저염도 명란의 맛을 전파한 것이다. 이 같은 성과를 인정받아 장석준 회장은 2011년 대한민국 최초로 수산제조 분야 명장으로 선정됐다. 대한민국 명장은 해당 분야에서 15년 이상 근무하고 최고의 기술을 가진 자에게 수여되는 명예 훈장이다. 장 회장 이후 현재까지 수산제조 분야에서 명장으로 선정된 사람은 없다.

현재 덕화푸드의 R&D연구소는 명란 공정에서 축적되는 암묵적 지식을 표준화해 가공 기술과 방식을 개선하고 신제품을 개발하는 브레인 역할을 하고 있다. 명란 가공은 노동집약적인 작업이다. 명란 한 알에 100만 개 이상의 필수 아미노산을 담은 작은 알이 담겨 있는데 그 알의 고유한 입자를 보존하면서 이물질을 제거하고 조미하는 작업은 모두 수작업으로 이뤄진다. 현재 덕화푸드의 공장에는 43명의 인력이 일하고 있으며 대부분이 여성이다. 평균 연령이 50대인 이들은 평균 8년, 최대 15년 동안 덕화푸드에서 명란을 가공한 숙련 노동자다. 외국인 노동자는 없다. 장종수 대표는 “명란 맛을 잘 아는 사람이 명란도 잘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인력 중 일부는 일본 공장에서도 A급 인재로 통할 정도로 숙련돼 있다. 이들이 오랜 시간 수작업을 통해 축적한 암묵적 지식은 덕화푸드가 반드시 계승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할 중요한 자산이다. 장종수 대표는 “일본 기업이 100년 이상 축적한 기술력을 따라가려면 보다 과학적인 접근방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R&D연구소가 숙련 노동자들의 공정 작업을 표준화하고 새로운 기술을 적용, 테스트하면서 덕화만의 차별화된 가공 기술과 방법을 개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식 전통 제법의 복원

덕화푸드가 R&D를 통해 추구하는 궁극적 목표는 한국의 고유한 명란 제법을 복원함으로써 일본과 경쟁할 수 있는 세계 최고 수준의 맛과 기술로 진보시키는 것이다. 장 대표는 스스로를 ‘R&D연구소장’이자 ‘최고기술책임자(CTO)’라고 자칭하면서 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덕화푸드는 현재 명란 제조와 관련한 기술 특허를 10개 이상 보유하고 있는데 장 대표 또한 직접 명란 제조 관련 논문을 작성해 국제 학술지에 기고할 정도로 전문가다.

덕화푸드의 R&D연구소는 명란의 역사성을 식품의 실제 R&D에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현재 한국에서 유통되는 명란은 대부분 일본에서 발전한 ‘가라시멘타이코’ 제법에 기초하고 있다. 하지만 가라시멘타이코 제법도 사실은 한국 부산에서 처음 명란을 맛본 일본인이 패전 후 일본에 돌아가 한국 명란의 맛을 재현해 발전시킨 것이다. 그런데 이 제법이 다시 한국에 역수입되면서 국내에 보편적인 명란의 맛으로 대중화됐다. 일본 최대의 명란 제조회사인 ‘후쿠야’도 명란의 유래가 한국의 부산임을 밝히고 있지만 정작 한국에서는 명란을 일본 음식으로 아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덕화푸드에 따르면 명란젓에 대한 최초의 문헌 기록은 1652년 효종 승정원일기에서 찾을 수 있는데 북한에서 주로 생산되다가 분단 이후 명맥이 끊겼다. 덕화푸드는 액염법에 기초한 일본식 제법과 달리 염해법과 식해법의 한국식 전통 발효 기술을 명란 제조에 도입하는 시도를 지속하고 있다. 2017년 출시한 ‘백명란’은 고춧가루 양념을 하지 않고 소금만으로 간을 하는 한국식 염해법의 맥을 이은 제품이라고 할 수 있다.


스토리텔링을 통한 이미지 변신
반찬에서 고급 식재료로 리브랜딩
덕화푸드의 기술력은 일본에서 인정받을 정도로 우수했지만 국내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국내 명란 시장 자체가 일본에 비해 굉장히 미미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명란은 재래시장을 중심으로 수많은 젓갈 제품 중의 하나로 소규모로 거래돼 왔으며, 덕화명란 같은 고품질의 프리미엄 명란이 판매될 시장 자체가 아예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수한 품질을 경쟁력으로 삼은 덕화푸드는 일본 시장을 타깃으로 자사 명란의 80% 이상을 일본에 수출해왔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닥친 아베노믹스는 덕화푸드의 수출 중심 비즈니스 모델에 큰 타격을 입혔다. 2013년부터 엔화 약세가 본격화되면서 10년 이상 거래하던 일본 업체들이 물량을 줄이기 시작했고 7년여간 거래하던 세븐일레븐마저 2015년 납품을 중단했다. 기술력에도 불구하고 가격 경쟁력에서 덕화푸드는 일본 경쟁 업체들의 공세에 밀릴 수밖에 없었다. 일본 수출로 최대 270억 원대까지 치솟았던 덕화푸드의 매출액은 2016년 100억 원 이하로 고꾸라진다. 덕화푸드는 단기간 내 내수 시장을 확대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절박한 상황에 놓이게 됐다.

우선 국내 소비자들에게 명란이란 식품의 인지도를 알리는 작업이 시급했다. 그러기 위해 상품군부터 재정비에 돌입했다. 당시 덕화푸드의 상품은 장석준 명장이 개발한 저염 명란 장석준명란(현 ‘그때 그대로 명란’)밖에 없었다. 창업 이래 덕화푸드의 상품 브랜딩은 ‘명장’이 만든 최고급 제품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하지만 ‘명장’ 마케팅은 40대 이상 중장년층에게는 높은 신뢰를 줬을지 몰라도 요즘 20∼30대 젊은 주부들에게는 더 이상 크게 어필하지 못했다. 장 대표는 직접 백화점이나 마켓 점포에 나가 명란을 팔면서 소비자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젊은 주부들은 명란 맛에 대한 취향이 제각기 달랐을 뿐 아니라 맛도 맛이지만 명란의 보관, 편의성, 활용도에 더 큰 관심을 보였다. 그는 “지금 회사가 변하지 않으면 명란이 옛날 음식으로 영영 사라질 수도 있겠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덕화명란을 젊은 세대도 즐길 수 있는 친숙한 음식으로 리브랜딩할 필요성이 커졌다”고 말했다.



2017년 덕화푸드는 ‘덕화명란’의 상품을 3가지 상품군, 기존 시그니처 제품인 장석준 명장이 개발한 ‘그때 그대로 명란’(순한 맛)에다가 새롭게 개발한 ‘덕화 백명란’(담백한 맛), ‘숙성고에서 갓 꺼내 먹는 명란’(매운맛)을 추가해 새롭게 구성했다. 소비자들이 각자 취향에 따라 명란 맛을 고를 수 있도록 리모델링한 것이다. 용기도 기존 스티로폼 용기에서 플라스틱 용기로 바꿔서 소비자들이 냉장고에 편리하게 보관할 수 있는 동시에 재활용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디자인도 과대한 광고 문구나 포장 없이 심플하게 만들어 소비자들이 명란의 고유한 맛에 집중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특히 덕화푸드는 명란이 단일 반찬이 아니라 다양한 요리에 활용될 수 있는 ‘식재료’라는 점을 강조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예컨대, 그때 그대로 명란은 명란아보카도비빔밥, 명란스파게티에, 덕화 백명란은 백명란 죽, 계란찜, 명란 두부찌개 같은 요리에 활용하기 좋다는 ‘활용성’을 강조한 것이다. 장종수 대표는 “명란은 참기름에 곁들여 밥반찬으로 먹는 걸로만 알려져 있으면서 사람마다 호불호가 크게 갈렸다. 명란이 다양한 요리에 식재료로 활용될 수 있음을 알려서 누구나 친숙하게 명란을 접할 수 있도록 만들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2018년에는 리퀴드 타입의 ‘명란 마요’와 ‘명란 튜브’도 출시해 식재료로서 명란의 이용 편의성과 친숙함을 높였다.


크라우드펀딩으로 제품 스토리 전국에 전파

새롭게 브랜딩한 덕화명란이 국내 소비자들에게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된 계기는 바로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와디즈’를 통해서였다. 2018년 3년여에 걸친 실험 끝에 ‘발색제 없는’ 명란을 개발한 장종수 대표는 신제품의 테스트베드 창구로 온라인 플랫폼인 크라우드펀딩을 택했다. 부산에선 유명하지만 전국구에서는 무명인 덕화명란 입장에서 크라우드펀딩은 불특정 다수의 대중에게 제품과 회사의 스토리를 알릴 수 있는 채널이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제한된 기간 동안 목표 금액 100만 원의 무려 4716%를 초과 달성해 트렌드에 밝은 2030 소비자들에게 덕화명란의 이름을 알리는 데 성공했다.

특히 크라우드펀딩의 스토리는 ‘명란은 첨가제가 많이 들어가서 짜고 자극적인 음식’이라는 대중들의 편견을 바로잡음으로써 덕화명란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는 데 기여했다. 덕화푸드가 와디즈를 통해 판매한 명란은 발색제인 아질산나트륨을 대신해 덕화푸드가 개발한 발효유산균을 첨가해 명란의 발효와 숙성을 촉진한 신제품이다. 회사는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덕화푸드가 왜 ‘0% 발색제, No 타르색소, 소금은 1/3만 쓴’ 진짜 건강한 명란을 개발했는지를 중점적으로 전달했다. ‘명란’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이 새빨간 색깔을 연상하지만 사실 숙성고에서 갓 꺼낸 명란의 원래 색깔은 연한 선홍색이다. 시중에 판매되는 대부분 명란이 새빨간 것은 더 먹음직스럽게 보이기 위해 첨가한 발색제 ‘아질산나트륨’ 때문인데 덕화명란은 믿고 먹을 수 있는 명란을 만들기 위해 ‘첨가물 저감화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그 첫 테스트베드로 와디즈에서 국내 최초 ‘발색제 없는 명란’을 선보인다고 소개했다. 여기에 덕화푸드가 국내에서 가장 오랜 기간 명란 제조 기술 개발에 집중해온 기업이며, 특히 대를 이어 음식 본연의 맛과 건강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기업이라는 스토리까지 더해지면서 진정성과 신뢰도가 커졌다. 장종수 대표는 “예상보다 훨씬 큰 호응을 확인하고 덕화푸드의 진정성이 소비자들에게 전해진 것 같아 기뻤다”고 말했다.

덕화명란의 실험은 크라우드펀딩을 계기로 모든 제품에 발색제를 빼는, 전 제품의 혁신으로 발전했다. 와디즈의 성공을 계기로 덕화명란은 홈쇼핑 채널의 섭외를 받아 온라인 유통망을 확대했고 현대백화점과 이마트 등에도 발색제를 없앤 자사 제품을 입점시켰다. 장 대표는 “맛에는 감각적 측면도 중요하지만 그 안에 담긴 스토리와 태도도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소비자들이 덕화푸드가 추구하는 가치와 원칙을 선택해줬기에 앞으로도 더 건강하고 친환경적인 제품을 개발해 나가야 한다는 목적 의식과 동기 부여가 더 커졌다”고 말했다.


데어더하우스, 식품에서 라이프 스타일로 확장

2018년 덕화푸드가 부산 초량에 최초로 선보인 브랜드 쇼룸 데어더하우스는 독특하게 운영되는 공간이다. 브랜드 쇼룸이지만 제품을 판매하지 않으며 공간 규모도 10명 남짓만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소규모로 굉장히 프라이빗하다. 이곳의 핵심 프로그램은 예약제로 운영되는 ‘셀프 쿠킹’인데 하루에 점심과 저녁 2회, 회차별로 최소 2명, 최대 4명이 참여할 수 있다. 셀프 쿠킹이 진행되는 2시간은 참가자들만 공간을 오롯이 이용할 수 있도록 아예 쇼룸을 닫아 둔다. 소수의 방문객에게 쇼룸 공간 전체를 내주는 셈이다. 이런 체험은 방문객 입장에서는 굉장히 의미가 있지만 기업의 수익성 관점에서 보면 효율이 떨어지는 운영 방식이다. 하지만 이런 운영 방식에는 덕화푸드가 추구하는 브랜드 철학과 가치가 담겨 있다.

셀프 쿠킹의 경우 명란 요리 레서피와 식재료는 데어더하우스가 제공하지만 실제 요리 과정은 전적으로 참가자의 손에 맡겨진다. 참가자들은 부엌에 준비된 재료와 도구, 레서피를 활용해 명란 요리를 만들고 거실에서 맛있게 먹으면 된다. 2명 기준 4만 원을 내면 최상의 식재료와 레서피로 요리를 하고 거실의 정돈된 식탁에서 한 끼 식사를 호젓하게 즐길 수 있다. 참가자들은 어렵지 않게 내 손으로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나올법한 요리를 만들고 함께 만든 사람과 나눠 먹으면서 미식의 기쁨을 온전히 느끼게 된다.

장종수 대표는 “방문객들이 명란 요리가 쉽고 재미있다는 경험을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식재료인 명란에 대한 관심도 커질 수밖에 없다. 요리를 통해 삶이 더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만일 수익성만 따졌다면 브랜드 쇼룸이 아닌 식당을 만드는 게 나았을 것이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셀프 쿠킹을 한 번 체험한 방문객들은 자발적으로 덕화명란의 열렬한 팬임을 자처하며 SNS를 통해 덕화명란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다.

브랜드 쇼룸은 소비자 피드백을 실시간으로 받을 수 있는 창구 역할을 하기도 한다. 식품회사가 생산과 기술 개발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면 정작 가장 중요한 소비자의 관점을 간과하기 쉽다. 하지만 이런 쇼룸의 존재는 식품회사에 요리, 즉 소비자의 식품에 대한 일상적인 니즈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역할을 한다. 장종수 대표는 “데어더하우스는 린스타트업 방식 1 으로 우리의 제품과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를 소비자에게 선보이고 실험하는 공간”이라고 강조했다.

덕화푸드는 지역성을 활용해 제품을 혁신하는 실험들을 현재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예컨대, 지역 명인이 제조한 재료를 활용해 명란을 제조하거나, 지역의 명물을 활용한 명란 레서피를 개발하는 식이다. 2019년 열린 ‘부산푸드필름페스타’에서는 초량시장의 손두부 전문점에서 가져온 두부와 부산의 향토 식품회사의 참기름을 활용한 두부 요리, 부산 명물인 구포국수에 소금 간 대신 명란으로 간한 요리를 개발해 선보이기도 했다. 이같은 시도들은 ‘발색제 없는’ 명란의 사례처럼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을 경우 언제든 대중화될 잠재력을 갖고 있다.

덕화푸드는 또 지속가능성을 인정받은 친환경 수산 업체만 받을 수 있는 국제 인증인 해양관리협의회(MSC) 인증도 자발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현재 명란 조업은 러시아와 미국 베링해의 어장 두 곳으로 양분돼 있는데 덕화푸드를 포함해 국내 업체들은 러시아 어장에서 획득한 명란을 이용하고 있다. MSC 인증은 덕화푸드가 자원 보호 규정을 준수하고 환경 영향을 최소화하면서 지속가능한 어업에 기여하겠다는 선언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장종수 대표는 “앞으로 MSC 인증 제품 마크를 단 명란 제품을 출시하게 되면 국내 소비자들의 명란 생산에 대한 신뢰도가 더욱 커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데어더하우스의 셀프 쿠킹클래스

슬로푸드 운동의 지지자인 장종수 대표는 식품이 역사와 전통, 지역성과 연결되면 궁극적으로 우리의 일상을 더 아름답게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그는 “네오미식을 통해 명란 제품을 혁신해 소비자들의 삶을 개선하는 게 우리 비즈니스의 핵심 전략”이라고 강조했다. 음식 자체의 감각적인 맛도 중요하지만 그 음식이 어떻게 지역 사회와 연결돼 있느냐 혹은 역사와 전통을 잇고 있는가, 친환경적인가가 궁극적으로 맛에 대한 인식을 바꿈으로 제품을 혁신할 수 있다는 게 장종수 대표의 철학이다. 미식에 환경뿐 아니라 역사, 문화, 사회, 과학 등 다양한 분야를 고려하자는 내용의 ‘네오(Neo) 미식’은 슬로푸드 운동에서 추구하는 철학이자 덕화푸드의 핵심 전략이다. 부산의 지역성과 역사성을 활용한 제품 혁신을 통해 명란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을 업그레이드하고, 그럼으로써 지역과 상생하는 미식의 세계로 확장시키는 것이 바로 장 대표와 덕화푸드가 꿈꾸는 미래다.

부산 = 배미정 기자 soya1116@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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