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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 공간 디자인 어떻게

국제도서전에 가전업체 부스가 왜?
판매 공간 아닌 경험 공간을 보여주다

이승윤 | 277호 (2019년 7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라이프스타일 공간으로 뛰어드는 국내외 기업 사례
1. 일본 고큐요: 회원제 코워킹 스페이스(co-working space) ‘크리에이티브 라운지 MOV’를 직접 운영하며 책상, 소파, 사물함 등 자사 가구를 그 안에 설치, 회원들이 일하면서 자연스럽게 제품을 접할 수 있도록 유도
2. 일룸: 판매 목적의 매장이라는 통상적인 틀을 깨기 위해 게임을 하면서 독서도 하고 커피도 마시며 동호회 모임까지 할 수 있는 복합 공간 ‘데스커 시그니처 스토어’를 만들고, 거기에 필요한 가구를 적절히 배치
3. 시몬스침대: 실제 잠을 잘 때와 비슷하게 어두운 조명에서 다양한 침대를 편안하게 경험해 보고 수면에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 ‘시몬스 테라스’ 운영




서울국제도서전(Seoul International Book Fair, SIBF)은 매년 수만 명이 참가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책 관련 페스티벌이다. 지난 6월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2019년 행사의 경우 사전 신청자만 6만 명 이상으로 작년에 비해 참가자가 두 배에 달했다. 한강과 같은 유명 소설가부터 출판사가 특별하게 내놓은 인기 도서와 관련된 다양한 아이디어 상품, 즉 굿즈(goods)를 다양하게 만날 수 있었다.

특히 2019 SIBF에서 흥미로웠던 점은 출판업과 무관한 삼성전자가 행사에 참여했다는 점이다. 삼성전자는 『치킨인류』의 저자이자 ‘누들로드’ ‘요리인류’ 등의 음식 관련 다큐멘터리 제작으로 유명한 이욱정 KBS PD와 함께 ‘요리인류 오픈키친’이라는 이름으로 행사장 한편에 있는 요리 관련 서적 코너에 쿠킹 스튜디오를 마련했다. 또한 유명 셰프들과 요리책 저자들이 삼성전자의 맞춤형 냉장고 비스포크(BESPOKE)와 셰프 컬렉션 오븐, 전기레인지 인덕션 등을 활용해 다양한 요리를 시연하는 모습을 관람객들이 볼 수 있도록 했다.

쿠킹 스튜디오에 방문해 맛있는 요리가 조리되는 모습을 보면서 전문가들로부터 레서피나 조리 정보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 보면 자연스럽게 ‘아, 나도 저런 주방을 갖고 싶다’라는 생각이 든다. 이것이 바로 삼성전자가 자체 유통 채널인 디지털 플라자를 떠나 SIBF에서 자사 제품을 선보인 이유다.


라이프스타일 공간으로 뛰어드는 업체들

판매 전시 공간을 떠나 소비자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보여주는 공간으로 뛰어든 건 비단 삼성전자뿐만이 아니다. 렉서스 역시 2019 서울리빙 디자인페어에 ‘저녁의 사물’이라는 콘셉트로 전시 공간을 만들었다. 공적인 일과를 마친 후 정말 ‘나다운 나’로 돌아가는 시간이 저녁이다. 그리고 그 저녁, 가장 나다운 공간으로 채워진 공간(집)으로 돌아가는 여정은 차로부터 시작한다. 렉서스는 ‘저녁의 사물’이라는 공간을 통해 렉서스가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을 드러내는 다양한 일상의 물건을 신진 작가들과 함께 만들어 전시했다. 렉서스 자동차는 전시 공간의 주역이 아니라 일부로 녹여냈다. 즉, 여느 전시장에서처럼 여러 모델을 한꺼번에 소개하는 게 아니라 공간 한편에 오직 한 대의 차량만 전시해 놓았다. 자동차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렉서스가 제시하는 통합적인 라이프스타일을 드러내 주는 다른 여러 사물과 잘 어우러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물건을 파는 공간을 제공하던 백화점도 라이프스타일을 보여주는 공간으로의 변신에 한창이다. 보통 백화점 상층에 위치한 리빙관은 다채로운 주방용품을 판매하는 브랜드들이 운영하는 제품 판매 공간들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현대백화점 천호점에선 이 리빙관 자리에 매주 라이브 쿠킹쇼를 선보이는 ‘쿠킹 스튜디오’를 열었다.



이곳에선 매주 목요일 백화점 식품관에서 구매할 수 있는 식재료들을 가지고 몸에 좋은 제철 음식을 소개한다. 고객들은 다채로운 주방용품을 구경하다 해당 주방용품이 실제 어떤 방식으로 음식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지 직접 눈으로 본다. 만들어진 음식은 시식도 할 수 있으니 오감을 자극하는 경험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게 된다. 주방용품을 구경하러 왔던 고객이 쿠킹쇼에서 본 특별한 제철 음식을 만들고 싶어지면 해당 음식을 만드는 데 필요한 주방용품도 구매하고, 나가는 길에 지하 식품관에 들러 이 요리에 사용된 재료들을 쇼핑하도록 만든 형태다. 한마디로, 제품 판매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가족들의 건강을 챙기면서 맛도 있는 한 끼 음식을 둘러싼 라이프스타일을 고객들이 자연스럽게 경험하도록 한 셈이다. 관심이 가는 음식의 레서피를 메모하는 수고를 기울일 필요도 없다. 모든 쿠킹 클래스는 유튜브, 페이스북 같은 다양한 SNS 채널을 통해 언제든 영상으로 볼 수 있도록 했다.

삼성전자와 렉서스, 현대백화점 천호점 사례처럼 최근 들어 많은 브랜드가 제품 판매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닌 고객들에게 자연스러운 경험을 제공해주는 공간을 만들어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실제 소확행, 탕진잼, 스테이케이션(Staycation), 주52시간 근무, 플리마켓, 원데이클래스 등 최근 소비 스타일을 설명해주는 키워드들은 이러한 경험 제공 동선 설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소위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라고 지칭되는 젊은 20∼30대 소비자는 돌아다니고, 체험하며, 만져보고, 놀고 싶어 한다. “여기 가봤어? 난 지난 주말에 거기 가봤어”라고 자랑하듯이 이야기할 수 있는 독특한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공간, SNS에 인증샷을 올려 공유할 수 있는 장소들을 계속 찾아다니고 있다. 언어를 배우기 전부터 아이패드 사용법을 먼저 익히는, 디지털을 입에 물고 태어난 Z세대가 시장을 주도하는데도 오프라인 공간이 사라지기는커녕 계속해서 생겨나는 이유다.

변화된 소비자들로 인해 비즈니스 모델도 혁신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과거 오프라인 공간은 물건을 진열해서 판매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물건을 팔지 못하는 공간은 의미가 없는 공간이라고 취급됐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삼성전자는 SIBF에서 비스포크 냉장고를 노골적으로 판매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렉서스 역시 마찬가지다. 조용하고 자연스럽게 고객이 부러워할 만한 라이프스타일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 조용히 그들의 제품을 비치해놓을 뿐이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결합 역시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 온라인을 제패한 아마존이 아마존고, 아마존북스라는 이전에 찾아볼 수 없었던 혁신적인 오프라인 공간을 만들어낸다. 그런가 하면 전통적인 오프라인 기업인 나이키는 나이키플러스 등의 다채로운 온라인 모바일 앱 서비스를 통해 ‘달리는 경험’을 극대화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디지털 시대의 공간은 이처럼 혁신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디지털 시대 공간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혁신의 방향을 잡고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공간에서 브랜드를 경험하게 하라

디지털은 공간의 기존 개념을 혁신적으로 파괴하고 있다. 이제 오프라인 공간을 방문한 모든 이들의 손에는 인터넷이 연결돼 있는 또 다른 판매 공간인 ‘모바일 폰’이 쥐어져 있다. 이는 반드시 오프라인 방문 매장에서만 제품을 판매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뜻이다. 공간이 브랜드 콘셉트가 잘 드러나는 체험을 고객들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다면 당장 오프라인 공간에서 판매가 이뤄지지 않더라도 고객의 스마트폰을 통해 제품을 판매할 수 있다.



하루 24시간의 대부분을 특정 공간 안에서 머무는 인간의 라이프스타일에서 가구는 중요한 위치를 갖는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가구 브랜드는 대놓고 판매용 공간을 만들어 놓고 실물 가구를 전시하고 보여주는 식으로 공간을 활용해 왔다. 하지만 보다 혁신적인 방향으로 공간을 해석하면서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가구를 소개하는 회사들이 늘고 있다. 일본 사무용 가구 1위 기업인 고큐요(Kokuyo)와 한국 가구 업체 일룸이 대표적 예다.

1. 고큐요: Creative Lounge MOV
우리는 가구 전시 공간에 가면 대부분 한두 시간 정도 가구를 살펴본 뒤 구매할지 말지 결정을 내린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한두 번 의자에 앉아 보고 어떤 의자가 진짜 내 라이프스타일에 맞는지 결정을 내리기란 쉽지 않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고큐요는 가구야말로 일상의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용해본 후 마음에 드는 가구가 있으면 그때 비로소 구매하는 게 맞다고 봤다. 이런 철학에 따라 고큐요는 특별한 공간을 만들었다. 바로 도쿄 시부야의 히카리에(Hikarie) 8층에 자리 잡은 ‘크리에이티브 라운지 MOV(Creative Lounge MOV)’다. 이곳은 회원제 코워킹 스페이스(co-working space)로, 오픈 라운지는 물론 각종 회의를 할 수 있는 미팅룸, 창의적인 개인 작품들을 전시할 수 있는 쇼케이스 룸, 1년 365일 24시간 이용할 수 있는 레지던스 영역(residence area) 등으로 구성돼 있다. 당연히 라운지와 개별 룸에는 고큐요가 만든 책상, 소파, 사물함 등이 놓여 있다.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나 전시 기획자들은 이곳에 함께 모여 일하고 자신이 만든 예술작품을 전시하고 파티를 열면서 고큐요의 제품들을 자연스럽게 접하게 된다. 고큐요가 자사 브랜드 스토리 체험 공간으로 코워킹 스페이스를 만든 이유다.

2. 일룸: Desker Signature Store
우리나라에도 판매 중심이 아닌 판매하는 제품의 브랜드 스토리를 체험하고 자연스럽게 브랜드에 대한 호감이 생기도록 설계한 가구 매장들이 생겨나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일룸의 사무용 가구 브랜드 ‘데스커’가 만든 ‘데스커 시그니처 스토어(Desker Signature Store)’다. 총 4개 층(지하 1층∼지상 3층)으로 구성돼 있는 이곳은 이름에만 데스커가 들어가 있을 뿐 전통적인 판매용 가구 매장과 전혀 다른 분위기를 접할 수 있다. 게임을 하면서 책도 읽고, 커피도 마시고, 심지어 동호회 모임도 할 수 있는 공간들로 구성돼 있기 때문이다.

우선 1층은 e스포츠 기업 젠지와 협업해 만들었다. 컴퓨터, 카메라 등 다양한 전자기기가 설치돼 있어 방문객들이 이를 사용해 게임을 하거나 게임 관련 방송까지 할 수 있도록 했다. 2층은 카페다. 집안을 카페처럼 꾸미고 싶은 욕구를 가진 방문객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도록 데스커가 만든 카페 테이블과 아름다운 의자들을 비치해 놓았다. 3층은 북카페다. 트레바리 같은 독서 커뮤니티와 협업해 다채로운 취향을 가진 방문객들이 좋아할 만한 책 400여 권을 엄선해 큐레이션했다. 공간 한편에는 미팅룸도 있어 외부인들이 예약을 하면 다채로운 커뮤니티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런 다양한 활동을 경험하는 과정에서 방문객들은 데스커의 가구들을 자연스레 접하게 된다. 매장에는 당연히 상주 직원이 있어서 호감이 가는 가구에 대해 문의하는 방문객들이 있을 경우 곧바로 대응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밖에도 일룸은 브랜드 체험에 효과적이라고 판단되는 외부 브랜드 공간들과도 적극적으로 협업한다. 대표적으로, 유명 북카페 ‘최인아책방’과 협업해 서울 연희동에 ‘엄마의, 서재’라는 브랜드 콘셉트 공간을 선보였다. 육아에 지친 엄마들이 언제든 방문해 힐링할 수 있는 독립된 서재라는 콘셉트로, 엄마들이 언제든 편안하게 쉬면서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일룸의 가구들을 책방 안에 비치해뒀다.

3. 시몬스침대: SIMMONS Terrace
가구뿐 아니라 침대 업체 중에서도 독특한 공간 활용 전략을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시몬스침대가 경기도 이천에 오픈한 ‘시몬스 테라스(SIMMONS Terrace)’로 ‘잠자리’와 관련된 모든 경험을 최적화해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공간이다. 실제로 이곳을 방문해 보면 침대를 판매하는 공간이 아니라 고객과 함께 ‘좋은 잠’에 대해 함께 이야기 나누는 오픈형 ‘소셜 스페이스(social space)’라는 사실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이곳은 일단 조명부터가 다르다. 시몬스 테라스 내 메인 공간인 ‘매트리스 랩’은 실제 잠을 잘 때와 비슷하게 느껴지도록 어두운 조명을 비춰 다양한 침대를 편안하게 경험할 수 있도록 했다. 침대에 스포트라이트가 비춰져 아름답게 보여지도록 하기 위해 각종 조명으로 매장을 밝게 비춘 다른 침대 매장과는 접근 방식부터 다르다. 매트리스 랩에서 편안하게 침대에 누워 있다가 매트리스에 대해 궁금해지면 전문 큐레이터가 침대의 역사가 담긴 브랜드 전시관 ‘헤리티지 앨리’로 고객들을 안내한다. 이곳저곳을 둘러보다 잠시 쉬고 싶다면 내부에 마련된 ‘이코복스커피’에 들려 커피 한 잔을 마시는 여유로움도 누릴 수 있다. 이 밖에도 건물 내·외부에 블루베리, 상추 등 수면에 도움이 되는 식물들이 심겨 있어 방문객들이 기분 좋은 향을 맡을 수 있도록 했다. 이처럼 숙면과 관련된 직접적인 체험을 하다 실제 침대를 구매하고 싶어지면 지하에 위치한 ‘테라스’ 공간에서 제품을 구입할 수 있다. 결국, 시몬스는 수면과 관련된 라이프스타일을 자연스럽게 체험하도록 정교하게 공간을 설계함으로써 ‘좋은 잠=좋은 삶(good sleep=good life)’이란 기업 철학이 잘 전달되도록 했다.

숙면을 추구하는 좋은 라이프스타일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체험형 공간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서울에서 다소 멀리 떨어져 있는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매달 이 공간에 방문하는 사람들은 1만 명에 다다른다. 각종 SNS 커뮤니티에서 시몬스 테라스는 대표적인 ‘가족 나들이 장소’로 언급되고 있다. 2019년 6월 말 기준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관련 해시태그만 1만 건에 달할 정도다.

4. 삼성전자: Samsung 837
가구나 침대와 더불어 우리의 일상에서 가장 많이 접하고 사용하는 것이 있다면 바로 스마트폰일 것이다. 최근 우리의 일상 라이프스타일에서 큰 영향을 미치는 스마트폰과 같은 전자기기를 판매하는 브랜드 역시 앞 다투어 체험형 매장들을 내놓고 있다.

삼성전자가 2016년 2월 뉴욕에서 ‘어떠한 물건도 팔지 않는 매장(A store that doesn’t sell anything)’이라는 별명을 가진 ‘Samsung 837’ 매장을 오픈한 것도 비슷한 이유다. 별명에서 알 수 있듯 Samsung 837 스토어는 물건을 팔기 위해 만들어진 오프라인 공간이 아니다. 삼성은 뉴욕 맨해튼 첼시 인근 핫플레이스에 위치한 지상 6층 1600평의 스토어를 열 때부터 지속적으로 “이 공간은 물건을 파는 리테일 숍이 아니다”라는 점을 언론에 강조해왔다. 삼성은 Samsung 837이란 공간을 일종의 ‘디지털 놀이터(Digtal Playground)’로 꾸몄다. 즉, 방문객들이 다채로운 최신 IT 기기를 즐겁게 가지고 놀 수 있도록 했다. 방문객들이 끊임없이 매장 내 공간에서 다양한 디지털 기기를 가지고 즐겁게 놀고, 이러한 행위들을 자발적으로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찍어 SNS를 통해 친구들에게 공유하도록 만드는 것이 바로 Samsung 837의 존재 이유다.

방문객이 경쟁사인 애플 휴대폰을 가지고 있더라도 상관없다. 매장에 들어가면 최신 삼성 휴대폰을 언제든 빌릴 수 있다. 이 휴대폰은 일종의 매장 가이드 지도 역할을 하도록 설정돼 있다. 삼성전자는 이처럼 판매 목적이 아니라 그들의 제품을 다양한 방식으로 즐겁게 가지고 놀 수 있게 꾸민 편안한 공간들을 미국과 일본에 공격적으로 열고 있다.

미국과 일본은 애플 휴대폰이 대표적으로 잘 팔리는 지역이다. 이런 곳에서 단순히 판매용 매장만 열어서는 시장을 뚫을 수 없다고 회사 측은 판단했다. 지금은 갤럭시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즐거운 경험을 제공해주고 그 경험 속에서 자연스럽게 브랜드 가치를 직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강력한 경쟁자들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5. 젠틀몬스터: Bathhouse & Bat
토종 아이웨어 브랜드 젠틀몬스터의 플래그십스토어 쇼룸 ‘배쓰하우스(Bathhouse)’와 콘셉트 스토어 ‘배트(Bat)’를 살펴보자.

2015년 젠틀몬스터는 서울 계동길에 자리 잡은 낡은 목욕탕(중앙탕)을 젠틀몬스터의 브랜드 콘셉트에 맞게 쇼룸으로 변화시켜 배쓰하우스를 오픈했다. 배쓰하우스에 들어가보면 보일러실, 사우나실 등이 원형 그대로 보존돼 있고 과거 욕탕으로 사용되던 장소에 선글라스, 안경 같은 아이웨어 제품들이 놓여 있다. 젠틀몬스터는 이런 실험적이고 혁신적인 공간을 통해 브랜드 콘셉트를 자연스럽게 노출했다.

아이웨어 제품 없이 오직 브랜딩만을 위해 존재하는 배트도 특이하다. 배트는 주기적으로 콘셉트를 달리하면서 젠틀몬스터가 추구하는 브랜드 가치를 공간에 담아내는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가령, 대중들에게 친근한 소재인 카페를 재해석해 ‘농장 속의 카페(Coffee in the Farm)’를 만들어 운영하거나 ‘코믹북, 더 레드(Comic Book, The Red)’라는 콘셉트하에 『드래곤볼』이나 『슬램덩크』 같은 유명 만화책의 표지를 모두 빨간색으로 제작, 만화방 형태로 공간을 운영한다.


디지털 전환 시대, 경험을 연결하라

수많은 전문가가 인터넷을 통한 온라인 판매가 증가하면서 오프라인 스토어가 몰락하고 오프라인 공간의 역할도 축소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예측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렸다.

실제로 오프라인 공간의 맏형 역할을 하던 이마트는 2019년 1분기 어닝쇼크를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실적이 자그마치 50% 이상 줄어들었다. 이마트의 실적 부진은 디지털 변혁(Digital Transformation)의 시대, 수많은 오프라인 스토어가 직면한 위기의 단면을 보여준다.

흥미로운 사실은 특색 없는 대규모 오프라인 공간들은 사라지고 있지만 오히려 우리 주변에 점차 더 흥미로운 오프라인 공간은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즉, 디지털은 전통적인 오프라인 공간을 위협하는 존재라고 평가될 수도 있지만 동시에 전통적인 오프라인 공간을 더욱더 매력적인 곳들로 만들어가는 동반자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이제는 제품이나 서비스 그 자체를 돋보이게 만드는 공간을 구성하는 것 못지않게 해당 공간에서 어떠한 특별한 고객 경험을 줄 것인가가 중요한 이슈로 등장했다. 자연히 초점은 고객, 즉 ‘사람들’에게 집중된다.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포커스를 두고 이들을 어떻게 연결해 좀 더 다채로운 경험을 전달할 것인가에 대해 마케터들이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다. 단순하게 창의적이고 재미있는 경험을 전달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시대다. 이제 기업은 구체적이고, 전략적인 방식으로 고객 경험을 만들어나갈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 기업이 단순 제품 판매만이 아니라 제품의 이야기가 잘 전달될 수 있는 브랜딩 공간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브랜드의 핵심 가치를 경험을 통해 온전히 전달할 수 있는 공간 말이다. 그리고 어떠한 방식으로 이런 공간들을 연결해 시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공간 속에 사람들을 모으고, 모인 사람들을 연결해 새로운 경험을 창출하는 것도 중요하다. 에어비앤비(Airbnb), 위워크(WeWork) 같은 기업들이 빠른 속도로 혁신을 만들어내며 성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도 따지고 보면 ‘사람 간의 연결’이다. 특히 위워크 같은 공유 오피스 기업은 매력적인 공간을 만들어내는 데도 능숙하지만 사람들을 모으고 사람들끼리 서로 잘 지내게 하면서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매력적인 가치들이 생성되도록 하는 역량도 뛰어나다. 결국 중요한 건 공간 그 차제가 아니라 사람들 간의 연결을 통한 새로운 경험의 창출이라는 점을 다시금 되새길 필요가 있다.

‘오감’을 연결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사람은 단일한 감각에 의존해 외부와 소통하지 않는다. 주말에 식료품을 구매하기 위해 홈플러스에 방문했을 때 눈앞에 펼쳐지는 수많은 정보와 제품들을 우리의 시각으로 끊임없이 수용하면서 청각으로는 ‘마감 세일입니다’ 같은 정보를 계속해서 받아들인다. 때로는 제품을 만져보기도 하고 시식 코너에서 냄새를 맡아보며 먹어보기도 한다. 따라서 기업은 온라인과 오프라인 공간들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어떤 새로운 경험을 전달할 것인지, 특히 어떻게 오감을 연결해 보다 더 풍부한 경험을 전달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효과적으로 연결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온라인은 오프라인의 단점을 보완해주는 역할을 하고, 오프라인은 온라인을 통해 보다 더 가치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될 수 있어야 한다. 스타벅스의 ‘사이렌 오더’가 대표적 예다. 스타벅스는 점심시간 등 붐비는 시간에 긴 줄을 서야 하는 고객들의 불편을 줄이기 위해 매장에서 직접 주문을 하지 않고 스타벅스 앱을 통해 주문한 후 받으러 가는 서비스를 선보였다. 오프라인 공간에서 발생하는 불편함을 줄일 수 있는 온라인 기술을 오프라인 매장에 적용함으로써 고객 경험을 한 단계 끌어올린 모범 사례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연결해 최적의 ‘연결 경험’을 제공하는 기업만이 디지털 변혁의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필자소개 이승윤 건국대 경영대학 교수 seungyun@konkuk.ac.kr
필자는 영국 웨일스대에서 석사 학위(소비자 심리학)를, 캐나다 맥길대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마케팅분과)를 받았다. 현재 비영리 연구·학술 단체인 디지털마케팅연구소(www.digitalmarketinglab.co.kr)의 디렉터를 맡아 디지털·빅데이터 관련 연구 활동을 펼치고 있다. SK텔레콤의 전국 T스토어(T-Store) 고객 경험 전략 자문, 삼성전자 디지털 플라자 갤럭시 컨설턴트 교육 등 다채로운 공간 관련 컨설팅을 수행했다. 저서로 『공간은 경험이다』 『평범한 사람들의 비범한 영향력』 『입소문을 만드는 SNS 콘텐츠의 법칙, 바이럴』 『구글처럼 생각하라-디지털 시대 소비자 코드를 읽는 기술』 『디지털 소셜 미디어 마케팅』 등이 있다.
  • 이승윤 |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

    필자는 디지털 문화 심리학자로 영국 웨일스대에서 소비자심리학으로 석사학위를, 캐나다 몬트리올의 맥길대에서 경영학 마케팅 분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비영리 연구기관 디지털마케팅연구소(www.digitalmarketinglab. co.kr)의 디렉터로 디지털 및 빅데이터 분야에서 다양한 연구 활동을 펼치고 있다. 저서로는 『공간은 경험이다』 『디지털로 생각하라』 『바이럴』 『구글처럼 생각하라-디지털 시대 소비자 코드를 읽는 기술』 등이 있다.
    seungyun@konk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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