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이 세계적 불황을 극복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다. 하지만 많은 기업들은 여전히 과거 경험에만 의존해 가격만 낮추거나 단순 기능의 제품을 내놓는 안일한 방식으로 불황에 대처하고 있다.
기업들은 현재의 불황이 과거의 불황과 큰 차이가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최근 10년 동안 1인당 국민 소득은 1만1000달러에서 2만 달러로 늘었다. 웰빙 등 새로운 소비 문화도 나타났다. 대량 생산, 대량 마케팅 시대에서 개개인의 개성을 중시하는 개성 마케팅 시대로의 변화도 빨라지고 있다. 무엇보다 불황에 대처하는 소비자의 경험도 풍부해져 안일한 마케팅으로는 소비자의 꽁꽁 닫힌 지갑을 열 수 없다. 이런 변화들을 고려해 불황을 극복하는 마케팅 전략을 알아보자.
불황에 대처하는 소비 패턴
소득이 줄어드는 불황기에 소비자들은 비슷한 효용을 주는 여러 상품 가운데 가격이 낮은 상품부터 구매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때 소비자가 사는 낮은 가격의 상품이 바로 ‘열등재(inferior goods)’다. 밥을 대체한 라면, 양주를 대체한 소주가 대표적인 예다. 열등재는 불황기에 가장 이득을 보는 상품이다. 소비자들이 해외 여행 대신 국내 여행을 가거나 쇼핑을 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소득이 줄어든다고 해서 소비자들이 무조건 열등재만을 선호하지는 않는다. 상품의 성격과 소비자 개개인의 성향에 따라 전혀 다른 소비 패턴이 나타난다. 특히 현대 소비자들은 전체 소비를 줄이지 않고 가장 쉽게 줄일 수 있는 상품부터 소비를 줄인다. 진정으로 필요한 상품은 아무리 불황이라 해도 쉽게 소비가 줄지 않는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는 인간의 심리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20평대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 30평대 아파트로 옮기는 일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30평대 아파트에 살던 사람이 20평대 아파트에서 사는 일은 쉽지 않다. 소비의 ‘톱니 효과(ratchet effect)’ 때문이다. 절약의 우선순위가 가장 뒤에 있는 제품, 즉 톱니 효과가 강하게 드러나는 품목은 소비자마다 다르다. 일반적으로 생필품을 많이 생각하겠지만, 요즘에는 교육비나 명품 구입비에 우선순위를 부여하는 소비자들도 많다.
결국 불황기 마케팅의 핵심은 소비자에게 어떤 방식으로 더 많은 가치를 제공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기업들은 자사 상품이 어떤 특성을 지닌 상품인지, 이 상품의 핵심 고객은 누구인지를 확인하고 적절한 마케팅 전략을 사용해야 한다. 필자는 불황 마케팅의 대표적 성공법으로 뺄셈, 덧셈, 나눗셈, 곱셈, 승수 법칙이라는 오칙연산 법칙을 제시하고 싶다.
뺄셈 법칙
불황기에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법칙이다. 불황이 시작되면 가장 먼저 영향을 받는 제품군은 굳이 소비하지 않아도 삶의 질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지 않는 상품들이다. 이에 해당하는 상품은 기능을 줄이고 가격을 낮춰 고객 기반을 잃지 않아야 한다.
최근 등장한 공짜 마케팅은 뺄셈 전략의 대표 사례다. 웅진코웨이가 외환은행과 제휴해 발행한 ‘페이프리(Payfree)’ 카드를 보자. 이는 웅진코웨이 정수기를 빌려 사용하는 고객이 페이프리 카드를 일정 액수 이상 사용하면 외환은행이 월 대여료를 현금으로 돌려주는 프로그램이다. 2008년 말 도입된 후 올해 2월 초까지 가입자가 30만 명이 넘는 성과를 냈다.
일본의 여성 전용 헬스클럽 ‘카브스’도 뺄셈 법칙으로 성공했다. 샤워장과 거울 없는 헬스클럽을 생각해본 적 있는가. 카브스에는 샤워장과 거울이 전혀 없다. 운동 기구도 불과 10개 정도만 갖춰져 있다. 대신 월 5000∼6000엔대의 파격적인 회비를 무기로 내세웠다. 40∼60대 주부들의 행동 반경을 고려, 주택가에 체인점을 낸 전략도 적중했다.
모든 안주와 주류를 ‘균일가 280엔’으로 책정해 성공한 이자카야(일본식 선술집) 체인점 ‘도리키조쿠(鳥貴族)’도 뺄셈 법칙을 적용해 성공한 사례다. 보통의 야키도리(닭꼬치구이) 체인점은 기본 80∼90종의 메뉴를 제공한다. 하지만 도리키조쿠 체인점에는 55개 품목만 있다. 메뉴의 종류가 적은 대신 양은 푸짐하다. 맥주도 280엔으로 편의점보다 싸다. 도리키조쿠는 회전율을 높이기 위해 맛이 더 좋은 숯불 대신 전기 그릴을 사용, 굽는 시간을 절반으로 줄였다.
패션 브랜드 중에서도 뺄셈 법칙으로 성공한 브랜드들이 많다. 스페인의 자라, 미국의 갭, 일본의 유니클로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생산과 유통을 수직 계열화해 디자인의 경쟁력을 갖추면서도 유통비를 줄였다.
뺄셈 법칙은 상품과 가격 차원에서만 적용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다양한 브랜드 포트폴리오를 갖고 있는 기업들은 브랜드 거품 빼기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 LG화장품은 IMF 불황이 한창이던 1999년 20여 개의 보유 브랜드 중 상당수를 대거 정리했다. 당시 LG화장품이 흑자를 내려면 브랜드당 300억 원의 매출을 달성해야 했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브랜드별로 30억 원 정도의 엄청난 광고 예산을 쓸 수밖에 없었다. 마케팅 비용이 매출보다 더 많아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에 부딪힌 셈이다. 결국 LG화장품은 마케팅 예산을 고려해 절반 정도의 브랜드를 과감히 철수시켰다. 그 결과 불황을 극복했을 뿐 아니라 ‘오휘(O HUI)’와 같은 대형 브랜드도 만들 수 있었다.
유니레버도 빼놓을 수 없다. 1990년대 말 유니레버는 자사 브랜드들의 수익성을 검토한 결과, 1600개에 달하는 브랜드 중 무려 1200여 개의 브랜드가 담당하는 매출이 전체 매출의 8%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익 면에서는 75%의 브랜드가 사실상 쓸모없다는 점이 드러난 셈이다. 결국 유니레버는 1999년 ‘Path to Grow’라는 브랜드 합리화 전략을 마련하고, 수익성 높은 브랜드를 중심으로 한 브랜드 군살 빼기를 추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