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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답은 하나가 아니다

홍준기 | 78호 (2011년 4월 Issue 1)
 
편집자주 이 글에 소개된 스파게티 소스 개발 일화는 TED Talks의 ‘Malcolm Gladwell on Spaghetti Sauce’를 바탕으로 쓰여졌습니다.
 
1970년대 스파게티 소스 제조업체 프레고(Prego)와 라구(Ragu)는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프레고는 이 싸움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프레고는 자사의 소스 품질이 더 뛰어났는데도 왜 라구에 밀리는지 이유를 알지 못했다.
 
완벽한 펩시, 하나가 아니다
프레고는 정신물리학 박사이자 컨설턴트인 하워드 모스코위츠에게 도움을 청했다. 하워드는 소비재에 대한 여러 프로젝트를 수행한 경험이 풍부했다. 그는 ‘펩시가 신제품에 아스파탐이란 새로운 물질을 몇 퍼센트 정도 넣어야 적정할까’를 연구했다. 소비자는 8% 이하는 심심하고, 12% 이상은 너무 달다고 느낀다. 대부분의 상품기획자라면 등급별로 함량을 조절한 제품을 소비자가 시음하게 하고 선호도를 그래프로 그려본 뒤 아스파탐의 적정 수준을 도출했을 것이다. 문제는 소비자의 선호도가 종형곡선(bell curve)을 따르지 않았다는 데 있었다(종형곡선을 따른다는 것은 정규분포를 따르며, 이는 어떤 평균값을 찾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소비자의 시음 결과가 뒤죽박죽이라 통계적 유의성을 논할 수준이 안 됐던 것이다.
 

하워드는 결국 아스파탐의 적정 수준을 찾는 실험에 실패했다. 그는 몇 년간 고민하다가 어느 날 가정 자체가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완벽한 펩시가 하나만 있다는 가정 하에서 하나의 완벽한 펩시를 찾았는데, ‘완벽한 펩시는 하나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스파게티 소스를 찾기 위한 여정
하워드는 이런 통찰력을 스파게티 소스에도 적용했다. 하워드는 스파게티 소스 45가지를 들고 여러 지역을 돌아다녔다. 많은 사람들에게 다양한 소스를 사용해서 만든 파스타를 시식시키고 선호도에 따라 점수를 매기게 했다. 그렇게 하워드는 여러 달 동안 같은 실험을 반복해 미국인들의 스파게티 소스 선호도에 대한 데이터를 축적할 수 있었다.
 
데이터를 취합한 하워드는 사람들의 특징에 따라 선호도를 분류했다. 그는 미국인들은 단조로운 맛을 좋아하는 그룹, 강한 양념 맛을 좋아하는 그룹, 과육 덩어리가 많은 상태를 좋아하는 그룹(Chunky)으로 나눴다. 이 중 덩어리가 많은 스파게티 소스는 당시엔 없었다. 결국 프레고는 덩어리가 많은(Extra Chunky) 스파게티 소스를 출시했고, 미국 시장을 순식간에 평정했다. 프레고는 10년간 이 소스로 60억 달러를 벌어들일 수 있었다.
 

보편적인 해답에서 벗어나는 세 가지 방법
하워드의 사례에서 살펴보듯 보편적인 해답에서 벗어나는 비결은 다음과 같다.
 
1.고객에게 직접 묻지 않는다
당시나 지금이나 기업은 고객들에게 직접 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라구와 프레고 역시 소비자 그룹을 앉혀 두고 어떤 맛이 좋겠느냐는FGD(focus group discussion)를 20∼30년간 실시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덩어리가 많으면 좋겠다’는 소비자의 의견은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FGD는 비교적 저비용으로 빠르게 소비자의 선호도를 조사할 수 있기 때문에 기업들이 많이 쓰고 있지만 ‘현재’ 제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현재’ 생각만 알 수 있을 뿐 이들이 진짜 어떤 제품을 원하는지는 알 수 없는 한계가 있다. 이를 극복하려면 상품기획자가 더 많이 관여해서 고객의 행동을 관찰하고 무의식을 살펴봐야 한다. 고객지향이 반드시 고객에게 직접 물어보는 것은 아니다.
 
2.수평적 segmentation 활용
상품기획자들은 제품 라인업상 체계(hierarchy)를 만들기 좋아한다. 이는 가격 책정 이유를 보다 논리적으로 보일 수 있게 해 주고 마케팅 자원을 제품 등급에 따라 효율적으로 배분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하워드는 완벽한 스파게티 소스란 존재하지 않고 단지 서로 다른 사람들의 입맛에 맞는 여러 소스들이 있을 뿐이라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그는 제품을 수직적이 아닌 수평적으로 구분했다. 물론 이는 저(低)관여 제품에 한해선 맞는 말일 수 있다. 하지만 고관여 제품에서도 수직적 체계만을 고집해야 할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3.해답은 하나가 아니다
식품업계는 오랫동안 어떤 요리에든 하나의 완벽한 조리법(recipe)이 존재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토마토 소스의 발원지인 이탈리아에서는 소스가 묽게 혼합돼 있었다. 따라서 라구는 이렇게 정통에 가까운 토마토 소스를 제공하면 소비자들이 만족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는 그동안 보편적인 하나의 규칙을 찾는 데만 급급했던 건 아닐까. ‘보편적인’이란 말은 어쩌면 ‘뻔한, 전형적인’이란 말로 바꿀 수 있다. 다양한 사람들을 모두 만족시킬 하나의 해답을 찾는 것보다 때로는 이 사람과 저 사람의 욕구는 어떻게, 왜 다른지를 고민해보면 훌륭한 차별화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현재 삼성전자에서 상품전략을 담당하고 있으며 마케팅과 IT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블로그 ‘Sweet Insight(http://blog.naver.com/sweetterry11)’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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