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시 후 50년간 150개국에서 10억 개가 판매됐으며, 전 세계에서 1초에 3개씩 팔리고 있는 상품은?’ 팔린 제품을 가로로 눕혀 연결할 경우 지구 일곱 바퀴를 돌고도 남는다는 이 제품은 바로 그 유명한 ‘바비(Barbie)’ 인형이다. 1959년 미국의 장난감 제조기업 마텔이 바비를 시장에 처음 선보인 뒤 반세기 동안 스테디셀러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다. 글로벌 경제위기의 여파와 각종 후발 인형 브랜드와의 경쟁으로 바비 인형의 전 세계 매출이 일시적으로 감소했었지만, 바비는 최근 화려하게 재기했다. 쉰 살이 넘는 나이의 바비가 여전히 인기를 유지하는 비결은 무엇일까.
글로벌 장수 상품의 새 이름… ‘제너레이션 키퍼 브랜드’
바비 인형과 같은 글로벌 장수 상품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특징이 있다. 누구나 특정 연령대가 되면 반드시 가져야 하는 머스트 해브(must-have) 아이템이라는 사실이다. 이를 ‘제너레이션 키퍼 브랜드(Generation Keeper Brand)’라고 부를 수 있다. 소비자 생애의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특정 연령대로 편입하는 소비자를 확실하게 포착하는 전략을 펼치는 데에 이들의 성공 비결이 있다.
지금 30, 40대가 된 성인들이 어릴 때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이들의 자녀들이 가지고 논다. 21세기인 지금도 미국 여자 아이들은 여전히 바비 인형과 ‘마이리틀포니(My Little Pony)’ 그리고 ‘케어베어스(Care Bears)’를 가지고 놀고, 남자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장난감은 아직도 변함없이 ‘지아이조(G. I. Joe)’와 ‘트랜스포머(Transformer)’다.
제너레이션 키퍼 브랜드는, 브랜드명을 듣는 순간 ‘우리 집에도 있는 제품이네, 나도 ○살 때 이 제품을 샀지’라고 소비자가 공감할 수 있는 상품이다. 이들 제품은 기업이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별도의 특별한 마케팅을 펼치지 않아도 소비자가 자발적으로 상품을 구매하므로 수익성도 높다.
로얄알버트 커피잔·SAS 신발·<수학의 정석>의 공통점
연령대를 조금 높여서 생각해보면, 결혼을 떠올리는 순간 글로벌 소비자의 로망으로 부상하는 ‘티파니’ 반지를 제너레이션 키퍼 상품으로 꼽을 수 있다. 최근 ‘결혼 적령기’라는 단어가 무색할 정도로 획일적인 결혼 적령기의 개념이 희석 중이다. 이런 이유로 티파니 반지에는 ‘특정 연령대’로 진입하는 소비자를 기다리고 있는 브랜드라는 개념을 적용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결혼이라는 생애 이벤트의 길목에서 소비자를 맞이한다는 의미에서 제너레이션 키퍼 브랜드라 부를 수 있겠다.
30대 중후반 이상 주부에게도 제너레이션 키퍼 브랜드가 있을까? 로얄알버트, 포트메리온, 웨지우드, 로얄덜튼, 노리다께 등이 그들이다. 고급 커피잔과 그릇 제품의 주요 구매 연령대가 30대 중후반인 이유는, 어린 아이를 둔 20, 30대 초반의 주부는 파손 등의 가능성으로 고가의 그릇을 구매하기 꺼리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성장한 자녀를 둔 주부가 주요 구매층인 이유이다. 물론 30대 초반 미만의 주부보다는 30대 중후반 이상의 주부가 속한 가정의 경제력이 높다는 원인도 있다. 40대 중후반부터 50, 60대 이상 연령대가 즐겨 찾는 제너레이션 키퍼 브랜드도 많다. 편한 신발의 대명사로 불리는 ‘SAS’와 ‘바이네르’ 등이 이들 브랜드이다.
10대 중고생의 필수 교재로, 1966년 출간 이후 무려 4000만 권이 팔린 초대형 베스트셀러 <수학의 정석>도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제너레이션 키퍼 브랜드라고 할 수 있고, 아모레퍼시픽의 ‘설화수’도 중장년층의 제너레이션 키퍼 브랜드가 되어가고 있다.
요즘 소비자 달라… ‘리뉴얼’에 집중
한 브랜드가 어느 날 히트 상품이 된 뒤 수십 년 동안 날개 돋친 듯이 팔려나가는 일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제너레이션 키퍼 브랜드들이 성공적으로 구사해온 전략은 5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다.
첫 번째 전략은 ‘리뉴얼(renewal)’이다, 제너레이션 키퍼 브랜드 가운데 상당수는 ‘리뉴얼’에 심혈을 기울인다. 수십 년 전 소비자와 현재 소비자의 취향이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브랜드 본연의 이미지와 가치를 손상시키지 않는 범위에서의 리뉴얼은 필수적이다. 예를 들어, 마텔의 경우 시대 변화에 따라 바뀌어가는 사회상과 소녀들의 성향을 반영하여 바비의 생김새와 패션, 직업, 인종을 다변화시켜왔다. 장난감 기업 하스브로(Hasbro)의 마이리틀포니 역시 리뉴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마이리틀포니는 1999년 미국에서 브랜드 재론칭을 한 뒤 2003년 글로벌 시장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재론칭을 단행했다. 케어베어스 역시 2002년 장난감 라인을 리뉴얼한 데 이어, 2007년 탄생 25주년을 맞아 다시 한 번 브랜드 재론칭을 하며 브랜드 역사를 이어갔다. 제품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잃지 않으면서 동시에 생명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리뉴얼이 필수다. ‘무(無)마케팅’ 원칙을 고수한다는 <수학의 정석>도 잘 살펴보면 매년 업그레이드와 리뉴얼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유행 타지 않는 ‘노-리뉴얼’, ‘포트폴리오 다각화’도 주요 전략
둘째, 리뉴얼의 반대인 ‘노-리뉴얼’ 전략을 고수하는 장수 브랜드도 있다. 로얄알버트와 포트메리온, 로얄덜튼 등의 커피잔과 그릇 세트를 살펴보면 한 가지 흥미로운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환갑을 넘긴 어머니가 1980년대에 구매한 커피잔과 현재 백화점의 그릇 판매 코너에서 팔고 있는 커피잔이 한 치의 차이도 없이 똑같다는 사실이다. 물론 세월의 흐름에 맞춰 새롭게 선보인 제품도 있지만, 이들 브랜드의 베스트 셀링 아이템은 ‘오리지널’ 라인이다. 이는 실용주의적 성향을 가진 주부의 욕구를 간파한 전략으로 이해된다. 실용주의자들은 유행도 타지 않고, 질리지도 않는 디자인의 제품을 선호한다.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가치를 선사하는 브랜드 전략을 펼친 결과, 로얄알버트 등의 그릇 브랜드는 수십 년 동안 특정 연령대에 진입하는 소비자가 구매하는 제품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셋째, 제너레이션 키퍼 브랜드 중에는 포트폴리오 다각화로 성공을 거둔 사례가 많다. 바비도 인형뿐 아니라 게임, 애니메이션, 의류, 액세서리, 어린이용 화장품 등 다채로운 제품군을 보유하고 있다. 마이리틀포니는 1983년 장난감으로 출시된 뒤 1984년 시작한 TV 애니메이션 시리즈 ‘마이리틀포니앤프렌즈(My Little Pony’n Friends)’로 전 세계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그 뒤 장난감과 애니메이션 영화를 지속적으로 내놓고 있다. 케어베어스 역시 1981년 축하 카드 제조 기업인 아메리칸그리팅에 의해 그림 캐릭터로 탄생했지만, 이후 봉제 인형 장난감, 애니메이션으로 라인을 확장해갔다. 장난감으로 브랜드 지명도와 고객 충성도를 높인 뒤에, 이를 기반으로 다채로운 상품군으로 포트폴리오 다각화를 해나갔다.
넷째, 업셀링을 통해 기존 타깃 연령대의 소비자에서 더 넓은 층의 고객으로 넓혀가는 전략도 효과적이다. 지아이조와 트랜스포머는 장난감과 애니메이션, 게임 등에 머물지 않고, 최근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로 제작되면서 제너레이션 키퍼 브랜드의 위력을 과시했다. 소년은 성장해 어른이 되었지만 어릴 때 가지고 놀던 지아이조, 트랜스포머 장난감 캐릭터와 만화에 대한 추억을 지니고 있다. 이들 브랜드가 영화화되었다는 데서 느낀 애착과 더 큰 기대가, 지아이조와 트랜스포머 영화 흥행 성공에 기여한 부분이 있다.
마지막으로 제너레이션 키퍼 브랜드가 오랫동안 수명을 연장하기 위해서는 ‘라이선스 관리’가 매우 중요하다. 성공한 스테디셀러는 수많은 모방 제품과 싸워야 한다. 마텔의 경우 바비의 브랜드명이나 모양, 심지어 관련 아이디어를 타사가 모방한 것으로 파악하면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마텔은 라이선스 관리와 보호에 전담 직원 100여 명을 두고 있다. 이런 노력 끝에 마텔은 ‘세계 상표권 전쟁에서 가장 공격적인 회사’라고 불릴 정도에 이르렀다.
수십 년 역사를 지닌 글로벌 히트 상품 ‘제너레이션 키퍼 브랜드’는 이른바 ‘빈티지 브랜드’나 ‘복고풍(retro) 브랜드’와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로얄알버트 커피잔을 사는 2010년의 주부와 트랜스포머 로봇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디지털 세대의 소년은 이들 브랜드가 복고풍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성장의 답을 새로운 것에서만 찾으려 하지 말고, 오래된 것에서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수십 년이 지나도 변치 않는 가치를 지니는 ‘제너레이션 키퍼 브랜드’가 한국에서도 많이 탄생하기를 바란다.
편집자주 서울대 경영전문대학원 김상훈 교수가 이끄는 비즈트렌드연구회가 동아비즈니스리뷰(DBR)를 통해 연구 성과를 공유합니다. 학계와 업계 전문가로 구성된 이 연구회는 유행처럼 흘러가는 수많은 비즈니스 트렌드의 본질과 한계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과 통찰을 제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