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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endsetter Interview:김성철 idea company prog 대표

광고 PT 6할대 승률의 비결… “우선순위 확실히 정하고 나만의 법칙 제시하라”

하정민 | 84호 (2011년 7월 Issue 1)

 

광고주가 여러 광고 기획안을 심사하는 경쟁 프레젠테이션(PT) 자리는 말 그대로 총성 없는 전쟁터다. 광고를 따내기 위해 수많은 광고회사가 피 튀기는 경쟁을 벌이기 때문이다. 대기업 계열 광고대행사(in-house agency)가 아닌 독립 광고대행사들은 경쟁 PT에서 3할 승률만 기록해도 뛰어난 승률이라는 평가를 얻는다. 제일기획, 이노션, HS애드, SK M&C 4대 대기업을 비롯한 대부분의 대기업들이 계열 광고회사를 두고 있어 독립 광고대행사의 광고 수주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무려 60%의 승률을 기록한광고쟁이가 있다. 바로 김성철 idea company prog 대표( TBWA 코리아 상무). 1992년 광고계와 인연을 맺은 그는 2002년부터 지난 5월까지 총 72회의 경쟁 PT를 진행했다. 그중 42번의 광고를 수주했다. 6할 승률도 승률이지만 72회의 경쟁 PT를 진행한 사례는 국내 광고업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다. 김 대표가 제작한 대표적인 광고는 SK텔레콤의현대생활백서’, 현대카드 시리즈(현대카드M 론칭, 아버지는 말하셨지, 아빠는 회사에서 무슨 일을 해요, 생각해봐 등), 대림산업 e편한세상의진심이 짓는다등이다. 그는 최근 새로운 도전을 위해 9년간 일했던 TWBA코리아를 떠나 idea company prog를 설립했다.

 

DBR(동아비즈니스리뷰)는 광고기획자(AE)의 수명이 짧기로 유명한 국내 광고업계에서 20년 동안 일하며 다양한 브랜드의 흥망성쇠를 관찰한 그를 만나 브랜딩 및 마케팅 전략 전반에 관한 의견을 들었다.

 

 

6 할 승률의 비결은.

어떤 기업이 광고를 의뢰할 때 해당 브랜드의 상황을 조사해보면 항상 여러 가지 문제에 봉착해 있을 때가 많다. 때문에 많은 광고기획자들은 경쟁 PT의 과제를 받으면 그 여러 문제를 다 해결하는 광고를 내놓으려 할 때가 많다. 물론 어떤 브랜드가 쇠퇴했거나, 갑자기 실적이 급격히 나빠지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하지만 이때 모든 당면 과제를 다 해결하려 하는 태도는 양념이 너무 많이 들어간 음식이나 잡탕밥을 만드는 일과 같다.

 

어떤 광고기획자도 모든 변수를 통제할 수는 없다. 최우선 순위의 과제를 찾아낼 줄 알고, 여러 가지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려는 욕심을 부리지 않는 태도가 진정한 능력이다. 좋은 브랜드냐, 아니냐를 결정짓는 요인은 어떤 회사가 당면한 여러 가지 문제를 하나로 단순화시킬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설사 광고업자가 찾아낸 우선순위 문제가 광고주의 원래 의도와 달랐다 해도 마찬가지다.

 

같은 맥락에서 나는 다른 광고기획자들이 PT에서 흔히 쓰는 방식, A안과 B안을 준비해간 후 광고주에게 둘 중 하나를 고르게 하는 방식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2개의 안을 만들었다는 건 우선순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고, 그만큼 자기가 만든 광고에 자신이 없다는 뜻이다.

 

지금껏 가장 기억에 남는 PT.

2007 12월 현대카드 경쟁 PT가 열렸다. TBWA 2003 3월부터 4년간 현대카드의 광고를 맡아왔다. 지난 4년간 같이 일한 광고주였지만 수주 경쟁이 워낙 치열하니 이번에도 수주할 거라고 장담할 수 없었다. 당시 현대카드의 점유율은 업계 4위였다. 처음 현대카드 광고를 맡았을 때 7위였으니 초기에 비하면 순위가 많이 올랐지만, 막상 4위가 된 다음에는 추가 상승 모멘텀을 찾기 어려웠다. 카드업계에서마의 점유율로 불리는 13%의 벽을 어떻게든 돌파하는 게 과제였다.

 

초기 준비 단계 때 팀원들을 불렀다. “수주 여부에 관계없이 이번을 마지막으로 현대카드 프로젝트는 맡지 않겠다. 그러니 이번 PT에 모든 힘을 쏟아라.” 일개 팀장이 CEO와의 협의도 없이 마지막 광고라고 운운하는 자체가 정신 나간 짓이었다. 하지만 팀원들도 다 동의했고 정말 미친 듯 준비 작업에 매달렸다.

 

경쟁 PT가 열리는 날 현대카드 임원진 앞에서 시장 점유율을 높일 수 있는 6가지 전략을 담은 광고안을 내놓았다. 메인 카피는 ‘Thinking and Dream’이었다. 6가지 전략을 자세히 설명하고 난 뒤 광고주의 표정을 보니 만족스러워하는 눈치였다. 그때 내가 폭탄을 던졌다. “ 6개 전략은 다 잘못된 겁니다. 이렇게 안전하고 보수적인 전략을 쓰시면 안 됩니다. 이제부터 진짜 알맹이를 보여드리겠습니다.” 회의장이 술렁였다. ‘이게 무슨 소리냐며 황당해하는 임원진 앞에서 이 6개의 전략이 왜 적합한 대안이 될 수 없는지를 설명했다.

 

그 후 야심 차게 준비한 진짜 기획안을 발표했다. 진짜 기획안에는 11가지의 새로운 전략이 있었고, 그 광고의 메인 카피가 바로생각해봐였다. 이 광고의 특징은 15∼30초라는 짧은 광고 시간을 쪼개 중간에 현대카드나 금융과 전혀 관련이 없는 영상을 삽입했다는 데 있다. 초원에서 뛰노는 치타, 빨랫줄에 걸린 여자 속옷, 원자폭탄이 터지는 과거의 흑백 영상, 타조와 고래의 모습 등이다. 광고 중간에 뜬금없는 영상을 집어넣는 아이디어는무릎팍도사라는 유명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얻었다. 출연자가 그날 주제와 별 관련이 없는 이야기를 하면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산이 자막과 함께 등장한다. 신기하게도 그 장면을 보고 난 후에 출연자의 얘기에 더욱 집중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광고에도 이를 반드시 써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처음 이 아이디어를 팀원들에게 설명하니 반대가 극심했다. 해당 예능 프로그램이야 1시간짜리이니 완급조절도 필요하지만 30초 광고에서 중간까지 잘라먹고 어떻게 우리가 하고 싶은 얘기를 다 할 수 있느냐는 이유였다. 내 생각은 달랐다. 1시간이건, 10초건 시청자는 그리 인내심이 큰 존재가 아니다. 불과 30초라 해도 카드회사 얘기만 주구장창 늘어놓으면 누가 우리의 메시지에 집중하겠나. 주변을 봐라. 너무 많은 광고들이 있어 어지간해서는 소비자의 관심을 받기 힘들다. 광고의 흐름을 의도적으로 끊어놓고 시청자의 관심을 집중시킨 후, 그때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을 해야 광고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진짜 기획안에 대한 발표가 끝났는데 임원진의 반응이 없었다. 일반적으로 결과가 좋으면 박수가 나오거나, 격려의 말이 돌아오는데 다들 무엇에 홀린 듯 멍하니 앉아 있더라. 그때 내 생각이 맞았다는 걸 직감적으로 느꼈다. 수주에 성공했고, 실제 결과도 좋았다. 유명 모델 등을 쓰지 않았기에 일반 광고보다 제작 비용도 훨씬 적게 들었다.

 

PT를 통해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안이 있으면 절대 광고주와 타협하거나 구걸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준비 단계 때부터광고 중간에 관련이 없는 영상을 삽입하고, 11개나 되는 전략을 늘어놓아도 될까? 광고주가 지루해하거나 어처구니없어 하면 어떡하지?’ 등을 생각했다면 결코 그 광고를 따내지 못했을 거다. 기존 광고 문법만 따라가면 결코 소비자들에게 새로운 느낌을 전달해주기 어렵다는 점, 어설프게 A B안을 다 제시하기보다는 본인이 확신을 가지는 한 가지 안만 밀어붙이는 게 낫다는 점을 거듭 확인했다.

 

패배한 PT 중 기억에 남는 사례는.

이기든 지든 PT를 한 번 하면 그 결과물을 모두 상세하게 적어놓는다. 특히 스스로 평가하는 이긴 이유와 진 이유를 집중 탐구한다. 승부욕이 강한 편이라 PT에서 지면 1주일간 팀원들과 밥도 같이 안 먹고 얘기도 안 한다. 그 시간에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한다. ‘무엇이 실패의 원인인가? 이 방향이 아니고 다른 방향으로 접근했다면?’ 동시에 업계 관계자들과 만나 다른 사람은 어떤 방향으로 접근했는지를 조사한다. 이런 자료를 축적해서 같은 실수를 두 번 반복하지 않고, 어떤 상황도 대비하려고 애쓴다.

 

리더에게 통찰(insight)만큼 중요한 건 예측 능력(foresight)이다. 예측 능력은 미래 상황을 미리 알아내는 능력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어떤 상황이 일어나지 않도록 만들거나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닥쳤을 때 당황하지 않고 적절하게 대응하는 능력이기도 하다. 내가 항상 모든 경쟁 PT에서 승리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비슷한 과거의 실수 때문에 다른 PT에서 또 떨어지는 일을 방지할 수는 있다.

 

실패한 30편의 PT 중 절반은 솔직히 납득하기 어렵고, 나머지 절반은 납득할 수 있었다. 후자 중 몇 개는 진짜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대표적인 게 한 주류업체의 기획안이다. 내가 만든 기획안은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데 중점을 두고 있었다. 하지만 당선작은 브랜드 인지도 증가가 실제 매출 증가로 이어지도록 잘 연계된 전략을 담고 있었다. 기획서의 구성 양식도 매우 새로웠다. ‘정말 세상의 경쟁은 끝이 없구나. 내가 배워야 할 고수들이 너무 많구나하는 것을 절감했다.

 

대기업 계열사가 대부분인 한국 광고업계의 현실을 감안할 때 독립 광고대행사는 정말 압도적인 실력을 보여줘야 한다. 우리 안이 51%의 지지를 받고, 계열사 안이 49%의 지지를 받으면 계열사 안이 채택될 때가 많다. 내가 광고주라도 그럴 거다. 6:4 7:3도 아닌 8:2의 비율로 우리 안이 지지를 받아야 그 광고를 따낼 수 있다. 그 치열한 경쟁을 뚫으려면 철저한 준비밖에 없다.

 

모 전자업체의 PT에서 실패한 것도 좋은 교훈이 됐다. 그 전자업체는 당시 몸담고 있던 광고회사의 사장이 현직 AE 시절 광고를 수주했던 기업이었다. 당연히 사장의 개입이 심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광고 전략에 관해서만 의견이 달랐지만, 몇 번씩 되풀이되다 보니 결국 상사와의 감정 싸움으로 번졌다. PT 준비가 제대로 될 리 만무했고, 수주에도 실패했다. 의견이 다른 조직원, 특히 상사와 대립할 때 어떻게 대화하고 행동하는 게 좋을까라는 질문에 관해 내 나름의 의견을 정립한 계기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AE, 제작팀장, 본부장 같은 광고업계 특유의 서열화가 싫다. 일단 어떤 광고안이 확정되면 리더가 독재에 가까울 정도로 그 안을 밀고나가는 추진력을 보여줘야 한다. 하지만 아이디어 도출 단계에서 위계질서가 개입되면 신선한 광고가 나오기 힘들다. 새로 만든 회사에서는 직책 없이 나를 포함한 모든 AE가 아이디어 플래너(Idea Planner)라는 명칭을 쓴다.

 

업계 1위보다 도전자의 위치에 선 브랜드의 광고를 많이 맡았다.

김성철 대표는 수천 명의 추종자를 지닌 파워 트위터리안이다. 혜안이 묻어나는 그의 트위터(@progfrog) 어록을 정리한다.

 
비즈니스 거래는 100%가 돼야 끝난다. 99%에도 깨질 수 있다는 걸 아는 사람들이 최선을 다해 100%를 만들어낼 수 있다. 어설프게 진행하는 파트너와 미래를 함께하긴 어렵다.
 
치타는 초원에서 제일 빠르지만 뛰고 난 후 가장 취약해진다. 사냥에 성공하고도 먹이를 뺏긴다. 치타가 초원의 왕이 못 되는 이유다. 기업도 정점에 이른 후 다음 단계의 전략이 필요하다.
 
리더에게 필요한 건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명확한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거다. 사람이 사람에게, 사람과 사람이 하는 일이라 그렇다.
 
사람이나 브랜드나 니치(Niche)하다가 매스(Mass)해지려 할 때 문제가 생긴다. 스스로의 기본 강점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직원들에게 “실행에 대한 두려움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자주 말한다. 이게 될까라는 의문이 드는 순간 창의력은 떠나간다. 새로움은 가능성에 대한 자신감에서 나온다. 창의성은 결정과 실행의 다른 말이다.
 
“래프팅으로 팀워크를 배우거나 색종이 비행기를 만들면서 창의성을 계발할 수 있다고 믿는 기업에는 중대한 문제가 있다” 윌리엄 윌못. 완전 공감한다. 직원 스스로의 마인드셋이 더 중요하다. 시스템이 모든 걸 이뤄주지 않는다.
 
“혁신이야말로 리더와 추종자를 구분하는 잣대다” 스티브 잡스. 내 생각엔 혁신이야말로 좋은 리더와 아닌 리더를 구분하는 잣대다.
1992년 대학을 졸업하고 대우그룹의 광고계열사인 코래드에 입사했다. 처음 맡은 광고가 당시 업계 3위인 대우전자 광고였다. TWBA코리아에 온 후에도 상황은 비슷했다. 1위에 도전하는 후발주자의 광고를 많이 담당했던 게 오늘의 나를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많은 사람들이 1위라는 숫자에 매달린다. 하지만 도전하는 사람들이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후발주자가 훨씬 좋은 전략을 많이 만들어낼 수 있다. 1위는 좀처럼 시장의 규칙을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 1위이기 때문에 조심해야 할 일도 많다. 하지만 도전자는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전략을 마음껏 펼칠 수 있다.

 

1위에 대응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우리 회사를 기준으로 한 새로운 시장 규칙을 만들어 나와 다른 업체의 대립각을 형성하는 데 주력한다. 그 다른 업체는 꼭 1위 업체가 아니라 어떤 업체도 될 수 있다. 중요한 건나는 나만의 규칙이 있다고 주장하는 일이다. 그 주장이 옳으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다.

 

2003년 초 처음 현대카드를 맡았을 때 현대카드는 7위 브랜드였다. TBWA 전에 현대카드를 맡았던 회사는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라는 유명한 광고를 남겼다. 카피는 유명했지만 매출액이나 점유율의 변화는 크지 않았다. 당시 카드시장의 규칙을 따라가려고만 했기 때문이다. 7위 회사가 치고 나오려면 새로운 규칙을 만드는 수밖에 없었다. 소비자는 늘 둘 중 하나를 고르는 버릇이 있다. 문제는 소비자가 이 새로운 규칙을 제시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제시해줘야 소비자가 둘 중 하나를 고른다.

 

우리가 제시한 규칙은똑똑한 카드였다. ‘이 카드는 똑똑한 카드, 나머지 카드들은 다 안 똑똑한 카드. 그러니 이 카드를 안 쓰면 바보라는 인상을 심어주는 데 주력했다. 우리가 업계 7위라는 것, 나머지 6개 업체가 있다는 건 중요하지 않았다. 똑똑한 카드와 그렇지 않은 대다수 카드가 있을 뿐이다. 이처럼 명확한 기준점을 만들어낸 후, 소비자들에게 그 기준에 따라 우리 업체와 나머지 모든 업체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해야 경쟁자들을 물리칠 수 있다. 나만의 규칙을 강조할수록 브랜드 파워와 인지도가 커진다.

 

시장조사 등을 많이 참고하나.

기업들이 시장조사를 하는 이유는이게 과연 소비자에게 먹힐까라는 우려 때문이다. 물론 소비자의 욕구를 파악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문제는 시장조사에 가담한 소비자들이 자신의 욕구를 표현하기보다는정답을 선택한다는 거다.

 

자동차를 구매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요인이 뭐냐고 물어보면 대부분의 소비자는 성능이라고 답한다. 차의 성능은 출력, 마력, 안정성, 주행능력 등 정말 다양한 개념을 포괄하고 있다. 많은 소비자들은 이 개념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 그들이 차를 사는 기준은 디자인과 가격이다. 하지만 소비자들은차를 살 때 성능을 제일 먼저 따져야 한다는 당위에 사로잡혀 있다. 때문에 남들이 정답이라고 생각할 확률이 높은성능을 고른다. 이렇듯 시장조사의 맹점이 많은데도 기업들이 지나치게 시장조사에 의존하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다.

 

한국에는 왜 강력한 팬덤을 지닌 파워브랜드가 없을까.

파워브랜드는 약속하지 않는다. 제품을 소비자에게 보여줄 뿐이다. 애플이우리 다음에 이런 저런 제품을 만들겠다. 우리는 이런 기업이 되겠다고 선언하는 거 봤나. 뭘 약속한다는 건 그만큼 그 브랜드가 자신이 없다는 뜻이다.

 

한국의 많은 브랜드는 그 약속조차 구체적인 약속이 아니라 모호한 약속으로 일관한다. ‘partner for life’류의 슬로건들을 보면 숨이 막힌다. 1분 후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데 누가 평생을 함께할 수 있나. 배우자도 평생의 파트너가 될지 모르는 세상 아닌가. 이런 슬로건을 보고 누가 그 기업의 마니아가 되겠나.

 

브랜드 슬로건은 직관적이고 쉬워야 한다. 디젤 청바지의 ‘Be stupid’를 봐라. 바보처럼 보일 정도로 자유롭고 창의성이 넘쳐야 한다는 것, 그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이 입는 청바지라는 뜻이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가. 궁극적으로는 슬로건이 없어도 소비자가 해당 브랜드의 정체성과 이미지를 명확하게 인식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한국 기업은 항상또 하나의 가족처럼 행복과 사랑에 대한 모호한 약속을 내놓는다. 좋은 시민(Good Citizen)이 되겠다는 의무감과 강박관념이 지나치게 크기 때문이다. 재벌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없애야만 한다는 생각에 사회공헌에 집착하면서도 별 효과를 보지 못한다. 모 공기업이 매년 600억 원의 사회공헌 자금을 쓴다는 보도도 있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이를 기억하지 못한다. 설사 알아도 크게 감동하지 않는다. 그 사회공헌 활동이 해당 기업의 철학이나 정체성과 맞물리지 않기 때문이다.

 

유한킴벌리의우리 강산 푸르게, 푸르게캠페인이 성공한 이유는 그들의 활동이 단순한 강박에서 온 게 아니라 핵심 사업과 밀착됐기 때문이다. 펄프업체가 나무를 심는 건 너무 자연스럽다. 하지만 자동차업체가 소아암 환자를 고치거나 개안 수술을 해주는 일은 연관성이 낮다.

 

파워 브랜드는 공급자가 아니라 소비자가 만든다. 브랜드 팬덤을 원한다면 우선 어떤 형태로든 고객이 자발적으로 뛰어놀 수 있는 마당을 만들어줘야 한다. 소비자 커뮤니티를 만들 때도 소비자가 어떤 사항을 원하는지를 상세히 파악한 후 그에 맞게 공간을 구성해야 한다. ‘우리 이런 거 만들었으니 여기 모이세요라는 태도는 곤란하다. 팬덤은 소비자의 자발성에서만 비롯된다. 각 업체의 상황과 현실에 맞게 소비자를 자사의 대변인으로 만들 방법을 궁리해야 한다.

 

아이폰을 쓰는 사람은 자신이 아이폰을 쓰는 것을 자랑하지만, 갤럭시s를 쓰는 사람은 아무도 갤럭시를 자랑하지는 않는다. 아이폰 유저는이런 성능이 좀 부족하지만 디자인 죽이지 않아?’라고 말한다. 갤럭시 유저는다 좋다더니 이 기능 왜 이래?’라고 말한다. 문제가 생겼을 때 사용자가 그 문제를 덮어주는 브랜드와, 사용자가 비사용자보다 더 비판하는 브랜드의 차이다.

 

팀원들과 어떻게 소통하나.

사람들은 광고업계의 조직 문화가 무척 자유로울 거라고 생각한다. 근태관리나 복장관리 조항이 유연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의사결정 과정에서 아래 사람의 의견이 반영되는 사례는 거의 없다. 광고를 만들 때 민주적인 의사결정을 내리긴 힘들다. 마케팅이나 브랜딩은 수학공식이 아니기에 정답이 없다. 누군가가 책임을 지고 그 답이 정답임을 증명할 뿐이다. 독재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리더십을 발휘한다는 말을 달리 표현하면 책임을 진다는 뜻이다. 내 주장이 옳다고 조직원들을 설득하되,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일을 책임져야 한다. 본인의 주장이 옳다고 주장하면서 책임을 안 지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다. 리더는 책임진다는 말도 자주 하지 말아야 한다. 사안이 있을 때마다이건 내가 책임진다고 하는 리더를 누가 신뢰하겠나.

 

의사소통 또한 공급자적 관점을 탈피하는 게 중요하다. 40대 중반이지만 동년배에 비해 젊은이들의 문화에 훨씬 익숙하다고 생각한다. 걸그룹 이름도 다 꿰고 있고 의상도 편하게 입는다. 그러나 직원들과 걸그룹 얘기를 나눈다고 세대차이가 좁혀지지는 않는다. 많은 리더들이 착각하는 점도 이 부분이다.

 

책 선물하는 일을 무척 좋아한다. 처음 팀장이 됐을 때 수십 권의 책을 사와 마음대로 가져가라고 했다. 다들 좋아하며 책을 골랐다. 한 달 뒤 그 책 어떠냐고 물어보니 대답하는 직원이 아무도 없었다. 쉬는 시간에 주구장창 인터넷 서핑과 메신저만 하기에그 시간에 나가서 영화를 보든가 책을 읽는 게 낫지 않으냐라고도 말했다. 처음에는 이해하기도, 적응하기도 어려웠다. 문제는 나 혼자 내가 베풀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업무시간에 나가서 영화를 보라고 하는데 나처럼 좋은 상사가 어디 있어라는 착각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직원들이 원하는 건 그게 아니었다. 그러니 소통이 될 리가 없다. 친구들과 메신저를 한다고 그들이 무작정 논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들은 그들만의 방법으로 정보를 얻고 트렌드를 파악하고 있다. 내 생각으로 남을 재단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점심은 가급적 광고주를 만나지 않고 팀원들과 같이 먹는다. 팀원들과 밥을 먹으면서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고 삶의 공감대를 형성해야 업무 신뢰도 생긴다.

 

시간관리는 어떻게 하나.

많은 사람들이 광고쟁이들이 매일 밤을 샐 거라고 생각한다. 업무 강도가 세고, 근무 시간이 길긴 하다. 그렇기에 시간관리가 정말 중요하다. 광고업계에서 일하다 보면 정말 많은 사람과 다양한 토론 및 회의를 거친다. 하지만 일정 시간이 지나면 토론의 생산성이 확 떨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의미 없는 토론에 매달린다. 단지 내 주장이 옳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서다.

 

밤샘도 마찬가지다. 오전 11시에 PT가 있는데 그 전날 밤을 꼬박 새고 아침 7시까지 작업을 했다 치자. 어설픈 자기 합리화다. ‘나는 잠도 안 자고 이렇게 열심히 했어라고 스스로를 납득시키기 위해 그런 일을 벌이는 거다. 정말 열심히 했다면 일찍 준비를 마치고 가뿐한 몸 상태로 PT에 참가해야 한다.

 

시간관리는 단순히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는 일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동료를 믿어야 하고, 겸허할 줄 알아야 한다는 삶의 자세를 뜻하기도 한다. 한 정유업체의 PT 때 일이다. PT 전날 밤 갑자기 배가 아파 병원을 찾았다. 요로결석이었다.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이 왔지만 몇 시간 후면 PT가 시작되는데 내가 다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만 들었다. 6시간 정도 버틸 수 있는 진통제를 놔달라고 의사를 졸랐다. 의료용 모르핀을 맞고 PT에 참석했다. 강력한 약효 때문에 거의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PT가 끝나니 온몸이 땀으로 흥건했다.

 

그 광고를 수주하긴 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성공 사례가 아니라 실패 사례라고 생각한다. 진단을 받은 직후 바로 그 일을 회사에 보고하고, 다른 사람들이 대안을 마련하도록 했어야 했다. 동료를 믿지 못했고, 내 자신의 능력을 과신했다. 통증을 참아가며 이렇게 열심히 했다는 걸 알리고 싶었던 거다.

 

창의성의 본질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인간에 대한 사랑이다. 최근 인문학 경영, 인문학 리더십 등 말들이 많은데 결국 인문학은 사람에 대한 관심, 애정, 사랑을 탐구하는 학문 아닌가.

 

첫째, “하지마라는 말을 하면 안 된다. 한국 사회는 어른에게나 아이에게나 하지 말아야 할 것만 강조한다. 직장, 학교, 가정 모두 마찬가지다. “이것 빼놓고 다 해도 돼이거랑 저거 하지마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불법을 저지르는 일만 아니라면너 해보고 싶은 거 맘껏 해 봐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둘째, 제도적으로든, 정서적으로든 실패에 가혹한 문화를 바꿔야 한다. 실리콘밸리에선 창업에 실패했다고 자살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한국은 보증 한 번만 잘못 서도 온 가족이 동반자살을 한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도전 자체를 차단한다. 설사 도전을 했더라도 실패를 겪으면 여기서 끝을 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만든다. 그러니 학점이 낮다고 학생들이 자살하고, 한 번 실패한 기업가가 자살한다. 다이슨 청소기의 창업자는 무려 5000번의 실패 후 제품 발명에 성공했다. 한국에서 5000번 실패한 기업가가 생존할 수 있을까.

 

셋째, 스펙트럼이나 방법에 관한 상호존중이 필요하다. 나와 다른 삶을 살아왔다고, 다른 조건을 지니고 있다고, 다른 방식을 쓴다고 해서 그 사람을 배척하고 매도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창의성을 키우기 위한 노하우는.

항상 스스로 묻고 스스로 대답하는 일을 즐긴다. 초등학교 성적표에는 항상주의가 산만하다라고 쓰여 있었다. 주의 산만이 오늘의 나를 만든 힘이다. 오지랖도 넓고 세상사에 관심도 많다. 운전할 때도 항상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왜 가로수길에는 사람이 많을까?” “왜 갑자기 미니스커트가 유행할까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그에 관한 나만의 답을 내놓는다.

 

미니스커트 유행에 관한 나 자신만의 답은 다음과 같다. 첫째, 좌식 위주의 온돌 문화에서 생활하면 다리가 예뻐지지 않는다. 중국 북방계 한족들이 키가 크고 다리가 긴 이유는 수천 년 동안 입식 문화에서 생활해왔기 때문이다. 둘째, 사람들이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증가했다. 과거에는 다리가 날씬한 사람만 미니스커트를 입는다는 생각이 팽배했다. 하지만 요즘 친구들은 다리가 굵건 가늘건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셋째, 패션에 대한 일반인들의 이해도가 높아졌다. 사실 뚱뚱할수록 더 드러내는 게 시선을 분산하는 효과가 있다. 감추면 시각적 팽창 효과를 부추길 뿐이다.

 

답이 맞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내가 항상 어떤 현상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있다는 거다. 주로 출근 직후나 점심시간을 활용해 질문과 답들을 적어놓는다.

 

일종의 활자 중독증도 있다. 신문 안에 있는 광고 전단지, 제품 설명서 등도 샅샅이 읽는다. 모 광고주는우리 회사 엔지니어보다 제품 사양을 더 많이 아는 사람은 처음 봤다고 말하기도 했다. 다른 사람이 되는 상상을 하는 일도 즐긴다. 오늘은 정치인 김성철이 돼 반값 등록금 시위에 어떻게 대처할지를 생각하거나, 야구 경기를 볼 때면 내가 결승홈런을 친 4번 타자라고 생각하고 인터뷰 때 무슨 말을 할지 생각하는 식이다.

 

결과적으로 어마어마한 정보를 머리 속에 집어넣는 셈이다. 그런 일을 되풀이하다 보니 뭘 집어넣는 일보다 비우는 일이 훨씬 중요하다는 점을 자연스레 깨달았다. 정보의 양에만 집착했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택한 방법이 여행이다. 지난 9년간 40번 넘게 제주도를 방문했다. 제주도를 좋아하는 이유는 날씨가 워낙 변화무쌍해서 예측이나 계획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상황 변화에 따라 즉흥적으로 대처하다 보면 저절로 복잡했던 머릿속이 차분하게 정돈된다.

 

광고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멋진 광고로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거나 매출을 늘려달라고 말하는 광고주들이 많다. 하지만 그게 어떻게 광고만으로 되겠는가. 물론 그 전략을 도와줄 최대한 멋진 광고를 만드는 게 내 일이다. 하지만 광고가 전지전능이 아님을 아는 광고주야말로 광고의 효과를 가장 높여주는 존재다. 독특한 광고로 어떤 업체의 인지도와 매출이 확 증가했다 해도 그건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하다. 높아진 인지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이를 실제 성과로 이어지게 하려면 그 기업이 여러 혁신을 병행해야만 가능하다는 점을 알아주시길 바란다.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미래전략연구소 인턴 연구원 현은경(23·이화여대 경영학과 4학년)씨가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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