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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 스토리’의 상큼한 유혹

박용 | 37호 (2009년 7월 Issue 2)
이달 초 취재를 위해 프랑스를 찾았습니다. 파리의 차이나타운 주변을 걷다가 간이 주유소 겸 세차장에 들렀습니다. ‘친환경 세차’라는 입간판에 발길이 끌렸습니다. 파리의 친환경 세차는 어떤 것일까요.
 
사람이 직접 세차를 해줍니다. 친환경 세제를 쓰고 기계를 쓰지 않아 자원 낭비를 줄이고 환경오염을 막을 수 있어요.”
 
한국에서도 흔한 동네 간이 주유소의 손 세차가 ‘친환경 세차’라는 선전 문구로 둔갑한 것입니다. 주인의 설명에 맥이 빠지긴 했지만, 파리지엔의 소비 포인트 중 하나가 에너지와 환경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동네 간이 주유소마저 ‘친환경’을 내세울 정도로 파리는 요즘 지속 가능한 성장에 몰두해 있습니다. 도심 거리 곳곳에서 일본 도요타의 하이브리드 승용차인 ‘프리우스’ 택시와, 오토바이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차체가 두꺼운 공용 자전거 ‘밸리브’를 타고 출퇴근하는 시민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파리 몽파르나스역 근처의 직장에서 변호사로 일하는 마리 오클랑(26·여) 씨는 “출퇴근을 밸리브로 한다”며 “싸고 편리하고 환경 보호에 기여할 수 있어 자전거를 탄다”고 말합니다.
 
영국 런던 도심의 상황도 비슷합니다. 런던의 상징인 빨간 2층 디젤 버스는 하이브리드 버스로 교체되고 있습니다. 런던 시내에는 낡은 대형 디젤 승합차나 트럭이 내뿜는 배기가스를 자동 단속하는 ‘배기가스 단속 구간(Low Emission Zone·LEZ)’도 설정됐습니다. 런던 시내 중심가의 도로 바닥에는 ‘C’자가 쓰인 곳이 많습니다. 자동차가 이 지역에 들어서면 혼잡통행료(congestion fee)를 징수하는 구간이라는 뜻입니다.
 
런던과 파리의 이런 변화는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것만은 아닙니다. 철도, 전력, 통신, 도로 등 도시의 ‘회색 인프라’를, 에너지 소비와 대기오염이 적은 ‘그린 인프라’로 바꿔 인구와 자본이 지속적으로 유입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린 인프라’가 대도시권 성장의 키워드이며 국가 경쟁력의 밑천이라는 점을 런던과 파리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산업화 시대의 대도시는 교통 혼잡, 대기오염 등 집적에 따른 외부 불경제로 분산과 해체의 대상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성장을 억제하고 인구 집중을 막는 각종 규제도 뒤따랐습니다. 유가 급등과 기후 변화에 시달리고 있는 최근에는 역설적으로 대도시권이 집중과 집적을 통해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녹색 성장의 전진기지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글로벌 기업이 이런 드라마틱한 변화를 놓칠 리 없습니다. 파리의 친환경 택시 시장에 일본 도요타가 진출했고, 영국 런던의 하이브리드 버스 시스템은 독일 지멘스가 솔루션을 제공했습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는 전력망의 공급 프로세스를 지능화해 불필요한 에너지 생산으로 인한 낭비를 제거하는 ‘스마트 그리드’ 사업, 즉 ‘네가와트(negawatt) 산업’ 열풍이 불고 있다고 합니다.
 
변화와 혁신, 도전과 모험, 성공과 실패, 선과 악 등의 플롯으로 짜여진 이야기는 늘 사람들의 이목을 끕니다. 파리의 간이 주유소 주인이 손세차에 친환경이라는 이야기보따리로 지나가는 손님의 관심을 끌듯이, 지구와 인류를 살리는 녹색 성장도 인재와 기업, 자본을 유혹하는 스토리 라인입니다. 머지않아 런던의 상징인 빨간 2층 버스가 2층 하이브리드 버스 이야기로 바뀌고, 파리에는 에펠탑 등의 관광 명소에 이어 밸리브 등의 ‘그린 스토리텔링’이 등장할지도 모릅니다. 한국의 대도시권을 상징하는 녹색 성장의 스토리 라인은 무엇일까요?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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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용

    박용

    - 동아일보 기자
    -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부설 국가보안기술연구소(NSRI) 연구원
    - 한국정보보호진흥원(KISA) 정책연구팀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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