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월 10일 르몽드는 1면 기사로 다농이 프랑스에서 1700명, 유럽 전역에서 총 3000명의 인력을 감축할 계획이라고 대서특필했다. 이로 인해 프랑스에서 부동의 1위를 달리던 유럽 최대 식음료 회사 다농은 큰 위기를 맞았다. 이 보도는 소비자와 정계로부터 거센 비난을 불러 일으켰고, 급기야 다농 제품에 대한 대규모 불매운동을 촉발시켰다.
전직 기자 출신인 인시아드(INSEAD)의 마크 헌터 부교수는 “이 일로 프랑스에서 칭송 받던 기업 다농은 갑자기 노동 문제에 휩싸였을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유례없는 위기에 직면했다”면서 “우리는 다농이 그들에게 닥친 위기의 심각성을 제대로 알지 못했고 이런 위기와 관련한 이해관계자(stakeholder)의 영향력 또한 낮게 평가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주요 언론들은 불매 운동으로 다농의 매출이 10∼20% 감소하고 주가도 대폭 하락했다는 추측성 기사를 보도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다농의 최고경영자(CEO)인 프랑크 리부는 “전 세계적으로 매출이 7% 상승했다”며 “폭풍은 지나갔다”고 주장했다. 언론들은 이 말을 믿고 불매운동의 영향에 대해 더 이상 캐내려 들지 않았다. 그러나 다농의 발표에 대해 재계는 의문을 제기했다. 금융 분석 매체들이 의문의 수위를 높여가자 이러한 의심은 계속해서 다농에 영향을 줬다.
헌터 교수는 “다농처럼 공식적으로는 한 기업의 위기가 끝났다 해도 실제 현실에서는 그 여파가 길게 꼬리를 드리우는 경우가 많다. 이 꼬리는 위기가 한창일 때 이에 관한 이해관계자들의 영향을 받는다”라고 덧붙였다.
당시 프랑스에서 논쟁의 초점은 소비자 불매운동이 사상 처음으로 성공했느냐 아니냐에 대한 것이었다고 헌터 교수는 설명한다. 비록 불매 운동이 애초에 목표한 대로 다농의 비스킷 공장 2곳의 문을 닫게 하지는 못했지만 프랑스 내 다농의 매출에 큰 타격을 줬다. 뿐만 아니라 다농의 공급망을 교란한 극렬 노조에도 큰 힘을 실어 줬다. 이 사실을 안 금융 분석가들은 다농 경영진의 신뢰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결국 다농의 주식 가치는 크게 하락했다.
‘다농 불매운동의 승자는 누구인가’를 주제로 한 사례 연구에서 헌터 교수와 그의 공동 연구자 마르크 르 메네스트렐, 인시아드의 앙리 클로드 드 베티니 석좌교수는 다농에 대한 소비자 불매운동이 경영진과 이해관계자 간 갈등을 야기하는 데 성공했다고 결론지었다. 매출이 얼마나 감소했건 간에 불매운동 참여자들은 다농을 다른 이해관계자들과 적대적 관계에 놓이게 함으로써 회사 이미지에 커다란 손상을 입혔다. 이런 의미에서 불매운동 참여자들이 승리했다고 할 수 있다.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은 이해관계자가 소유한 매체는 여타 언론 매체보다 이러한 위기에 훨씬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언론 매체는 사람들에게 위기 상황에서 무엇이 중요한지에 대해 말할 수는 있지만 무엇을 하라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러나 금융 분석 매체와 같은 이해관계자가 보유한 미디어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하라고 직접 말한다. 예를 들어 금융 분석가가 사람들에게 ‘사라, 팔아라, 보유하라’고 말하면 이것은 완전히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
이는 기업의 위기 커뮤니케이션 전략이 이해관계자 중심의 관점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즉 단순한 메시지 전달이 아니라 주요 이해관계자와의 대화를 심화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위기 관리는 단지 여론 범위에서 회사의 적들을 이기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헌터 교수는 “이제 경영진이 회사 외부에서 나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복잡하고 다차원적인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재계뿐 아니라 정계에서도 사람들이 더 이상 주어진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상황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