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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전망

미래지향적 사고로 기술을 전망하라 파괴적 기술의 시대, 성장이 보인다

이성주 | 135호 (2013년 8월 Issue 2)

 

 

 

1. 기술전망이란 무엇인가?

 

최근 전 세계적으로 미래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이다. 1차적으로는 새로운 사업기회를 발굴하고 유망한 원천기술을 조기에 확보하기 위해서고 더 나아가서는 소비자들의 생활방식을 선도하고 산업 내 주도권을 차지하고자 하는 것이다. (Shell), IBM, GE, BT, 지멘스(Siemens) 등 해외 선진기업들 대부분이 미래예측 부서를 상설로 두고 있다. 국내에서도 삼성, KT 등에서 미래연구를 수행 중이다. GE 1968년 이미 미래연구 기관을 설립했으며 BT 200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미래연구 집단을 운영하고 있다. 지멘스는 향후 우리 생활을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는 미래기술을 발굴하고자 PoF(Picture of the Future)라는 미래연구 프로그램을 운영 중에 있다. (그림 1) PoF 보고서는 매호별 약 10만 부 이상의 인쇄본이 100개 이상의 국가에 배포되고 있다(박병원, 2011). 독일계 다국적 화학회사인 BASF는 미래 시나리오에 기반한 미래전략을 토대로 제품전략을 도출한다.

 

미래연구1 란 장기적인 미래를 전망하는 활동으로, 본고에서 초점을 맞추고자 하는 기술전망(foresight) 역시 현시점에서의 의사결정이나 전략도출을 목적으로 미래에 대한 정보를 수집한 뒤 체계적으로 중장기 비전을 수립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Foresight라는 용어는 1984 Irvine and Martin의 저서에서 처음 사용됐으며, 2000년 이후에는 전 세계 40개 국가로 확산됐다(Li et al., 2010).

 

2. 기술전망이 왜 필요한가?

 

지금은 우리나라의 혁신 패러다임이 추격형(catch-up)에서 선도형으로 이행해 가는 시점이다. 추격형 전략에서는 이미 검증된 기술을 개선, 응용하므로 기술개발의 위험이 비교적 낮다. 그러나 선도형 전략에서는 미래 시장의 니즈를 만족시킬 수 있는 고부가가치 기술을 스스로 발굴해 개발해야 한다. 기술개발 위험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선도형 전략하에 핵심 미래기술을 발굴하기 위해서는 기술주도(technology-push)에서 벗어나 수요견인(demand-pull) 방식의 기술개발이 요구된다. 미래사회의 이슈가 기술개발의 동인이 돼야 한다. 이에 선진기업들에서는 철학, 심리학 등 인문사회 분야 전공자들이 제품개발 과정에 참가해 인간의 본원적 니즈와 기술이 전달해야 할 미래의 가치를 연구하고 있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애플의 아이폰이며 다이슨의 날개 없는 선풍기다.

 

 

또한, 글로벌화로 인한 경쟁심화와 개방형 혁신 패러다임의 도래로 기술발전 속도가 빨라지고 기술수명 주기가 짧아지고 있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증대된 것이다. 특히 불확실성 증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 중 하나가 파괴적 기술(disruptive technology)이다. <그림 2>에서와 같이 일반적인 기술은 S-커브를 따라 성장하는데, 성장한계에 도달하기 전 새로운 기술 대안들이 나오고 이 중 하나가 시장에서 채택돼 다른 성장곡선을 그리며 발전한다. 이때 새롭게 선택된 기술 대안이 파괴적 기술이다. 파괴적 기술을 감지하고 이에 대비하지 못한 채 존속적 기술(sustaining technology)을 고집하던 많은 기업들은 이윤과 수익이 감소됨을 경험해 왔다.

 

<포천>지가 선정하는 500대 기업의 평균 수명은 40년에 불과하다. 일본과 유럽 기업의 경우에는 이보다 더욱 짧은 13년 수준이다.2  기업 환경이 경쟁적인 한국의 경우 상황은 더욱 어렵다. 시가총액 100대 기업의 10년 생존률은 47% 수준이며 1965년 매출액 100위권에 오른 기업 중 2004년 생존한 기업은 단 12개다(LG경영경제연구소). 나아가 단순히 생존하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높은 성과를 내는 것은 더욱 어렵다. 이제는 환경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변신하고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이 기업 생존과 성장의 필수조건이 됐다.

 

변화에 대한 시그널은 약하긴 하나 항상 외부에 존재한다. 미래학자인 스탠 데이비스(Stan Davis)는 미래를 내다보는 것은 창조하는 작업이 아니라 발견하는 작업이며 미래는 현재 속에 이미 존재하기 때문에 세심한 주의력으로 주변을 관찰하면 미래를 내다볼 수 있다고 했다. 기술전망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과학기술 환경 등 다양한 원천에 존재하는, 미래를 내다보기 위해 필요한 약한 시그널(weak signal)을 찾아내는 활동이다. 기업에서 기술전망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기술전망은 미래사회의 변화로 인해 고객의 가치가 어떻게 변화할지에 대한 시그널을 감지, 기회와 위협을 찾아내도록 한다. 시장과 기술관점에서 미래에 대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혁신의 불확실성을 줄이도록 도와준다.

 

 

  

 

3. 예측이 아닌 전망을 하자

 

미래를 내다보는 활동으로 기술전망(foresight)보다 익숙한 용어가 기술예측(forecasting)일 것이다. <그림 3> 2013 725, Science Direct(http://www.sciencedirect.com)를 활용해 제목, 초록, 주제어에 forecasting 혹은 foresight라는 단어가 포함된 저널이 연도별로 몇 건이 되는지 조사한 결과다. 결과를 살펴보면 두 단어 모두 최근 들어 관심이 높아지고 있으나 전망이라는 용어보다 예측이라는 용어가 훨씬 자주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실제 논문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기술전망 활동을 기술예측이라 명명하고 있다. 두 가지 용어는 비슷하게 활용되지만 1980년대 기술예측으로부터 기술전망이라는 분야가 분화됐기 때문에(송종국, 2009) 두 용어의 차이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을 필요가 있다.

 

 

흔히 미래를 바라보는 방법은 크게 예측(forecast)과 재구성(backcast)으로 구분될 수 있다(KISTI, 2013). 전자는 과거 추세로부터 발생 가능한 미래를 예측하는 방법으로 탐색적(exploratory) 특성을 갖는다. 반면 후자는 목표로 하는 미래의 모습을 상정한 뒤 이를 달성하기 위한 단계를 모색하는 규범적(normative) 특성을 갖는다. 일반적으로 미래연구는 <그림 4>와 같이 구분되는데 이 중 기술예측은 forecast를 추구하는 반면 기술전망은 backcast를 추구하는 접근이다.

 

 

기술예측은 과거로부터 현재까지의 추세가 미래에도 계속된다는 가정하에서 과거 데이터를 사용해 미래를 예측하는 추세분석(trend analysis)을 활용한다. <그림 5(a)>와 같이 과거 데이터의 추세를 가장 잘 나타내는 함수(function)를 찾아낸 뒤 이 함수를 활용해 미래 시점의 예측 값을 도출한다. 이 접근법은 예측에 대한 논리적 근거가 명확하고 적용과정이 단순하며 정량적인 결과를 도출해 주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많이 이용돼 왔다. 실제 데이터에 모델링 기법이나 경제학적 기법을 적용, 정확한 예측을 가능하게 하는 방법론들이 개발되면서 학문적으로도 큰 진보가 있었고 실무에서도 그 가치를 인정받아 왔다.

 

그러나 기술예측은 과거 경험을 통해 미래를 내다본다는 선형적인 예측을 전제로 한다. 문제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환경 변화와 불확실성의 증가로 인해 미래를 단순한 과거의 연장선으로 설명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1980년대 미래전망이 미래예측으로부터 분화돼 나타난 이유다(송종국, 2009). 미래는 기술뿐 아니라 경제, 사회, 제도 등 다양한 동인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그림 5(b)>와 같이 미래의 비전을 먼저 도출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단계적 계획을 역으로 수립하는 접근법 또한 중요하다.피터 드러커(Peter Drucker)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미래를 발명하는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미래는 결정돼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목표와 전략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지며, 결국 미래의 모습은 어느 정도 인간의 선택에 의한 결과물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기술예측은 데이터기반 분석(data-driven analysis)인 반면 기술전망은 미래지향적 사고(future-oriented thinking). 기술예측에서는 적절한 방법론에 의해 정확한 결과를 산출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기술전망에서는 프로세스 자체가 중요하다(Miles, 2010). 기술예측에서 산출하는 확정적인 예측결과물(forecasts)과 이정표(blueprints)보다는 미래를 전망하기 위한 정보수집 과정과 의사소통 과정에서의 학습효과(learning approach)가 강조된다. 기술예측 결과물은 단 하나의 미래상이지만 기술전망의 결과물은 다양한 미래상이 될 수 있다(Martin, 2010). 미래의 모습에 영향을 미칠 것 같은 다양한 요소들을 규명해 보고, 이 요소들이 미래를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이며, 이에 대응해 어떠한 전략을 수립할 것인지 고민하는 작업이 기술전망이다.3

 

<그림 5>에서 잘 나타나 있듯이 기술예측은 존속적 기술의 예측에 적합하다. 동일한 S-커브 내에서 기술발전의 속도와 방향을 잘 예측할 수 있는 방법이다. 5.25인치 하드디스크(HD)를 사용하던 시대로 잠시 돌아가 보자. 그 당시 많은 기업들은 미래 5.25인치 HD의 성능을 결정짓는 전송속도(transfer rate)와 용량(capacity)이 얼마나 높아질 것인지, 가격은 얼마나 떨어질 것인지에 대해 궁금해 했다. 그리고 과거 데이터를 활용해 미래의 5.25인치 HD의 성능을 예측하고 이를 구현 가능하게 하는 제품기술과 공정기술 개발에 애썼다. 이러한 기술예측 접근은 단기 예측에는 유용할 수 있다. 그러나 중장기적인 기술개발에 있어 선형적 사고는 한계를 갖는다. 산업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파괴적 기술, 즉 차세대 HD 제품이었던 3.5인치 HD의 출현을 알려주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이와는 달리 기술전망은 기존 S-커브의 연장이 아닌 새로운 S-커브의 출현에 대한 전망을 목표로 한다. 기술전망에서는 만약 달성하고자 하는 미래의 모습이 기존 기술의 연장선이 아닌 새로운 기술로 구현돼야 한다면 새로운 S-커브를 제시할 수도 있는 것이다. 또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단계를 계획하는 과정에서 S-커브의 구체적인 형태를 제시할 수도 있다. 다시 HD 사례로 돌아가자. 미래 사용자와 차세대 PC에 있어소형화가 중요한 가치가 될 것이란 시그널을 일찍 감지했다면 5.25인치 HD 개발자들은 3.5인치 HD의 출현을 가볍게 여기지 못했을 것이다. 비록 그 당시 3.5인치 HD 기술의 성능이 5.25인치 HD에 비해 다소 떨어지고 3.5인치 HD를 출시하는 것이 당장의 기업 수익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미래 잠재시장의 니즈를 만족시키기 위해 중장기적 관점에서는 3.5인치 HD의 개발이 필요하다는 전략적 의사결정을 내렸을 것이다. 이에 따라 3.5인치 HD가 산업에서 활용되기 위한 바람직한 미래 모습을 그리고, 그 미래모습을 구현하기 위한 기술개발 목표를 수립했을 것이다.

 

따라서 기술예측과 기술전망은 고민의 출발점이 다르다. 예를 들어 다임러크라이슬러(DaimlerCrysler)의 기술예측에 있어서는 시장의 요구사항을 만족시키기 위해 현재의 자동차가 어떻게 더진화할 것인가를 고민할 것이다. 반면 기술전망에 있어서는 미래사회의 모습은 어떻게 될 것이고, 미래의 이동수단은 어떤 모습을 가질 것이며, 이에 어떠한 혁신 아이템이 필요한지 등 사회적, 기술적, 시장적 차원에서의 근본적인 이슈들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Ruff, 2013).

 

물론 기업의 전략을 수립하는 데 반드시 기술전망이 기술예측보다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까지 국내에서 미래를 전망하고자 한 많은 활동들이 너무 기술예측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니 전망을 함께하자는 것이다. 기업이 중장기적으로 생존하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예측 못지않게 전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한국은 반도체, 디스플레이, 휴대폰, 자동차, 조선 등의 산업에서 세계 최고의 시장점유율을 자랑한다. 그러나 이는 거의 대부분 대규모 투자와 대량생산에 기인한 것으로 대다수 기업들의 기술개발 노력은 존속적 기술의 개선과 응용에 머물러 있다. 실제 한국 기업이 신시장을 창출하거나 소비자의 생활방식을 바꾸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개발한 사례는 많지 않다. 파괴적 기술개발에 있어서는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중국과의 기술격차가 점점 줄어드는 현재 시점에서 선도형 혁신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은 필연적이다. 한국 기업들에 파괴적 기술혁신의 기회를 제공하는 기술전망 활동이 절실한 이유다.

 

기술예측과 기술전망을 적절히 활용해 중장기 전략을 수립하는 독일 지멘스 사례의 시사점은 크다(Doericht, 2013). 지멘스의 단기 전략은 기술예측 접근법에 의해 결정된다. 로드맵 기법을 활용해 현재 사업 분야별 비전과 전략의 방향을 이끌어낸다. 시장자료, 기술자료, 소비자 요구사항 등을 분석해 현재 사업영역 내에서의 현황과 동향을 기반으로 향후 출시해야 할 제품과 기술을 도출한다. 반면 중장기 전략은 현 사업의 연장선이 아닌 기술전망 접근법, PoF를 도출하기 위한 방법론에 따라 수립된다. 사회, 인구 변화, 기술발전, 경제 등의 관점에서 미래사회 변화의 핵심동인을 도출하고 이를 통해 기대되는 미래상을 시나리오로 구체화한 뒤 이 시나리오하에서의 전략을 수립한다. 중장기적인 미래에 필요할 제품의 기능이 무엇이고, 이러한 기능을 구현하기 위해 필요한 기술이 무엇인지를 도출해 내는 게 목표다. 최종적으로 이 두 가지 접근법을 통합해 전략적 비전이 수립되고 기술개발에 대한 중장기 로드맵이 작성된다. 그 결과 최종적으로 현재 기술예측을 토대로 도출된 미래제품 및 기술과 기술전망을 토대로 요구되는 미래 제품/기술이 모두 반영된 제품 포트폴리오와 기술 포트폴리오가 개발된다. (그림 6)

 

 

현재까지 많은 기술전망 활동이 주로 일회성으로 진행돼 왔다. 그러나 의도한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기술전망이 기업의 전략수립 프로세스에 내재돼 주기적이고 지속적으로 수행될 수 있도록 체계적인 프로세스가 구축돼야 한다. <그림 6>에 나타난 지멘스의 2001 PoF 방법론이 그대로 멈춰 있지 않고 2008 <그림 7>과 같이 개선될 수 있었던 것은 지멘스 내에서 기술전망이 하나의 기업문화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4. 기술전망을 위한 방법론

 

미래를 전망하기 위한 엄밀하고 과학적인 방법론이 있을까?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다. 이것이 미래연구가 직면한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다. 그러나 기술전망이 지향하는 바가 미래를 통계적으로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는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다양한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찾아내고 그 가능성을 전망하는 일은 인간의 가치판단이 개입돼야 하는 활동이기 때문에 이를 통계적으로 입증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게다가 방법론이 적용될 수 있는 대부분의 데이터는 거의 과거와 현재를 묘사하는 것이므로 미래지향적인 기술전망의 본질에도 적합하지 않다. 여러 가능성을 찾아내고 각각의 상황이 벌어졌을 때 우리가 보다 더 효율적, 능동적으로 대응하게 하는 것이 미래연구의 역할이다(임현 외, 2009).

 

그렇다고 해서 미래전망이 단순히 관념적이며 가용한 기법이 전혀 없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 미래전망에 주로 활용되는 기법들은 주로 정성적인 기법으로 대부분 기술전망에 특화된 기법이라기보다는 전문가의 의견을 효과적으로 수집하고 이를 토대로 의사결정을 지원하기 위해 고안된 방법들이다.4  이 중 대표적인 방법들로는 시나리오 분석, 델파이 분석, 기술로드맵 등을 꼽을 수 있다.첫째, 시나리오 분석은 기술전망 연구에서 가장 핵심적인 방법론으로 활용돼 왔다. 이는 미래사회를 결정짓는 정치, 사회, 기술 등의 동인들을 도출하고 이들의 상호관계에 따라 미래사회의 모습을 전망하는 방법이다. 따라서 기술전망과 같이 복잡성, 불확실성, 역동성, 위험성이 강한 문제를 다룰 때 시나리오만큼 효과적인 방법은 없다. 이는 1970∼1980년대 로열더치셸(Royal Dutch Shell)에서 활발하게 사용된 이래 최근에는 훨씬 다양한 영역에 적용되고 있다(Schoemaker and Corelius, 1992). 둘째, 델파이는 전문가를 대상으로 반복설문을 수행하되 반복 설문 시 설문분석 결과를 제공해 원래의 의견을 수정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방법이다. 전문가 의견 외에는 가용한 정보가 제한적인 장기 관점에서의 미래전망에 특히 유용하기 때문에 시나리오 분석과 더불어 기술전망에 유용하다. 셋째, 기술로드맵은 시나리오 분석이나 델파이에 비해 최근에 비교적 활용도가 높아진 방법이다. 이는 기업의 사업전략과 기술전략을 연계하는 기법이기 때문에 기술개발의 동인이 무엇인지를 명시한다는 측면에서 가치가 있다(Willyard and McClees, 1987). 세 가지 핵심적인 방법 이외에도 브레인스토밍, 기술지능5 , 전문가 패널 등의 방법이 주로 활용된다.

 

 

5. 체계적인 기술전망 프로세스

 

기술전망에 있어서는 도구보다 프로세스가 강조된다. 즉 기술전망에 필요한 활동들이 체계적인 절차를 통해 진행됐는지가 어떠한 도구를 통해 그 활동들이 진행됐는지보다 중요하다. <그림 8>은 여러 기관에서 적용되고 있는 기술전망 프로세스 사례들이다. 세부 활동들에 다소 차이는 있으나 대부분 미래 시나리오를 도출한 뒤 도출된 시나리오하에서 유망 아이템의 콘셉트를 발굴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기술전략을 수립하는 3단계 프로세스로 구성된다.

 

이를 종합하면 크게 <그림 9>의 프로세스를 구성할 수 있다. 그림에는 나와 있지 않으나 실제 기술전망을 시작하기 전에는 기술전망 작업의 범위를 설정하는 사전(Scoping) 단계가 필요하다. 이 단계에서는 기술예측을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이고, 누가 참여해야 하며, 다뤄야 하는 영역이 어느 정도인지, 어떠한 방법을 사용해야 하는지 등 업무를 효과적으로 진행하기 위한 여러 사전 작업들을 수행한다.

 

 

기술전망에 있어 가장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작업은 미래 시나리오를 도출하고 바람직한 기업의 미래상을 설정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불확실성과 관련된 다양한 영역들을 분석하고 분석결과를 종합해 미래 시나리오를 도출해야 한다. 또한 기업의 핵심 역량을 분석해 미래 시나리오하에서 기업이 나아가야 할 비전과 중장기 전략을 수립한다. <그림 10>은 기업이 미래 시나리오를 도출하기 위해 분석해야 할 세 가지 환경을 의미한다. 거시환경은 인구구조의 변화와 같이 기업이 통제하기 어려운 영역인 반면 산업환경은 경쟁강도, 시장점유율 등과 같이 기업의 노력으로 어느 정도 통제가 가능한 영역이다. 내부역량은 기업의 가치사슬, 핵심역량과 같이 기업의 성과와 직접적으로 관련돼 있다. 일반적으로 거시환경은 산업환경에, 산업환경은 기업역량에 각각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기술전망에 있어 거시, 산업, 기업환경을 순차적으로 분석하거나 세 가지 영역 간 관계를 고려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이러한 환경분석은 외부의 동향분석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하거나 기업 내부 혹은 외부 전문가 집단을 활용해 수행할 수 있다. 이 단계에서는 다량의 정보를 빠르게 분석하고 양질의 정보를 선별해 반영하는 활동이 매우 중요하다. 분석별 가용한 기법들을 살펴보면 우선 거시환경 분석은 사회, 기술, 경제, 생태계, 정책/제도 관점에서 미래 동향을 파악하고 이러한 변화를 야기할 핵심 동인을 추출하는 거시환경분석(STEEP)을 활용할 수 있다. 다음으로 산업환경 분석은 기업의 사업영역과 보다 직접적으로 관련된 요소들에 초점을 맞추되 거시동향이 산업동향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염두에 둬야 한다. 산업구조, 기술, 경쟁사, 시장 관점에서의 현황과 미래 동향에 초점을 맞추게 되며 잘 알려진 5가지 경쟁요인(5-Force) 모델, 특허 및 문헌 분석, 표준동향 분석, 경쟁업체 전략 분석, 시장점유율과 고객 니즈 분석 등이 활용된다. 산업환경 분석에서도 마찬가지로 산업 변화에 영향을 미치게 될 핵심 동인을 추출한다. 마지막으로 기업역량 분석에서는 가치사슬(value-chain) 분석을 통해 기업의 핵심역량이 어디에 있으며 이를 어떻게 발전시키고자 하는 내부 동인이 있는지를 도출한다.

 

환경분석이 완료됐다면 이를 활용해 미래 시나리오를 전개할 수 있다. 시나리오를 만드는 방법은 다양하다. 미래에 대해 단일 시나리오를 제시할 수도 있으며 다수 시나리오를 제시할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실무자들이 추천하는 것은 3∼4개의 시나리오다. 이는 미래의 불확실성을 어느 정도 반영할 수 있으면서 동시에 시나리오 작성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개수이다. 다수 시나리오를 작성한다면 시나리오 작성의 기준을 개발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환경분석 결과 도출된 동인 중 불확실성이 크고 기업에 미치는 영향이 큰 동인을 선별해 시나리오 개발 기준으로 활용한다. 해당 동인의 변화 방향과 동인 간의 관계에 의해 시나리오들이 도출될 수 있다.

 

이상의 결과를 종합해 미래에 자사가 고려해야 할 잠재적 기회와 위협들을 선정하고 자사가 보유한 강점과 약점을 분석해 기업의 중장기 전략과 비전을 수립할 수 있다. 또한 미래의 기회 혹은 중장기 전략에 입각해 유망제품 후보군을 도출한 뒤 미래 시나리오와의 연관성 및 자사 사업방향과의 연관성 등을 고려해 최종 유망제품을 선정한다. 마지막으로 기업의 비전과 중장기 전략, 이러한 전략수립에 직접적인 동기를 제공한 외부와 내부 동인, 그리고 유망 제품 아이템, 그 아이템을 실현하기 위한 미래기술, 해당 기술을 개발하기 위한 연구개발 계획 등을 연계한 전략로드맵을 수립하게 된다.(그림 11)

 

 

 

 

 

 

6. 성공적인 기술전망의 길

기술전망을수행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Martin Irvine(1989)은 성공적으로 기술전망 프로세스를 운영하기 위해 필요한 5가지 핵심요소를 제시한 바 있다.6  이에 기반해 성공적인 기술전망을 위해 필요한 몇 가지 요소를 뽑아보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장기적인 전략에 초점을 맞춘 미래지향적 사고가 필요하다. 시장의 규칙과 구도는 시장의 트렌드를 따라가는 자가 아닌 시장의 트렌드를 만들어 가는 자에 의해 결정된다. 일반적으로 전자는 단기적인 성과와 수익에 집착하고 후자는 장기적인 꿈과 비전을 중요시 여긴다. 기술전망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후자가 돼야 한다.

 

둘째, 기술전망은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상충된 이해관계를 잘 고려해야 한다. 기술전망은 미래의 비전에 대해합의해 가는 과정이다. 합의 과정에서는 필연적으로 사업부서 간, 기능부서 간 비전과 계획에 있어 입장 차이가 존재한다. 기술전망 과정에서는 이러한 입장 차이를 고려하되 가능한 기업 내 각 부서별, 혹은 기업별부분 최적화가 아닌전사적인 차원에서의 최적화를 목표로 한 의사결정이 이뤄져야 한다. 기술전망을 위해서 협력문화가 중요한 이유다(UNIDO, 2004). 유사한 맥락에서 유망 분야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기술전망의 결과는 투자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친다. 향후 유망 분야와 관련해 신규 투자가 이뤄지기도 하고 새로운 부서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이와 같이 유망 분야에 대한 전망은 기업의 자원배분과 직접적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도출결과에 대한 구성원들의 공감대 형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셋째, 기술전망에 있어서는 참여자 간의 의사소통이 중요하다. 특허나 논문 등의 계량서지학적 자료를 분석하거나 고객의 행동 패턴에 대한 빅데이터를 분석하는 등 미래의 환경변화에 대한 약한 시그널을 읽어 내기 위한 정량적인 방법론 개발에 대한 시도가 최근 활발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기술전망의 많은 부분은 인간의 통찰과 지식에 의존한다. 미래에 대한 다양한 시나리오를 만들기 위해서는 기술전망 활동에 참여한 참여자 간의 의사소통과 지식교류가 매우 중요하다. 또한 미래에 대한 시각은 서로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새로운 시각을 받아들이는 유연성이 필요하다.

 

넷째, 미래전망의 결과가 R&D 정책과 연결돼야 한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미래연구가 수행되고 그 결과가 실제 전략수립이나 정책수립에 반영돼야만 의미 있는 기술전망이 수행됐다고 할 수 있다. 기술전망이란 실제로 활용됐을 때 가치가 있다. 기술전략 수립을 목적으로 기술로드맵, 특허분석 등 많은 단편적인 분석을 수행하고 있지만 이러한 분석결과가 종합돼 기술전략 수립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통합된 기술전략 프레임워크는 국가 차원에서나 기업차원에서나 아직 부족한 듯하다. 기술로드맵을 그리지만 실제 기술로드맵에 따라 기술개발을 수행하지 않고, 특허분석을 수행하지만 분석결과로 얻은 시사점을 미래전략에 반영하지 않는다면 분석의 가치는 반감될 것이다.미래전망이 심도 있게 진행되지 못하는 이유의 일부는 미래전망 결과가 전략수립과 정책도출에 어떻게 활용돼야 할지에 대한 아이디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성공적인 기술전망을 위해서는 거시환경 및 산업환경 변화에 대한 심도 있는 분석을 지원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테크캐스트(TechCast)는 미국 조지워싱턴대의 빌 하랄(Bill Halal) 교수가 운영하는 미래기술 동향 사이트로 실시간 델파이라는 트렌드 모니터링 자체 툴킷(took kit)을 보유하고 예측 활동에 활용하고 있다. 외부 전문기관들에서 발표하는 보고서 또한 유용한 정보 원천이 될 수 있다. 독일의 미래예측 전문 컨설팅 업체인 Z-punkt의 트렌드 DB는 다양한 국가에서 활용되고 있다.(DBR Mini Box 참조) 참여자들의 전문성 확보 또한 중요한 이슈다. 지멘스에서는 내부 전문 컨설턴트가 전체 과정을 주도하되 각 사업부별 관련 전문가를 파견해 태스크포스 형태로 기술전망 활동을 수행한다. 물론 외부 전문가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미래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도입하기도 한다.

 

기술전망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기업들이 컨소시엄을 이루거나 국가 차원에서의 미래전망 프로젝트를 수행해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Living Tomorrow ‘House of the Future’ 프로젝트가 좋은 사례다. Living Tomorrow는 미래의 주거와 업무공간이 어떻게 변화될지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이를 실제 체험할 수 있는 전시관을 운영한 바 있다. MS, 소니, 유니레버, 필립스 등 300여 개의 선진기업과 학교가 미래전망에 참여했으며 미래사회의 니즈를 만족시키기 위한 제품을 프로토 타입으로 제작해 전시했다. 이 중 80% 제품은 상업화가 가능한 수준이지만 20%는 당장 시장 출시가 불가능한 미래지향적 제품이며 매년 15∼20만 명의 관람객이 방문해 왔다.

 

물론 이러한 기술전망에 대해 다소 회의적인 의견도 있다. 미래를 예측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논리다. 그러나 거듭 강조하지만 기술전망은 가장 바람직한 미래를 만들기 위해 현재 어떤 행동을 취할 것인지에 대한 의사결정 과정이며 미래에 영향을 줄 잠재인자를 통제하고자 하는 과정이다. 미래를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바람직한 방향으로 유도할 수는 있다. 기술전망을 통한 전략이 미래의 결과에 영향을 미치기에는 미약하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달에 인간을 보내고자 한 케네디 대통령의 장기 계획이 많은 기술발전을 가져왔고 이는 인간의 삶을 바꾸어 놓은 수많은 제품과 서비스의 개발로 이어졌다. 인간이 미래를 제어할 수는 없지만 역사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영향을 줄 수는 있다(KISTI, 2013).

 

우리나라 기업들도 앞으로 단순히 동향을 읽는 것에서 탈피해 미래를 만들어 가는 수준으로 한 단계 도약해야 한다. 2013 26일 미국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와 보스턴컨설팅그룹이 선정한 세계 50대 혁신기업에 삼성전자는 11, LG전자는 7위에 올랐다. 1위는 역시 애플이고 2위와 3위는 각각 구글과 MS가 차지했다. 며칠 뒤 212 <패스트컴퍼니>가 선정한 50대 혁신기업에도 삼성전자는 17위에 머물렀다. 반도체, 휴대폰, 디스플레이 등 다양한 산업에서 시장점유율 1위를 유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삼성전자가 혁신기업으로 인식되지 못하는 이유는 소니의 워크맨, 닌텐도의 위(Wii), 애플의 아이폰과 같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새로운 카테고리의 제품을 아직까지 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사양 산업이란 없을 수도 있다. 산업 내 소비자의 니즈를 끊임없이 발굴하고 새로운 사업 기회를 재창출해 성장 동력을 만들어 내는 것이 바로 기업의 비즈니스 역량이며 불확실성이 높은 시대의 생존과 성장 전략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지금 기업이 미래연구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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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주 아주대 산업공학과 교수 sungjoo@ajou.ac.kr

서울대 산업공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기술경영으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 영국 케임브리지 기술경영센터를 거쳐 2009년부터 아주대에서 기술로드맵, 기술지능, 지식재산전략 등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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