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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표식품 연두

소비심리 꿰뚫고 새롭게 포지셔닝 ‘요리 에센스’ 신(新)시장 열었다

최한나 | 143호 (2013년 12월 Issue 2)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허태영(성균관대 글로벌경영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Magic sauce in Spain

 

전 세계 내로라하는 셰프들 사이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여기저기 아무데나 뿌려도 맛있는 소스라는 의미에서매직 소스라는 별명도 얻었다. 지금의 연두가 완성되기까지 보낸 시간과 노력이 해외에서도 인정받는 순간이었다. 지난 1, 올해로 11회를 맞은마드리드 퓨전에서의 일이다. 마드리드 퓨전은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매년 1월 열리는 세계 최고의 요리 축제다. 세계 최정상의 셰프들과 미식가, 저널리스트들이 한자리에 모여 최신 요리기법과 트렌드, 문화 등을 공유한다. 이 행사에 참여한 셰프들은 한국의 발효기술과 그 맛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고 특히 발효를 활용해 식재료의 참맛을 끌어올리는 연두의 효과에 감탄했다.

 

연두가 해외시장을 두드리기 시작한 것은 2012년부터다. 처음부터 유럽, 그중에서도 스페인을 타깃으로 삼았다. 스페인은 미식의 나라로 다양한 재료를 활용한 식문화로 유명한 곳이다. 새로운 음식에 대한 호기심과 실험정신도 강하다. 프랑스도 후보지였으나 자신들의 요리에 자부심이 강하고 배타적인 성향을 지녔다는 점에서 뒤로 밀렸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있는 요리과학연구소 알리시아와 손을 잡았다. 한국의 전통 장을 유럽 음식에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기로 했다. 샘표의 연구원들이 파견됐고 현지 연구원들과 협업해 현지 진출 전략과 가능성을 실험하는 시도가 시작됐다. 6개월에 걸친 테스트를 통해 장을 활용한 다양한 레서피를 발굴해냈고 이렇게 탄생한 새로운 맛들이 마드리드 퓨전에서 전 세계 미식가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그중에서도 연두는음식의 맛을 한층 풍부하게 만드는 매직 소스로 인기를 끌며 잠재력을 인정받았다. 이를 통해 확보한 자신감을 토대로 스페인을 거점 삼아 유럽 시장에 한발 더 깊숙이 내딛을 계획이다. 한국을 넘어 세계 시장으로 발돋움하고 있는연두의 개발과 마케팅의 전 과정을 DBR이 집중 분석했다.

 

간장 시장의 절대 강자, 그러나

 

간장이나 된장 등 발효를 이용한 장류(醬類)가 우리 밥상에 오르기 시작한 건 삼국시대부터라고 전해진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신라본기(新羅本紀)> 등 이 시대 문헌들에서 재래식 장에 대한 언급을 찾아볼 수 있다.1  일본식 된장을 이르는미소도 사실은 우리나라에서 건너가 일본식으로 변형된 것이다. 우리나라 된장과 간장을 전수받은 일본은 기온과 습도가 높은 섬나라 특성을 반영해 훨씬 달고 덜 짠 일본식 장으로 정착시켰다.

 

이처럼 오랜 역사를 지닌 장()은 본래 대표적인 가내수공업 아이템이었다. 집집마다 때를 정해 메주를 쑤고 띄워 장을 만들었다. 발효라는 과정 자체가 본질적으로 자연의 개입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장을 담글 때의 온도와 습도, 담그는 사람의 손맛 등 변수가 다양하다. 이 때문에 이 집과 저 집의 장맛이 다르고 올해와 내년의 맛이 또 다를 수밖에 없었다.

 

‘간장’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오늘날 우리가 반사적으로 떠올리는 까만 액체는 개화기(19세기) 이후 확산된 대량 생산의 산물이다. 집집마다 맛과 향이 달랐던 재래식 방식이 아니라 균일한 맛과 향을 위해 공장을 돌려 만든 결과물이다. 당시 식민 통치를 위해 우리나라에 거주했던 일본인에게 공급하기 위한 목적으로 우후죽순 들어섰던 간장, 된장 공장들이 산업적 생산의 시초였다. 전국에 세워진 간장 공장만 100곳이 넘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공장들은 일본식 제조 방식을 도입해 적용했고 맛과 향이 균일한 제품을 만들어내기 위해 미생물의 자의적 활동을 최소화하는 데 주력했다.

 

해방 이후 일본인이 남기고 간 공장들을 우리나라 사람들이 인수해 운영하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한국의 장 산업이 첫발을 내디뎠다. 샘표가 태동한 것도 이때부터다. 일본인이 운영하던 간장 공장을 인수해 샘표의 전신인 삼시장유를 설립한 것. 샘표라는 상호는 1954년부터 사용된 것으로 샘표가 현존하는 국내 상표 중에 가장 역사가 길다는 점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오랜 역사만큼이나 샘표의 지배력은 절대적이다. 지금도 간장 시장의 절반을 샘표가 점유하고 있다. 국내에서 소비되는 간장 제품은 샘표 간장과 샘표가 아닌 간장으로 나눌 수 있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다. 간장이 그다지 비싼 제품군에 속하는 아이템이 아닌데도 이 시장에서만 매년 1000억 원대 매출을 올려왔다고 한다면 간장 시장에서 샘표가 차지하는 지위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문제는 간장 시장이 매년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2000년 이후 이런 현상이 두드러진다. 서구식 요리 방법이 확산되면서 간장을 넣지 않고 조리하는 경우의 수가 늘어난 탓이다. 외식 문화가 활성화되고 1인 가구 등이 늘면서 가정에서의 요리 횟수가 절대적으로 줄어들고 있는 것 또한 간장 소비를 위축시키는 요인이다. 이 때문에 간장 시장은 연평균 1%씩 축소되고 있다. 최근 10년 새 14%나 감소했다. 그 속도가 점차 빨라지고 있다는 점이 더 문제다. 오랜 기간 간장이라는 한 우물만 파왔고 이 분야에서 매출의 절대 비중을 얻고 있는 샘표에 위협적인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새로운 아이템 발굴에 적극 나설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보다 궁극적인 요인도 있다. 한식 간장의 복원이다. 일본에 의해 변형되고 왜곡된 장맛을 바로잡겠다는 취지다. 앞서 서술했듯 본래 간장은 우리나라 고유의 산물이지만 일본으로 건너가면서 원래의 맛에서 멀어졌다. 해방 이후 일본식 간장이 퍼지면서 한식 간장을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현재 우리에게 익숙한 간장 맛은 산업화 이후 보급된 일본식이다. 샘표는 옛날 우리 선조가 고수하던 장맛을 복원해 진짜 우리 간장을 찾겠다는 열망을 오랜 기간 품고 있었다. 연두보다 앞서 출시된참숯으로 두 번 거른 간장시리즈가 대표적인 예다. 이 간장은 간장을 거를 때 숯을 사용하던 전통적인 방식을 활용해 주목을 받았다.

 

새로운 아이템을 발굴하지 않으면 죽을 수 있다는 위기의식과 한식 간장을 제대로 복원해보고 싶다는 오랜 열망이 만났다. 그 결과물이 바로연두.

 

 

더 좋은 감칠맛을 찾아라

 

간장은 콩을 발효해 얻는다. 60년 샘표가 가진 노하우는 콩, 그리고 발효를 빼놓고는 논할 수 없다. 콩을 발효해 무언가를 얻어내는 것, 이것이 샘표가 가진 핵심 경쟁력이다. 새로운 아이템의 발굴과 한식 간장의 복원이라는 두 가지 명제를 놓고 고민하던 샘표가 콩 발효를 더욱 파고들기 시작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콩 발효에 전사적 역량을 집중하기로 한 것은 크게 두 가지 점에서 정당성을 지녔다. 첫째, 발효 음식이 지닌 막강한 잠재력이다. 옛날 궁중 요리가 일반 가정식보다 훨씬 깊고 풍부한 맛을 냈던 근본 원인은 발효 장류를 적재적소에 기가 막히게 활용했기 때문이다. 샘표는 콩 발효 원리를 잘 활용하면 소비자 입맛을 사로잡는 무언가를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서구식 소스가 쉽고 빠른 조리를 내세워 시장을 공략하고 있는 중에 이에 맞설 수 있으려면 맛에서 승부를 봐야 했다. 활용도가 높으면서도 깊은 맛을 내는 소스를 개발한다면 승산이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둘째, 콩은 소비자들이 기존 조미료에 갖고 있는 불만을 해결하는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었다. 음식 할 때 첨가하는 조미료의 역할은 감칠맛을 내는 것이다. 조미료 자체만으로는 맛이 안 난다. 여러 재료들이 갖고 있는 고유의 맛을 끌어올려 잘 어우러지게 하는 것이 조미료의 역할이다. 감칠맛은 단백질에서 온다. 우리가 음식을 씹으면 음식에 들어 있는 단백질 성분이 잘게 쪼개져 아미노산과 펩타이드가 된다. 덩어리가 큰 단백질 단위에서는 맛을 느낄 수 없고 아미노산과 펩타이드 수준까지 쪼개져야 비로소 우리는 감칠맛, 깊은 맛이 난다고 느낀다. 국물의 깊은 맛을 내기 위해 멸치나 쇠고기를 우려 육수를 내는 이유다. 기존 조미료의 대부분은 멸치나 쇠고기를 주재료로 썼다. 하지만 MSG 등 화학 성분을 첨가해 맛이 텁텁하고 건강에도 좋지 않았다. 최근천연’ ‘자연등을 내세워 나오는 조미료 역시 쇠고기나 멸치를 활용한다. 주재료를 말려 가루로 만든 것이다. 다시 말해 쇠고기나 멸치 안에 들어 있는 단백질을 끊어서 작은 단위로 쪼갠 것이 아니라 단지 단백질 덩어리를 작게 만들어둔 것에 불과하다. 그러다보니 화학 성분은 들어가지 않을지 모르나 조미료가 가진 근본적인 문제는 그대로였다. 조미료를 아무리 넣어도 음식 맛이 나아지기를 기대하기 어렵고 맛이 날 때까지 넉넉히 넣으면 국물이 탁해진다. 넣으면 넣을수록 쇠고기나 멸치의 향과 맛이 강하게 느껴져 조미료를 넣기만 하면 음식 맛이 모두 동일해져버리는 단점도 있다.

 

반면 콩은 자체적인 맛과 향이 강하지 않은데다 깊은 맛을 내는 아미노산이 멸치나 쇠고기의 3배에 이를 정도로 많다. 샘표는 이 점에 주목했다. 콩 발효 노하우를 충분히 활용해 감칠맛을 극대화하면서도 기존 조미료에 갖고 있는 소비자들의 불만을 해소할 수 있는 신제품, 이것을 목표로 삼았다. 콩을 발효하는 과정과 여기에 개입하는 각종 미생물을 연구하고 이를 제품화하는 일에 자원과 역량을 집중했다.

 

맛은 있는데

 

 

2003년 어느 날, 연구원들이 이런저런 방법으로 콩을 발효해보다가 기존 제품보다 진하고 깊은 맛을 내는 새로운 간장(당시만 해도 새로운 포지셔닝을 생각하지 않고 또 다른 간장으로 인식)을 만들었다며 임원진에게 선보였다. 서동순 마케팅총괄 이사는먹어보니 간장이라기보다는 액젓에 가까웠는데 액젓의 비린 맛이나 특유의 향 없이 깔끔하고 깊은 맛이 났다고 회상했다. 어떻게 마케팅하느냐에 의견이 갈렸다. 간장의 한 종류로 내놓을 것이냐, 간장이 아닌 새로운 카테고리가 적합하냐의 문제였다. 고민 끝에 맛과 향이 기존 간장과 많이 달라 간장보다는 음식의 맛을 풍부하게 해주는 조미료에 가깝다는 결론을 내렸고 결국 조미료 부문의 신제품으로 포지셔닝하기로 했다. 기존 제품과 차별성을 두기 위해 콩을 발효해서 만든, 몸에 좋은 조미료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다. 콩으로만 만들었으니 순식물성이고, MSG 같은 화학성분을 넣지 않았으며, 단순히 재료를 갈아 만든 것이 아니라 직접 발효한 액체라는 점을 부각시켜 음식 맛도 좋고 몸에도 좋은 친환경 조미료라는 점을 내세웠다. 건강과 안전을 모두 생각하는 주부들에게 어필하기 위한 콘셉트였다. 자연과 콩을 강조한연두(然豆)’라는 이름도 여기서 나왔다.

 

마케팅 포인트도웰빙에 뒀다. 우리나라 1세대 조미료는 공장에서 대량 생산하는 데 초점을 둔 화학 조미료였다. 2세대는 멸치나 쇠고기 등 천연 재료를 소량 첨가했으나 여전히 MSG가 대량 들어간 종합 조미료다. 3세대는 최근 등장한 멸치나 쇠고기를 직접 갈아 만드는 천연 조미료다. 연두는 ‘4세대 조미료로 스스로를 칭했다. 더 건강하고 더 맛있는 조미료를 전면에 부각시켰다. 2010년 연두의 1차 출시였다.

 

결과는 부진했다. 한 달에 1만 병도 채 나가지 않았다. 소비자들은 연두라는 새로운 조미료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오랜 시간에 걸쳐 개발과 마케팅을 기획하고 추진한 샘표는 실망과 우려를 감출 수 없었다. 전사적으로 나서서 핵심 기술과 노하우를 결집해 내놓은 제품인 만큼 걱정이 더 컸다. 얼른 접고 다른 아이템을 모색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나왔다. 하지만 서 이사는여기서 포기하면 샘표 자체를 포기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시장 반응이 좋지 않다고 그냥 물러설 수는 없었다는 얘기다. 서 이사는이 제품이 실패로 끝나면 다른 어떤 제품에서도 가능성이 없을 것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왜 소비자는 연두를 사지 않을까. 원인 분석부터 다시 시작했다. 일단 맛을 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긍정적인 답변을 내놨다. 실제 요리에 사용해 본 주부들을 대상으로 조사하면 연두를 사용할 때 음식 맛이 훨씬 좋아지더라는 답이 압도적이었다. 맛이 좋은데 왜 사지 않을까. 전국 매장부터 조사했다. 연두가 진열된 매대 앞을 지나가는 주부들이 조사 대상이었다. 지나가면서 한 번이라도 눈길을 주거나 제품을 들고 살펴보는 주부들, 잠시 멈춰서 보기는 했지만 막상 사지는 않는 주부들, 제품을 꼼꼼히 살피고 장바구니에 담는 주부들, 자세히 보지도 않고 카트에 휙 던져 넣는 주부들 등 다양한 기준을 세워 고객군을 분류하고 그들을 따라가서 질문을 던졌다. 보기만 하고 왜 사지는 않았나, 또는 왜 선택했는가 등을 꼼꼼히 묻고 기록했다. FGI(Focus Group Interview)도 진행했다. 연두를 처음 보면 어떤 느낌이 드는가, 포장을 뜯고 처음 봤을 때, 향을 맡았을 때, 직접 맛을 봤을 때 어떤 느낌이 드는가, 처음 이미지와 맛을 보고 난 후 이미지가 어떻게 달라지는가 등을 묻고 분석했다.

 

여러 조사들을 종합한 결과, 연두의 기획과 소비자들의 인식 사이에 괴리가 크다는 결론이 나왔다. 샘표는 연두를 ‘4세대 콩 발효 조미료로 정의하고 맛과 건강을 동시에 잡은 웰빙 제품으로 포지셔닝했다. 기존 조미료보다 건강에 좋은 것은 물론 콩을 제대로 발효해 음식의 깊은 맛을 끌어올리는 새로운 조미료로 소개했다. 하지만 소비자에게는 그저또 다른 간장의 하나거나그래봤자 조미료일 뿐이었다.

 

우선 소비자 머릿속에샘표=간장이라는 공식이 강했다. 소비자들은샘표가 콩을 발효해서 뭔가 만들었다고? 그렇다면 이 제품은 간장이라고 받아들였다. 4세대니, 건강에 좋다느니 하는 문구는 그 다음이었다. 새로울 것도 특이할 것도 없는 간장의 하나일 뿐이라면 굳이 돈 내고 시도해볼 만한 새로운 아이템이 아니었다. 소비자가 외면한 첫 번째 이유였다.

 

두 번째는 조미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었다. 조미료는 정확히 말해 주재료에 첨가해 음식 맛을 돋우는 물질이므로 사실 간장과 된장 등도 조미료에 포함되며 그 자체는 해로운 것으로 볼 수 없다. 하지만 MSG와 같은 화학 성분이 가득한 조미료에 익숙한 소비자들은 조미료 자체를몸에 해롭고 나쁜 것으로 인식했다. 조미료라는 이름이 붙는 순간 그것은 사용하지 않을수록 좋은 물질이었다. 콩을 발효했다거나 천연재료만 사용했다는 식의 미사여구를 아무리 들이대도 조미료는 조미료일 뿐이었다. 다시 말해 연두는 좋은 제품이 아니라 덜 나쁜 제품에 불과했다. 조미료라는 말을 듣는 순간 사람들은 사용하기도 전에 연두를 해로운 제품 범주에 포함시키고 있었다.

 

 

간장을 벗자, 새로움을 입자

 

새로울 것 없는 간장의 일종, 안 쓸수록 이로운 조미료라는 소비자들의 인식을 깨려면 포지셔닝부터 다시 해야 했다. 기존 조미료 시장에서 웰빙 쪽으로 방향을 잡으려던 본래 계획을 전면 수정해야 했다. 조미료처럼 음식 맛을 더 좋게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조미료와 비슷한 시장을 타깃으로 하는 유사 카테고리지만 정작 조미료는 아닌 영역을 구축해야 했다. 새로운 시장을 창출해야 했다는 의미다.

 

관건은간장이나조미료처럼 들으면 확 와 닿아야 한다는 점이었다. 기존 카테고리에 포섭되는 제품이라면 고민할 필요가 없었지만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들어 수요를 이끌어내야 하는 것이라면 얘기가 달랐다. 한 번 들으면 아 그거! 할 수 있어야 했다. 어떤 제품군으로 정체성을 규정할 것인가, 이름 짓기부터 돌입했다. 마케팅팀과 조사팀, 홍보팀 등 관련 부서들이 매일 모여 회의를 했다. 브레인스토밍을 통해 떠오르는 이름들을 일일이 적어가며 새로우면서도 알기 쉬운 카테고리 찾기에 주력했다. 여러 이름이 물망에 올랐다. 우선, 테이스트 부스터(taste booster). 전하고자 하는 바로 그 의미였지만 발음이 어렵고 길었다. 두 번째, 콩미료. 조미료를 연상시켰다. 다음은 맛내기. 조미료의 아류쯤으로 여겨지기 쉬웠다. 그렇다면 요리장은? 간장을 떠올리게 했다. 수십, 수백 개의 이름을 썼다 지워가며 몇 달간 회의를 반복하던 중 어느 직원이연두 쓰다 보니 이제 이것 없이는 요리할 수가 없다. 모든 요리에 필요한 에센스 같다에센스를 내놨다. 초반에 팀 안에서의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화장품을 연상하게 할 뿐더러 지나치게 화학적인 느낌이 든다는 이유였다. 내고 또 내고, 짓고 또 짓다가 후보군에 올라온 모든 이름을 들고 소비자 테스트를 진행했다. 해당 단어에 소비자가 어떤 느낌을 갖고 있는지 객관적으로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의외로 에센스가 좋은 평가를 받았다.소비자들은 에센스를 귀하고 비싼 고급품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화장품 중에도 에센스는 기능성 제품군에 속하며 상대적으로 가격이 비싸고, 아껴서 조금씩 사용하는 종류로 포지셔닝돼 있다.

 

소비자 인터뷰를 통해 좀 더 깊게 조사해봤다. 소비자들은요리에센스라는 단어를 낯설어 하면서도 새롭게 여겼고 호기심을 갖게 된다고 답했다. 정확히 뭔지는 몰라도 귀하고 값진 제품일 것으로 예상하기도 했다. 서 이사는당시 우리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은 기존의 간장이나 조미료와 완전히 차별되는 새로움이라며인공적이거나 화학적으로 느껴진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단점보다는 장점이 크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연두가요리에센스로 정체성을 확보하게 된 순간이다.에센스라는 이름이 갖고 있는 단점을 완화하기 위해 결정한 캐치프레이즈가재료의 참맛을 살리자. 이는 전문가들로부터 받은 아이디어다. 요리전문가들에게 연두를 제공하고 사용해본 소감을 들었다. 이들은 쇠고기나 멸치를 사용한 기존 조미료는 쓰면 쓸수록 쇠고기 맛이 나거나 멸치 맛이 강해져서 재료의 개성이 죽고 모든 음식의 맛이 동일해지는 반면 연두는 재료 각각의 맛을 최상으로 끌어올린다는 평가를 내놨다.

 

CM송 역시 새로움과 호기심을 극대화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제품에 대한 설명은 한마디도 없이 그저연두해요연두해요요리할 땐 모두 연두해요∼’라는 단순한 문구만 반복되는 이 노래가 전파를 타고 각 가정에 전달되면서 사람들은 연두가 정확히 뭔지는 몰라도요리할 때 넣으면 좋은 것이라는 사전 인식(pre-recognition)을 갖게 됐다.서 이사는일단 사용해본 소비자들은 모두 만족한다고 답했기 때문에 품질 면에서는 자신이 있었다특별한 설명이나 정의 없이 궁금증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초점을 뒀다고 말했다. 유난히 많은 시제품을 소비자들에게 제공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뭔지는 정확히 모르더라도 일단 한번 사용해보라는 취지다. 전자제품이나 가구와 같은 고가 제품을 살 때, 사람들은 구매 전에 이미 꼼꼼히 분석하고 조사한 후 매장을 찾는다. 하지만 연두처럼 저가 제품일 때는 제품을 충분히 이해하거나 자세히 알지 못해도 구매가 발생한다. 지출에 크게 부담이 없기 때문에 관심이 가면 일단 구매부터 하고 이후 차차 알아가는 과정을 거친다는 의미다. 샘표는 가족 단위 소비자가 많은 마트나 젊은 주부들이 많이 찾는 전시회 앞에 시식 차량을 마련해 연두로 조리한 음식을 먹어보게 하기도 하고, 키즈카페나 유아용품 박람회 등을 찾아 그곳에 모인 주부들에게 샘플을 나눠주는 방식을 사용했다. 또한 샘플을 1∼2회 분량이 아닌 2주일치 정도로 넉넉히 제공해 주부들이 여러 요리에 골고루 사용해 볼 수 있도록 했다.

 

 

간장과 비슷한 색과 향을 덜어내기 위한 기술적 연구도 계속됐다. 2차 연두는 1차 연두에 비해 밝고 향이 약하다. 색이 진하고 콩 발효 특유의 냄새가 나면 소비자들이 간장을 떠올릴 수 있기 때문에 가급적 색과 향을 연하고 부드럽게 하는 데 주력했다. 연구소 관계자는맛이 풍부하려면 발효 숙성이 잘돼야 하고, 발효 숙성이 잘되면 색이 어두워지고 향이 진해지는 경향이 있어 이 둘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아야 하는 점이 딜레마였다고 설명했다. 맛도 잡고 색과 향을 연하게 하기 위해 연구소에서 개발한 기술은 미생물의 분리 확보다. , 크게 맛과 색, 향 등 세 가지 부문으로 나눈 후 각 부문의 우량 미생물(예를 들어 맛을 조절하는 미생물은 곰팡이, 색을 조절하는 미생물은 유산균, 향을 조절하는 미생물은 효모 등)을 확보하는 데 주력했다. 미생물을 종류대로 분리한 후에는 각각의 특성을 파악했다. 개별 미생물의 장점이 충분히 발휘되면서도 서로 잘 어우러지도록 하기 위해 수천, 수백 종류의 미생물을 분석하는 작업이 이어졌다. 좋은 미생물을 찾기 위해 전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매년 다양한 발효식품(간장, 된장, 메주 등)을 수집하는 작업은 샘표 연구소의 가장 중요한 일정 중 하나다. 전국에서 확보한 장을 분석해 장마다 활동하는 미생물을 구분하고 선별해서 제품 발효과정에 투입시킨다. 이때 곰팡이가 발효물의 겉과 속에 안정적으로 침투할 수 있도록 곰팡이 생육에 영향을 주는 환경적 요인들을 유지한다. 현재 연구소는 400여 종 이상의 우량 미생물을 보유하고 있으며 매년 더 우수하고 더 다양한 미생물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1차 연두의 모든 것을 바꾼 것은 아니다. 리포지셔닝 콘셉트에 맞는 요소는 살렸다. 이름이 대표적이다. 자연과 콩을 강조한 기본 취지에는 변화가 없었고 발음이 쉬우며 싱그러운 이미지가 제품과 잘 부합한다고 판단했다. 리뉴얼 후 2차 출시 때도 연두는 연두였다.

 

소비자를 읽어라. “없는 방법도 만들어낼 정도

 

본격적인 리포지셔닝에 앞서 마케팅팀에서 초점을 둔 것은 소비자를 정확히 파악하는 일이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소비자 조사 방법이 총동원됐다고 해도 과장이 아닐 정도로 다양한 방법이 활용됐다.

 

일단 다양한 방식으로 패널을 선정해 인터뷰를 했다. 다대일과 일대일 방법을 고루 사용했다. 그룹별로 묶어서 인터뷰를 하면 전체적인 분위기를 파악할 수는 있지만 일부 의견에 전체가 휩쓸릴 수 있고 일대일로 인터뷰를 하면 깊이 있게 묻고 답할 수는 있으나 시간과 비용이 많이 필요하다. 같은 음식을 두 개 만들되 한쪽에는 연두를 넣고 다른 쪽에는 넣지 않은 후 소비자를 불러 맛을 비교하게 하는 갱서베이(Gang Survey)도 수차례 진행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소비자가 연두를 어떻게 활용하느냐를 관찰하는 것인데 여기에는 HUT(Home Use Test)를 했다. 연두를 각 가정에 보내서 2주 동안 사용하게 한 후 후기를 작성하게 하는 방식이다. 제품의 특성상 한 차례만 사용해서는 제대로 효과를 측정할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해 한 달간 매일 일기 형식의 후기를 남기게 했다. 서 이사는이 조사를 하면서 시제품 분량을 통상의 샘플보다 넉넉하게 해야겠다는 아이디어를 얻었다 “1주일보다는 2주일째, 2주일보다는 3주일째 후기가 더 좋은 것을 보고 제품에 대한 자신감을 더 강하게 가질 수 있었던 조사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주방 시뮬레이션 테스트(Kitchen Simulation Test)도 했다. 아무리 매일 일기를 쓰라고 해도 사람들이 실제 요리할 때 연두를 어떻게 활용하는지 속속들이 알 수는 없다. 샘표 건물에 설치돼 있는 부엌으로 요리에 관심 있는 주부들을 불러 직접 음식을 만들게 했다. 조사원들이 신원을 감추고 주부들 사이에 끼어 함께 요리하는 그룹인 것처럼 행동하며 연두 사용 방식을 관찰했다. 음식을 만들면서 연두를 중간중간 뿌리는지, 마지막에 한 방울만 넣는지, 한 번 쓸 때 사용하는 분량이 얼마나 되는지 등을 꼼꼼히 기록했다. 서 이사는조사방법마다 장단점이 있기 때문에 두 번, 세 번 교차해서 체크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없는 조사를 만들어내서 시도해 볼 정도로 무수히 많은 조사를 했다고 설명했다.

다양한 소비자 조사와 끊임없는 품질 연구, 그리고 무엇보다 조미료가 아닌 요리에센스로 포지셔닝을 다시 한 전략은 긍정적인 시너지를 냈다. 2년 만에 다시 시장에 나온 연두는 소비자들의 호기심을 강하게 자극했다. 이름으로, 노래로, 광고로 연두를 접한 사람들은 요리에센스가 정확히 뭔지는 몰라도 요리할 때 꼭 넣어야 하는 필수품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호기심에 제품을 구입한 소비자들은 성능 좋은 콩 발효 에센스에 눈을 떴고 국이나 찌개를 끓일 때는 물론 나물을 무칠 때나 볶을 때도 연두를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됐다. 간장도 조미료도 아닌 연두 고유만의 영역을 개척한 것이다.

 

소비자들은 이제 매대에서 연두를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2010 4월 출시된 1차 연두가 그해 12월까지 월 평균 2억 원대 매출에 그쳤던 반면 2012년 다시 나온 연두는 현재 월 평균 10억 원대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 연말까지 150억 원 규모의 매출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내년에는 스페인을 거점으로 유럽 현지에 본격적으로 진출할 계획이다. 샘표의 새로운 성장 동력, 연두의 성공요인을 분석하면 다음과 같다.

 

1. 핵심 역량에 집중

 

기존 주력 제품의 성장성이 한계를 보일 때 보유하고 있는 핵심 기술과 노하우에 더욱 매달렸다. 사업 다각화나 신사업 진출 등 새로운 영역에 뛰어드는 대신 현재 가장 잘하고 있고 오랜 기간 경쟁우위를 유지하며 내공을 다져온 분야에서 답을 찾고자 했다. 다만 핵심 영역을 그저 파고들기만 한 것이 아니라 최근 시장 동향과 소비자 트렌드, 기존 제품에 소비자가 갖고 있는 불만을 정밀하게 파악하고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 핵심 기술을 접목시켰다. 즉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으로 솔루션을 제시하고자 했다. 이는 게리 하멜이 주장하는핵심 역량과 일치하는 개념이다. 하멜은 경쟁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을 자기 자신을 살피고 분석하는 일로 정의하고 핵심 역량을 중심에 두고 강점을 활용할 수 있는 분야로 영역을 넓힐 것을 조언한 바 있다.

 

2. 다양한 소비자 조사

 

소비자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알지 못한다. 심지어 진짜 원하는 것과 반대로 대답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소비자를 파악하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은 밀도 있는 관찰이다. 한두 차례 일회성이 아닌 이중삼중으로 촘촘히 엮여 크로스 체크가 가능한 관찰이다. 무심결에 반복되는 행동 패턴을 수집하고 그로부터 의미 있는 시사점을 도출해내야 소비자들의 내밀한 니즈에 부합하는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할 수 있다.

 

연두가 리포지셔닝에 나섰을 때 가장 먼저 한 일이 바로 소비자 조사였다. 어디서 무엇이 의도와 다르게 진행됐는지 파악할 때도, 새로운 카테고리명을 정할 때도, 제품의 활용방법을 찾고 정착시킬 때도 연두는 소비자를 관찰하고 또 했다.

 

3. 감각적인 리포지셔닝과 관련 마케팅

 

2차 연두가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요인은 리포지셔닝이다. 연두는 소비자들이 간장이나 조미료에 대해 갖고 있는 식상함 또는 부정적 인식을 파악하고 이를더 좋은 간장또는새로운 조미료로 밀어붙이는 대신 아예 새로운 카테고리로의 전환을 시도했다. 이는 소비자들이 외면한 이유가 무엇인지 그 원인을 다각적으로 분석해 그것을 효율적으로 해결하는 데 주력한 결과다. 실패 원인을 정확히 짚지 않고 단순히 패키지나 이름만 변경해 다시 출시했다거나 마케팅을 강화해 광고 횟수나 샘플 배포를 늘리는 방식으로 대응했더라면 상황은 더 악화됐을 수 있다.

 

리포지셔닝의 목표를완전히 새로운 카테고리를 설정하는 것으로 결정한 후에는 브랜딩과 마케팅의 모든 과정을 목표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추진했다. 광고에 삽입되는 노래를 제품에 대한 설명 없이 단순화해서 호기심을 자극한다거나 시제품 배포 분량을 늘려 다양하게 시도해보게끔 유인한 게 대표적인 예다. 새로운 목표에 맞게 기존 전략들을 과감히 수정해가면서도연두라는 종전의 이름을 그대로 두는 등 전략적 일관성을 유지한 것은 목표 달성의 동력을 한층 강하게 했다.

 

최한나 기자 h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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