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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DNA와 글로벌 전략

거친 사나이 내세운 영국 ‘라파’ 무인 문화의 색슨DNA가 반했다

조승연 | 160호 (2014년 9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 마케팅,인문학

세계의 여러 국가와 지역의 문화적 특징을 분류할 때 또 하나 고려할 만한 것은 바로문인 문화, ‘무인(전사) 문화냐의 구분이다. 프랑스의 파리, 한국과 중국은 대체적으로문인 문화권이며 영국과 프랑스 서남부, 동아시아의 일본 등은무인 문화권에 속한다.

육체적인 강인함과 위험 감수의 정신으로 대표되는 무인 문화 DNA를 가진 사람들은 짧고 굵게 살다간 사람들을 동경하고 롤모델로 삼으며밖으로 나가 당신을 던지라는 메시지에 열광한다. 반면 문인 문화 DNA를 가진 사람들은 일체의 폭력성, 육체적인 감각과 아름다움을 무시하며균형 잡힌 생각사색의 힘을 더 중시한다. 이 같은 차이를 알고 접근하는 것도 글로벌 마케팅 전략 수립에 큰 도움이 된다.

 

 

 

 

편집자주

인종, 문화, 종교, 정서, 안목 등이 각양각색인 글로벌 시장에서 현지 소비자의 호감을 얻고 수익을 만들려면 인문학적 식견이 필요합니다. 우리나라 고객에게는 최고로 아름다운 디자인의 제품이 다른 나라 고객에게는 혐오감을 주거나 엉뚱한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습니다. 영미 지역과 동남아 문화에 정통한 언어 전문가이자문화 전략가인 조승연 작가가문화 DNA와 글로벌 전략을 연재합니다.

 

‘무인 문화문인 문화 DNA 차이

영국 스포츠 의류 회사 라파(Rapha)는 사이클 전문 의류 회사다. 최근 급성장하면서 기존 사업아이템에 더해 머그컵 등 디자인 생활용품까지 내놓으면서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얇은 사이클복 상의 하나에 30만 원 내외를 호가하는 고가 브랜드지만 영어권, 서구권 국가들은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주말에 자전거 타고 나가면 라파 로고가 새겨진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1930년대의 이탈리아 전통 운동복 특유의 고급스런 느낌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 제품을 긴 전통을 가진 소위헤리티지 브랜드로 착각하지만 라파의 역사는 불과 10년 남짓이다. 로테르담의 한 디자이너가 유럽을 여행하면서 사이클 스포츠의 역사에 큰 감동을 받아 10여 년 전에 창업해서 크게 성공한 최신 벤처기업 중 하나다. 프랑스에서 1950년대 인기를 끌던 부도 난 사이클 팀의 이름을 인수해서 시작했다.

 

라파사의 마케팅 모토는 ‘Ex Duris Gloria’이다. ‘딱딱하고 아픈 데서 영광이 온다라는 로마시대의 속담이다. 이 회사의 홍보 비디오는 항상 비나 눈이 내리치는 악천후 속에서 거친 산이나 비포장 도로와 거친 산길을 진흙과 땀으로 범벅이 돼 타고 넘는 자전거 라이더의 모습을 보여준다. 재미있는 것은 제품가격이 고가여서 이 상품의 주 고객층은 실제로 피땀을 흘리며 연습에 매진하는 스포츠인들이 아니라 미국이나 영국의 성공한 여피(Young Urban Professionals, 도시 거주 젊은 전문직 종사자) 층이라는 점이다. 영국에서는 성공한 중년 전문직들이 라파 사이클복을 입고 자동차가 아직 달리지 않은 이른 새벽에 런던 리전트파크에서 정기적으로 모여 함께 자전거를 타거나 사이클 경기로 유명한 알프스의 휴양지에서 만나 비즈니스와 사교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소위라피아(라파와 마피아의 합성어)’라는 새로운 사회계급을 형성했을 정도로 라파는 사회적 아이콘으로 자리잡았다. 피와 땀, 고행을 엘리트의 상징으로 여기는 무사 문화 DNA의 전형을 매우 영리하게 활용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영국은 로마제국이 멸망한 후 독일에 거주하던 앵글로색슨족 추장들이 각각 수십 명의 전사들을 이끌고 이주해 서로 더 좋은 땅을 차지하려는 영토싸움을 벌이며 갈등과 통합을 통해 하나의 국가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색슨족이라는 민족 이름 자체가 그 민족이 즐겨 쓰던짧은 칼을 뜻하는 단어인데 이들은 무기 이름을 종족 이름으로 삼을 정도로 호전적이었다. 다른 민족과도 당연히 작은 이권을 놓고 치열하게 싸웠지만 같은 부족 내에서도 싸움이 끊이지 않았다. 만약 추장이 조금만 약한 모습을 노출시켜도 젊고 건강한 누군가가 도전해서 그를 죽이고 추장 자리를 빼앗는 일이 당연할 정도였다. 영국이라는 나라가 독일의 여러 민족들이 이주해서 새로운 나라로 자리를 잡자 유럽 내에서도 가장 순수한 전사 문화 민족이라고 할 수 있는 북유럽의 바이킹족이 침략해 왔다. 이렇게 해서 바이킹과 게르만족이 뒤섞여 살면서 국가의 기틀이 조금 더 잡혀갔다. 1066년 프랑스의 노르망디 공작의 영국 정복으로 프랑스에서 시작된기사도라는 무사정신을 영국 귀족사회의 기반으로 구축하면서 국가다운 국가로서의 정체성이 완성됐다. 이런 건국 스토리를 갖고 있는 영국에서는 어린아이들에게 셰익스피어의 <헨리 5>, 월터 스콧의 <아이반호> 같은 기사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가르치고 읽혀왔다. 어린 시절부터 기사 정신과 무사 문화를 머리에 각인시켜 강인한 체력과 호전적인 태도로 남에게 군림하는 민족적 자부심을 만들어 준 것이다. 이로 인해 영국인들은 무사들이 역사 속 최고의 영웅으로 추앙받는 무사적 문화 DNA를 갖게 됐다. 그것이 넘쳐 19세기에는 세계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대제국이 되기도 했다.

 

중국 영화아편전쟁은 중국 공산당의 지원을 받아 제작됐는데도 제국으로 성장해 중국을 침략한 영국과 침략 당한 청나라의 상황을 균형 있게 비판한 명작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필자는 이 영화에서 흥미로운 장면을 봤다. 난생 처음으로 영국인과 함께 식사를 하게 된 청나라 고급 관리가 서양식 식사예절에 대해호전적인 민족답게 피가 뚝뚝 떨어지는 죽은 동물을 삼지창과 사람 죽이는 칼로 식탁 위에서 썰어 먹는다라며 충격적인 표정으로 중얼거리는 장면이 바로 그것이다.

 

동아시아 3국 중 일본은 사무라이를 주축으로 하는 무사 문화의 뿌리가 깊다. 그러나 중국과 한국은 대표적인 문인 문화DNA를 가지고 있다. 중국은 당나라 이후부터 무인 세력보다 과거 시험을 통과한 문인들이 정치, 경제를 장악한 핵심적인 권력 계급이 됐다. 실제로 중국에서 출토되는 유품들을 보면 당나라 초기만 해도 말을 타고 사냥을 하거나 서양의 폴로와 비슷한 거칠고 위험한 운동을 즐기는 모습을 묘사한 예술 작품이 많다. 그러나 당나라 후기와 송나라로 접어 들면서 산수화, 서예, 다기 등 실내에서 머리 쓰며 즐기는 문화 생활 관련 유품들이 압도적으로 많아진다. 우리나라 역시 고려 후반기에는 무인 시대가 잠시 유지됐지만 조선 이후로는 문인 중심 사회가 됐다. 문인 문화는 체력 단련보다는 머리를 많이 쓰는 공부에 열중한다. 문인들이 오랫동안 미적, 윤리적 기준과 소비 패턴을 만들어 온 지도 계층은 육체의 강인함과 거기서 나오는 자존감, 경쟁심, 성욕, 폭력성을 오히려 멸시해 왔다. 그 대신 지성을 인간미의 표본으로 삼는다. 오랫동안 전사들이 사회의 지배층으록 군림해온 무인 문화 DNA를 가진 사람들은 오늘날 영미 엘리트들이라파같은 브랜드를 선호하는 것처럼 육체적 힘의 극한 도전과 초인적 고통을 견디는 능력을 가장 멋진 인간의 모습으로 생각한다. 이러한 문인과 무인 문화 DNA 차이는 오늘날까지 소비 패턴과 조직에서의 행동 방식 등을 좌우해 여전히 비즈니스의 여러 분야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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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승연

    -(현)오리진보카 대표
    -(현)문화전략가
    -UnfroZenMind 외부 상임이사
    -국제 마케팅 리서치 참여
    -<피리부는 마케터>, <이야기 인문학> 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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