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종합
최근 사회 전반적으로 ‘힐링(healing)’ 코드에 대한 관심이 높다. 하지만 힐링이 진정 무엇을 의미하는지, 특히 힐링 코드가 어떻게 시장 수요와 연결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이해가 돼 있지 않은 듯하다. 힐링의 영어 정의는 ‘to repair or restore something damaged to get well again’, 즉 무언가 상처 입은 것을 원상태로 되돌린다는 뜻이다. 상처 입은 대상은 육체가 될 수도 있고 정신이 될 수도 있다. 무엇이 됐건 문제점을 치유해 균형 잡힌 원래 상태로 복원시켜 놓는 게 힐링이 추구하는 목표다.
힐링과 유사한 코드로 웰빙(well-being)이 있긴 하지만 그 기준점이 현재라는 측면에서 힐링과 차이가 있다. 즉, 웰빙의 경우엔 과거에 무엇을 했는지에 대한 관심보다는 앞으로 잘 먹고 잘 사는 데 초점을 둔다. 심리적 측면보다 육체적 측면에 좀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도 힐링과의 차이점이다. 먼저 몸이 맑고 건강해지면 그에 따라 마음도 맑고 건강해진다는 게 웰빙의 원리다.
힐링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부분은 성취 결과의 기준이 ‘원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라는 점이다. 이는 시계상(time-horizon) 필연적으로 ‘과거’와 연결돼 있다. 바로 이런 특성 때문에 힐링이 한국인들에게 큰 호응을 받고 있는 것 같다.
힐링 코드가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
기본적으로 한국인들은 스스로의 정체성(identity)을 규명할 때 과거를 통해 정의 내리려는 경향이 매우 크다. 즉, 현재 나의 모습은 내가 과거에 어떤 부모 밑에서 자라, 어떤 사람들과 함께 어울렸고, 어떤 선택을 했는지에 따라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이 때문에 내 미래의 정체성도 과거에서 그려온 직선상에서 투영하려 한다. 전통적으로 뿌리를 중시하는 한국 고유의 문화 때문으로 보인다. 사회생활을 할 때 본인이 객관적으로 갖추고 있는 능력이 무엇인가에 대한 평가만큼 인척과 지연의 연결고리가 중시되고 있는 것을 보아도 과거는 한국인의 현재를 결정하고 미래를 투영하는 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반면 서구문화에서는 힐링이라는 코드를 찾기 어렵다. 힐링 산업, 힐링 마케팅 등의 키워드를 미국 구글에서 검색해 보면 주로 병을 치유하는 병원기관 아니면 요가나 침술 등 동양 철학에 바탕을 둔 서비스 산업에 관한 결과들이 나온다. 이것을 보아도 힐링이라는 코드는 동양에서 더 뿌리가 깊은 듯하다.
어떤 현상을 사회 안에서 일반화시키는 건 어렵고 옳지도 않겠지만 대체적으로 서구에서는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의 답이 과거보다는 현재 나의 모습과 앞으로 내가 무엇을 할 것인지에 달려 있다고 믿는 경향이 크다. 현재 상황과 스스로에 대한 인식이 나쁘다고 하더라도 과거로 되돌아가 자신의 실수를 되새김질하는 것을 그리 올바르게 보지 않는다. 사람이면 누구나 다 실수와 아픔을 겪으며 살기 때문에 그런 경험들이 낳은 현재 결과와 이를 통해 내가 무엇을 얻었는지에 좀 더 중점을 둔다. 즉 경험의 가치는 미래의 결정을 도울 수 있는지 여부에 달려 있다고 본다. 이에 지나간 것은 지나간 것이라는 생각이 크며, 과거의 실수는 훌훌 털고 전진하려는 태도(move on)가 사회적으로 더 바람직하게 받아들여지는 대응 메커니즘(socially accepted coping mechanism)으로 통한다.
이를 종합한다면 서구인들의 경우 대체로 자신을 규정하는 분석틀의 기준점(framework reference)이 ‘미래지향적 현재(present to forward)’로 웰빙코드가 잘 맞는 문화라 하겠다. 반면 한국인들은 조금 더 ‘과거지향적 현재(past-dependent present)’에 집중한다. 이 때문에 현재 자아에 대한 인식(self-perception)을 확립하고자 하는 노력에, 또 내가 나에 대한 현재 정체성을 남과 소통하고 재수립하려는 노력에 과거로의 여정이 필요하게 된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유독 한국에서 힐링 코드가 유행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최근 들어 힐링이 각광받고 있는 건 지금 우리 사회가 너무 많은 상처를 받고 있다는 걸 의미하기도 한다. 이웃사촌이 땅을 사면 배 아파한다는 것처럼 남과의 비교를 중시하는 뿌리 깊은 문화 탓도 있겠지만 빈부 격차와 실업 문제, 부와 복지의 비이상적(non-ideal) 분배에 따른 세대 간/계층 간 갈등도 사람들이 더욱 힐링을 갈망하게 되는 이유가 되고 있다. 더욱이 사람들에게 요구하는 기대수준은 자꾸만 높아지는데 실패에 대해 용인하고 재도전(second-chance)을 격려해주는 문화도 확립돼 있지 않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목표를 완수하지 못했을 때 받아들여야 하는 부담과 고통 역시 증가하고 있다. 그만큼 힐링에 대한 갈증은 더욱 커져가고 있다.
힐링과 마케팅의 접목
전통적인 상품개발과 마케팅 프레임워크에서의 목표는 소비자들의 니즈를 파악해 고객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것이었다. 이런 접근법에서 중요한 질문은 어떻게 하면 소비자들의 만족감을 극대화할 수 있는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고 판매/전달/소통할 것인가였다. 이를 통해 마케팅 ROI(투자수익률)는 얼마만큼의 매출액과 시장점유율을 획득할 수 있는지, 얼마나 많은 수익을 낼 수 있는지로 측정했다.
반면 힐링 코드를 바탕으로 하는 상품개발과 마케팅 프레임워크는 목표부터가 달라야 한다. 앞서 말했듯이 힐링은 과거에 상처를 입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상처 전의 상태로 되돌린다는 것은 상처 입기 전의 상황과 상태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따라서 소비자들의 현재 니즈를 파악하는 데 중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와 세대에 대한 총체적이고 인간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소통을 형성해 진정한 도움을 베풀려 하는 노력이 우선돼야 한다. (그림 1)
또한 전통적인 마케팅 프레임워크에서는 현재 시장에서 미충족된 소비자 욕구를 파악하고 회사의 역량 분석(capabilities analysis) 및 전략적 일치성(strategic alignment) 등을 고려해 제품/서비스를 개발한 후 고객들의 지불용의수준(willingness to pay)에 맞춰 최적의 가격을 책정하는 것으로 마케팅 활동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힐링 프레임워크하에서는 미충족된 욕구가 있다면 그것이 왜 아직까지 충족되지 못하고 있는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소비자의 과거에 대한 이해, 그리고 그 과거를 소비자가 현재와 미래에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에 대한 부분까지 고찰함으로써 현 사회 안에서 어떤 가치를 부가해야 하는지를 분석해야 한다. 이 때문에 힐링 코드를 마케팅에 접목하는 노력은 좀 더 인간중심적인 접근이며 “내가 당신의 아픔을 보듬고 다스려 당신이 좀 더 행복해질 때 나도 사회도 함께 발전하고 행복할 수 있다”는 지속성이 강조된 접근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힐링의 접근 방법은 ‘동병상련’의 태도가 중요하다. 상처를 이해하고 공감한다는 것은 그 치유를 제공하는 개체가 비슷한 아픔을 겪었던 경험과 그것을 극복해 냈던 과정을 소통하고 녹여낼 때 가장 효과적이다. 모든 문제를 “만약 이게 나의 문제라면 그냥 내버려두겠는가”라는 관점에서 검토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고객과의 연결고리와 공감대를 형성하고 마치 소비자의 어릴 적 죽마고우처럼 그들이 과거에 겪었던 아픔을 함께하고 보듬을 수 있는 브랜드가 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그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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