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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못골시장

행복한 못골시장의 ‘라디오 스타’들 스토리 마케팅으로 게임의 룰 바꾸다

박용 | 82호 (2011년 6월 Issue 1)



 
김지민 <The vanitas-holic> Resin, lens, c-print, 2008
‘덧없음(vanitas)에 대한 집착(-holic)’이라는 뜻의 이 작품은 유명 브랜드의 상품 라벨을 이용한 설치 예술 활동을 해온 김지민 작가의 작품이다. 10대부터 50대에 이르는 다양한 연령층이 각기 원하는 상품 라벨을 각 아이콘들의 얼굴 부위에 처리, 인간의 욕망을 세대별로 표현해냈다.
 
 
 
선거철이 되면 ‘밴드왜건 효과(Bandwagon effect)’라는 말이 자주 나옵니다. 이는 앞서가는 후보자를 계속 지지하려는 군중 심리를 뜻합니다. 이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언더독 효과(Underdog effect)’가 있습니다. 말 그대로 개싸움에서 밑에 깔린 개를 뜻하는데, 절대 강자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약자에게 연민을 느껴 불리한 후보에게 동정표가 몰리는 현상입니다. 수많은 영세 상인들의 삶의 터전이자 생업 기반인 재래시장은 백화점, 대형 할인점, 홈쇼핑 업체 등 유통업계 절대 강자들에 눌려 고사 위기에 처한 절대 약자, ‘언더독’입니다.
하지만 척박한 환경에 굴하지 않고 끊임없는 혁신 노력으로 위기를 기회로 바꾼 사례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내부 역량을 집결하고 상생 전략과 차별화된 콘텐츠 개발 등을 통해 척박한 토양 위에서도 남부럽지 않은 성공을 구가하고 있습니다.
DBR(동아비즈니스리뷰)이 위기를 딛고 일어선 재래시장 5곳의 사례를 집중 분석했습니다. ‘언더독’들의 통쾌한 역전 드라마를 통해 지혜와 통찰을 얻어 가시기 바랍니다.
 

‘180m 길이의 골목을 중심으로 상점이 늘어선 재래시장. 시장 골목에서는 8개의 대형 액정표시장치(LCD) 모니터와 스피커를 통해 라디오 방송이 흘러나온다. DJ도 시장 상인, 초대 손님도 상인이다. 상인들은 시장 고객과 동료 상인들에게 자신이 살아온 진솔한 스토리를 털어놓는다. 초대손님은 이야기보따리를 풀다가 흥이 나면 구성진 노래도 한 자락 뽑는다.
 
라디오 스튜디오 옆으로 고객들이 쉴 수 있는 커피숍과 휴게공간이 있다. 쇼핑에 지친 손님들이 잠시 쉬어가거나 장바구니를 맡겨놓고 다른 일을 볼 수 있다. 지역 예술가들의 작품을 감상하거나 ‘상인 기자단’이 소식을 전하는 시장 신문도 읽을 수 있다.
 
손님이 끊이지 않으니 재고가 쌓일 틈이 없다. 그만큼 물건도 신선하다. 주차는 백화점처럼 물건을 사면 1시간 동안 무료다. 5000원어치 물건을 사면 100원짜리 쿠폰도 준다. 쿠폰 10장을 모으면 1000원을 할인받을 수 있다. 운이 좋으면 매달 열리는 경품행사에 응모해 상품권을 받는 행운까지 거머쥘 수 있다.
 
골목시장에는 아케이드형 지붕이 설치돼 비나 눈이 와도 걱정이 없다. 노란색 선에 맞춰 늘어선 상점 진열대는 손님들의 통행을 방해하지 않는다. 고객들은 시장 상인들이 진행하는 요리강습을 받거나 상인들의 요리 비법이 담긴 레시피를 얻어간다. 시장 내에서는 상인들로 구성된 합창단이나 밴드 공연도 종종 열린다. 아이들을 시장 내에서 열리는 경제캠프, 미술교실 등과 같은 각종 교육 프로그램에 보낼 수도 있다. 게다가 백화점이나 할인점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상인들의 휴먼 스토리와 정과 나눔의 인정이 있다.’
 
일본 등 선진국의 재래시장 성공 스토리가 아니다. 경기 수원의 작은 골목시장인 못골시장의 모습이다. 이 시장에는 수원은 물론 서울에서도 손님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내로라하는 전국의 대형 재래시장 상인들도 벤치마킹을 위해 이곳을 찾는다.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위기를 극복하고 부활의 날개를 활짝 펼친 재래시장들이 하나둘씩 나타나고 있다. 못골시장처럼 정부의 투자와 시장의 자구 노력이 시장의 새로운 핵심 경쟁력을 창출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른바 ‘긍정적 예외(Positive Deviants)’다. 난마처럼 얽힌 재래시장 부활의 열쇠도 이 사례의 관찰을 통해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DBR(동아비즈니스리뷰)은 수원의 작은 골목시장에서 전국적인 명소로 떠오른 못골시장이 어떻게 경쟁자와 차별화된 시장 특유의 자원을 창출하고 성장했는지를 분석했다. 또 못골시장 혁신 프로그램의 한계와 앞으로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풀어야할 과제가 무엇인지를 진단했다. 작지만 강한 ‘강소시장’인 수원 못골시장은 우리에게 “재래시장은 무엇을 사는가”라는 화두를 던진다.
 
팔달문 막내시장의 변신
경기 수원시에는 21개의 재래시장이 있다. 이 가운데 구도심 팔달문을 중심으로 9개의 시장이 몰려 있다. 순대로 유명한 지동시장, 혼수 전문 영동시장 등 비교적 큰 시장들이 지동(池洞) 일대에 들어서 있다. 이곳은 예전에 큰 연못이 있었던 자리라고 해서 못골로도 불린다. 이 대형 재래시장의 틈바구니에 못골시장이 있다. 못골시장은 채소, 수산물, 떡, 어묵, 반찬 등의 식재료를 주로 판매한다. 골목길에 식재료를 판매하는 상인들이 하나둘씩 늘어나면서 1975년 무렵 시장이 형성됐다. 팔달문 인근 시장 가운데 가장 규모가 작고 역사도 짧은 편이다. 그래서 ‘막내 시장’으로 불리곤 한다.
 
2010년 4월 28일 수원시 팔달구 지동 못골시장. 약 180m의 골목길 양쪽에 상점 90여 곳이 들어서 있었다. 현대식 시장으로 재단장한 시장골목은 깔끔했다. 눈, 비를 막기 위해 아케이드 지붕이 설치된 데다 상점 간판이 저마다 특성을 살려 디자인됐다. 물건을 진열한 가판대가 튀어나와 고객들의 동선을 방해하는 재래시장의 불편은 찾아보기 어렵다. 시장은 평일 오전인데도 물건을 흥정하고 고르는 손님들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정오를 넘어서자 시장 골목이 붐비기 시작했다. 이름이 알려진 한 떡집 앞에는 떡을 사기 위해 긴 줄까지 늘어섰다. 오후 4시를 넘어서면서 장을 보러 온 주부들이 늘어나자 시장 골목길이 명절 대목처럼 북적이기 시작했다.
 
시장 곳곳에 설치된 8개의 대형 LCD 모니터에서는 시장 상인들이 운영하는 라디오 방송국 ‘못골온에어’의 프로그램 진행 장면이 방송되고 있었다. 이날은 한달마다 열리는 고객 대상 경품 추첨행사가 있는 날이었다. 상인 DJ들이 고객들이 응모한 쿠폰이 담긴 상자에서 경품 당첨자를 뽑아 발표하는 장면이 모니터를 통해 생생하게 전달됐다. 경품행사에 참여한 고객 이희숙(수원시 팔달구 지동·36) 씨는 “마트보다 가격이 저렴하고 신선한 데다 상인들이 친절해 매일 장을 보러 나온다”고 말했다.

 
이 시장의 하루 방문객은 2008년 12월 기준 1만301명에서 2010년 12월 1만3392명으로 30% 증가했다. 상점의 하루 평균 매출액은 2008년 12월 평균 50만 원에서 2010년 12월에는 61만4000원으로 22.8% 늘었다. 빈 점포도 찾기 어렵다. 이충환 상인 회장은 “상가 임대 매물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며 “한달 평균 상인회로 빈 점포를 찾는 문의가 서너 건씩 들어온다”고 말했다. 다른 재래시장에서는 손님이 끊겨 울상이지만 이곳 상인들은 높아지는 임대료 때문에 고민이다.
 
주변에 기업형 유통망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큰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대형 아웃렛 매장이 있다. 이 매장 내부는 물론 인근 시장 내에도 대기업이 운영하는 슈퍼가 있다. 이 회장은 “공산품은 몰라도 식재료는 대기업 슈퍼보다 더 싸고 질 좋은 상품을 팔 수 있다”며 “상인들의 오랜 경험과 노하우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품목만 많이 겹치지 않는다면 대형 유통매장과도 얼마든지 공생할 수 있다”며 “인근 아웃렛 매장이 내부 수리 때문에 잠시 문을 닫은 적이 있었는데, 유동인구가 줄어 시장 매출도 같이 하락했다”고 설명했다. 기업형 유통망에 밀려 벼랑 끝에 선 한국 재래시장의 위기를 적어도 이곳에서는 실감할 수 없었다.


 
위기의 재래시장
급속한 근대화 과정에서 한국인의 고달픈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재래시장이 빠르게 위축돼 가고 있다. 도시화가 진행되고 백화점, 대형마트 등 기업형 유통망이 발달하면서 재래시장은 소비자의 식탁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펴낸 ‘문화를 통한 전통시장 활성화 방안 연구’에 따르면 2007년 기준 매출액 감소나 정체를 겪고 있는 재래시장이 전체의 86.7%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도시화와 유통산업의 현대화 과정에서 한번은 겪어야 할 진통이었지만 하락세가 너무 가팔랐다. 시장의 몰락은 서민 일자리의 감소와 지역 공동체의 위기로 이어졌다. 정부가 뒤늦게 재래시장 보호를 위한 투자에 나섰지만 가시적 효과가 크지 않다는 평가다. 중소상인 중심의 재래시장과 기업형 유통망의 갈등도 현재진행형이다. 정부는 2002년부터 6년간 8212억 원을 재래시장에 투자했다. 하지만 2006년보다 매출이 늘어난 시장은 전체 시장의 13.6%에 불과하다. 재래시장은 정부 지원을 받아 복잡한 시장동선을 정비하고 아케이드 지붕을 설치해 사계절 운영이 가능한 시설을 만들었다. 하지만 물리적 시설만으로는 막대한 투자를 하는 기업형 유통망을 따라갈 수 없었다. 이는 누구나 모방할 수 있고, 값지거나 희귀하지도 않다. 시장의 차별화된 경쟁력이 될 수 없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돼지 입술에 립스틱 바르기’라는 투자 무용론까지 제기됐다.
 

변화를 이끈 젊은 상인회
못골시장은 전국의 내로라하는 재래시장도 보고 배우는 모범 사례가 됐지만, 10여년 전만 해도 그저 그런 작은 골목 시장에 불과했다. 말이 시장이지, 장사를 하는 상인들이 하나둘씩 모여들면서 시장으로 인정을 받은 ‘인정시장’이었다. 시장 내부는 여느 시장처럼 혼잡했고 길은 비좁았다. 골목길에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 시장이기 때문에 상인들끼리 공감대나 비전도 없었다. 상인들은 비좁은 곳에 서로 더 많은 상품 진열공간을 차지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진열공간을 늘렸다. 상점 진열대가 어지럽게 설치된 시장 골목은 사람 두 명이 간신히 지나갈 정도로 좁았다. 유모차를 끌고 나온 주부들은 상인들이 내놓은 진열대에 치여 제대로 걷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삶에 지친 상인들은 동료 상인이나 고객들에게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 이웃 상인끼리 하루가 멀다 하고 싸움이 벌어졌고, 심지어는 상인이 손님과 멱살잡이를 하거나 언성을 높이는 일도 적지 않았다. 매출은 오르지 않았고, 빈 점포는 늘어만 갔다. 다른 곳처럼 희망이 없어 보였다.
 
못골시장의 변화는 상인들의 손에서 시작됐다. 시장의 업력이 늘어나면서 상점을 물려받아야 하는 2세 시장 상인들이 많아졌다. 젊은 상인들은 부모세대가 일군 시장을 현대적으로 바꾸고 싶어 했다. 30, 40대 젊은 상인들을 주축으로 2003년 상인회를 조직하고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 못골시장 상인회에는 90명의 상인이 회원으로 등록해 있다. 회원들이 월 3만 원씩 내는 회비와 정부 보조금으로 상인회가 운영된다.
 
이 회장은 “시장이라는 곳이 하나로 뭉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상인들끼리 반목이 심해 몇 개월에 한번씩 회장이 바뀌는 시장도 많다. 우리도 처음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몇 십 년씩 장사에 잔뼈가 굵은 상인들이 젊은이로 구성된 상인회의 얘기를 귀담아 듣기란 쉽지 않았다. 그럴수록 우리는 작은 일이라도 생기면 무조건 모였다. 자주 대화를 하다보니 상인들 사이에 믿음이 생겼다”고 말했다.
 
상인회는 자체적으로 쿠폰을 발행하고, 상인교육 등을 열며 시장에 변화의 바람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이 같은 상인회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시장 상인들의 태도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못골시장에는 ‘정지선 법칙’이 있다. 길 양편으로 노란색 정지선을 그어 각 상점의 진열대가 넘어오지 않게 했다. 처음에는 시장 상인들이 정지선을 지키지 않았다. 좁은 골목길에서 경쟁적으로 진열대를 늘리다보니 이웃 상인끼리 다투는 일도 잦았다. 하지만 상인회를 중심으로 상인 모임이 잦아지고, 시장 변화를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에 상인들이 참여하면서 작은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정지선을 지키기 시작한 것이다. 시장에 좋은 일은 자신의 상점에도 좋다는 공동체 의식이 싹튼 것이다. 이 정지선이 지켜지는 한 시장 상인의 믿음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신뢰가 형성됐다. 자기 가게만 생각하던 상인 중심의 관점이 고객과 시장 전체를 생각하는 보다 넓은 시각으로 확대된 것이다.
 
젊은 못골시장 상인회
2003년 결성된 못골시장 상인회에서는 총무가 회장을 승계하는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 간부들의 재임 기간도 긴 편이다. 현재 회장직을 맡고 있는 이충환 씨도 2005년부터 상인회 총무를 5년 이상 하다 지난해 6월 회장 대행을 맡았다. 올해 3월 정식 취임했다. 직전 회장인 김상욱 전 회장도 초대 상인회의 총무 출신이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제약회사를 다니다가 광고회사를 창업한 어엿한 사장님이었다. 외환위기로 회사가 부도가 나면서 당시 장모가 분식점을 운영했던 못골시장에 자리를 잡았다. 그는 2003년 상인회가 조직되자 총무를 맡아 일했고, 이후 임기 2년의 회장을 연임해 6년간 일했다.
 
이처럼 시장에서 잔뼈가 굵은 젊은 상인회 간부들은 시장 일이라면 손바닥 보듯이 줄줄 꿰고 있다. 정부지원 사업에 적극적으로 응모해 지원을 얻어내는 것도 ‘젊은 상인회’의 강점이다. 못골시장을 바꾼 획기적인 계기가 된 문전성시 프로젝트도 젊은 상인회가 활동한 덕분이었다.
 

사람과 문화자원에 투자
상인회 중심의 못골시장 부활 노력은 정부의 지원을 계기로 탄력을 받게 됐다. 못골시장은 중소기업청의 지원을 받아 재래시장 현대화 사업을 진행했다. 이어 2008년 10월부터 2010년 6월까지 2년간 문화체육관광부의 문전성시 프로젝트 지원을 받았다. 정부는 2008년부터 재래시장이 갖고 있는 고유한 특성을 이용해 시장을 활성화하는 ‘문전성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재래시장의 시설을 현대화하는 식의 물리적 시설 투자만으로 몰락하는 시장을 일으켜 세우기는 역부족이라고 판단한 것. 오히려 어정쩡한 시설 현대화로 재래시장 고유의 분위기와 멋이 사라져 시장에 오는 재미가 없어질 수도 있다.
 
문전성시 프로젝트 사업은 물리적 시설의 약점을 보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전통시장이 갖고 있는 고유성이라는 강점을 찾아내 핵심경쟁력으로 만드는 노력이었다. 창조된 경쟁우위(Created Competitive advantage)를 확보하기 위한 사업이었다.
 
문화체육관광부 최금정 주무관은 “전통시장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곳이 아니라 지역과 함께 상생하는 커뮤니티 공간”이라며 “전통시장의 강점을 찾아내 고유의 문화가 살아 있는 지역 문화공간이자 생활공간으로 만드는 게 문전성시 프로젝트의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이 문전성시 프로젝트의 첫 번째 시범사업으로 선정된 곳이 못골시장과 강원 강릉시 주문진시장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시범사업 대상으로 △서민층 밀집지역 소재 시장 △역사, 지역, 문화, 관광적 특성이 있는 곳 △점포수 50∼200개 △골목형 시장, 문화관광형 시장 △상인회가 구성돼 있고, 추진의지가 높은 곳, 철거·신축 등 재개발 계획에 포함되지 않는 곳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정조와 수원 화성이라는 역사, 문화적 특성을 보유한 수원 팔달문 주변에 위치한 데다 젊은 상인 중심으로 상인회 활동이 활기를 띠고 있는 못골시장이 이 조건에 부합해 사업 대상자로 선정됐다. 못골시장 주변에는 지동 등 6만여 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으며, 대다수의 상인이 가입한 상인회가 운영되고 있다는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 결과 약 2년간 14억 원이 못골시장에 투자됐다. 사업을 따내기 위한 상인회의 노력과 상인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있었기에 시장 부활의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문전성시 프로젝트는 지자체나 상인만이 아니라 프로젝트 매니저(PM)라고 불리는 외부기관 전문가들이 참여해 프로젝트 전체를 기획하고 운영한다. 문화, 예술, 건축, 스토리텔링 등의 전문성이 필요한 경우 관련 전문가로 구성된 컨설팅팀이 합류하는 식이다. 못골시장에는 한국지역활성화포럼의 오형은 사무국장이 PM으로 참여했다.
스토리를 팔아라… 창조된 경쟁우위 확보
사업이 시작됐지만 고민해야할 게 한둘이 아니었다. 못골시장이 보유한 물리적 시설, 인적자원, 프로세스, 자본과 같은 자원만 놓고 보면 인근 대형 재래시장이나 현대식 기업형 유통망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 아무리 시설을 현대화해도 재래시장은 그저 재래시장이었다. 백화점, 할인점 등과 같이 세련된 기업형 유통망에 익숙해진 고객들의 눈길을 이런 노력만으로 사로잡을 수는 없었다. 게다가 시장 규모, 배후시장, 인력 등을 고려할 때 규모의 경제의 이득을 누리기도 어려웠다. 다른 시장보다 더 나은 물류나 유통시스템을 구축하거나 다른 곳이 따라올 수 없는 다양한 상품을 대량으로 구매해 더 싸게 판매하기도 쉽지 않았다.
 

PM단과 상인회는 머리를 싸맸다. 시장 겉모습은 평범해도 시장 내의 사람들, 즉 상인들은 다를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시장의 핵심 경쟁력은 결국 시장의 상인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그리고 상인의 열정, 소비자와의 만남, 상거래 자체를 시장 고유의 문화와 경쟁력을 만들어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이를 위해 시장 내부의 자원을 발굴하는 작업이 필수적이었다. 다른 시장과 차별화되는 못골시장 상인들만의 이야기를 브랜드화해 전통시장의 강점인 문화와 정을 자원화하기로 했다.
 
먼저, 시장 상인들의 이야기를 만드는 ‘스토리빌딩’ 작업이 시작됐다. 스토리텔링 기법을 이용해 책자, 간판, 브랜드아이덴티티(BI)를 만들고 시장과 각 점포를 홍보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외부 컨설팅단체를 중심으로 전문작가 5명이 상인들을 인터뷰하고 스토리를 하나씩 모으기 시작했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상인들의 이야기는 우리네 삶의 축소판처럼 다양했다. 진한 감동과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배어 있었다. 이렇게 수집된 30개 상인 스토리는 ‘우리는 못골시장 라디오 스타’라는 책으로 출간됐다. PM단과 상인회는 못골시장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 상인들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제작했다. 이렇게 제작된 영상은 시장 내의 대형 LCD 모니터를 통해 상영됐다. 김승일 씨 등 시장의 젊은 상인들이 참여하는 라디오방송국인 ‘못골온에어’도 시장을 고객과 외부에 알리는 창구가 됐다.
 
이 스토리들은 시장과 상점의 브랜드로 만들어졌다. 상인들이 직접 참여해 못골시장과 상점별 BI도 만들었다. 상인디자인워크숍을 열고 상인들이 돌출 간판 제작 등에 대한 아이디어를 냈다. 못골시장 브랜드도 상인들의 아이디어를 토대로 전문가가 제작한 것이다. 친절을 상징할 수 있도록 웃는 표정이 들어갔으면 좋겠다거나 못골을 상징하는 연못 디자인이 들어가면 좋겠다는 상인들의 아이디어가 브랜드로 만들어진 것이다. 상인들은 이렇게 만들어진 BI를 명함, 스티커, 앞치마 등에 쓰고 있다. 시장 내의 상점 간판도 상인들의 이야기를 입혔다. 아들을 파일럿으로 키워낸 X세대 신발가게 앞에는 장난감 날개가 달린 운동화가 내걸렸다. 암을 이겨내며 권투선수 아들을 키운 은하잡곡 성은숙 씨는 권투장갑을 끼고 장사를 하기도 했다.
 
  ‘못골시장 라디오 스타’들의 삶과 꿈
못골시장 상인들의 이야기를 모아서 펴낸 ‘우리는 못골시장 라디오 스타’에는 자궁경부암과 갑상선암을 이겨내며 권투 선수 아들을 훌륭하게 키워낸 은하잡곡 성은숙 씨, 연예인을 꿈꿨던 은실야채 조태화 씨, 리어카 행상 10년 만에 가게를 낸 지동야채 이효정 박명복 부부 등 못골 상인들의 절절한 사연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못골 상인들은 빈곤과 역경에 굴복하지 않았다. 그들은 삶에 대한 애착과 가족에 대한 정을 밑천 삼아 오뚝이처럼 일어섰다. X세대신발 김광재 사장은 한때 거리에서 음악 테이프 행상을 하며 시장에 번듯한 상점을 냈다. 그래서 처음 냈던 신발가게의 이름도 ‘두발로’였다. 젊은 시절 가난했던 부부의 사연은 작가나 이웃 상인들의 눈물을 쏙 뺐다. 김 사장은 돈이 없어 임신한 아내를 제대로 먹이지 못했다. 통닭을 가져왔더니 먹고 남은 뼈로 곰탕을 끓이던 아내의 모습을 보며 ‘다시는 내 아내가 통닭 뼈다귀로 곰탕을 끓여먹지 않게 하겠다’고 결심했다는 사연을 공개했다. 그렇게 키운 김 씨의 아들은 육군항공학교를 졸업한 파일럿이 됐다. 시장 초입의 남문뻥튀기 서원철 박종화 씨 부부는 젊은 시절부터 수원천변에서 뻥튀기를 팔며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젊은 ‘뻥튀기 부부’는 돈을 벌기 위해 아들과 딸을 데리고 노점에 나와야 했다. 박 씨는 노점 기둥에 아이들을 묶어 놓고 장사하던 시절의 아픔까지 털어놨다. 남편 서원철 씨가 1998년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부분기억상실증까지 앓게 되면서 박 씨의 어깨가 더 무거워졌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서 씨 부부는 희망을 잃지 않았다. 딸은 직장을 다니며 돈을 모아 한의대에 진학했다. 장모님의 뒤를 이어 폐백전문점 규수당을 운영하는 박준열 윤덕애 부부는 결혼 5년째 되던 해 공장의 프레스 기사로 일하던 남편 박 씨가 사고로 오른손가락을 전부 잃는 아픔을 겪으며 사업을 시작했다.
 
못골시장에서 대를 이어 가게를 운영하는 20, 30대 ‘2세 상인들’의 희망도 책 속에 담겼다. 비봉야채 이덕형 수형씨 형제는 어머니 김경애 씨를 돕고 있다. 시원시원하고 일 잘하는 이 20대 총각들은 폐암과 백혈병에 걸린 어머니를 돕기 위해 시장에 나왔다. 아들네찐빵의 김승일 사장도 못골시장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못골시장 토박이다. 청주대 통계학과를 졸업하고 부모님이 일하던 시장으로 돌아와 분식집을 열었다. 화성보신원 윤해민 씨도 아버지의 대를 잇고 있다. 옛고을떡집의 유재성 씨 부부는 4대째 떡집을 이어오고 있다.
 
상인들의 출신 배경도 다양하다. 두부마을 정연봉 사장은 신문기자 출신이다. 부인 이영희 씨는 KBS에서 일했다. 딸은 어머니가 근무했던 KBS에서 음악 전문 PD로 일하고 있다. 종로떡집 김봉녕 사장은 소방관 출신이다. 경남수산 장병태 씨는 원양어선을 타던 마도로스였다. 시장 상인이라고 해서 실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빵이 가득한 집 진흥영 사장은 한때 서울 강남의 한 호텔 뷔페식당의 파티셰로 일했을 정도로 실력파다.

못골시장은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다른 시장들과 확연히 구별되는 못골시장만의 독특한 자원을 창조할 수 있었다. 못골시장은 상인들의 스토리와 참여를 통해 가치가 있고(Valuable), 희귀하며(Rare), 다른 시장이나 기업형 유통망이 쉽게 흉내낼 수 없고(Inimitable), 조직화가 가능한(Organizable) 자원을 창출했다.
 
이를 토대로 조직적인 홍보 활동을 벌였다. 신문사 문화부나 지자체 담당 기자, 방송 프로그램 관계자 등에 대한 연락처를 확보하고 지속적으로 e메일을 통해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특히 언론매체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젊은 상인 DJ들이 참여하는 ‘못골온에어’, 여성 상인들로 구성된 ‘줌마불평합창단’, 상인들이 직접 준비하는 ‘못골 문화축제’ 등을 적극적으로 알렸다. 언론의 취재 요청을 신속하게 처리하기 위해 담당자를 지정하고 창구를 상인회로 일원화했다. 언론 취재 결과도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어 관리했다. 시장을 알리는 홈페이지와 블로그도 운영했다.
 
이 결과 수원의 작은 골목 시장은 전국적인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못골시장 상인회에 따르면 2008년 10월부터 2010년 6월까지 못골시장을 소개하는 언론보도가 방송 46건, 라디오 18건, 신문보도 346건 등 모두 408건에 이른다. 이 시장은 손석희의 시선집중 등 유명 라디오 프로그램은 물론 지상파 3사의 방송 뉴스에 모두 소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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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비스 프론티어, 상인이 행복해야 고객도 만족
상인은 시장이라는 서비스시스템에서 고객과 직접적인 상호작용을 하는 프런트 스테이지(Front Stage) 서비스의 핵심 요소다. 상인의 인식과 태도에 따라 서비스 접점(Service encounter)에서의 고객 경험이 달라질 수 있다. 서비스 프런티어인 상인의 태도와 업무는 또한 실질적으로 재화를 생산하거나 거래하는 백 스테이지(Back Stage)의 프로세스 및 성과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이는 고객 만족과도 직결된다. 상인은 여러 형태의 상호작용을 통해 서비스시스템이 강조하는 새로운 형태의 서비스, 새로운 형태의 재화를 공동생산(Co-production)하는 주체이며, 이와 같은 상호작용을 통해 재화와 서비스가 갖고 있는 본질적인 가치를 공동창출(Co-creation) 할 수 있다.
 

상인들의 스토리가 널리 알려지자 멀리서 고객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시장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무뚝뚝하고 무표정했던 상인들의 태도가 달라졌다. 실제로 못골시장에서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물건을 건네주고 돈을 받는 상인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상인들은 고객들과 인사를 주고받고, 재료를 가공하는 방법에 대해 자주 대화를 나눈다. 28년째 시장에서 어묵을 판매하고 있는 종로오뎅의 임용운(63) 사장은 “돈이 잘 벌리니까 일하다가 가끔씩 혼자 웃곤 한다”며 “상인회가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시장이 알려지면서 이제는 서울에서도 손님들의 문의가 온다. 개인적인 사연이 알려지면서 고객을 대할 때도 더 정성을 기울이게 된다”고 말했다.
 
양념류와 식재료를 판매하는 봉동상회 조정례(49) 씨는 요즘 TV 예능프로그램 남자의 자격 합창단이 불러 유명해진 ‘넬라판타지아’ 연습에 한창이다. 조 씨는 여성 상인들이 중심이 된 ‘줌마불평합창단’에서 활동하고 있다. 줌마불평합창단은 상인들의 애환을 담은 곡을 불러 인기를 끌고 있다. 외부 공연도 자주 나가고 TV에도 소개됐다. 손님들도 ‘합창단 아줌마’로 부르며 먼저 알아본다. 조 씨를 ‘언니’라고 부르는 단골도 꽤 늘었다. 할머니 손님들과는 자식, 손자 얘기를 주고받는다. 고객과 공통분모가 많아지자 단골이 늘고 매출도 20∼30% 증가했다.
 
조 씨는 “상인 동호회 활동으로 더 바빠져서 아이들을 챙기지 못할 때도 있다”며 “아이들이 불만을 터뜨리면 ‘엄마 얼굴을 봐라. 요즘처럼 행복한 적을 본 적이 있느냐’고 설득한다”고 말했다. 그는 “노래를 부르면서 스트레스를 풀 수 있고 자신감도 예전보다 커졌다. 나도 모르게 밝은 모습이 나온다”며 “알아보는 고객이 제법 많아져서 더 친절한 서비스와 더 나은 제품을 팔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시장 상인의 일과 삶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지면서 서비스 전달(Service delivery)이 개선되고 고객의 만족도도 높아지는 선순환이 일어난다. 이는 서비스지배논리(Service dominant logic)에서 말하는 능동적 자원(Operant resource)이 경쟁우위를 위한 주요 자원이 된다는 주장과도 부합한다. 시장의 물리적 시설이나 상품 외에도 상인들이 보유하고 있는 지식, 기술(skill)과 같은 무형의 능동적 자원이 서비스를 위한 경쟁우위를 일으키는 자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못골시장은 상인들이 고객을 대상으로 직접 요리 강습을 해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못골시장의 강점이 수십 년간 식재료를 판매해온 상인들에 있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고객들이 상인들의 요리법을 배우고 난 뒤에 시장에서 판매하는 재료를 구매해 직접 요리함으로써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다.
 
못골시장에는 ‘줌마합창단’ 외에도 다양한 상인 동호회가 결성돼 있다. 못골시장 상인들로 구성된 밴드인 ‘늦바람밴드’, 상인들이 직접 소식지를 제작하는 ‘상인기자단’, 상인들이 손글씨 간판을 직접 제작하는 ‘예쁜손글씨반’, 상인 DJ들의 라디오방송인 ‘못골온에어’가 대표적이다. 특히 여성 상인들을 대상으로 합창단, 요리교실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개설됐다. 여성 상인들이 고객 접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남성 상인보다 수동적이며 개인적이라는 점에 주목한 것이다. 여성 상인들의 참여를 이끌어내 남성 중심의 시장과 상인회 운영을 보완할 수 있다는 판단도 깔려 있었다.
 
각종 프로젝트와 동호회 활동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동료 상인을 보는 태도도 달라졌다.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생각이 사라지고 “시장에 좋은 게 상점에도 좋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상인들이 각자의 스토리를 공유하고, 동호회 활동을 함께 하면서 공동체 의식과 주인의식을 갖게 된 것이다. 이 회장은 “예전에는 상인들끼리도 서로 얼굴만 아는 사이가 많았지만 지금은 살아온 얘기까지 알게 되니 가족처럼 친밀해졌다”고 말했다.
 

전문가 네트워크의 힘
못골시장의 변화는 정부의 투자와 PM단으로 불리는 전문가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고객과의 접점에서 상인들의 인식과 태도 변화가 나타날 수 있도록 시장과 상점 브랜드 스토리를 만들고, 상인들의 만족도와 참여도를 높이는 각종 프로그램을 배후에서 기획하고 실행하는 지원 역할을 PM단과 상인회가 맡았다.
 
못골시장 프로젝트의 주관단체는 2008년 8월 심사를 거쳐 선정된 한국지역활성화포럼이었다. PM은 이 단체의 오형은 사무국장이 맡았다. 주관단체와 PM은 시장과 상인을 분석하고 사업을 실행에 옮기는 추진체계를 구축했다. PM단은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두뇌’에 해당한다. 이들은 사업을 추진할 때 상인회와 긴밀하게 협력하고, 필요하면 분야별 전문가 컨설팅단의 자문도 받았다. 문전성시 프로젝트의 사업비는 상인이 아닌 PM단을 통해 지원됐다. PM단의 인적 네트워크와 전문성을 활용하기 위한 목적이다.
 
2008년부터 1년간 시작된 1단계 사업은 PM단을 주축으로 사업이 추진됐다. PM단의 대표인 PM은 못골시장, 외부단체, 정부기관 등과의 의견을 조율하는 ‘지휘자’의 역할을 맡았다. PM의 밑에는 사업별로 기획자(운영자)의 역할을 하는 ‘큐레이터’를 두었다. 각 큐레이터는 각각의 비전에 맞는 프로그램을 발굴, 기획, 운영해야 하기 때문에 분야별 전문성이 필수적이다. 또 상인들을 설득해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역량도 필요했다. 이에 PM과 큐레이터를 돕는 회계와 행정 분야 어시스트로 구성했다.
 
못골시장 프로젝트 PM을 맡은 오형은 한국지역활성화포럼 사무국장은 “못골시장의 핵심 자원은 활성화된 공동체 의식이라고 판단하고 상인들이 즐거운 시장을 만들려고 노력했다”며 “이를 위해 커뮤니티 빌딩 전문가를 중심으로 PM단을 구성했다”고 말했다.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PM단은 변화와 혁신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실행에 옮기기 위해 필수적이다. 이들의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이 시장의 문제를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상인들의 의식과 태도를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초기에는 상인들과의 마찰도 적지 않았다. 상인들이 “장사를 방해한다”거나 “개인적인 아픈 사연을 왜 캐묻느냐”며 스토리를 취재하는 작가를 쫓아내는 일도 적지 않았다. 사진을 찍는 작가들에게 물을 끼얹고 쫓아내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PM단은 포기하지 않고 상인들을 끊임없이 프로젝트에 참여시켰다. 불평합창단을 조직할 때도 그랬다. 외부 전문가가 일방적으로 끌고 가는 프로젝트는 상인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내기도 어렵고, 사업의 지속성도 확보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PM단은 2009년 3월 시장 상인들을 대상으로 칭찬과 불평을 수집했다. 스태프들이 곰 인형 옷을 입고 불평을 수집하는 이벤트를 열었다. 이 결과 “친절한 못골 상인 웃으면 손님도 활짝” “웃는 손님 좋아요” “못골시장에 오면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기네”와 같은 칭찬과 “진출선을 지켜주세요” “고음으로 고객 부르는 소리 싫어요” “화장실 찾기 힘들어요” “눌러보고 그냥 가면 속상해요”와 같은 불평을 수집해 노래를 만들고 공연을 할 수 있었다.
 
고객경험(Customer Experience)을 중시
못골시장의 가장 큰 변화는 시장 상인들이 고객을 보는 시각과 고객을 대하는 태도에서 나타났다. 상인들이 과거에는 고객을 단순히 물건을 팔아야 하는 대상으로 봤다. 하지만 지금은 고객들이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경험을 공유하는 대상이 됐다. 고객의 경험이 서비스를 생산하는 주요한 투입요소(input)가 된 것이다. 못골시장에서는 고객들이 물건을 구입하는 일 외에도 할 수 있는 게 많다.
 
특히 고객들이 참여할 수 있는 교육과 문화 행사가 다양하다. 요리강습이나 요리 레시피 보급과 같은 행사 외에도 상인 합창단과 밴드의 공연이나 지역 작가들의 전시회가 종종 열린다. 못골시장 북쪽 입구에는 각종 공연과 행사를 진행할 수 있는 작은 야외무대도 있다.
 

시장이 갖고 있는 문화적, 교육적 가치를 활용한 다양한 고객 참여 행사도 열린다. 대표적인 행사가 지역 내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 프로그램이다. 못골시장 상인회와 PM단은 2009년 인근 지동초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못골시장의 상품을 활용한 미술체험활동 행사를 진행했다. 또 시장은 사람들이 모이고 물건을 교환하는 경제활동이 벌어지는 현장이라는 점에 착안해 시장 내에서 어린이 경제캠프를 운영하기도 했다. 2010년에는 상인 자녀와 인근 지동초등학교 저학년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못골 어린이 음악놀이터’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수원 문화의 전당 소극장홀에서 공연도 열었다.
 
이 회장은 “지역주민과 고객 참여 프로그램을 더 확대할 계획”이라며 “고객들이 시장에 와서 물건을 직접 만들고 전시하는 ‘못골 공작소’ 프로그램과 어린이 대상 로봇 창의교실 프로그램을 기획 중”이라고 말했다.
 
고객 서비스도 꾸준히 개선하고 있다. 상인회가 시장 내에서 통용되는 쿠폰을 발행하고 있다. 상점들은 일정액 이상을 구매하면 고객에게 이 쿠폰과 인근 팔달주차타워 1시간 무료 주차권을 준다. 고객관계 관리를 위해 쿠폰 등 경품행사에 참여하며 휴대전화 번호를 등록한 단골 고객 4000여 명을 대상으로 세일 행사나 문화공연 안내 등의 문자 메시지도 발송한다.
시사점
못골시장은 독립적인 90여 명의 상인과 이들이 운영하는 87개 점포로 구성돼 있다. 권한을 가진 최고경영자(CEO) 등 경영진의 의사결정이 조직하부까지 전파되고, 조직원들이 조직의 목표를 향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기업 조직과는 다른 점이다. 수평적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는 시장 상인들이 시장 전체의 이익을 위한 공동의 목표와 비전을 공유하는 일은 기업 조직보다 어렵다. 이런 점에서 상인들을 대표하는 상인회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상인회는 친목과 이익단체의 성격이 강해 시장 전체와 상인을 움직일 만한 강제력이 있는 권한이 없다는 한계가 있다. 게다가 시장 전체의 변화와 혁신을 위한 재원과 이를 기획하고 실행할 수 있는 전문성도 충분치 않다.
 
못골시장은 이런 한계를 극복하고, 변화를 위한 시장 상인들의 공감대와 시장을 대표하는 브랜드와 핵심 자원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못골시장이 단기간에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었던 요인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서비스 접점에서 고객들과 부대끼는 상인들의 인식과 역할 변화가 결정적이었다. 윌러드 매리어트 매리어트호텔 창업자는 “불행한 직원이 고객을 행복하게 만들 수는 없다”고 말했다. 시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못골시장의 변화가 비록 정부의 재정적 지원과 외부 전문가의 참여를 통해 촉발됐지만, 시장의 구성원인 상인들의 인식과 태도의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노력이 뒤따르지 않았다면 전문가의 지원이나 재정 투입이 성과로 이어지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시장에 대한 관찰-문제 정의-대안 기획-실행-보완 및 개선’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통해 시장의 문제를 찾아내고 상인을 중심으로 이를 해결한 것이 성공의 밑거름이 됐다. 둘째, 시장의 경쟁 우위를 물리적 시설 등의 객체적 자원(operand resource)보다 상인들이 보유하고 있는 지식, 기술과 같은 능동적 자원(operant resource)을 활용해 경쟁 우위를 창출했다는 점이다. 셋째, 이 같은 능동적 자원을 시장 브랜드에 적극 활용하고, 이를 통해 고객 관계를 상품을 사고파는 일회적 관계에서 지속적인 관계로 개선했다. 또한 고객 참여 기회와 고객 경험을 폭넓게 만들 수 있었다.
 

못골시장의 변화는 서비스수익사슬의 관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시장 상인의 만족이 서비스 품질과 생산성을 높여 차별화된 서비스 가치를 제공하게 했다. 이는 고객 만족과 로열티 향상으로 이어지고 시장의 성과로 나타났다.
 
못골시장 변화관리 프로그램
못골시장의 변화와 혁신 프로그램의 성공요인으로는 ‘인간 중심적 접근(Human centered approach)’ ‘지속적인 실험과 개선’ ‘활발한 의사소통과 인재 육성’의 세 가지를 꼽을 수 있다.
 
PM단은 상인들의 태도, 필요, 선호도를 파악하고 이에 맞는 사업을 기획했다. 이를 위해 상인들을 관찰하고 변화를 위한 대안을 모색했다. 프로젝트를 추진하기 전에 시장 상인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상인들을 대상으로 점포 운영, 주요 판매 품목, 시장에 대한 비전, 주요 소비자, 프로젝트 참여 의향 등을 조사했다. 이 결과 못골시장 상인들의 프로젝트 참여 의지가 강하며 상인회 가입 비율이 높아 상인회를 통한 사업 추진의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상인들이 합창이나 밴드 등의 문화생활을 원하고 있다는 점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개별 상인들의 인터뷰를 병행했다.
 
PM단과 상인회는 단순한 친절교육으로 상인들을 바꿀 수 없다고 생각했다. 상인들이 서로를 더 잘 이해하고 관계를 개선하는 일이 필수적이었다. 이에 따라 2008년 10월부터 8개월간 시장 상인들이 참여하는 ‘상인상상교실’ 워크숍을 열었다. 상인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내면의 모습을 돌아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이 워크숍을 통해 상인들은 마음속에 담아뒀던 꿈을 다른 상인들에게 털어놓고 서로 공유하기 시작했다. 내면의 이야기를 쏟아내며 눈물을 흘리는 상인들도 있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상인들이 다 함께 해볼 수 있는 다양한 아이디어도 쏟아져 나왔다.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던 시장 내 상인들끼리의 관계도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PM단은 시장의 변화를 이끌 핵심주체로 여성상인, 젊은층 상인, 상인회 운영진에 초점을 맞췄다. 여성 상인들은 운영하던 계가 깨지면서 서로 소원한 관계였다. 이들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여성 상인들이 참여할 수 있는 모임이 필요했다.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여성 상인들로 구성된 ‘줌마 불평합창단’은 이렇게 시작됐다. 젊은층 상인들을 결집하기 위해서 라디오 방송국을 만들고 상인 DJ들이 활동할 수 있도록 했다. 오형은 PM은 “젊은 상인들과 그들의 부모 모두 만족도가 낮은 편이었다”며 “스스로 일에 대한 자부심을 갖도록 상인 DJ들을 적극적으로 외부에 알리는 홍보를 했다”고 말했다. 상인회 운영진은 시장 상인들끼리의 의사소통을 위해 제작하는 못골시장 신문인 ‘못골늬우스’ 기자로 활동했다. 상인회 운영진이 직접 시장의 문제를 찾아 해결방안을 제시하기 위한 것이다. 오 PM은 “못골시장의 가장 큰 변화는 상인들의 얼굴이 밝아졌다는 것”이라며 “상인들의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겉으로는 보이지 않는 시장 상인들 간의 역학 관계, 갈등 구조를 파악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둘째, 지속적인 실험과 개선이 반복됐다. 2009년 8월 못골시장의 2단계 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 프로젝트 추진 체계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상인들의 인식과 태도가 눈에 띄게 바뀌자 상인들의 참여 폭을 확대했다.
 
PM단은 프로젝트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던 상인들을 대상으로 상인 큐레이터 제도를 도입했다. 2년간의 프로젝트가 끝나더라도 시장의 변화와 혁신 프로그램이 지속되려면 상인 기획자가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상인 기획자인 상인 큐레이터를 본격적으로 양성하기 시작했다. 이 결과 못골문화축제, 못골예술사랑전시회와 같은 다양한 활동이 상인 큐레이터에 의해 기획되고 추진됐다. 상인 김승일 씨가 기획한 못골예술사랑전시회는 시장 내에서 지역 예술가들의 작품을 전시했다. 이렇게 해서 못골시장 상인들의 모습을 담은 상인옛사진전, 주민동양화동아리의 문인화전, 시장 사진전 등이 열렸다.
 
PM단은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전문가 단체들이 상인 큐레이터 지원을 확대하도록 했다. 이를 통해 상인 큐레이터의 업무 스트레스를 덜고 전문성을 전수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또 프로젝트 매니저와 상인 큐레이터 사이에서 업무를 조정하는 행정 전문가인 부PM을 뒀다. 상인들의 경우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되 업무 손실에 따른 손해를 보전할 수 있도록 약간의 금전적 보상을 통한 인센티브도 마련했다. PM단 내에는 7대 3의 법칙이 있었다. 이는 외부 전문가가 일방적으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게 아니라 상인들의 의견 수렴을 통해 사업을 진행하고 상인 참여를 최소 30% 이상 보장한다는 것이다. 또 비전을 포함한 큰 틀을 수립하되 세부목표와 나머지 30%의 일은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수립한다는 원칙이다.
 
셋째, 활발한 의사소통과 인재 육성이다. 시장의 문화를 바꾸고,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시장 상인과 외부 전문가의 긴밀한 협업과 의사소통이 필수적이다. PM단과 상인회 운영진은 매주 화요일 회의를 열고 사업 진행 상황을 의논했다. 프로그램을 새로 추진할 때는 전체 상인을 대상으로 상인 설명회를 열었다. 이 프로그램이 끝나면 상인 운영진과 PM단, 참여단체, 지자체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평가회의를 진행했다. 이 결과를 토대로 보완점을 마련했다. 모든 회의는 기록으로 남기고 개별 상인에게 공개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사업 추진과 관련해 불필요한 오해와 잡음을 없애기 위해 상인회, PM단, 문화관광부와 지자체 관계자와의 보고 체계도 마련했다.
 
상인 교육도 꾸준히 이뤄졌다. 시장의 변화를 이끌기 위해서는 상인들의 내부역량을 강화해야 했다. PM단은 상인들의 기획력 강화를 위해 상인 큐레이터 전수교육과 상상워크숍을 진행했다. 상인큐레이터 양성교육을 통해 회계, 사회적 기업 운영, 축제 기획, 커뮤니티 비즈니스 모델 등을 교육했다. 또 강원도 춘천 원평마을, 전주 남부시장, 강원도 평창 백옥포리 마을, 서울 마포 성미산마을 등을 견학했다.
 
<참고자료: 지역활성화센터, ‘못골시장 이야기 바구니’, 2010.>

앞으로 과제: 홀로서기 프로젝트
못골시장은 짧은 기간에 많은 변화를 이뤄냈다. 상인들의 자구노력, 정부 투자, 외부 전문가 지원이 결집돼 시장의 문화와 서비스를 바꾸고 시장 전체의 매출과 방문객 확대라는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성공을 자축하기는 이르다. 2010년 6월 문화부의 문전성시프로젝트가 끝나면서 지원금이 끊기고 외부 전문가도 철수했다. 이제는 상인들이 독자적으로 지금까지 성과를 이어 지속가능한 경쟁우위를 확보해야 한다. 못골시장은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지 않고 상인 스스로 동아리 활동과 각종 교육 및 문화 프로그램을 운영해야 한다. 생업에 바쁜 시장 상인들의 참여도를 유지하는 것도 풀어야 할 과제다. 시장의 변화와 혁신을 위한 프로그램 기획과 운영에 들어가는 운영비를 마련하는 일도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다.
 
못골시장 상인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09년 상인들이 주축이 돼 비영리단체인 ‘못골문화사랑’을 설립했다. 이 단체는 상인회를 대신해 지자체 등 정부기관의 사업 유치와 시장 상인 동아리를 운영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상인은 물론 지역 주민이 참여할 수 있는 새로운 사업모델도 준비하고 있다. 못골문화사랑의 홀로서기 프로젝트 중 대표적인 프로그램이 상인 리더를 육성하는 전통시장문화학교 운영이다. 현재 수원지역 21개 시장 상인을 대상으로 전통시장 문화학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 사업은 못골시장 상인들이 직접 사업을 기획하고 정부 지원을 따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수원 화성 등의 관광과 시장 쇼핑을 연계하는 프로그램도 준비하고 있다. 이를 위해 못골시장에는 문화부의 지원을 받아 문화큐레이터 한 명을 두고 있다.
 
2010년 11월부터 상인들이 주축이 된 커뮤니티 비즈니스(Community Business)인 ‘못골두레 프로젝트 - 아름다운 밥상’ 사업도 시작했다. 커뮤니티 비즈니스는 지역 주민이 주축이 돼 커뮤니티 내의 문제를 해결하는 사업 모델이다. 못골시장 상인 12명은 10만 원씩 120만 원을 출자하고 지식경제부의 커뮤니티 비즈니스 사업 지원을 받아 시장 상인을 대상으로 오토바이 택배서비스 사업을 시작했다. 시장 상인들이 장사를 하다가 배달 주문이 오면 사람이 없어 제때 배달을 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앞으로 주변 관광서나 주민을 대상으로 못골시장 상품을 주문받아 배달해주는 인터넷 쇼핑몰 서비스로 확대할 예정이다. 또한 이 사업을 통해 지역 내 독거노인 등에게 무료로 식재료를 배달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해 지역 커뮤니티의 문제 해결에도 도움을 줄 계획이다.
 
이 회장은 “시장에 대한 주민의 관심이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다”며 “시장의 불편한 점에 대한 지적과 지역사회에 시장이 기여해야 한다는 주문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작은 시장이란 구조적 한계는 못골시장의 장기적 성장을 가로막는 장애 요소다. 현재 못골시장의 일부가 도심 재개발 사업 구역 내에 편입돼 시장의 장기적 발전에 변화가 예상된다. 시장 상인들은 “재개발이 시작되면 애써 키워놓은 시장의 존립이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대부분이 세입자인 시장 상인과 점포 주인과의 이해상충 문제도 불거질 수 있다. 시장이 살아나고 점포 수요가 늘어나면서 집주인들이 더 높은 임대료를 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편집자주 이 기사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윤지온(고려대 경영학과 4학년), 이재훈(동국대 경영정보학과 2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송재기 서강대 서비스시스템경영공학(SSME)과 교수 jaekisong@sogang.ac.kr
박용 기자 parky@donga.com
 
  • 박용 박용 | - 동아일보 기자
    -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부설 국가보안기술연구소(NSRI) 연구원
    - 한국정보보호진흥원(KISA) 정책연구팀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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