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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의 레저화

광고=레저, 깔깔 웃다가 고객된다

정성욱 | 38호 (2009년 8월 Issue 1)
광고, 광고, 광고. 사방에 광고가 있다. 길을 걸어도, 운전을 해도, 집 안에 앉아 있어도 피할 수 없다. TV를 볼 때도 줄거리 사이로 비집고 들어온다. 라디오의 교통 정보 앞에도 빨판상어처럼 붙어 있다. 가끔은 길을 막고 강매하는 것 같아 시청자가 다른 곳으로 채널을 돌려봐도 또 광고가 나온다.
 
 

 
시청자가 영상 프로그램 시청의 대가로 광고를 봐야 하는 TV의 경우에는 이런 불편함이 더욱 명확히 드러난다. 때로 광고는 미움 받는 존재, 또는 극복해야 할 장애물로 전락하기도 한다. 최근의 진화된 디지털 방송 기술은 TV 시청의 대가인 광고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광고는 그 존재 의의와 형태에 대한 근본적 물음에 직면하게 됐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과 광고의 위기
매스미디어 분야에서 지난 10년간 등장한 많은 신기술 중 가장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낸 것 중 하나가 ‘DVR(Digital Video Recorder·디지털 영상 녹화)’이라는 기술이다. DVR은 방송국이 제공하는 영상 프로그램을 녹화해 원하는 시간에 볼 수 있도록 해주는 일종의 예약 녹화 시스템이다. 어찌 보면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기술로, 신기술이라기보다는 예전 비디오 녹화 기능의 디지털적 진화 결과라 할 수 있다. 이 분야의 대표 주자는 1999년에 출시돼 2006년까지 400만 명이 넘는 가입자를 유치한 티보(Tivo)다. 티보는 기본적인 예약 녹화 기능은 물론, 사용자의 시청 기록을 탐색해 그 취향을 분석하고 거기에 맞춰 프로그램을 추천하는 기능까지 제공한다.
 
티보가 시장에 가져온 충격은 ‘TV 시청을 편리하게 해준다’는 표면적인 인식을 넘어섰다. 원하는 프로그램만 볼 수 있도록 영상 콘텐츠를 데이터 형식으로 저장한다는 건 방송 중간에 나오는 광고들 역시 자유로운 선택의 대상이 된다는 뜻이다. 티보 덕분에 TV 광고는 사용자의 기호에 따라 얼마든지 보고 않고 넘어갈 수 있는 존재로 전락해버렸다. 광고를 보지 않고 그냥 지나친다는 의미로 ‘애드 스킵(ad skip)’ 혹은 ‘커머셜 스킵(commercial skip)’이라 불리는 이 기능은 광고 수입에 의존하는 방송 산업의 존재를 뒤흔들 만한 충격이었다. 애드 스킵을 둘러싸고 벌어진 몇 가지 에피소드가 이를 증명한다.
 
티보의 경쟁자이자 후발주자인 리플레이TV는 ‘앞으로 빨리 감기’ 정도가 아니라 아예 리모컨 버튼을 누를 때마다 30초씩 앞으로 진행되는 ‘30초 스킵 기능’을 추가하고 이를 적극 홍보했다. 방송국들의 반발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선발주자인 티보를 따라잡기 위한 극단적 선택이었다. 리플레이TV는 결국 분노한 방송사들의 집단소송 공격을 받고 파산해버렸다. 사실 티보에도 리모컨의 5자리 비밀번호를 누르면 30초 스킵 기능이 활성화되는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 원래 개발자들의 편의를 돕기 위한 일종의 ‘백도어 서비스 모드(backdoor service mode)’지만, 이 비밀번호가 온라인에서 유출되는 바람에 티보가 적극적으로 부인하고 수습에 나선 일 역시 유명하다.
 
수백억 달러의 소송 비용은 물론, 대규모 홍보 인력과 24시간 온라인 감시 인력의 인건비까지 들어가게 만든 이런 소동에는 한 가지 중요한 전제가 있다. 씨 없는 수박의 개발 이면에 깔려 있는 ‘씨는 귀찮은 것’이라는 생각처럼 ‘광고는 피하고 싶은 것’이라는 상식이다.
 
TV라는 ‘레저 공장’ 안에서의 광고
9까지 귀가하기로 한 지미가 아직 오지 않았다. 아버지 프랭크와 어머니 조슬린은 걱정하고 있다. 프랭크는 차고 있던 불로바 시계를 가리키며 “지금이 9시 42인데 이 녀석은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라고 투덜댄다. 그리고 뜬금없이 “불로바 시계는 절대 틀리지 않는 미국의 대표적인 시계잖아”라는 설명을 덧붙인다.
 
1940년대만 해도 TV 드라마에서 이런 뻔뻔스러운 PPL(Product Placement·특정 브랜드 상품 간접광고)은 매우 흔한 일이었다. 1950년대 말 미국 방송국에서 녹화 기술이 보편화되기 전에는 모두 생방송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프로그램과 광고의 경계가 희미했다. ‘소프 오페라(soap opera)’가 연속극을 지칭하는 말이 된 건 비누(soap) 같은 생활 미용용품을 만드는 P&G나 유니레버가 주요 광고주였기 때문이다. 24시간 광고 없이 방송하는 리얼리티 쇼라는 설정의 영화 <트루먼 쇼>를 보면 초창기 TV 광고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영화 <트루먼 쇼>의 한 장면. 초창기 방송의 PPL 모습을 패러디했다.
 
TV는 레저다. 다양하고 새로운 세계를 배경으로 한 수많은 형태의 오락거리를 제공한다. 많은 사람들이 휴일에 TV 앞에 붙어 있는 이유는 TV가 가장 ‘비용 효율적’인 레저 형태이기 때문이다. TV는 레저를 제공하고, 사람들은 그 대가로 시간과 관심을 지불한다. 그 시간과 관심을 돈으로 바꾸기 위해 욕망의 씨앗을 심는 것이 TV 광고다. 여기서 더 많은 관심과 시간을 벌기 위해서는 당연히 제공되는 상품이 더 훌륭해야 한다. 방송국용 녹화 기술의 개발로 화상 녹화가 가능해지면서 오락과 광고가 분리되기 시작했다. 이는 자연스러운 품질 개선 욕구의 반영이었다. 프로그램은 광고와 분리되면서 더 재미있어졌고, 광고는 프로그램과 분리되면서 더 명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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