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R2. 풀무원 나또 감각디자인 사례

원조 틀 벗고 미각 디자인 혁신
‘한국형 나또’의 표준을 만들다

256호 (2018년 9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미각은 인간의 오감 중에서 가장 취약하며 다른 감각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풀무원의 나또 사례는 식품업이나 관련 기업이 미각뿐 아니라 시각, 후각, 촉각을 복합적으로 고려해 맛을 디자인해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소비자의 감각과 심리적 경험을 최우선으로 고려해 기존 모델을 과감히 포기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시도하는 적극성도 눈여겨볼 만하다.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남정희(고려대 경영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일본의 전통 발효식품인 나또가 국내 양산된 지 12년 만에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며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한국의 청국장처럼 콩을 발효한 건강식으로 꼽히는 나또는 일본에서는 시장 규모가 2조 원에 달할 정도로 광범위하게 대중화돼 있다. 하지만 국내 시장 규모는 300억 원 수준으로 이제 막 일반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최근 3년 새 연평균 20%가 넘는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면서 식품 기업들의 시장 진출이 잇따르고 있다. 나또가 인기를 끌기 시작한 비결이 무엇일까.

사람이 혀로 감지할 수 있는 미각은 단맛, 짠맛, 신맛, 쓴맛, 우마미(MSG 등을 통한 맛 좋은 느낌, 감칠맛으로도 불림) 등 5가지뿐이다. 미각은 오감 중에서도 취약하고 다른 감각에 의존하는 성향이 강하다. 사람이 음식을 직접 보거나 냄새를 맡지 않으면 감자와 사과, 레드 와인과 커피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아무리 몸에 좋은, 맛 좋은 음식이라고 해도 후각적으로 혹은 촉각적으로 불쾌함을 준다면 어떤 소비자도 절대 손대지 않을 것이다.

한국인에게는 나또가 그런 대표적인 음식 중 하나였다. 건강식품으로 유명하지만 특유의 냄새와 끈적이는 촉감 때문에 한국에선 마니아들만 주로 찾는 음식이었다. 풀무원은 2006년 국내 최초로 나또를 양산하기 시작하면서 한국인 특유의 거부감을 없애는 제품과 디자인을 개발했다. 한국인의 감각을 고려한 디자인으로 일본식 나또가 주는 불쾌감을 없애는 데 성공한 것이다. 풀무원은 현재 80%에 달하는 시장점유율을 유지하며 나또 시장을 리드하고 있다. 최근 대상FNF, CJ제일제당과 오뚜기가 잇따라 나또 시장에 진출해 점유율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DBR이 감각디자인의 관점에서 풀무원 나또의 성공 비결을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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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의 틀을 벗다

풀무원은 국내에 나또를 처음 접하는 소비자를 타깃으로 삼았다. 일본 나또를 모델로 삼았지만 나또에 익숙하지 않은 소비자의 감각적 반응을 무엇보다 중시했다. 가장 먼저 나또 특유의 냄새를 최소화해야 했다. 나또를 처음 접하는 소비자는 낯선 냄새에 거부감부터 느꼈다.

정재훈 풀무원 마케팅본부 DM은 “제품을 개발할 때부터 몇백 종류나 되는 종균 중에서 특히 가장 냄새가 안 나는 균을 고르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며 “나또 냄새가 익숙하지 않은 한국 소비자들에게 후각적 자극을 최대한 줄이는 게 우선 과제였다”고 말했다.

또 나또균 냄새를 최소화하는 한편 나또에 뿌리는 소스에는 일부러 더 강한 향을 부가했다. 나또 용기에 첨부된 가쓰오 간장 소스향은 일반적으로 우동 등에 사용되는 가쓰오 소스보다 향이 더 강하다. 나또 자체의 낯선 후각적 자극을 상쇄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 나또를 처음 먹는 사람도 소스와 함께 후각적 부담 없이 시식해보게 만들겠다는 아이디어였다.

포장 용기 또한 일본 나또와 완전히 다른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일본 나또는 일반적으로 스티로폼의 사각 용기에 담겨서 판매된다. 용기와 뚜껑이 일체형이라 편리한데다 가격도 플라스틱의 절반에 불과했다. 하지만 한국 소비자들은 스티로폼 용기에 든 음식을 먹는 데 거부감이 강하다. 스티로폼 용기에 뜨거운 물을 부으면 환경 호르몬이 분출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스티로폼 용기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팽배했다. 스티로폼 특유의 긁히는 소리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풀무원은 원조인 스티로폼을 버리고 플라스틱 용기를 쓰기로 결정했다. 소비자들이 안심할 수 있는 용기를 제공하는 게 더 낫다는 판단에서 비용 부담을 감수하기로 했다. 일본에서 나또에 대중화돼 있지 않은 플라스틱 소재를 채택한 것은 풀무원 나또가 이전에 없는 새로운 용기를 디자인하게 된 중요한 출발점이 됐다.

골 디자인으로 소리와 시각 극대화
풀무원 나또 용기의 안쪽 네 면에는 약 0.5㎜ 폭의 골이 7개씩 패여 있다. 일본 나또 용기에는 없는 골이다. 정재훈 DM은 “자세히 살펴보면 골의 크기가 나또 콩의 크기와 거의 딱 맞다”며 “콩이 톱니바퀴처럼 골과 맞물리면서 섞이도록 하려고 일부러 크기를 맞춘 것”이라고 설명했다.

나또는 실 같은 끈끈한 점액(나또끼나제)이 생기도록 충분히 저은 다음에 기호에 따라 첨부된 소스를 섞어 먹는 음식이다. 소비자들은 시각적으로 점액이 얼마나 많은지, 끈기가 얼마나 끈끈한지를 보면서 나또끼나제의 함량과 효능을 판단하게 된다. 나또끼나제, 즉 실이 많아 보이려면 일단 많이, 잘 저어야 한다. 그런데 나또가 처음인 한국인들은 나또를 젓는 데 익숙하지 않다. 하지만 콩과 비슷한 크기의 골이 맞물리면 접촉면이 늘어나면서 훨씬 잘 섞일 수 있다. 또 소비자들은 시각적으로 실의 힘을 눈으로 확인하면서 제품의 우수한 효능을 손쉽게 판단하게 된다. 브랜드명이기도 한 ‘살아 있는 실의 힘’을 소비자가 직접 섞으면서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골 디자인은 시각적으로 품질을 알리는 역할을 할 뿐 아니라 청각적으로도 의미가 있다. 용기의 골을 따라 콩을 젓다 보면 ‘돌돌돌돌’ 하는 소리가 난다. 이런 소리는 나또를 처음 먹는 소비자도 콩이 잘 섞이고 있다고 느끼게 만들면서 콩을 젓는 행위에 익숙해지도록 돕는다. 정재훈 DM은 “나또를 먹어보지 않은 한국인들이 나또의 품질을 정확히 평가하기 어렵다. 나또를 평가하는 기준인 ‘실의 힘’을 시각과 청각적으로 손쉽게 보여주는 디자인”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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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색 콩으로 깨끗한 이미지 전달

식품의 색깔은 소비자가 실제 맛을 보기 전에 맛에 대한 인상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다. 풀무원은 나또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콩이 최대한 노랗게 보이도록 만드는 데 초점을 맞췄다. 그래서 삶은 콩 중에서도 최대한 색깔이 투명하게 노란 콩을 선별하고 있다.

정재훈 DM은 “콩을 재료로 한 기존 식품군 중에 두부와 메주가 있다면 요즘 사람들은 메주보다 두부를 훨씬 더 자주 먹으니까 콩 식품이라고 하면 두부처럼 맑은 색깔을 기대한다. 갈색에 가까운 메주보다는 두부 색깔에 가깝도록 깨끗한 콩을 선별하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고 설명했다.

제품 생산 단계에서부터 시각적 익숙함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것이다. 소스의 색깔도 소비자가 받을 시각적 인상을 고려해 최적의 채도로 맞춘다. 정 DM은 “겨자 소스를 예로 들면 색깔이 너무 노란색이면 소비자들이 ‘인공적이다’라고 생각하고 그렇다고 색깔이 너무 옅으면 ‘재료를 너무 조금 넣은 거 아니야?’라고 오해할 수 있다. 그 중간의 적정한 색깔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재료 특성상 소비자들이 원하는 색깔을 내지 못할 때도 있다. 예컨대 최근 출시된 와사비 나또의 경우 소스의 색깔을 정하는 게 어려운 과제 중 하나였다. 와사비 소스는 옅은 갈색빛을 띠는데 와사비가 빛과 산소를 만나면서 산화됐기 때문이다.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사람들은 갈색 와사비보다 초록색 와사비가 더 신선하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갈색빛 와사비를 보고 상한 게 아니냐는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그렇다고 자연 와사비에 초록색 색소 첨가물을 넣을 수도 없었다. 풀무원은 합성 착향료, 합성 보존료, 합성 감미료를 넣는 것을 회사 차원에서 금지하고 있다.

이에 마케팅 부서가 낸 아이디어는 소스 대신 소스가 담기는 투명한 비닐 필름에 초록 인쇄를 입힌 것이다. 실제로 이런 인쇄가 빛에 의한 산화도 일부 방지할 수 있고, 초록빛으로 비친 와사비를 보면서 소비자들은 신선하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정재훈 DM은 “소스 필름을 바꾸는 한편 연구소에서는 와사비가 산화되는 요인을 연구해 최근 밝혀냈다”며 “제품 출시 이후에도 고객의 감각적 반응을 체크하면서 제품과 디자인의 개선 요인을 찾는다”고 말했다.

이너 트레이로 끈적임 없애
최근 풀무원은 나또 전용 용기 안에 나또를 덮었던 얇은 비닐(필름 피막 포장 방식)을 플라스틱 재질의 별도 속뚜껑, 일명 이너 트레이(Inner Tray)로 교체했다.(사진) 정재훈 DM은 “기존 비닐 포장은 벗겨내면 콩이 달라붙어서 일일이 떼어 내야 해 불편했다”며 “지금은 뚜껑을 탁 떼면 아무것도 묻어나지 않아 훨씬 편리하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나또에 거부감을 느끼는 이유 중 하나가 특유의 끈적임이다. 손에 묻었을 때 미끈미끈한 촉각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너 트레이 도입으로 나또가 손에 묻는 것을 최소화할 수 있게 됐다.

정재훈 DM은 “나또 용기에 이너 트레이를 장착한 것은 세계 최초”라며 “디자인 혁신이 국내뿐 아니라 향후 서양 사람들도 나또를 손쉽게 접할 수 있도록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풀무원 나또는 현재 미국과 중국, 아랍에미리트 등에 수출되고 있다.

고소한 냄새로 어린이 고객 타깃
풀무원은 중장년층 위주인 나또의 타깃을 젊은 층으로 확대하기 위해 다양한 제품군을 내놓고 있다. 와사비, 유자 소스, 흑초 콜라겐 소스 나또는 20∼30대 초보자들을 타깃으로 개발한 제품이다. 최근에는 어린이도 맛있게 나또를 즐길 수 있도록 어린이용 제품인 ‘꼬마나또’도 출시했다.

꼬마나또는 아이들의 평소 식습관을 반영해 김조림간장과 버터간장 같은 소스를 곁들였다. 맛도 맛이지만 냄새를 잡는 데 훨씬 더 신경 썼다는 후문이다. 아이들은 평소 집에서 김조림이나 버터간장을 밥에 비벼 주면 잘 먹는다. 아이들이 김조림과 버터간장 대신에 자연스럽게 나또를 밥과 비벼 먹을 수 있도록 버터의 ‘고소한’ 냄새를 살리는 데 주력했다.

꼬마나또는 기존 용기의 디자인을 유지하면서 용량만 아이들용으로 줄였다. 정재훈 DM은 “재밌는 현상은 ‘돌돌돌’ 소리가 나니까 아이들이 나또 콩을 직접 섞는 것을 좋아한다는 점이다. 나또는 용기를 뒤집어도 끈적여서 잘 안 쏟아지기 때문에 엄마들도 걱정 없이 맡길 수 있다”고 말했다.

풀무원은 원조와 차별화된 한국형 나또 용기를 감각적으로 디자인해 국내 일반 소비자들에게 나또의 효능과 맛을 소개하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금까지 표준적인 입맛을 잡으려고 노력했다면 앞으로는 마니아의 취향도 만족시킬 수 있도록 제품군을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정재훈 DM은 “최근 일본 출장이나 여행 경험이 많아지면서 일본식 나또를 직접 체험한 소비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일본식에 가까운 ‘냄새가 강한’ 나또도 출시할 계획이다. 앞으로 5년 내 나또 시장이 500억 원 규모를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배미정 기자 soya1116@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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