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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체험을 게임화하라

강희흔 | 101호 (2012년 3월 Issue 2)
 
 
 
“축하합니다! 방금 최고 속력을 경신했습니다!”
 
최근 나이키의 행보가 재미있다. ‘일상을 스포츠로’라는 슬로건하에 ‘나이키 플러스’와 ‘나이키 퓨얼밴드’에 이르기까지 흥미로운 시도를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두의 메시지 역시 나이키 플러스를 설치하고 달리기를 즐기는 사용자라면 지속적으로 보게 되는 내용이다.
 
생소한 독자를 위해 두 가지 프로그램을 간략히 소개한다. 나이키 플러스는 일종의 운동 지원 프로그램이다. 나이키 운동화 깔창에 러닝(running) 기록을 저장해주는 나이키 플러스 센서를 구입해 부착한 후 아이팟과 동기화 과정을 거치면 달리기를 마친 후 나이키 웹사이트에서 수치화된 러닝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최근에 발표된 나이키 퓨얼밴드는 이보다 한 단계 더 진화한 제품이다. 인체공학적으로 설계된 가벼운 손목밴드를 차고 다니면 하루 종일의 운동량을 측정해 이를 수치화해 준다. 나이키 플러스와도 연동해 사용할 수 있다.
 
주목할 점은 나이키가 운동 결과 수치를 단순히 숫자만 나열하는 방식으로 제공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나이키 플러스는 센서가 수집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시간이나 거리 기록 경신에 대한 알람을 제공한다. 또 특정 훈련 목표(예: 20㎞ 달리기, 100일 동안 100㎞ 달리기 등)를 달성했을 때 웹사이트에서 가상의 배지와 트로피를 주고 사용자 개인 프로필 페이지에도 수상 기록을 남긴다. 사용자가 원한다면 이를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 SNS를 통해 친구들에게 알릴 수도 있다. 현재 나이키 플러스 커뮤니티를 통해 200만 명 이상의 회원이 달리기 기록을 저장하고 공유한다. 이들은 ‘모두 모여 지구 한 바퀴 돌기’와 같은 각종 챌린지를 통해 공동의 목표 달성을 위해 노력하기도 한다. 단순히 운동 기록을 남기고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개인적 목표와 사회적 명분을 버무려 사용자들을 달리기와 운동에 점차 몰입하게 만들고 있다.
 
나이키는 오랜 기간 동안 자사의 제품이 범용화의 늪에 빠져들지 않게 하기 위해 브랜드 가치 증진을 목표로 마케팅 활동에 엄청난 돈을 쏟아부어 왔다. 그 성과는 탁월했다. TV광고는 말할 것도 없고 마이클 조던과 같은 스포츠 스타를 기용, 혁신적 브랜딩을 통해 나이키는 뭔가 특별한 제품으로 인식되곤 한다. 나이키 플러스 역시 이러한 브랜드 가치 증진을 위한 마케팅의 연장선상으로 봐야 할까? 그 역할도 분명 존재하는 게 사실이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기존 브랜딩 활동과는 분명 다른 점이 보인다. 고객들이 달리기 기록을 확인하고 미션을 만들어 달성하거나 다른 사람들과 기록 경쟁을 벌이는 일 등은 제품의 구매 이후 발생하는 행동이다. 그리고 이 영역은 그동안 마케터가 큰 관심을 갖지 않았다. 마케터는 자사의 상품을 고객의 머릿속에 인지시키고 구매를 촉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이제 초연결(hyper-connected)된 고객들의 경험을 창조하고 증폭하는 것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고객 경험 관리와 게임화(Gamification)
나이키의 사례에서 배우는 핵심 포인트는 어떻게 ‘독특하고 즐거운 제품 경험’을 창조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 답은 바로 ‘게임화(Gamification)’에 있다. 고객 경험에 대해 보다 전향적인 대응을 계획하는 마케터라면 반드시 알아야 하는 현상이 바로 게임화다. 이는 2010년에 등장한 신조어로 최근 IT와 벤처업계에서는 이미 ‘핫 트렌드’로 떠올랐다. 게임화는 게임에서 반복적으로 사용되던 게임 요소들을 활용해 고객들을 제품과 서비스에 몰입시켜 반복적으로 사용하게 하는 기법을 말한다. 구체적으로는 점수(Point), 진척표(Progress bar), 레벨(Level), 순위표(Leaderboard), 리워드(Reward), 타이머(Timer), 대전(Match) 등 게임에서 사용되던 요소들을 차용해 게임이 아닌 일반 서비스에 적용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앞서 제시한 나이키 플러스에서도 다양한 게임 요소들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러닝 기록에 기반해 레벨이 나타난다든지, 지속적으로 목표를 상기시켜 준다든지, 전체 러너 중에 순위를 표시하고 친구들과 경쟁하는 등의 게임 요소가 포함돼 있음을 서두에 말한 바 있다. 한 가지 더하자면 ‘미니’라는 아바타를 들 수 있다. 사용자의 모습과 흡사하게 꾸며볼 수 있는 ‘미니’는 달리기 기록에 따라 매번 다른 분위기를 연출할 뿐 아니라 운동을 오랜 기간 쉴 경우 살짝 삐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는 마치 ‘프린세스 메이커’나 ‘다마고치’와 같은 보호·육성 게임과 비슷한 느낌을 준다. 관련해서 재미있는 실험결과를 소개하자면 미국 스탠퍼드대 가상 인간 상호작용연구소(VHIL·Virtual Human Interaction Lab)의 실험 결과 운동할 때 자신과 비슷하게 꾸민 아바타의 모습이 운동 강도나 지속시간에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흥미롭지 않은가? 이렇듯 ‘독특하고 즐거운 경험’을 창조하고 증폭하기 위해 게임화에 대한 이해를 보다 심화시킬 필요가 있다.
 
 
게임화의 함의
그러나 국내의 게임화에 대한 논의 수준은 아직까지 피상적 벤치마킹에 그치는 정도다. 앞서가는 기업조차도 제품이나 서비스에 포인트나 배지 등을 도입하는 정도로 생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렇게 정형화된 게임 요소를 그대로 차용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예를 들어 포스퀘어가 시장(Mayor) 제도를 운영하고 배지를 활용한다고 해서 이를 자사 제품과 서비스의 맥락을 무시한 채 그대로 도입, 적용하는 건 난센스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비슷한 콘셉트의 게임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사실 고객 관점에서도 별다른 효용이 없는 행위다. 올 2월 <파퓰러 사이언스(Popular Science)> 최신 호에 소개된 ‘Game of Life’라는 글을 보자. 글쓴이는 삶을 게임화해보겠다는 의도하에 한 가지 실험을 했다. 장소 방문, 식사, 데이트, 운동, 놀이, 심지어 수면까지 삶에서 적용할 수 있는 최대한 많은 활동에 게임화 앱(App)을 사용해 레벨과 포인트 등을 모으려고 노력했다. 결과는? 어찌 보면 당연할 수도 있지만 일주일을 살아본 피험자는 이내 싫증과 피로를 느꼈다. 마케터가 게임화를 바라볼 때 표면적 현상에 매몰되지 말고 보다 근원적 원리에 관심을 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게임화라는 건 결국 고객에게 보다 독특하고 즐거운 경험을 제공해 고객 관여(Customer Engagement)를 증진하고자 하는 데 목적을 둬야 한다. 그러므로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할 점은 고객이 집중할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마케터들은 플레이어(게임을 경험 중인 고객)의 집중력을 최대한 길고 깊게 이끌어 내 게임을 재미있게 만드는 게임 디자이너의 역량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게임 디자인에서는 이렇게 플레이어가 집중력을 고도로 발휘하는 경험의 종류를 설명할 때 심리학에서 차용한 ‘플로(Flow)’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플레이어를 플로로 빠뜨리기 위해서는 플레이어의 기술, 지적 수준과 게임이 제공하는 도전 과제 사이의 섬세한 균형이 요구된다. 보유한 기술 및 지적 수준과 비교해 수준 낮은 도전과제가 제공되면 이내 플레이어는 지루함을 느끼게 되고 이 반대의 경우 역시 좌절감을 맛보게 된다. (그림 1) 게임 디자이너에게는 플레이어가 지루함과 좌절감으로 게임을 그만두지 않도록 유도하며 플로 채널에 그들의 경험을 배치시키는 게 중요한 일이다. 게임화를 기획하는 마케터 역시 고객 경험의 특정 단계에서 고객이 지루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아서 이탈하게 되는 것을 방지하는 장치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
 
 
다음으로 마케터는 고객 경험을 보다 풍성하게 만들기 위해 ‘게임적 즐거움(Game Pleasure)’에 대해 보다 깊이 있는 이해가 필요하다. 마케터는 과거와 같이 고객의 니즈를 단편적인 스냅샷으로 파악한 뒤 제품 출시에 그칠 게 아니라 보다 능동적이고 지속적으로 고객 경험을 창조해 나갈 수 있어야 한다. 게임의 세계에서 플레이어들이 느껴온 즐거움은 동적이며 굉장히 미묘한 부분을 포함하고 있다. 이런 면에서 마케터들은 이제 게임이 가진 매력, 게임이 제공하는 특별한 경험에 대해 알아야만 한다. 게임이 제공하는 즐거움에 대해서 그간 많은 연구가 있었다. 대표적인 연구가 르 블랑(Le Blanc)이 제시한 8가지 즐거움에 대한 분류다. <표1>에 제시된 분류 외에도 카네기멜론대의 제시 셸(Jessie Schell) 교수가 제안한 다양한 게임의 즐거움들도 참고할 만하다. 예를 들어 ‘타인의 불운에 대한 기쁨(Delight in another’s misfortune)’과 같은 항목이 있다. 특히 악인이 응보를 받을 때 플레이어들이 이런 감정을 느끼는데 이것은 경쟁적인 게임의 중요한 요소다. ‘역경을 이겨낸 승리(Triumph over adversity)’는 승산이 없음을 알면서도 이뤄낸 성취에서 오는 쾌락이다. 이렇듯 발상의 확장을 통해 기존의 마케팅에서는 상상하지 못했던 요소들을 고객 경험상에 녹여 넣는 대담한 시도도 고려해봄 직하다.
 
마케팅과 게임의 만남
“지난 십 년이 소셜(social)을 위한 기간이었다면 향후 십 년은 게임을 위한 기간이다.”
 
최근 들어 자주 언급되는 스캐빈저(SCVNGR)의 창업자 세스 프리배치(Seth Prebatch)의 말이다. 그가 보기에 지난 10년이라는 기간은 소셜이라는 개념이 등장하고 사람들을 연결해주는 틀이 형성되던 시기다. 이제 페이스북으로 그 연결의 골격, 즉 소셜 레이어는 완성됐고 앞으로는 이렇게 연결된 사람들 사이에서 이들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게임 역학의 시대가 올 거라는 주장이다. 그는 이를 ‘게임 레이어’라고 부른다.
 
필자가 다른 언어로 표현했을 뿐 앞서 얘기한 ‘초연결된’ 고객과 그들의 경험을 새로운 눈으로 디자인해야 하는 이유도 그와 다르지 않다. 나이키와 같은 기업은 이미 그 시대를 읽고 새로운 전장, 즉 게임 레이어의 관점에서 제품과 고객 경험을 혁신하고 있다. 이제 막 게임화를 알게 됐거나 준비하고 있을 마케터의 역할은 어설픈 게임화의 얄팍한 말잔치에 빠질 게 아니라 게임화가 내포하고 있는 함의를 깊이 있게 이해하고 제대로 적용하는 데 있다. 당연한 얘기지만 필자가 제공한 몇 가지 생각거리들은 이를 위한 충분조건이 될 리 만무하다. 보다 근본적인 고민을 독려하려는 시도에 불과할 뿐이다. 앞으로 10년, 게임화를 향한 본격적인 여정은 이제 막 시작됐다.
 
 
강희흔 비즈트렌드 연구회 pupilpil@paran.com
필자는 서울대 공대에서 토목·자원공학을 전공한 후 동 대학 경영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마케팅)를 받았다. SK마케팅&컴퍼니에서 마케팅 전략 컨설팅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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