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S전자 대구 경북 지사장을 역임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지사는 당시 기업체, 정부기관, 공공단체 등에 전자제품을 납품하는 판매 전문직 사원 채용 공고를 냈다. 이때 34살의 김기대(가명) 씨가 지원했다. 김 씨는 외환위기 때 직접 운영하던 IT업체가 부도가 나 산전수전을 겪은 뒤 대기업 판매사원으로 응시한 처지였다. 필자는 각오와 결단력을 높이 사 그를 채용했다. 하지만 현장에 투입한지 2개월 후 다른 사람보다 훨씬 노력하는데도 그의 실적은 저조했다. 필자는 주의 깊게 계속 지켜보다 어느 날 이유를 물었다. 그는 “방문하는 기업체나 관공서마다 납품 경쟁이 치열하다”며 “결국은 가격 경쟁력이 경쟁업체들보다 떨어져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것 같다”고 대답했다.
판매 영업직의 첫 번째 노트는 상권 분석
하지만 필자는 가격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직감했다. 그리고 그의 자존심을 상하지 않게 하면서 전문가로 키울 수 있는 방법을 궁리했다. 필자는 평상시 두꺼운 대학노트 대여섯 권을 서랍에 준비해뒀다가 부하 직원이나 동료들에게 나만의 노하우를 전수하고 싶을 때 노트를 건네주곤 했다. 필자는 김 씨가 최선을 다하는 사원이라고 판단해 대학노트 한 권을 꺼내놓고 그를 불렀다.
“이제부터 판매 영업에 관한 공부를 차근차근 해보겠습니다. 이 두꺼운 노트에 건물을 하나하나 그리세요. 예를 들어 빌딩 1층에는 은행 지점, 2층에 은행 사무실, 3층에 건설사 사무실이 있다고 합시다. 1층의 은행 지점 매장을 상세히 그린 뒤 컴퓨터는 몇 대를 사용하고 있고, 어느 회사의 제품이며, 얼마 뒤 교체할 것인지 적어 넣으세요. 그리고 1층 은행 지점장의 이름과 업무 스타일, 구매 담당자가 누구인지 파악해 노트에 기입하세요. 이런 방식으로 2층, 3층, 4층도 각각 기록하세요.”
필자는 김 씨에게 이런 방식으로 공공 기관이나 각 기업체의 현황을 일일이 파악해 노트에 기록하도록 지시했다. 이런 내용을 파악하고 있는지 물었더니 그는 “지금은 잘 알지 못하지만 열심히 하겠다”고 답했다.
김 씨가 이런 식으로 노트를 가득 채우려면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그는 공략하고자 하는 고객과 시장을 미리 공부할 수 있게 된다. 이 노트를 조금 더 활용하면 마케팅에서 얘기하는 고객의 인구 통계적 특성을 바로 파악할 수 있다. 이 노트는 바로 ‘상권(商圈)’이라는 노트다. 필자는 판매 마케팅에서 전문가가 되려면 필수적으로 상권을 공부해야 한다는 것을 그에게 가르쳐주고 싶었다.
이어 필자는 두번째 노트를 꺼냈다. “두번째는 분류를 위한 스크랩 노트입니다. 일반적으로 판매사원들은 기업체나 공공기관에 제품을 제안할 때 경쟁업체의 카탈로그를 모두 들고 가서 설명합니다. 이렇게 하면 설명하는 사람도 카탈로그를 찾아야 해서 불편하고, 이를 보는 고객도 혼란스러워할 겁니다. 따라서 29인치 완전평면 TV를 고객에게 제안한다면 두번째 노트에 각 회사의 TV모델 사진, 가격, 주요 스펙, 장단점, 핵심 소구대상을 본인이 직접 차트화해서 만드십시오.”
필자는 이렇게 자기만의 카탈로그를 만들어 브리핑 차트로 활용하면 고객도 편리하고 판매원들도 자신 있게 제품을 제안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각 제품별로 이런 ‘나만의 카탈로그’를 만들 것을 권유했다.
“경쟁업체 제품과 비교한 결과 자사의 제품이 비슷한 스펙과 기능에도 불구하고 B사에 비해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싸다면 연구개발실에 직접 올라가 따져야 하고, 또 왜 이렇게 비싼 지를 고객에게 설명해야 합니다. 현장 판매사원들은 회사가 만들어준 카탈로그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회사가 만든 카탈로그는 범용성을 가지고 있지만 직접 연구 개발한 ‘브리핑 차트형 카탈로그’는 나만의 경쟁력을 높여줄 수 있습니다.”
[DBR TIP] 현장영업 성공을 위한 노트 3권
① 상권(商圈) 노트: 거래처의 위치와 판매 현황, 담당자의 모든 것을 정리하라
② 자기만의 브리핑차트: 고객에게 쉽게 설명 가능하도록 자체 제작한 브리핑 차트를 만들라
③ 고객의 품격을 높이는 노트: VIP 고객과의 신뢰관계를 구축할 수 있게 고객 정보를 담은 노트를 만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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