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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의 다양성: 불확실성 시대의 생존전략

69호 (2010년 11월 Issue 2)


세계의 극장가는 여름에 경쟁이 더욱 치열하다. 방학을 맞이한 어린이와 청소년을 비롯해 더위를 잊으려고 극장가를 찾는 관객들이 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작비를 많이 들인 대작 흥행물들은 주로 여름에 개봉한다. 최근 몇 년간 여름 극장가 관객 동원 상위권에는 항상 한두 편의 애니메이션 작품들이 끼어 있었다. 디즈니사에 합병된 픽사, 또 다른 미국의 대표적인 애니메이션 제작사인 드림웍스가 제작하는 컴퓨터 그래픽 기법의 장편 만화영화들이다. 올해 여름도 이러한 추세는 계속 됐다. 드림웍스에서 제작한 슈렉 4, 드래곤 길들이기, 토이 스토리 3 등이 흥행에 성공했다.

애니메이션 산업은 더 이상 어린이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이미 다양한 연령대로 관객들의 폭이 넓어졌다. 영화 제작에 사용되는 기술들도 예전 저임금 노동집약적 기술이 아닌 첨단기술로 바뀌었다.

애니메이션은 오랫동안 다른 영화산업과 함께 꾸준히 성장해 왔다. 초기에는 주로 상영시간이 짧은 단편 만화영화였지만 서서히 상영시간 40분 이상의 장편물 제작도 늘어났다. 1932년 이후로는 미국 아카데미 영화 시상식에서단편물이라는 독립된 장르로 인정받았다.

애니매이션 산업은 1920년부터 1980년까지 비교적 단순한 생산을 바탕으로 한 제1, 세분화되고 다양한 소비층과 시장들이 나타난 1980년대 이후의 제2기로 나눌 수 있다.

1기 애니메이션 생산 시스템

1기 애니메이션 생산 시스템은 단순히 두 개의 유형이 존재했다.(1) 첫째는 전통적인 애니메이션 제작으로 장인 혹은 예술적 애니메이션 방식이다. 1980년대 이전, 체코슬로바키아 등 냉전시대 동유럽 국가들의 애니메이션은 국가의 보조를 받아 제작되던 고품질의 예술적 애니메이션으로 유명했다. 그러나 애니메이션 제작에도 투명한 셀을 이용해서 단시간에 단순 노동의 반복을 가능하게 해준 브레이-허드(Bray-Hurd) 기법이 도입되면서 기존 장인적 제작방법이 주를 이루던 애니메이션 산업에 일대 혁명을 가져왔다. 전에는 필요한 배경을 손으로 프레임마다 그려 넣어야 했으나 투명한 셀(cel)을 이용해 매 프레임에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배경이나 요소는 한번만 만들어도 됐기 때문에 제작시간이 획기적으로 줄었다. 이를 통해 애니메니션의 장인적 생산방식이 대량의 단일 작업환경 하에서 이뤄지게 됐다. 이러한 작업환경의 변화는 할리우드의 대규모 제작사인 월트 디즈니의 백설공주, 판타지아 등의 극장용 장편 만화의 성공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은 해외시장으로부터 얻는 수입을 축소시켰다. 또 수상기의 일반화와 방송의 시작으로 1950년대 이후 극장 관객이 주가 되었던 애니메이션 산업에는 변화가 일었다. 이 시기의 TV애니메이션 방영은 방과후 시간과 주말 아침대의 어린이들을 겨냥했다. 하나-바바라(Hanna-barbera)를 비롯해 방송 시장에 집중하는 미국의 애니메이션 제작사들도 생겼다. TV와 방송의 보편화가 외형적으로는 애니메이션 산업의 팽창을 가져온 듯 했지만 방송 스케줄에 기대는 제작현실은 애니메이터들의 대량 실직이라는 결과를 가져왔다. 애니메이션이 방영되는 시기에는 애니메이터들을 고용했다가 방송이 쉬는 시기에는 이들을 해고하는 방식의 계약직 애니메이터의 고용이 빈번해졌다.

한편 극장을 겨냥한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 시장은 축소됐으나 TV방송과 광고용 애니메이션 제작은 꾸준한 수입원이 됐다. 수요를 맞추기 위해 미국 제작사인 하나-바바라는 1971, 호주 등에 미국 혹은 캐나다 국적의 애니메이터들을 파견해 해외 하청 여부를 가늠해보기도 했다. 하나-바바라는 1985년까지 한 시즌 분량(30분짜리 TV용 애니메이션 10여 개) 8개의 다른 국가에서 제작했다. 애니메이션의 국제적 제작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겠다. 월트 디즈니가 대표하는 할리우드식 애니메이션 외에도 프랑스 및 다른 유럽국가, 미국의 하청으로 경험을 쌓아 자체 애니메이션 제작국가로 부상한 일본 캐나다 호주 등이 이 시기를 양분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외에 한국 대만 필리핀 등이 주요 하청국가로 부상했고, 최근에는 베트남이 저렴한 제작비를 내세워 애니메이션 제작국가로 떠오르고 있다.

2기 애니메이션 생산 시스템

애니메이션 제작 시스템 제 2기는 1980년대 이후로, 기존 예술지상주의적인 장인적 소량 생산체계, 할리우드와 일본의 애니메이션 제작과 이에 따른 다양한 하청국가들로 이뤄진 글로벌화된 환경에 더해 새롭게 도입된 컴퓨터 그래픽(computer graphic imagery; CGI)이 가미된 새로운 애니메이션의 대중화와 극장 상영이 주가 아닌 세분화된 관객층을 겨냥한 대량생산 시스템이 가미된 총 네 개의 상이한 분야가 나타나게 됐다.(2) 

기존 TV를 통한 애니메이션 수요는 24시간 케이블 채널 및 위성방송 신설과 함께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늘어났다. 미국 방송사에서 방송되는 90% 가량의 애니메이션 제작은 아시아 국가에서 하청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미국의 애니메이션 제작사에서 작품의 사전 기획- 캐릭터 설정, 줄거리 만들기, 그리고 사후 제작(성우 더빙, 음악 입히기) 정도만 미국의 애니메이션 제작사에서 이뤄지고 있다. 미국의 카툰 네트워크, 니켈오디언, 디즈니 채널 등이 유명하며 미국 이외의 현재 여러 국가에서 방송 사업자로 활동 중이다. 이들 애니메이션 전문 방송사들은 주로 세계적 미디어 대기업인 바이어콤, 타임 워너, 디즈니가 소유하고 있다. 이러한 신설 애니메이션 전문 방송사들은 과거 작품들을 재방송하기도 하지만 새로운 애니메이션물 방영에도 많은 노력을 쏟고 있다. 이는 할리우드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들의 애니메이션 제작사들에도 좋은 기회가 된다. 가전기기, 의류 등의 제품과는 달리 애니메이션 같은 문화적 생산품은 현지 문화, 지리적 특성을 비교적 많이 반영한다. 천편일률적인 할리우드 식의 애니메이션보다는 각국의 문화와 상황에 걸맞은 애니메이션 제작의 필요성이 높아졌다. 일례로 이란의 애니메이션 제작사들의 작품은 이슬람 교도가 대다수인 터키를 비롯해 이슬람 국가들에서 많이 방송되고 있다.

기존 두 개의 애니메이션 생산분야 외에 최근 더해진 것이 CGI로 제작되는 장편영화 분야다. 최근 극장가에 상영돼 많은 관객에게 인기를 끌었던 영화들은 CGI로 제작됐다. 애니메이션 영화 이외의 거의 모든 실사 영화에서 CGI 기술은 특수효과로 보편화되고 있다. 제작기간만 해도 수년이 필요하고 많은 투자가 필요하므로 장편 CGI 애니메이션 제작은 주로 소수의 할리우드 대규모 애니메이션 제작사들이 담당하고 있다. 노동집약적인 로-테크(low-tech) 공정은 주로 신흥국가에서 하청으로 이뤄졌는데 미국이나 일본 등 CGI 강국은 첨단 기술을 활용한 CGI 대작 제작에서 주도적 역할을 담당했다. CGI 기술이 가능한 국가의 애니메이션 제작사들이 하청을 주지 않고 독점 제작하던 것이 CGI 장편 애니메이션 초기의 경향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경향은 2000년대 이후 재편성되기 시작했다. CGI 애니메이션 제작이 필요한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의 가격이 예전보다 저렴해졌고, 미국 일본 이외의 다수의 아시아 국가의 애니메이션 제작사에서도 CGI 제작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창의력이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사전제작, 기획 등 과정은 기존 애니메이션 강대국의 제작사에서 담당하고, 상대적으로 단순하고 노동집약적인 CGI 기술을 요하는 제작 과정은 이전처럼 저노동 비용의 애니메이터들이 많은 인도 중국 등으로 이전되기 시작했다.

극장 상영 외의 새로운 시장도 애니메이션 산업에서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다. 애니메이션 팬을 겨냥한 문구류, 의류 및 각종 라이선싱 산업은 애니메이션 산업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또한 새로운 가전기기, 인터넷을 바탕으로 한 첨단 기술의 출현 역시 애니메이션 시장을 확장시키는 데 큰 공헌을 했다. VCR DVD, 인터넷은 물론이거니와 소형 이동식 전기기기와 다기능성 휴대전화 기기는 애니메이션의 소비행태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과거에는 극장개봉을 목표로 제작이 추진됐지만 이미 대중에게 인지도가 높아진 애니메이션 작품의 후속편들은 기획단계에서 DVD 판매를 목표로 제작되는 사례도 많아지고 있다. 열성 팬들은 컴퓨터용 편집 소프트웨어를 사용해 자신들이 애니메이션의 뮤직 비디오나 짧은 에피소드 등을 제작해 P2P 파일 교환 사이트, 유튜브를 통해 공개하고 있다. 수동적이었던 문화의 소모에서 벗어나 상호작용을 하며 능동적인 문화의 사용자 및 교류자로서 애니메이션 산업의 전반적 시장을 넓혀가는 데 기여하고 있다.

현재 세계 애니메이션 시장은 제작에서부터 배급, TV 방송에 이르기까지 거대 미디어 기업들이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국가의 정책적 지원을 받는 프랑스 및 캐나다에서는 미디어 대기업들과는 다른 성격의 애니메이션 제작이 이뤄지고 있다. 거대 미디어 대기업들에 의해 장악되고 있는 애니메이션 산업이지만, 전세계적으로 폭넓게 인기를 얻을 수 있는 애니메이션은 많지 않다. 달리 말하면 지구촌 어디에선가는 현지의 문화적 맥락을 반영하는 토종 애니메이션 수요가 지속적으로 창출된다는 의미다. 또 자국의 애니메이션 산업 육성을 위해 타국에서 제작된 애니메이션 상영을 제한하는 정책을 펴는 나라들도 많다. 이로 인해 현재 세계 애니메이션 산업에는 둘 이상의 국가가 공동 제작하는 방식이 보편화돼 가는 추세다. 지역의 특수한 문화적, 종교적 상황을 고려한 애니메이션의 제작 필요성 역시 증가하고 있다.

할리우드나 일본의 대규모 제작사에서 경험을 쌓고 모국에 돌아가서 애니메이션 제작사를 만들어 타국의 제작사와 공동 제작을 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주요 하청국가였던 한국 필리핀 외에 이집트 케냐 남아프리카 공화국들의 신진 애니메이션 제작사들이 영국이나 미국 등 타국 제작사들과 손잡고 글로벌 애니메이션 제작에 뛰어들고 있다.

애니메이션 기업들의 상이한 대응

소수의 미디어 대기업들이 운영하는 세계적 애니메이션 제작사 외에 여타 다른 애니메이션 제작업체들은 다양한 전략으로 변화무쌍한 시장에서 생존을 꾀하고 있다. 개별 애니메이션 제작사의 역량과 전문성을 무기로 거대 미디어 기업들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생산 분야에 주력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에 소개할 애니메이션 제작사들은 시장의 변화에 잘 적응한 사례들이다

한국의 애니메이션 제작사인 AKOM은 하청업체로서 글로벌 애니메이션 제작에서 오랜 기간 입지를 다져왔다. 정교한 인물의 행동 묘사를 위해 다른 애니메이션에 비해 더 많은 장수의 셀을 쓰는 등 세련된 기법을 구사했다. 2007년에 극장에 개봉된 블록버스터 애니메이션 심슨즈의 제작과정 일부에 참여하면서 애니메이션 독자 제작자로서의 역량을 키워 가고 있다.

AKOM이 고전적인 TV 시리즈물의 하청업체로 입지를 돈독히 했다면, 또 다른 국내 애니메이션 제작사인 아이코닉스는 창작 애니메이션 시리즈로 유아용 틈새 시장에 주력했다. 취학 전 유아용 시장은 최근 들어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분야로 디즈니처럼 거대 미디어 그룹에서도 베이비 아인슈타인 같은 기존 인기 시리즈물로 유명한 회사를 인수하는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아이코닉스는 뽀로로 애니메이션 시리즈의 제작으로 유명하다. 제작 전 기획 단계에서부터 관객의 연령을 유아로 한정하고, 세계시장을 겨냥한 뒤 이에 따라 철저한 사전 조사를 실행했다. 내용도 한국 외 국가에서 시청해도 무리가 없을 보편적이며 이해하기 쉬운 내용으로 구성했다. 이를 바탕으로 TV DVD 판매, 라이선싱 제품 개발을 주력 분야로 하고 있다. TV방영에만 국한하지 않고 다른 장르로 확장해 애니메이션을 알리는 전략도 구사했다. 뽀로로는 뮤지컬까지 제작해 관객에게 직접, 그리고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방식을 취했다. 영화나 음악 한 장르에 국한하지 않고 처음의 제품 설정을 바탕으로 다양한 장르와 후속 제품(애니메이션 시리즈)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아이코닉스의 뽀로로 외에 미국 뉴욕에 근거지를 둔 애니메이션 제작사인 리틀 에어플레인(Little Airplane Productions)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미디어 대기업에서 미처 신경 쓰지 못했던 유아용 틈새 시장을 공략했다. 리틀 에어플레인사는 규모가 큰 제작사가 아니다. 한 에피소드에 투입되는 제작인원은 고작 17명 정도 밖에 안 된다. 관객인 유아의 눈높이에 맞춘 캐릭터들은 실제 동물의 사진을 바탕으로 디자인해 아이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게 했다. CGI 효과를 줘서 직접 손으로 그린 듯한 따스함을 더했고, 애니메이션에 사용되는 음악에도 공을 들여 좋은 반응을 얻었다. 리틀 에어플레인에서 제작한 놀라운 동물들(Wonder Pets!)은 뽀로로와 같이 미취학 유아용 시장에서 성공한 작품이다. 기존 애니메이터들 외에 관련 음악가 및 독립 작가들까지 함께 팀으로 구성 하는 등 지역 내의 자원을 효율적으로 이용했다.

아이코닉스사와 리틀 에어플레인사의 성공은무한의 다양성(infinite variety)’ 시도의 좋은 예다. 틈새 시장 개척, 장르를 넘나드는 콘텐츠의 개발, 제작사가 위치한 지역의 장점(특히 지역의 독립작가들)을 활용해 문화 산업의 잠재성을 보여줬다.

애니메이션 산업이 주는 함의점

애니메이션 산업의 역사를 중심으로 글로벌 애니메이션 산업에 다양한 시장들이 공존한다는 것을 살펴봤다. 글로벌화가 이뤄졌으면서도 전문화되고도 세분화된 애니메이션 산업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무엇일까?

첫째, 급박하게 변하는 시장을 이해하고 신속하게 대응해야 한다. 시장 변화의 주기는 확실히 정해져 있지 않다. 작년과 올해가 다르고, 같은 해라도 올해의 봄과 가을의 시장 동향은 판이하다. 특히나 최근 들어 제품 수명주기가 점점 짧아지고 있어 시장 동향의 변화 흐름을 신속하게 파악해야 할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또 시장 상황 변화에 따라 전략을 탄력적으로 수정해 소비자의 취향에 부응해야 한다. 앞서 살펴본 유아용 시장에서 성공한 기업들을 보면 전문화된 감각과 안목으로 세분화된 시장에서 소비자의 취향에 맞춰 차별화된 전략을 세웠다. 보편적이고도 전반적으로 수요가 있을 제품의 생산 외에 지역 시장에 관심을 기울이고 이를 반영한 제품 및 마케팅 전략을 세우는 것도 중요하다.

둘째, 시장의 변화와 소비자의 취향을 제대로 알고 전략을 세우되, 트렌드를 따라 가지 말고 트렌드를 이끌어 가야 한다. 꼭 신기술 개발과 도입만이 생존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상상력과 창의력을 중시해야 한다. 세계 유수의 애니메이션 제작사 중 하나인 일본의 지브리 스튜디오는 앞으로도 3D(CGI)로 애니메이션을 제작하지 않고 사람의 손으로만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애니메이션의 근간이 무엇인가를 사람들에게 환기시켜준다. CGI처럼 관객의 눈을 사로잡을 수 있는 기술 개발도 중요하지만 애니메이션의 기본인 탄탄한 이야기 구조와 매력적인 캐릭터만 강조해도 얼마든지 생존할 수 있다.

셋째, 트렌드를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안목으로 시장을 바라 봐야 한다.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에서는 급감하는 인구에 대처해 애니메이션과 관련 산업을 대비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인구 구조, 변화하는 관객의 취향을 장기적으로 예측하지 못하고 단기간의 유행에만 따른다면 기존 애니메이션 산업은 사양길로 접어들 수밖에 없다. 특히 극장개봉 이후의 라이선싱 사업까지 이어지는 다양한 산업을 고려할 때, 소비자의 취향과 특성에 적합한 콘텐츠 개발을 위해서는 장기적인 시장 변화 양상을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항상 새로운 감각을 수용하고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무한의 다양성을 시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넷째, 보다 창의적인 트렌드를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젊은 감각 또는 현재 업계에서 주류가 아닌 새로운 감각을 참고하고 활용해야 한다. 일본의 비주류 젊은 애니메이터들과 미국의 유명한 제작자인 워쇼스키 형제가 만든 애니메트릭스(The Animatrix)는 영화 메트릭스의 원제작자인 워쇼스키 형제가 일본에 방문했을 때 일본의 애니메이터들에게 영감을 받아 공동 작업한 것이다. 현재 애니메이션 산업에서는 감각이 참신한 독립 애니메이터들과 상업적인 성격이 강한 대규모 애니메이션 제작사로 양분되어 상호교류가 부족하다.

다섯째, 상이한 분야의 교류가 빚어낼 수 있는 시너지 효과를 위해 국가 및 관련 기관에서도 지금보다 더 많은 관심과 효율적인 지원을 해 주어야 한다. 특히 젊은 인력들의 새로운 감각은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아닌 다른 산업에서도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할 요소다. 과거의 제작 경험을 살리면서 동시에 젊은 인력들과의 꾸준한 교류가 절실하다. 캐나다의 국립영화위원회(National Film Board of Canada)의 예를 참고해 한국의 실정에 맞는 프로그램 개발과 연결할 수도 있겠다. 산업적 접근도 중요하지만 역시 젊은 감각을 육성할 수 있는 국가적 차원의 투자도 필요하다.

맺는 말

애니메이션은 영화 산업과 함께 발달했고 나름의 전통과 노하우가 쌓여온 역사적 산물이다. 애니메이션 산업이 어린이들만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은 이미 사라졌다. 애니메이션은 오래 전부터 거대 미디어 기업들의 주목을 받아왔다. 특히 애니메이션 산업은 영화 상영으로 얻게 될 수익 그 자체도 중요하지만 라이선싱과 콘텐츠 산업까지 결부되어 다양한 방식의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고부가가치 산업이다. 현재 애니메이션 시장은 거대 미디어 기업이 기획, 제작부터 시작해서 배급과 라이선싱, 콘텐츠 시장까지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상대적으로 노동력을 많이 필요로 하는 공정은 저임금 국가의 하청으로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사람의 감성, 연령, 현지 문화적 성격 등 애니메이션 산업의 다양한 시장 요소들이 현재에도 중요하게 여겨지고 이에 대한 꾸준한 수요도 지속되는 점을 감안하면, 기존 애니메이션 강국 외에 다른 국가에서도 세분화된 소비자의 취향에 부응하는 시장을 개발할 여지가 충분하다. 참신한 아이디어와 장기적 안목이 결합했을 때 전문화되고 세분화된 시장 개발이 가능해진다.

필자는 동국대 지리교육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지리학 석사 학위를, 오하이오 주립대에서 지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Industrial and Corporate Change 등 저명 저널에 논문을 실었다. 국제 만화 영화 산업, 글로벌 시티 이론, 지역 혁신 체제, 글로벌 생산 시스템, 지역 경제 등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50호 Smart Worcation 2022년 08월 Issue 1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