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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DNA와 글로벌 전략

거친 사나이 내세운 영국 ‘라파’ 무인 문화의 색슨DNA가 반했다

조승연 | 160호 (2014년 9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 마케팅,인문학

세계의 여러 국가와 지역의 문화적 특징을 분류할 때 또 하나 고려할 만한 것은 바로문인 문화, ‘무인(전사) 문화냐의 구분이다. 프랑스의 파리, 한국과 중국은 대체적으로문인 문화권이며 영국과 프랑스 서남부, 동아시아의 일본 등은무인 문화권에 속한다.

육체적인 강인함과 위험 감수의 정신으로 대표되는 무인 문화 DNA를 가진 사람들은 짧고 굵게 살다간 사람들을 동경하고 롤모델로 삼으며밖으로 나가 당신을 던지라는 메시지에 열광한다. 반면 문인 문화 DNA를 가진 사람들은 일체의 폭력성, 육체적인 감각과 아름다움을 무시하며균형 잡힌 생각사색의 힘을 더 중시한다. 이 같은 차이를 알고 접근하는 것도 글로벌 마케팅 전략 수립에 큰 도움이 된다.

 

 

 

 

편집자주

인종, 문화, 종교, 정서, 안목 등이 각양각색인 글로벌 시장에서 현지 소비자의 호감을 얻고 수익을 만들려면 인문학적 식견이 필요합니다. 우리나라 고객에게는 최고로 아름다운 디자인의 제품이 다른 나라 고객에게는 혐오감을 주거나 엉뚱한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습니다. 영미 지역과 동남아 문화에 정통한 언어 전문가이자문화 전략가인 조승연 작가가문화 DNA와 글로벌 전략을 연재합니다.

 

‘무인 문화문인 문화 DNA 차이

영국 스포츠 의류 회사 라파(Rapha)는 사이클 전문 의류 회사다. 최근 급성장하면서 기존 사업아이템에 더해 머그컵 등 디자인 생활용품까지 내놓으면서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얇은 사이클복 상의 하나에 30만 원 내외를 호가하는 고가 브랜드지만 영어권, 서구권 국가들은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주말에 자전거 타고 나가면 라파 로고가 새겨진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1930년대의 이탈리아 전통 운동복 특유의 고급스런 느낌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 제품을 긴 전통을 가진 소위헤리티지 브랜드로 착각하지만 라파의 역사는 불과 10년 남짓이다. 로테르담의 한 디자이너가 유럽을 여행하면서 사이클 스포츠의 역사에 큰 감동을 받아 10여 년 전에 창업해서 크게 성공한 최신 벤처기업 중 하나다. 프랑스에서 1950년대 인기를 끌던 부도 난 사이클 팀의 이름을 인수해서 시작했다.

 

라파사의 마케팅 모토는 ‘Ex Duris Gloria’이다. ‘딱딱하고 아픈 데서 영광이 온다라는 로마시대의 속담이다. 이 회사의 홍보 비디오는 항상 비나 눈이 내리치는 악천후 속에서 거친 산이나 비포장 도로와 거친 산길을 진흙과 땀으로 범벅이 돼 타고 넘는 자전거 라이더의 모습을 보여준다. 재미있는 것은 제품가격이 고가여서 이 상품의 주 고객층은 실제로 피땀을 흘리며 연습에 매진하는 스포츠인들이 아니라 미국이나 영국의 성공한 여피(Young Urban Professionals, 도시 거주 젊은 전문직 종사자) 층이라는 점이다. 영국에서는 성공한 중년 전문직들이 라파 사이클복을 입고 자동차가 아직 달리지 않은 이른 새벽에 런던 리전트파크에서 정기적으로 모여 함께 자전거를 타거나 사이클 경기로 유명한 알프스의 휴양지에서 만나 비즈니스와 사교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소위라피아(라파와 마피아의 합성어)’라는 새로운 사회계급을 형성했을 정도로 라파는 사회적 아이콘으로 자리잡았다. 피와 땀, 고행을 엘리트의 상징으로 여기는 무사 문화 DNA의 전형을 매우 영리하게 활용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영국은 로마제국이 멸망한 후 독일에 거주하던 앵글로색슨족 추장들이 각각 수십 명의 전사들을 이끌고 이주해 서로 더 좋은 땅을 차지하려는 영토싸움을 벌이며 갈등과 통합을 통해 하나의 국가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색슨족이라는 민족 이름 자체가 그 민족이 즐겨 쓰던짧은 칼을 뜻하는 단어인데 이들은 무기 이름을 종족 이름으로 삼을 정도로 호전적이었다. 다른 민족과도 당연히 작은 이권을 놓고 치열하게 싸웠지만 같은 부족 내에서도 싸움이 끊이지 않았다. 만약 추장이 조금만 약한 모습을 노출시켜도 젊고 건강한 누군가가 도전해서 그를 죽이고 추장 자리를 빼앗는 일이 당연할 정도였다. 영국이라는 나라가 독일의 여러 민족들이 이주해서 새로운 나라로 자리를 잡자 유럽 내에서도 가장 순수한 전사 문화 민족이라고 할 수 있는 북유럽의 바이킹족이 침략해 왔다. 이렇게 해서 바이킹과 게르만족이 뒤섞여 살면서 국가의 기틀이 조금 더 잡혀갔다. 1066년 프랑스의 노르망디 공작의 영국 정복으로 프랑스에서 시작된기사도라는 무사정신을 영국 귀족사회의 기반으로 구축하면서 국가다운 국가로서의 정체성이 완성됐다. 이런 건국 스토리를 갖고 있는 영국에서는 어린아이들에게 셰익스피어의 <헨리 5>, 월터 스콧의 <아이반호> 같은 기사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가르치고 읽혀왔다. 어린 시절부터 기사 정신과 무사 문화를 머리에 각인시켜 강인한 체력과 호전적인 태도로 남에게 군림하는 민족적 자부심을 만들어 준 것이다. 이로 인해 영국인들은 무사들이 역사 속 최고의 영웅으로 추앙받는 무사적 문화 DNA를 갖게 됐다. 그것이 넘쳐 19세기에는 세계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대제국이 되기도 했다.

 

중국 영화아편전쟁은 중국 공산당의 지원을 받아 제작됐는데도 제국으로 성장해 중국을 침략한 영국과 침략 당한 청나라의 상황을 균형 있게 비판한 명작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필자는 이 영화에서 흥미로운 장면을 봤다. 난생 처음으로 영국인과 함께 식사를 하게 된 청나라 고급 관리가 서양식 식사예절에 대해호전적인 민족답게 피가 뚝뚝 떨어지는 죽은 동물을 삼지창과 사람 죽이는 칼로 식탁 위에서 썰어 먹는다라며 충격적인 표정으로 중얼거리는 장면이 바로 그것이다.

 

동아시아 3국 중 일본은 사무라이를 주축으로 하는 무사 문화의 뿌리가 깊다. 그러나 중국과 한국은 대표적인 문인 문화DNA를 가지고 있다. 중국은 당나라 이후부터 무인 세력보다 과거 시험을 통과한 문인들이 정치, 경제를 장악한 핵심적인 권력 계급이 됐다. 실제로 중국에서 출토되는 유품들을 보면 당나라 초기만 해도 말을 타고 사냥을 하거나 서양의 폴로와 비슷한 거칠고 위험한 운동을 즐기는 모습을 묘사한 예술 작품이 많다. 그러나 당나라 후기와 송나라로 접어 들면서 산수화, 서예, 다기 등 실내에서 머리 쓰며 즐기는 문화 생활 관련 유품들이 압도적으로 많아진다. 우리나라 역시 고려 후반기에는 무인 시대가 잠시 유지됐지만 조선 이후로는 문인 중심 사회가 됐다. 문인 문화는 체력 단련보다는 머리를 많이 쓰는 공부에 열중한다. 문인들이 오랫동안 미적, 윤리적 기준과 소비 패턴을 만들어 온 지도 계층은 육체의 강인함과 거기서 나오는 자존감, 경쟁심, 성욕, 폭력성을 오히려 멸시해 왔다. 그 대신 지성을 인간미의 표본으로 삼는다. 오랫동안 전사들이 사회의 지배층으록 군림해온 무인 문화 DNA를 가진 사람들은 오늘날 영미 엘리트들이라파같은 브랜드를 선호하는 것처럼 육체적 힘의 극한 도전과 초인적 고통을 견디는 능력을 가장 멋진 인간의 모습으로 생각한다. 이러한 문인과 무인 문화 DNA 차이는 오늘날까지 소비 패턴과 조직에서의 행동 방식 등을 좌우해 여전히 비즈니스의 여러 분야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문인과 무인 문화의 상하 관계 개념 차이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몇 세대 동안 지속됐던 고대 그리스와 페르시아 간의 전쟁 기록 분석가로 유명하다. 그는 특히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리더십을 비교했다. 고대 그리스 최고의 무사국가였던 스파르타의 왕 리오네다스는 페르시아의 대군을 계곡에서 막으려고 300명의 최정예 군사들을 파견했다. 당연히 왕 자신이 참전해 첫 번째 줄에 서서 용감하게 싸웠다. 왕은 부하들에 앞서 가장 위험한 적진에 뛰어들어 부하들이 따라오도록 한 것이다. 그에 비해 페르시아는 별점을 치고 달력을 정리하는 지식 계층인마지들이 전투를 지휘했다. 왕은 전투 현장에서 뚝 떨어진 곳에 텐트를 치고 그곳에서 전략을 짰을 뿐 스스로 전투에 참여하는 법이 없었다. 왕은 조직의 수뇌부 역할을 한다는 이유로 항상 안전한 후방에 주둔하고 아군의 전세가 불리해지면 가장 먼저 안전 지대로 대피했다. 이러한 리더십 차이는 오늘날까지 전략만 제공하는 문인과 솔선수범하는 무인 리더십 차이로 이어지고 있다.

 

수적으로 열세한 영국군의 퇴로를 열고 프랑스 기사들을 전멸시킨 100년 전쟁의 명 전투, 안쟁쿠르전투의 영웅헨리 5는 기사적 리더의 표본이다. 이 왕의 이름을 딴 셰익스피어의 연극으로도 유명하다. 프랑스 성벽에 갈라진 틈이 생겼으나 포탄과 화살 공격으로 병사들이 진격하지 못하자 말을 타고 성벽 앞으로 먼저 가성벽의 틈으로 한 번 더! 내 친구들이여!”라고 외친다. 이 장면은 영국에서 리더다운 모습의 표본으로 아직도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교육시킨다. 이처럼 전사 문화 DNA를 물려받은 사람들에게는리더는 가장 힘들고 위험한 일을 도맡아 하는 사람이며 계획만 짜고 나타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현장에서 선두에 가장 먼저 나서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우리나라에 IMF 외환위기가 닥쳤을 때 미국 자본이 대거 국내로 들어왔는데 당시 필자와 교류했던 한국 CEO들은 미국인들의 경영 방식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우리나라 대기업보다 규모가 수십 배 이상 큰 미국의 글로벌 대기업에서 투자설명회를 열 때마다 담당 직원들보다 최고책임자가 먼저 현장으로 나와 손수 노트북을 설치하고, PPT 자료를 점검하고, 조명이나 회의실 규모 등을 확인하는 모습을 봤다는 것이다. 반면에 당시 필자와 교류하던 한 한국의 상장 회사 CEO 는 리더십을 오리에 비유했다. “오리는 물 위에 한가로이 둥둥 떠 있고 아래에서 열심히 발을 움직여주는 사람들이 많아야 한다. 그런 조직이 가장 바람직하다.”

 

“윗사람이 솔선수범해서 적진으로 먼저 돌진해야 아랫사람이 따른다라는 전사 문화 리더십과윗사람은 계획을 세우고 아랫사람이 윗사람의 의도를 받들어 부지런히 발을 움직여 윗사람은 오리처럼 둥둥 떠 있게 해야 한다는 문인 문화 리더십 개념의 대조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뛰어난 품질 관리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던 일본의도요타 프로덕션 시스템은 극동(동아시아)의 거의 유일한 무인 문화를 가진 일본식 무사 문화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도요타식 품질 관리의 핵심 메시지는겐치겐부츠. 한문으로 표현하면현지현물(現地現物)’, 직접 가서 봐라. 도요타 생산 과정을 개발한 다이치 오노는 매니저들을 시스템에 적응시키기 위한 훈련에서 공장 바닥에 분필로 하얀 동그라미를 그리고 현장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을 모두 글로 적으라고 했는데 아주 디테일한 부분까지 다 적기 전에는 과정을 수료시켜주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철학은 1980년대, 로마로부터 유럽을 거쳐 전사 문화를 이어받은 미국에서 가장 열렬한 환영을 받았고겐치겐부츠의 발음을 반영해 ‘Get your boots on (게챠 부츠 온: 보호화를 신어라)’라는 장난스런 이름으로 불리며 많은 미국 회사들이 일본의 도요타식 경영 방식을 도입하게 만들었다. 이 경영 시스템을 도입한 미국 회사에서는 경영자가 적어도 일주일 평균 45∼60분을 생산 현장을 돌아다니도록 장려한다.

 

무사 문명의 가치관

라파 사이클복 브랜드는 서양 전사 문화에 깊은 뿌리를 두고 있다. 이 회사 창업자는 무력으로 개인의 자유와 제국의 특권을 지켜 온 무사 문화는 질긴 생명력을 숭상한다. 또 편안함을나약함으로 경멸하는 사고 방식이 서구인들, 특히 영국인들에게 깊이 박혀 있음을 정확히 간파해 마케팅 방향을 찾았다.

 

오늘날까지도 고대 그리스 최고의 전사 문화로 인정받는 스파르타는 어린아이를 7살 때 무조건 부모에게서 떼어 내 집단 훈련소로 보냈다. 훈련소에서는 혹독한 추위에도 장갑도 끼지 않은 채 쉬지 않고 레슬링을 하고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도록 하는 강 훈련을 시켰다. 이들이 일정 기간의 훈련을 마치고 훈련소를 수료한 다음 스파르타 시민으로 인정받으려면 스파르타의 오랜 지배를 받아 스파르타인에 대한 증오심으로 가득한 인근의 노예 마을에 홀로 잠입해서 그 동네 사람의 목을 따 와야 했다. 고대 그리스 이후 유럽을 제패한 로마제국도 편한 인생을 추구하는 사람을가치관이 삐었다라며 대놓고 경멸했다. 우리가 흔히고급스러운의 의미로 사용하는 Luxury의 어원은뼈가 삐었다라는 라틴어 단어 Luxus에서 나왔다. 당시 기록을 보면 푹신한 침대에서 잠을 자거나 배가 부르게 밥을 먹는 정도도 Luxus라고 지칭하며 경멸할 정도로 편한 생활에 대한 극심한 경계심을 드러냈다.

 

유럽 중세기의 기사들 역시 편한 생활을 끊임없이 경계했다. 이탈리아 시인 보이아르도의사랑에 빠진 올란도라는 작품을 보면 최고의 기사 올란도는 자기의 칼과 말에 대해서는 애정이 강하지만 돈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다. 어차피 한 전쟁터에서 다음 전쟁터로 떠돌며 살아야 했기 때문에 좋은 물건 사 봤자 이동 무게만 늘었을 것이다. 또 올란도는 비가 오건, 눈이 오건, 추운 산 봉우리건, 험한 산골이건 들고 다니는 방패를 베개 삼아 어디서나 쉽게 잠이 들었다. 18세기 말부터 영국 기사도들의 삶을 소재로 한 소설을 많이 쓴 스코틀랜드의 소설가 월터 스콧의 대표작 <아이반호> 등은 피와 땀과 흙으로 범벅이 돼서도 적군에게 항복하지 않고 죽을 때까지 싸우는 기사가 가장 멋진 인간의 모습으로 묘사돼 있다. 뛰어난 전사는 인생의 안락함에 미련이 없어야 삶과 죽음이 순간적으로 교차하는 전투의 리스크를 용기 있게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이 전사 문화의 전통적인 사고 방식이다.

 

이런 사고방식들은 교육을 통해 대를 이어 전수돼 왔다. 미국과 영국의 공교육에서는 부유한 동네에 있는 학교나 들어가기 어려운 귀족 사립학교일수록 방과후 서너 시간씩 럭비, 미식축구, 라 크로스 같은 잔혹한 운동을 강제로 시키며 학생들에게 정신과 육체의 강인함을 길러준다. 지금도 영미의 일반 중고등학교, 대학교에서는 학생의 육체미가 그 학생의 호감도를 평가하는 중요한 척도다. 육체미가 교사와의 관계에서부터 교우들 간의 인기까지 좌우하며 심지어 대학 입시에도 반영된다. 동양의 무사 국가인 일본도 여전히 겨울 교복이 반바지인 학교가 많고 학교 간 치열한 스포츠 경쟁 구도를 만들어 학생들에게 육체적 훈련의 고통과 패배의 쓴맛에 익숙해지는 혹독한 교육에 매진한다.

 

자기의 필요량에 넘치는 고용량 타이레놀을 복용해 사망한 사람들의 숫자가 55000명에서 8만 명 정도 된다고 발표했다. 그런데도 미국인들은 무조건강하다라는 수식어가 들어 있는 제품을 선호한다.

 

이렇게 오랫동안 육체와 정신의 강인함을 삶의 이상적 태도로 교육받아 온 소비자들이 강력한 제품에 끌리는 것은 당연하다. 예를 들면 미국의 제약회사 J&J의 두통약 브랜드 타이레놀은 일반명사로 쓰일 정도로 높은 인지도를 가지고 있으면서 일년에 1750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리는 J&J의 효자 상품이다. 타이레놀은 몸집이 큰 사람들과 일반 타이레놀로 통증을 잠재울 수 없을 정도로 심한 두통을 호소하는 환자들을 위해 타이레놀 Extra-Strength 버전을 출시했다. 미국 소비자들은더 세다라는 문구에 끌려 본인에게 전혀 필요 없는데도 굳이 이 버전을 구입했다. 미국 질병센터와 식약청 연구에 의하면 1년에 자기의 필요량에 넘치는 고용량 타이레놀을 복용해 사망한 사람들의 숫자가 55000명에서 8만 명 정도 된다고 발표했다. 그런데도 미국인들은 무조건강하다라는 수식어가 들어 있는 제품을 선호해 미국 내의 많은 약국에서 일반 강도의 타이레놀은 아예 판매하지 못할 정도로 Extra-Strength만 찾는다고 한다.1 미국 식약청의 전문가들은 이런 위험성 때문에 아예 ‘Extra-Strength’ 라인을 완전히 없애고 약의 진통 성분 용량도 1000mg에서 일반 타이레놀 수준인 650mg으로 줄이도록 권유했다. Extra-Strength는 처방전이 있을 경우에만 판매하도록 권장했다. 미국 소비자들의 심리를 잘 아는 J&J 사에서는 벌금을 내더라도 이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여 계속 논란 중이다.

 

이렇게 편안함을 경멸하는 무사적 문화 DNA는 무사 문화에서 온 조직원들의 행동 패턴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미국인들은 매일 같은 패턴으로 돌아가는 일에 쉽게 싫증을 느끼며도전할 기회를 주는 직장 (Challenging Work Environment)’, 즉 자기의 지적 능력이나 경영 노하우가 어디까지인지 최대한 큰 책임이 주어지는 일자리를 선호한다. 자기가 스스로 느끼는 능력보다 더 쉬운 일만 주는 직장에 쉽게 싫증을 느끼고 이직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뜻이다.

 

무인 문화의 인생관

전사는 삶과 죽음이 오가는 전쟁터를 누비는 것이 직업인 만큼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각오가 분명해야 한다. 지난해 유럽 및 미국에서 인기를 휩쓴 서양 역사 드라마 중 하나인바이킹은 깊은 전사 문화 DNA를 잘 표현해 무인 문화 DNA의 서양인들을 매료시킨 것으로 평가받는다. 오래 사는 것, 즉 장수가 인생의 큰 목표인 우리와 달리바이킹족은 오래 편안하게 살다가 집에서 편안하게 죽는 것을 수치로 여긴다. 드라마바이킹에는 주인공 라그나르 족장이 원정 전쟁에 나서는데 한 백발 노인이 나이가 많이 들도록 집에 들어 앉아 늙어 죽기는 싫다며 꼭 전쟁터에 데려가 달라고 간절히 부탁하는 장면이 나온다. 원래 바이킹들은 전쟁터에서 싸우다 죽어야만 전사들의 천국인발할라에 입성할 수 있다고 믿으며 살았다. 그것을 잘 아는 라그나르는 노인의 간청을 받아들여 원정에 참여시킨다. 결국 노인은 이 전쟁터에서 적의 칼을 맞아 숨진다. 노인은 라그나르 곁에서 하늘을 쳐다보며발할라라는 단어를 속삭이며 환히 웃으며 눈을 감는다.

 

중세 유럽에는 안방에 해골이나 부패 중인 시체 모습을 조각해 모셔두는트란지라는 전통이 있었다. 또 집무실 책상 위에도 진짜 해골을 올려놓고 나도 곧 죽을 것이라는 생각에 익숙해지는 훈련을 하며 살았다. 이런 이유 때문에 유럽을 비롯한 북미 등 서양인들은 지금도 여전히 젊을 때 목숨 건 위험을 감수하면서 용감무쌍하게 살다가 극적으로 산화한 사람들을 숭배한다. 이는 존경하는 스타나 롤모델로 삼는 아이콘들의 특성이 문인 문화권과는 달라진다는 의미가 된다. 문화 상품 수출이나 광고의 효력 등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다. 예를 들면 자기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활기찬 젊은 시절 스포츠카 과속 사고로 죽은 제임스 딘, 로큰롤 스타 중 젊은 시절에 권총 자살을 한 커트 코베인 등은 오늘날까지도 미국 젊은 층에서 인기가 높은 신화적 아이콘이다. 지금도 서양 대중문화 애호가들은 젊은 시절 많은 인기를 누려 잘못된 남녀관계, 마약, 우울증에 빠진 십대 스타들에게 열광한다. 무사 문화 DNA를 가져 자기는 그렇게 못 살았지만짧게 굵게산 사람들에 대한 신화적 공경심이 있고, 그런 사람들을 스타로 추앙하는 사고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동아시아권이지만 서양인들과 같은 무사 문화 DNA를 가진 일본은 이런 젊음의 강렬함을 상품화해 세계 시장을 석권하기도 했다. 스포츠 오토바이 시장 공략이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미국의 젊은 층들이 선호하는 가와사키 닌자 브랜드와 스즈키 가타나 브랜드는 이름부터가 자객과 검의 이름을 따 왔고 스피드에 모든 것을 건 공격적인 디자인을 입혔다. 또 그동안 스포츠 오토바이 시장을 점유하고 있던 서양 업체들보다 젊은이들에게 쉽게 구매할 만한 가격으로 승부를 걸어 1990년대 서구 시장에 성공적으로 침투했다.

 

이런 무사 문화의 특성은 대중 설득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수상 윈스턴 처칠이 국민들에게나는 당신들에게 피와 고통과 땀과 눈물밖에 줄 것이 없다라고 했는데 이 말은 영국 젊은이들의 무사 문화 DNA를 자극했다. 그 결과 영국 젊은이들이 앞다투어 전쟁터로 나가 영국의 승리를 이끌었다. 처질의 이 연설은 지금까지 영국 정치 역사상 최고의 명연설로 전해진다.

 

 

문인 문화의 DNA, 그리고무미의 맛

프랑스 철학자 프랑수아 줄리앙은 중국 문화를 연구하는 서양 학자로 <무미예찬>이라는 저서에서 중국 문화를 분석했다. 중국의 제사문화에 사용되는 탕에는 진한 맛이 하나도 없으며 중국 고전에서는 물의 맛을 최고의 맛으로 묘사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려는 것은 여러 문제를 객관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문인 문화의 특징이라고 분석했다.

 

문인이 오랫동안 집권했던 나라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에게는 육체미가 있는 사람보다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들이 중요한 롤모델이었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에서는 사무실에 오래 앉아 있으면일을 많이 한다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무사 문화를 가진 미국이나 일본에서는겐치겐부츠경영 철학처럼 현장을 분주히 돌아다니며 발로 많이 뛰어야 일을 많이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극명한 두 문화의 차이는 생활 모습에서도 나타난다.

 

공부를 많이 하는 사람들은 실내 생활을 선호한다. 그래서 문인 문화 DNA를 가진 사람들은 실내에서도 햇빛을 피해 앉으며 비나 눈이 오거나 볕이 좀 강하면 외출을 삼간다. 예컨대 한국인들은 1980년대나 1990년대에 아파트 건설사들이 제공한 발코니마저 실외 식사 공간이나 휴식 공간으로 이용하지 않고 안 쓰는 물건을 보관하는 창고로 사용하거나 아예 확장공사를 해서 실내 공간을 넓히면서 없애버렸다. 반면에 무인 문화 DNA를 가진 사람들은 선탠을 할 수 있는 정원이나 밖이 훤히 내다 보이는 전망 좋은 창을 중요시한다. 아파트나 실내 집기 판매를 주업으로 하는 기업이 참고해야 할 문화 차이일 것이다.

 

문인들은 신체적 힘보다 정신적 감미로움을 즐긴다. 그래서 오늘날까지 우리나라 음식 광고에는부드러운 맛이라는 표현이 자주 쓰인다. 심지어 원래 강한 맛 때문에 즐기는 기호식품인 담배나 소주 브랜드에도마일드’ ‘라이트’ ‘이슬’ ‘후레쉬같은 담백한 수식어가 붙는 경우가 많다. 이 역시 대상에 따른 상품 성격이나 광고를 제작할 때 반드시 참고해야 할 사항이 아닌가 싶다.

 

결론

사회가 다각화된 오늘날 문인 문화와 무인 문화를 지역 중심으로 나누기는 어렵다. 하지만 사고의 깊은 곳에는 전통과 교육의 영향으로 경계는 미세하지만 분명한 두 문화의 차이가 곳곳에 존재한다. 다시 강조하지만 문화 DNA는 국경으로 나뉘는 것은 아니다. 프랑스의 경우 예로부터 기사 계급이 성주가 돼 정착해온 남서 지역사람들은 동네 사람들끼리 럭비를 즐기고, 기름진 음식, 폭력적인 스포츠, 젊고 아름다운 사람에 대한 숭상 등 무인 문화가 여전히 강하게 살아 있다. 그에 비해 프랑스 왕실에서 근무할 지식인들을 교육하는 대학촌으로 발전한 파리는 일본 음식의 무미를 즐기며 야외활동을 즐기기보다 실내 생활을 선호하며 건강미보다 연륜 있는 사람의 정신 세계를 존경하는 문화가 강하다.

 

한 세대의 문인·무인 성향을 결정짓는 것은 무엇보다 그 세대가 배워 온 역사관이다. 예를 들어서 독일과 이탈리아의 경우 1920∼1930년대 유난히 로마제국의 역사와 게르만 전사들의 가치관을 국사책에서 많이 다뤘고 그 결과 무사 문화가 너무 격해져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는 극단적인 상황까지 만들었다. 미국도 카우보이들이 인디언과 싸우며 개척하던 시대를 영웅적으로 다룬황야의 7류의 영화를 보며 자란 세대와 카우보이들이 원주민들을 죽인 끔찍한 침략자로 다뤄진늑대와 함께 춤을을 보고 자란 세대의 사고방식은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인간이 홀로 자연과 사회에 맞서 싸우는 모습을 여전히 멋있어 하는 전사 문화 사람들과 다양한 사항을 고려하며 현명하게 대처하기 위해 생각을 많이 하면서 사는 모습을 멋지게 여기는 문인 문화의 차이는 분명히 크게 변하지 않고 존재한다. 이를 제대로 조사 분석해 본다면 경영인들이 가장 골치 아파하는 대상에 맞는 상품 개발, 마케팅 방향 등을 찾기가 한결 쉬워질 것이다.

 

조승연 문화전략가 scho@gurupartners.kr

필자는 고교 시절 미국전국라틴어경시대회에서 우수상(Magna Cum Laude)을 받았으며 미국 고등학생 문예지에 시와 단편소설이 실리기도 했다. 뉴욕대 스턴 경영대학원(NYU Stern School)을 졸업한 뒤 프랑스 최고 미술사 학교인 에콜 드 루브르에서 2년간 수학했다. 영국계 컨설팅회사 UnfroZenMind에서 외부 상임이사를 지냈으며 한국무역협회 등 국제 마케팅 리서치에 참여했다. 현재 오리진보카 대표로 <피리부는 마케터> <이야기 인문학> 등 다수의 저서를 출간했다.

 

  • 조승연 | -(현)오리진보카 대표
    -(현)문화전략가
    -UnfroZenMind 외부 상임이사
    -국제 마케팅 리서치 참여
    -<피리부는 마케터>, <이야기 인문학> 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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