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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과 프랑스,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해 수도권 성장으로 선회

김은경 | 38호 (2009년 8월 Issue 1)
개방화와 세계화는 경쟁의 단위를 국가에서 지역으로 변화시켰다. 21세기에는 민족 단위의 국민 경제가 아닌 도시와 지역 경제의 발전이 세계 경제의 발전과 성장을 이끌어갈 것이다. 도시 간 교역 확대와 도시화의 가속화로 형성된 대도시권에서는 노동 시장 연계, 기업 간 네트워크, 공급망 등 다양한 경제적 연계가 나타나고 있다. 또한 선진국들은 지역 경쟁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지역 밀착형 정책만이 지역 경제를 활성화시킬 수 있다고 보고 지방 분권을 강화하고 있다. 글로벌화와 지역화, 대도시권의 형성, 지방 분권의 강화는 21세기 세계 경쟁의 키워드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은 해외 대도시권이나 해외 지역과의 경쟁보다는 국내에서의 지역 간 경쟁이라는 폐쇄 경제 패러다임을 유지해오면서 지역 간 갈등과 대립을 심화시켰다. 수도권은 균형 발전의 이름으로 규제에 의해 성장 억제를 당해 세계적 대도시권으로의 비전이 부족한 상황이다. 부산, 대구 등 지방 대도시 또한 지속적인 침체를 겪으면서 대도시권으로의 성장에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중앙정부의 균형 발전 전략이 모든 지역의 하향 평준화를 가져오고 있는 셈이다.
 
지방 분권 없는 지역 정책은 지역의 내생적 발전 동력을 박탈하고, 지역의 경쟁력을 더욱 약화시켜 국가 경쟁력을 떨어뜨릴 것이다. ‘5+2 광역경제권’ 정책 또한 경제적 권역을 고려하기보다는 행정 편의적인 줄 긋기에 불과해 정책적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내용과 사업 집행 방식에서 근본적인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지방자치단체는 중앙정부의 예산 배분 구조에 끼워 맞춘 계획을 내놓아 ‘지역 없는’ 지역 정책으로 흐를 수 있다.
 
성장 잠재력은 갈수록 약화되고, 국민 경제의 세계적 위상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 경제 재도약을 위해서는 균형 발전 정책을 대도시권 성장 정책의 패러다임으로 전환해야 한다.
 

 
1. 글로벌 시대 국가 경쟁력, 대도시권이 좌우
 
대도시권 성장 정책의 중요성은 세계화와 개방화라는 국제 환경의 변화에서 비롯됐다. 세계 경제의 글로벌화와 개방화는 국경을 초월한 네트워크의 확장, 국제 무역의 증가, 외국인 직접투자의 급증, 초국적 기업 간 연합, 금융 국제화, 기술의 급속한 발전 등 빠르게 변화하는 복잡한 경제 환경을 만들었다. 글로벌화로 기업들이 국경을 넘어 자유롭게 이동하면서, 장소적 대체 가능성이 적고 다른 지역들에 의한 모방이 어려운 특정 지역의 경쟁력은 더욱 강해졌다. 세계화 시대에는 자본주의적 발전을 위한 지리적 조건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으며, 대도시권은 자본 축적을 위한 기본적인 영역이 됐다.
 
대도시권의 중요성은 외부성과 수확 체증(in-creasing returns)에 근거한 광범위한 집적(agg-lomeration) 경제에서 비롯된다. 집적 경제는 경제 발전 과정에서 준공공재적 지위가 부여되는 매우 핵심적인 요소다. 집적은 지역 차원에서 긍정적인 외부 효과를 만들며, 집적 효과는 도시 협력 네트워크와 연합의 발전, 노동과 노동 시장의 밀도 있는 집괴, 전략적 자산, 인프라와 자원, 더 나아가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자산까지도 포함한다. 이는 대도시권이란 강한 지역이 낙후 지역의 희생을 토대로 더 강해지는 식의 경직적인 행정적 구축 과정이 아니다. 대도시권의 집적으로 발전의 중심과 주변부 영역이 밀접하게 협력할 것이며, 집적 과정은 결국 지역의 잠재력 및 역량, 환경 변화에 대한 적응도 등에 따라 지역 간 격차를 확대해 나갈 것이다. 세계화의 진전에 따라 국경을 초월한 경제권이 형성되고, 경제 단위가 국가에서 도시·지역 단위로 재편돼 대도시권이 국가 경제, 나아가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역할도 그만큼 중요해지고 있다. 글로벌 비즈니스 기회를 창출할 수 있는 경제 규모를 갖춘 대도시권을 중심으로 자본을 흡수하기 위한 세계적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것이다.
 
글로벌화와 지역화의 동시적 진행으로 지역과 세계는 경제적·정치적 행위의 가장 중요한 공간이 된 반면, 근대적 의미에서의 국가는 중요성을 잃어가고 있다. 특히 글로벌한 환경 속에서 세계 경제의 초국가적 파급 효과로, 미국 등 몇몇 선진국을 제외한 소규모 경제권의 거시경제 정책이 국민국가의 경기 조절과 성장에 미치는 영향력은 매우 제한적이다. 국가의 역할 약화와 대도시권의 등장이라는 변화는 정책 결정 과정에서 ‘정부(government)’가 아닌 ‘거버넌스(governance)’로의 개념 전환과 지방 분권화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지방정부 간 자발적·발전적 협력을 촉진하는 정책은 변화하는 세계 경제에서 지역 경쟁력을 높이는 수단이 된다. 분권화는 단순히 지방정부가 중앙정부를 대신한다는 뜻이 아니라, 지방정부와 중앙정부 간의 협력 관계가 새롭게 변함을 의미한다. 중앙정부에 집중된 권한에 근거한 전통적 정책은 복잡한 지역 현안을 해결하는 데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관점에서 프랑스와 영국은 국가의 대표적 대도시권인 수도권의 성장 전략을 통해 국가 경쟁력 강화를 추진하고 있다.
 
2. 그랑파리 프로젝트, 성장 엔진으로서의 파리권 육성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 4월 29일 ‘그랑파리(Le Grand Paris)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이 프로젝트는 새로운 파리를 건설하기 위해 중앙정부, 지방정부, 전문가들이 참여한 국가적 사업이다. 2008년 5월 21일, 10개의 국제적 컨설팅 팀이 처음으로 구성됐다. 이어 세 번의 세미나를 거쳐 최종 확정됐다. 2009년 4월부터 11월까지 프랑스 정부는 10개 팀의 컨설팅 결과를 공개 전시하고 여론 수렴 과정을 거치고 있다. 그랑파리 프로젝트는 토론과 여론 수렴 과정을 거쳐 2010년 이후 본격화될 예정이다.
 

 
그랑파리 프로젝트는 파리의 광역화 정책으로, 수도인 파리와 한국의 경기도 격인 일드프랑스를 본격적으로 통합·발전시켜 명실상부한 수도권으로 만드는 사업이다. 프랑스는 전통적으로 ‘균형 정책’이 강한 국가였다. 2000년대 들어 국토 균형에서 국토 경쟁력 강화 정책으로 패러다임을 바꾸고, 파리권의 지위 및 역할에 대한 인식 전환이 이루어졌다. 유럽연합(EU)의 결성과 세계화로 유럽 대도시권들의 경쟁이 격화되면서 프랑스 수도권의 중요성이 부각됐다.
 
실제로 파리권은 프랑스 제1의 경제 중심지다. 2007년 기준 프랑스 인구의 19%인 1160여만 명이 전 국토의 2.2%인 1만2012㎢의 파리권(파리와 일드프랑스 포함)에 거주하고 있다. 파리권의 국내총생산(GDP)은 프랑스 전체 GDP의 29%이며, 연구개발(R&D) 인력은 전국 대비 37.7%를 차지한다. R&D 지출은 전국 대비 40.9%에 이른다.
 

 
특히 파리권에는 프랑스의 대표적 클러스터들이 들어서 있다. 우리나라의 수도권보다도 인구와 경제력이 집중된 곳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랑파리 프로젝트는 이러한 집중과 집적의 효과를 해체하기보다는 강화하기 위한 정책으로 제안됐다. 21세기의 대표적인 대도시권이자 통합 유럽의 중심지로서 파리권의 역할을 강화하겠다는 포석이다. 프랑스의 성장 엔진으로서 파리권의 역할을 강조하고, 파리 시와 일드프랑스의 지리적 단절을 극복해 대규모의 수도권을 건설하는 범국민적 프로젝트인 것이다.
 
이에 따라 이 프로젝트는 수도권의 경제적 성장 능력 확대, 새로운 교통망 구축을 위한 대규모 투자, ‘필요를 충족하는 도시’에서 ‘살고 싶은 도시’로 만들기 위한 지역별 프로젝트, 수도권의 지속 가능한 발전, 경쟁의 원동력으로서의 혁신, 주거 공급 확대, 도시 개발을 위한 효과적인 정책 패러다임 등의 세부 과제로 구성된다.
 
그랑파리는 단순한 파리 경계의 확장이 아니라 세계 최고의 도시로 도약하기 위한 장기 플랜이다. 이를 위해 성장을 억압하던 규제들을 철폐하고, 새로운 대도시권의 비전과 혁신적이고 역동적인 도시 계획이 필요하다고 제안하고 있다. 이 같은 인식은 지역별 예산 구조에서도 나타난다. 2008년 예산 기준으로 파리권은 프랑스에서 가장 조세 수입이 많은 지역이다. 하지만 운영 보조금과 투자 보조금도 가장 많이 받는다. 안정적이고 충분한 재정이 대도시권 성장 전략을 추진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3. 런던 광역시, 자율과 책임에 따른 발전
 
영국의 대도시권 정책은 ‘광역권 정책’과 ‘런던 성장 정책’으로 나눌 수 있다. 영국 정부는 1998년 지역개발청법을 제정하고, 1999년 4월 1일 8개의 광역권을 공식 출범시켰다. 2000년 6월 런던 광역시(Greater London Authority)가 설립되면서 9개의 광역권이 형성됐다. 영국의 광역권 정책은 대도시권 성장 정책 관점에서 추진됐다. 한편 2002년 이후 ‘단일 창구 포괄 보조금(Single Pot)’ 제도가 도입돼 각 지역개발청(RDA)은 지역의 우선순위에 따라 예산의 용도를 전환할 수 있는 유연성을 갖게 됐다. 단일 창구 포괄 보조금은 지역개발청의 사업 관련 6개 중앙부처의 프로그램을 단일 프로그램으로 통합하고, 미리 설정된 배정 기준에 따라 차별적으로 배정되는 포괄 보조금이다. 지역개발청별 예산 배분을 위해 2005, 2006 회계연도에 지역별 실업률 등 9개의 지표가 사용됐다.
 

 
 런던은 1999년 통과된 런던광역정부법에 따라 영국 대도시 중 유일하게 직선으로 시장을 선출하고 있다. 다른 광역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자치권을 얻은 셈이다. 런던의 상대적 분권화는 세계화 및 개방화 시대에 런던권의 역할에 대한 영국 정부의 재인식에서 비롯됐다. 유럽을 대표하는 세계 도시인 런던은 다국적 기업이나 금융 산업의 중심지로서 프랑스 파리, 벨기에 브뤼셀, 독일 프랑크푸르트,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등과 경쟁하고 있다. 특히 제조업 중심 경제에서 지식 기반 경제로 바뀌는 세계 경제의 격변기에 영국 경제를 이끄는 유일한 성장 견인차가 바로 런던이다.
 
런던의 성장 없이는 영국의 성장은 있을 수 없다. 런던 인구는 1997∼2007년 연평균 7.7% 늘어났다. 런던의 1인당 총 부가가치(GVA)는 2007년 기준 3만3179파운드로, 영국 전체 평균(2만463파운드)보다 훨씬 높다. 런던은 교통, 지역 발전, 소방, 경찰 등의 분야에서 자치권을 갖고 있으며, 런던의 정책에 중앙정부는 거의 개입하지 않는다. 런던은 다른 광역권과 비교해 중앙정부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고 있다. 이에 따라 런던의 1인당 재정 지출액도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다. 
 

 
 런던의 성장 전략은 ‘런던 플랜(London Plan)’과 ‘템스 게이트웨이(Thames Gateway) 개발 계획’으로 대표된다. 런던의 성장을 목표로 하는 런던 플랜은 경제, 환경, 교통 및 사회적 프레임워크를 통합한 런던에 대한 전략적 계획이다. 런던 시장, 32개의 구와 시티가 참여해 만들어진다. 2004년 첫 번째 런던 플랜이 나왔고, 2008년 새 시장이 선출된 이후 2009년 4월에 런던 플랜의 수정이 이뤄졌다. 2009년 런던 플랜의 비전은 세계를 주도하는 글로벌 시티로서의 런던을 지향한다. 모든 사람과 기업들에 기회를 확대하고, 가장 높은 환경 기준과 삶의 질을 이루겠다는 것이다.
 
템스 게이트웨이 개발 계획은 런던의 동부 지역 및 잉글랜드 남동부 지역을 포함한 초광역 지역 개발 프로젝트다. 영국 정부는 템스 게이트웨이를 영국 최대의 성장 지역으로 지정하고, 국가 재개발 사업의 최우선 순위를 부여하고 있다. 런던의 캐너리 워프 개발과 런던시티 공항 건설을 중심으로 한 제1기 개발이 성공적으로 완성됐다. 현재 추진되고 있는 제2기 개발에는 도버 해협(영불해협) 고속철도와 교통망 투자, 주택 건설, 도심 재개발, 그리고 2012년 런던 올림픽과 관련된 스태퍼드 지역 개발 등의 사업이 포함됐다.
 4. 대도시권 성장 정책 패러다임 정립
 
대도시권 성장 정책은 파리와 런던에만 해당하는 정책이 아니다. 국가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정책의 일환으로 추진되고 있다. 한국 정부의 광역경제권 정책도 일종의 대도시권 성장 정책으로 볼 수 있지만, 지방 분권이 제대로 실현되지 못한 상황에서 지방에 대한 중앙정부의 통제 수단으로 그칠 위험도 크다. 대도시권 성장 정책이 ‘수도권’만을 위한 정책이라는 편견과 지방 내에서의 지역 격차를 유발할 수 있다는 논란도 여전하다. 가속화되는 국제적 경쟁에 맞서 지역 경쟁력 강화를 위한 대도시권 성장 정책을 추진해야 하는데도 균형 발전의 논리에 발목이 잡혀 있는 것이다.
 
이제는 수도권이 한 나라 안의 한 지역이 아니라 국가를 대표하는 ‘특별한’ 지역이라는 인식의 변화가 선행돼야 한다. 수도권의 성장을 가속화하기 위해 수도권 규제를 전면적으로 폐지하고, 각 광역경제권의 대도시 거점 성장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지방 대도시를 육성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행정기관 이전이 아닌, 스스로의 잠재력과 지역적 기반에 맞는 산업 기반 확보 등 산업 정책적 관점의 지역 정책이 필요하다. 중앙정부 권한의 지방 이양, 지방의 주체적 역할을 강조하는 지역 정책의 분권화도 확대돼야 한다. 대도시권 성장 육성을 위한 거버넌스 구조도 필수적이다.
 
영국과 비슷하게 자생적 발전 역량이 있는 지역에 대해서는 자치권 강화, 내생적 역량이 부족한 지역에 대해서는 국가 주도적 지역 발전을 추진하는 ‘투-트랙(two-track) 정책’도 고려해볼 수 있다. 낙후 지역은 지역 단위로 지원하고, 나머지 경제적 사업은 공모 방식을 채택해 정치적 관점이 아닌 경제적 관점에 입각한 효율적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낙후 지역을 제외한 지방 지원 정책은 프로젝트별로 지역 특성에 맞는 맞춤형 지원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 합리적 재원 배분을 위해서는 지역 간, 중앙과 지역 간 협의 시스템을 제도화하고, 투명한 지표 및 배분 공식을 개발해야 한다. 지역별 재원 배분 결과를 공개해 재원 배분 과정을 투명하게 만들 필요도 있다. 

이 같은 전제 아래서 지역의 권한과 책임을 강화하는 포괄 보조금 지급이 필요하며, 지자체의 성과를 관리하고 중앙과 지방의 정책 연계를 높이기 위한 계약(contract)적 접근 방법도 고려할 수 있다. 지역이 상황에 맞게 자율적으로 광역경제권 정책을 추진할 수 있도록 유연한 법체계도 만들어야 한다. 중앙정부는 지방 간 선의의 경쟁을 촉진하고 성과를 평가하는 조정자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광역경제권 정책이 진정한 대도시권 성장 정책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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