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은 열심히 만들었는데 어떻게 소비자에게 알리고 팔 것인가.’ 마케터뿐만 아니라 기업 전체의 영원한 고민이자 숙제입니다. 동아비즈니스리뷰(DBR)는 이런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아태마케팅포럼’과 함께 마케팅 현장 기업인들의 노하우를 공개합니다. 제품의 기획, 브랜딩, 커뮤니케이션, 세일즈 프로모션 등 마케팅 전 분야에 걸쳐 분야별 고수들의 비법을 소개합니다. 아태마케팅포럼은 각 대학의 마케팅전공 교수들과 대기업 마케팅담당 임원, 중소기업 사장 등 130여명이 모인 국내 최대의 마케팅전문가 모임.‘마케팅 세계 최강국’의 목표를 내건 이 포럼은 수년간 두 달에 한 번씩 정기적인 공부모임을 엽니다. 첫 회 필자는 이포럼의 회장인 조서환 KTF 부사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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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미국 대통령 선거는 조지 부시의 독주로 싱겁게 끝나리라는 것이 일반적인 예측이었다. 걸프전을 승리로 이끈 부시는 90%에 육박하는 난공불락의 아성을 구축하고 있었다. 마리오 쿠오모 뉴욕 주지사를 비롯한 민주당의 유력 대선후보들은 부시의 위세에 눌려 출마를 포기했을 정도였다.
당시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 빌 클린턴은 시골 아칸소의 주지사 출신으로 오랜기간 부통령과 대통령을 역임하였던 부시에 비교하면 여러모로 역부족이었다.
더욱이 2차 대전 참전용사로 걸프전 승리라는 뛰어난 치적을 가지고 있는 부시에 비해 클린턴은 베트남전 징병 기피를 비롯한 약점이 많았다. 민주당에서는 이번 선거는 포기하고 다음 선거나 준비하자는 분위기가 팽배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클린턴 캠프의 전략가 제임스 카빌이 내세운 단 한 문장의 슬로건 ‘It’s the Economy! (문제는 경제야!)’로 선거의 판세는 완전히 돌변하게 된다. 부시가 아무리 자신의 치적을 강조해도 클린턴이 일관되고 집요하게 대응한 ‘문제는 경제야!’라는 단 한 마디에 완전히 묻혀 버리고 만 것. 선거의 장이 정치적 문제에서 경제적 문제로 뒤바뀜에 따라 전쟁준비 과정에서 늘어난 세금과 재정 적자가 주요 이슈로 부각되었고 부시의 지지율은 급락하게 된다. 결국 1992년 선거의 승자는 부시가 아닌 빌 클린턴이었다.
제품을 표현하는 핵심을 찾아라
선거가 유권자의 마음을 사야 한다면 마케터는 소비자의 마음을 사야 한다. 통찰력 있는 핵심 슬로건을 개발하고 일관된 커뮤니케이션으로 일순간에 경쟁의 구도를 바꿔버린 1992년 미국 대통령 선거 사례는 마케터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줄 수 있다.
마케팅의 성공을 위한 키워드는 ‘제품의 핵심적인 편익을 나타내는 통찰력 있는 한 단어’와 이에 대한 ‘일관되고 반복적인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오랜 기간 마케팅에 몸담고 있던 필자의 경험에 따르면 매일 수없이 쏟아지는 신상품의 성공 여부도 결국은 이 두 가지가 있느냐 없느냐에 좌우된다.
하나로샴푸 이를 잘 나타내는 첫 번째 사례가 바로 1989년 필자가 ㈜ 애경에서 출시했던 ‘하나로 샴푸’의 사례다. 1980년대 후반 생활용품 업계는 ‘겸용 샴푸’, 즉 ‘샴푸와 린스를 하나로 결합한 상품’이라는 새로운 시장이 막 생겨나 업체들간의 치열한 경쟁이 시작되고 있던 시점이었다. 당시 이시장의 선발업체는 L사와 T사였다. L사는 ‘랑데뷰 샴푸’를, T사는 ‘투웨이 삼푸’를 출시하여 각각 ‘샴푸와 린스를 하나로 만든 랑데뷰 샴푸’, ‘샴푸와 린스를 하나로 투웨이 샴푸’라는 캐치프레이즈로 시장을 선점하고 있었다.
마케팅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공감을 하겠지만 시장을 먼저 선점하여 막강한 시장점유율을 갖고 있는 선발업체를 후발업체가 따라잡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더욱이 당시 선발업체는 막강한 브랜드 인지도와 자금력을 가지고 있는 대기업이어서 애경이 상대하기에는 너무도 버거운 상대였다. 회사 내부에서는 어렵다는 비관적 인식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상황이었다.
필자가 보기에는 ‘랑데뷰’나 ‘투웨이’라는 단어는 비록 ‘겸용 샴푸’의 특성을 잘 나타내기는 하였다. 하지만 제품의 핵심적인 편익을 나타내는 단 한마디는 아니라는 판단이었다. 따라서 우리에게도 기회는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 가능성을 믿고 오랜 고민 끝에 찾아낸 핵심 키워드는‘하나로’라는 단어였으며 마침내 선발업체보다 무려 1년이나 늦게 ‘하나로 샴푸’라는 신상품을 출시하게 된다.
‘겸용 샴푸’라는 용어에 아직 익숙하지 않았던 소비자는 핵심적인 편익(Value)을 정확히 나타내는 ‘하나로’라는 단어에 열광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하지만 ‘하나로’라는 단어가 진정 효과적이었던 것은 고객들이 ‘샴푸와 린스를 하나로 만든 랑데뷰 샴푸’라는 광고 문구에서도 ‘하나로’라는 키워드만을 기억하고, ‘샴푸와 린스를 하나로 투웨이 샴푸’라고 광고를 해도 ‘하나로’라는 단어만을 기억해 낸다는 점이었다. 결국 경쟁사가 광고를 하면 할수록 오히려 ‘하나로 샴푸’의 판매가 급증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이에 따라 우리는 전체 광고비를 3분의1만 집행하고도 시장을 장악할 수 있었다. 이렇게 절감된 3분의2 예산으로는 당시 10g 짜리 팩을 활용하던 샘플을 40g 짜리 고급스러운 병으로 대체해 몇 배의 마케팅 효과를 거두었으니 시장점유율은 더욱더 급증했다. 실제로 하나로 샴푸는 90년대 중반까지 시장 점유율 20%를 꾸준히 유지할 정도로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저가 생필품 시장에서 20%의 점유율은 지금도 보기 힘든 기록적인 시장 점유율이다.
‘하나로’는 난공불락과도 같은 상대방의 강점을 오히려 역이용하여 새로운 시장 기회를 만들었던 좋은 사례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