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간의 미국 대학교수 생활을 접고 귀국한지 일년쯤 지났다. 한국에서 느낀 바가 많지만 그 중에서도 교육자로서 한 가지를 꼽으라면 국내 인력시장이 ‘장마로 물은 넘쳐흐르는데 정작 먹을 물은 별로 없는 상황’과 비슷하다는 점이다. 구직난이라고 아우성치는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지만 정작 기업체에서는 제대로 된 사람 구하기 힘들다고 한다. 왜 그럴까. 각 분야의 지도자도 그렇고 기업의 CEO, 전문 경영인, 내가 속한 교수사회를 포함해서 한마디로 ‘영감(inspiration)’을 갖춘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기업을 생각해보자. 옛날에는 땀 흘려서 열심히 물건 만들고 세계 곳곳을 다니며 제품을 팔아야 했다. 그러니 혹자는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고 했다. 그 당시 기업경영에 필요한 것은 ‘1%의 영감(inspiration)과 99%의 땀(perspiration)’이었다. 그런데 정보화 시대, 글로벌 시대, 기술 시대인 21세기에는 세상이 넓지도 않다. 그래서 옛날처럼 여기저기 땀 흘리며 뛰어 다닐 필요가 없다.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지 어디 사느냐가 중요한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미국의 Fortune 500에 속한 회사 CEO들의 설문 조사에 따르면 땀만 흘려서는 과거와 현재만 볼 뿐이지 미래를 볼 수 없다고 한다. 미래를 보려면 ‘영감’을 가져야 한다. 미래를 볼 수 있는 사람이 결국 지도자 아니겠는가. ‘영감’이란 말이 너무 개념적이라면 ‘창조력’이란 말을 써도 좋겠다. 고속도로에서 앞차를 쫓아 갈 때 속도와 상관없이 앞차 운전자의 운전 기술만 따라한다면 현상유지만 할 뿐이지 영원히 앞차를 추월할 수 없다. 추월하려면 앞차가 안 하는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 앞서가 위해서는, 나아가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창조력이 필요하다.
경영인을 배출할 의무가 있는 학교는 어떤가. 기업의 가치 창조과정을 가르치는 경영학에는 정답이 없다. 그러나 학교에서는 정답(?)을 가르치려고 하니 ‘학교에서 가르치는 이론과 세상의 현실이 다르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이다.
최근 국내 대학에 소개된 MBA도 ‘정답을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정답을 찾아 가는 과정을 가르치는 곳’이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MBA 학생들에게 ‘교실에서 창업하는 자세로 항상 임하라’고 요구한다. 우리는 학생들에게 그렇게 될 수 있게끔 동기 부여를 해야 한다.
예를 들면 신촌 어딘가에 백화점을 세운다고 가정하자. ‘자본금이 얼마나 필요하고 어떻게 조달하나?’, ‘은행에서 빌리거나 주식을 발행하는 방법의 장단점은 무엇인가?’, ‘법률적으로 처리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백화점의 내재가치는 얼마인가?’처럼 실질적이고 현실적으로 필요한 질문들을 학생들 스스로가 던지고 해답을 찾도록 인도해야 한다. 학생들 스스로 왜 회계학을 배워야 하며, 왜 마케팅과 생산, 인사-전략, 재무 등 경영의 여러 분야를 배워야 하는지 스스로 깨닫게 해야 한다. 옛날 교육방식인 교과서에 써있는 대로 남들과 똑같이 하면 치열한 경쟁에서 이겨낼 수 없다. 남과 다른 방법을 강구해 보고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창조력이 생긴다.
요즘 ‘토종 MBA’가 ‘미국 MBA’와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짚어 보면 결국 미래를 볼 수 있는 ‘영감’을 얼마나 제공하느냐에 따라 경쟁의 성패가 결정될 것이다. 장마가 져서 물은 넘치는데 먹을 물이 없어 허전한 기업의 CEO 입장에서 이런 MBA를 대할 때 가뭄 속 단비 같은 기분을 느낄 것이다.
필자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에서 재무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일리노이대 석좌교수를 지냈으며 각종 학회로부터 최우수 논문상을 받는 등 재무 분야의 석학으로 부상했다. 위험관리와 파생상품, 미시적 시장구조 등이 주 연구 분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