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자동차 업계의 광고전이 뜨겁다. 그 배경에는 하이브리드차 등 신차 출시, 사명 및 브랜드 변경, 수입차의 공세 강화와 같은 각 사의 전략적·마케팅적 이유가 얽혀있다.
각 회사의 광고를 보면 그 회사의 마케팅 전략을 엿볼 수 있다. 부동의 시장 지배자인 현대·기아차는 감성 광고를 택했다. 하이브리드차를 광고할 때도 감성이 먼저이고 경제성은 부차적이다. 르노 삼성도 사람을 내세운 감성 광고라는 기존 패턴을 고수하고 있다. 2위 자리가 위태로워 보이지만 아직 전략의 무게중심은 수익성에 있어 보인다. 고급 수입차 브랜드는 여전히 높은 가격을 정당화하는 자기표현적 가치를 전달하는 데 주력한다.
가장 눈에 띄는 행보를 보이는 회사는 한국GM이다. GM은 올 초 사명을 GM대우에서 한국GM으로 바꿨다. 이어 글로벌 브랜드(BI)인 쉐보레를 도입하고, 개별 차종에도 글로벌 공통 명칭을 적용하고 있다. 이는 GM이 이미 대부분 국가에서 글로벌 브랜드를 쓰고 있고, 자동차에서만큼은 ‘대우’ 브랜드가 이미 퇴색한 현실에서 생각보다 늦은 움직임이었다.
아울러 GM은 광고, 프로모션, 스폰서십 등을 총동원해 대대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주목할 점은, GM이 쉐보레가 ‘글로벌 브랜드’라는 점을 내세우면서 동시에 ‘성능’과 ‘가치’를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글로벌 브랜드의 여러 장점은 이미 학술적·경험적으로 검증된 바 있다. 첫째, 소비자는 글로벌 브랜드를 심리적으로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이 때문에 글로벌 브랜드는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에 팔린다. 둘째, 스필오버(spill-over) 효과다. 글로벌 브랜드는 글로벌 미디어를 통해 자연스럽게 인접 시장으로 알려진다. 이는 시장 확장을 용이하게 만든다. 이미 중국에서 성공한 GM으로서는 동아시아 시장에서의 스필오버 효과를 기대해 볼 만하다. 셋째, 규모의 경제에 따른 비용 절감이다. 이는 조달과 생산, 유통 분야에만 그치지 않는다. 마케팅 측면, 특히 광고와 같은 크리에이티브 분야의 비용 절감도 상당하다. 글로벌 브랜드의 진정한 효과는 표준화에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연 GM이 한국에 글로벌 브랜드를 도입한 효과를 온전히 누릴 수 있을까. GM은 많은 사람들이 아는 글로벌 브랜드지만, 과거 GM이 쇠락을 거듭하다 존폐의 위기까지 겪은 일도 아직 소비자 마음 속에 각인돼 있다. 따라서 소비자가 느끼는 심리적 효과가 클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결국 가장 기대할 만한 효과는 비용 절감이다.
GM은 미국 시장에서의 실패 경험을 통해 교훈을 얻을 필요가 있다. 도요타와 혼다는 좋은 품질과 우수한 연비, 무난한 디자인의 자동차를 ‘합리적인 가격’에 내놓아 미국 시장의 지형을 바꿨다. ‘빅 3’인 GM, 포드, 크라이슬러는 유럽차와 일본차의 틈바구니에 끼여 버렸다.
일본차가 진입하기 전까지 GM의 시장 지위는 가격마저 좌지우지할 정도로 견고했다. GM이 가격을 정하면 포드와 크라이슬러가 차례로 뒤따랐다. 만일 누가 가격 인하 등 반란을 꾀하면 GM은 가차 없이 보복할 수 있는 역량과 의지가 있었다. 담합 아닌 담합이 가능했던 이유다. 그러나 미국 정부의 소비자 중심 정책과 시장 개방, 이어진 일본차의 공격에 빅 3는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물론 한국 시장은 미국이나 일본, 중국에 비하면 규모가 작다. 하지만 국내 생산과 판매로 꽤 높은 수익을 올릴 정도의 규모는 된다. 최근 현대·기아차가 기록한 사상 최대의 이익 규모가 이를 증명한다. 과거 일본차가 미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가치’를 내세워 승부를 걸어볼 만한 여건은 갖춰졌다. 슬쩍 가격을 올리는 관행은 여전해 보이지만, GM의 ‘성능’과 ‘가치’를 강조하는 마케팅은 지켜볼 만하다.
브랜드 이미지는 3등, 실체는 2등, 목표는 세계 1등이라는 말이 있다. 삼성전자의 ‘world best’ 전략을 두고 하는 말이다. 삼성은 매체 광고, 옥외 광고, 스포츠 마케팅 등 전방위적인 브랜드 광고를 실시해 왔다. 그 효과도 있었지만 사실 이는 근본적인 실체의 개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삼성이 1990년대부터 1사 1명품 만들기 등 혁신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우수한 품질을 갖춘 제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내놓지 못했다면 오늘날의 성공은 어려웠을 것이다.
현대·기아차가 최근 미국은 물론 중국, 인도, 러시아 등에서 거둔 성공 또한 ‘실체적 가치’와 ‘합리적 가격’을 내세워 진정한 글로벌 브랜드로 거듭난 전략이 들어맞았기 때문이다. 한국 소비자는 어수룩한 감성적인 브랜드 광고에 좌우되는 후진적인 소비자가 아니다. 시장은 더 개방될 것이다. 하이브리드차, 전기차 시대도 그렇게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누가 과감히 먼저 포기하고 움직여 경쟁의 법칙을 바꾸는 미래의 승자가 될지 기대된다.
한인재 경영교육팀장 epici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