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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0엔 청바지… 日 기업 디플레를 넘다

이지평 | 45호 (2009년 11월 Issue 2)
최근의 경기 부진으로 인해 일본의 소비자 물가가 다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현재 일본에서는 청바지 가격이 690엔(약 8970원)까지 떨어졌다. 2009년 상반기 등장한 990엔 청바지가 크게 히트하자 다이에이(Daiei)와 돈키호테(Don Quijote) 등 양판점들이 앞다퉈 저가 제품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200엔 대의 점심용 도시락이 직장인들의 호응을 얻고 있으며, 패밀리레스토랑 중에는 최저 가격 299엔의 메뉴를 시판한 곳도 있다.
 
경기 부진과 과거 버블 붕괴의 기억은 소비자들의 저가 선호 성향을 더욱 부채질하는 중이다. 요즘 일본 소비자들은 쇼핑을 하기 전에 인터넷 검색을 하는 것도 모자라 매장에서 휴대전화 등을 통해 최저 가격을 검색하기도 한다. 일본 기업들이 ‘잃어버린 10년’의 디플레이션 악몽이 재현되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것이 무리가 아닐 정도다.
 
따라서 많은 기업이 디플레이션 압력을 극복하기 위한 전략 마련에 분주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일본 기업들은 크게 비용 절감과 소비자의 소득 및 소비 성향에 맞는 최적의 가격-품질 조합을 찾는 두 가지 노력을 강화하고 있다.
 
 

 
디플레 압력의 극복을 위한 비용 혁신
디플레이션에 대응하는 가장 대표적인 수단은 원가와 비용의 절감이다.
 
최근 인력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는 일본 전자 업체들은 원가 절감을 통해 저가 제품을 잇달아 시판하기 시작했다. 소니와 JVC는 대만계 기업을 제조 하청사로 활용하면서, 기존 제품의 절반 가격에 노트북과 자동차용 내비게이션을 내놓았다. 도시바는 LCD 패널을 한국 기업 등으로부터 조달하는 한편 TV 조립 생산에도 하청을 활용하고 있다.
 
일본 기업들은 저가 제품을 이용해 소비 부진이 장기화되고 있는 구미 선진국과, 중산층 소비가 확장세에 있지만 상대적으로 소득이 낮은 신흥 시장이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계획이다. 도시바는 2010년 신흥 시장에서의 LCD TV 판매 대수를 2배 이상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일본 최대의 화장품 회사 시세이도는 화장품의 개발 기간을 평균 1년에서 수개월로 단축했다. 이 회사는 연구→제품 개발→생산→판매의 순서로 되어 있던 체제를 혁신해 화장품 개별 브랜드별로 기획, 연구개발, 생산 담당자가 팀을 구성하도록 했다. 이런 노력은 제품 개발 초기부터 시간 낭비와 원가를 줄임은 물론 유통 현장의 트렌드를 발 빠르게 제품 개발에 반영할 수 있는 효과도 부수적으로 가져온다.(그림1)
 
 

 
인테리어 용품 전문 업체인 니토리는 원가를 절감해 경쟁사에 앞서 가격 인하를 주도하면서도 매출 확대에 성공한 사례다. 이 회사는 3개월마다 200∼400개 품목의 가격을 15∼40% 인하함으로써 소비자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고 있다. 니토리의 2009년 2월 결산 영업 이익은 전년도에 비해 26.8%나 늘어났다.
 
그 비결은 끊임없는 비용 구조 개선에 있다. 니토리는 고객이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하는 매장 서비스를 셀프 서비스로 대체하면서 점포 인원을 최대한 감축했다. 또 중국이나 동남아 현지 공장과 직접 계약을 맺어 자사 기획 상품 생산을 위탁했다. 물론 현지 공장에는 품질이나 공정을 개선하는 교육 지원을 실시한다. 이와 동시에 생산, 판매, 물류 정보 등을 정비해 재고 누적이나 인기 상품의 판매 차질을 억제하면서 비용 절감과 매출 확대 효과를 동시에 보고 있다.
 
저가격과 고품질의 절묘한 조화
의류업계의 유니클로(정식 회사명은 패스트리테일링)는 싼 가격에 높은 고객 가치를 결합하는 정교한 전략을 구사해 성공한 케이스다.
 
유니클로의 성공 요인은 ‘가격과 품질의 밸런스’를 절묘하게 맞춰나간다는 데 있다. 이 회사는 저렴한 가격으로 유명하지만, 사실은 소비자에게 싼 가격에 ‘괜찮은’ 품질의 제품을 제공하면서 성공 가도를 달리게 됐다.
 
이는 소비에 보수적으로 변하는 불황기 소비자의 특성을 적절히 공략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제품의 가격 대비 품질이 높을수록 소비자는 ‘지금 사지 않으면 손해를 본다’고 생각하게 된다.
 
유니클로는 저가 의류 업체로서는 이례적으로 신소재 개발에 주력했다. ‘히트텍(Heattech)’은 세계적인 섬유 업체 도레이와 유니클로가 공동 개발한 신소재를 사용한 속옷으로, 소재 자체가 열을 내는 기능이 있다. 이 제품은 지난겨울 일본에서 무려 2000만 벌이 팔렸다. 유니클로는 올해 봄에는 세탁기로 빨 수 있는 니트 제품도 내놓았다.
최근에는 캐주얼 의류의 성공을 기반으로 저가 신발 시장에도 새로 진출했다. 유니클로는 중국이나 미얀마에서 신발을 대량 생산해 가격 이점을 확보했다. 물론 이런 신발도 소비자가 보행 시에 느끼는 충격을 흡수하는 소재를 부착해 차별화했다.
 
 

 
편의점의 온·오프 연계 전략과 백화점의 변신 모색
일본의 편의점과 백화점 업계도 디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해 고객에게 추가적인 가치를 제공하는 새로운 사업 모델을 속속 도입 중이다. 소비자의 저가격 선호는 상대적으로 제품 가격이 높은 편의점이나 백화점의 매출 감소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편의점 업계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결합한 사업 모델을 만들어냈다. 세븐일레븐은 고객이 인터넷으로 주문한 제품을 가까운 편의점에서 받아볼 수 있는 서비스를 본격 시행하고 있다. 이 서비스는 제품 구색을 거의 무한대로 늘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기존의 편의점은 많아야 3000개 정도의 품목만을 비치할 수 있다.
 
게다가 인터넷 판매는 재고 부담을 줄여 가격 인하까지 가능하게 한다. 결과적으로 인터넷의 가격 이점과 소비자의 선택 기회 확대가 매출 증대 효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세븐일레븐은 또 인터넷을 통해 홍보 효과를 최대화하며 한정 판매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희소가치는 있지만 가격이 그다지 부담이 되는 않는 제품이 그 대상이다. 지방 브랜드의 소주를 인터넷에서 한정 판매하는 이벤트에는 1만 건 이상의 주문이 몰리기도 했다.
 
한편 백화점 업계는 기존과 같은 가격에 백화점 특유의 차별적 가치를 추가해 고객에게 제공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세이부 백화점 본점은 고객이 여성용 구두의 높이, 색상, 소재, 장식 등을 직접 선택해 주문할 수 있는 서비스를 실시 중이다. 그러면서도 가격은 기존 판매 제품과 큰 차이가 없는 1만4000엔 수준으로 유지했다.
 
이 제품은 고객들의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냈다. 일본 백화점들은 이렇게 고객에게 일정한 선택권을 주면서도 가격은 올리지 않은 ‘반(半) 주문형 제품’을 남녀 의류 등으로 확장해나가고 있다.
 
지금까지 디플레이션의 압박을 극복하기 위한 일본 기업들의 다양한 노력을 살펴봤다. 일본 기업들은 단순한 비용 절감을 넘어 소비자의 소득과 소비 성향에 맞춰 최적의 가격과 품질을 조합하거나, 새로운 가치를 부가적으로 제공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이제는 우리나라 기업들도 ‘가격에는 가격으로 맞서야 한다’는 일차원적 사고를 벗어나야 한다.
 
필자는 일본 호세이(法政)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고려대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88년부터 LG경제연구원에서 근무했으며, 현재 경제연구실 수석연구위원 및 <Japan Insight(격월간)> 편집장으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 <일본식 파워경영> <주5일 트렌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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