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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 없이 ‘조직화’하라

권춘오 | 10호 (2008년 6월 Issue 1)
누구든 참여해 편집이 가능한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Wikipedia). 2001년 선보인 위키피디아는 오늘날 온라인 백과사전에 만족하지 않고 신속하게 정보를 모아 배포하는 수단이 됐다. 일례로 2007년 7월 7 런던 지하철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했을 때, 위키피디아는 몇 분 안에 관련내용을 올렸다. 최초의 포스팅은 단 다섯 문장이었다. 하지만 4시간이 지나지 않아, 원문은 1000번 이상 수정되었고, 최종 결과는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신문사가 제작한 기사보다 우수하고 자세한 뉴스 기사가 됐다.
 
놀라운 것은 위키피디아가 이룬 이 모든 성과에는 급여를 받는 관리자나 직원, 그리고 공식 업무절차가 없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초안을 만들어 편집하고, 다듬고, 철자를 수정하는 등 필요한 모든 작업을 수행했다.
 
위키피디아의 이 막강한 힘은 ‘조직 없이 조직화를 이룰 수 있음’을 보여준다. 흔히 정치와 입법, 언론을 제1, 제2, 제3의 권력이라 말한다.(물론 여기서 숫자는 힘의 강도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 권력의 저변을 이루는 힘은 사실 ‘민(民)’에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런 ‘민’의 힘에 역행해 지속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권력은 없었다.
 
민의 힘은 웬만해서는 같은 방향으로 응축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모든 것이 변했다. 인터넷을 활용하는 새로운 세대가 기존 질서를 완전히 바꾸고 있다. 역사상 최초로 사람들의 협력과 집단행동을 용이하게 만들어주는 새로운 사회적(social) 도구가 두각을 드러낸 것이다.
 
여기서 사회적 도구란 이메일, 블로그, 웹로그, 홈페이지, 게시판 등 인터넷을 이용해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피력할 수 있는 모든 도구를 지칭한다. 비즈니스 측면에서 보면 이것은 토대(土臺)가 완전히 변한다는 의미다. 따라서 이런 사회적 도구를 부정하기보다는 활용할 방법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사회적 도구가 효과적인 이유는 막연하게 구성된 집단이 모여 어떤 형식적 관리의 필요성이나 이익 동기 없이 공동의 목표를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집단을 이뤄 일을 하는 이유가 돈을 벌기 위한 게 아니다. 그들 스스로 그것을 원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적 도구의 알고리즘은 우선 “자신이 가진 것을 공유하고 뜻이 맞는 사람들이 이를 평가하는 것”이다. 둘째는 “모두가 협력하고 다른 사람들과 동화(同化)해 스스로 행동의 변화”를 기하고, 마지막으로 “공동의 노력으로 가치 있는 것을 생산하고 이를 나눈다”는 데 있다.
 
따라서 이제 모든 사람이 미디어 산업의 종사자가 됐다고 봐야 한다. 새로운 사회적 도구가 무엇인가를 인쇄하고 찍어내고 발간하는, 즉 출간(publishing)의 모든 장애와 애로사항을 없애버렸기 때문이다. 블로그 또는 웹로그(weblog)를 만들어 관리할 수 있고, 누구나 웹에 사진을 올려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으며, 누구나 포드캐스트에 오디오 또는 비디오 메시지를 만들고 마찬가지로 인터넷에 접속한 전 세계 사람들과 즉시 공유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광범위한 활동이 집단을 형성하고 그 집단이 기존 권력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런 현상의 특징 중 하나는 ‘필터링’ 순서의 역전이다. 예전에는 유포 전에 필터링이 이뤄졌다면 이제는 유포 후에 수많은 유저들의 힘에 의해 필터링이 이뤄진다. 위키피디아의 사례를 보면 이런 역전 현상을 잘 이해할 수 있다. 핵심은 ‘후 필터링 시스템’이 스스로 완결성을 갖는다는 점으로, 유저가 늘어날수록 공동작업으로 인해 더 막강한 힘을 갖게 된다는 데 있다. 또 필요할 경우 사람들을 집단행동으로 이끌 수도 있다. 이제 경영자들은 이런 사회 변화를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여기에 추가될 것이 바로 속도다. 집단행동의 속도가 더 빨라지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소비자층이 형성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사회 문제에 대해 대규모 집단을 형성하기까지는 몇 달, 심지어 몇 년이 걸렸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이제 새로운 사회적 도구를 활용함으로써 순식간에 압력 단체를 만들 수 있다.
 
좋은 예가 2006년 12월에 발생했다. 아메리칸 에어라인(American Airlines)의 몇몇 항공기가 댈러스 지역의 폭풍 때문에 텍사스주 오스틴으로 방향을 돌렸다. 이들 비행기에 탑승한 승객들은 음식과 물을 얻기 위해 활주로에서 몇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당시 이러한 불편을 경험한 승객 중 한 명인 부동산업자가 집단을 만들어 승객 권리장전(Passenger Bill of Rights) 초안을 제안했다. 이 문서는 비행기가 3시간 이상 지연될 경우 항공사가 승객에게 필수품을 제공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몇 주 지나지 않아 이들 집단은 새로운 승객 권리장전 탄원을 지지하는 수천만 명의 서명을 얻었다. 의회에서 법안이 통과된 후, 권리장전은 마침내 백악관 및 상원에 발의됐다. 과거에는 기업들이 ‘우발적 사건’으로 치부하고 넘어갔을 일을 오늘날의 소비자들은 쉽게 눈감아주지 않는다.
물론 새로운 사회적 도구는 긍정적 영향력은 물론 부정적 영향력을 함께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런 딜레마는 결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회성 도구는 본래 중립적이기 때문이다. 도구 자체는 사용자 사이에서 어떤 판단을 하거나 구분하지 않는다. 도구는 사회적 자본을 형성하고 파괴하는 일에 모두 동등한 효력을 갖는다. 이제는 어떤 사회적 승인이나 후원 없이도 모임을 만들기가 수월해졌다. 모임 결성에 대한 자유가 늘어나면서 사회적 도구는 세 가지 사회적 자본 손실을 만든다.
 
첫째,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을 직업으로 삼았던 사람들이 퇴출되고 있다. 사람들이 스스로 이용할 수 있는 정보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둘째, ‘대중매체’에 대한 정의가 매우 광범위해졌고 이마저 시시각각 변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사회적 도구가 형성하는 새로운 자유(freedom)가 테러리스트 네트워크와 범죄단체 결성 활동을 가능케 하고 있다.
 
특별 조치로 모임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것보다는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 집단에 적극적으로 반대의사를 표명할 새롭고 더 나은 도구를 만드는 게 더 현명한 일이다. 이는 앞으로의 과제다.
 
결과적으로, 사회적 도구의 시대에는 성공을 위한 정형화한 공식이나 비결은 없다. 말할 수 있는 건 제 기능을 다하는 모든 훌륭한 시스템은 다음 3가지의 다양한 요소가 독특하게 결합한 형태가 될 것이란 점이다. 이 3가지가 항상 경영 및 전략, 마케팅의 모든 비즈니스 측면에 고려돼야 한다.
 
타당한 약속:왜’ 사람들이 그룹에 합류하거나 기여해야 하는가에 대한 것이다. 참여자든 실제 유저든 충분히 사람을 모을 강력한 약속을 만들어야 한다. 누군가의 시간을 뺏으려면 현재의 일보다 더 큰 가치를 지니는 것을 제안해야 한다. 이런 약속은 당신 자신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에게 호소력이 있으리라는 확신이 들어야 한다.
 
효과적인 도구: 도구는 많은 이들의 집단행동을 조정하는 데 있어 어려움을 극복할 만큼 강력한 것이어야 한다. 도구는 본래 상황에 민감하기 때문에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상황에 딱 맞는 보편적 도구란 없다. 간단히 말해서, 좋은 사회적 도구는 그 일에 맞게 계획된 것이며 사람들이 실제 원하는 것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다.
 
만족스러운 협정: 사실상 협정이 규칙을 만든다. 당신이 약속에 관심이 있고 필요한 도구를 채택해야 한다면 협정에 예상 결과를 명시해야 한다. 협정이 복잡한 이유는 사전에 내용을 상세히 명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유저들은 협정에 있어 영향력이 크다. 협정은 당신이 다른 사람에게 원하는 것, 그리고 반대로 그들이 얻기를 기대하는 것을 분명히 한다. 협정은 균형을 이룰 수도, 완전히 한쪽으로 치우칠 수도, 공식적으로 언급될 수도, 아니면 더욱 함축적이거나, 단순하거나, 복잡할 수도 있다.
 
사회적 도구가 결국 사회에 받아들여질지는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있다. 더 나은 소통 및 집단은 사회가 이루는 방식에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본래 사회성 도구는 정치적인데, 원하는 것을 말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도록 사람들의 능력을 끌어올리기 때문이다. 언론 자유의 확대는 항상 정치적 변화를 불러일으켜 왔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앞으로 이런 사회적 도구를 받아들일 사회가 어떤 이익추구의 행로로 향할지 정확하게 예측할 수는 없지만, 전반적으로 세상은 일부 기업가 또는 정치가들의 의식적 결정보다는 기술적 환경이 이끈 길로 향할 것임이 분명하다. 중요한 문제는 실제로 확산되는 이런 도구를 받아들일지 여부가 아니다. 지니는 이미 램프 밖으로 나왔다. 그보다는, 이제 모두 사회성 도구가 어떻게 사회와 기업 환경을 재편할지에 관심을 가질 때다.
 
이 책을 쓴 저자 클레이 셔키(Clay Shirky)는 뉴욕 대학 교수로 인터랙티브 텔레커뮤니케이션 프로그램(Interactive Telecommunications Program)을 맡고 있으며, 저술가이자 저명한 인터넷 컨설턴트로 이름이 높다. 인터넷 기술의 사회·경제적 파급력을 연구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노키아, BBC, 국회도서관에 대한 컨설팅 활동을 했다. <Business 2.0>의 칼럼니스트이며,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 저널,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등에 많은 기고를 했다. 예일 대학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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