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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빼로데이’ 주역 롯데제과 구자룡 마케팅팀 차장

wants가 아니라 needs를 창출하라

하정민 | 32호 (2009년 5월 Issue 1)
롯데제과 직원들은 마케팅팀 구자룡 차장을 ‘빼빼로’라고 부른다. 11월 11일을 ‘빼빼로 데이’로 만든 주역이기 때문이다. 상업주의라는 비판도 많았지만, 마케팅 면에서 이 아이디어는 ‘대박’을 터뜨렸다. 구 차장은 2002년 빼빼로의 브랜드 담당자가 되자마자 이 아이디어를 냈다. 그 해 빼빼로 판매량은 전년보다 100억 원이나 늘어난 450억 원을 기록했다. 제품 수명 주기가 쇠퇴기에 진입한 상품 중에서는 유례를 찾기 힘든 성공이었다. 그는 2004년 이후 껌 분야를 맡아 자일리톨의 성공 신화를 이어갔다.
 
실적만 보면 구자룡 차장은 마케팅 분야에서만 수십 년간 일해온 사람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는 의외로 2000년에 마케팅 업무를 처음 시작했다. 산업공학을 전공했고, 1992년 롯데제과에 입사한 후에는 8년간 품질관리팀에서만 일했다.
 
‘마케팅 달인’의 유전자를 타고난 것일까? 성공 비결을 묻는 질문에 구 차장은 ‘농부론’을 폈다. 마케팅은 ‘농사’, 자신은 ‘농부’라는 설명이다. 씨는 어디에나 존재하지만, 농부가 밭에 씨앗을 뿌리고 부지런히 관리해줘야만 열매를 얻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누구나 신제품을 만들 수 있지만, 마케터가 제대로 관리해줘야 성공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남들은 매출 정체 상태라며 사실상 빼빼로 마케팅을 포기했지만, 새로운 이벤트를 만들어 관리해줬더니 큰 열매를 수확할 수 있었다며 농부론을 설파하는 그의 성공 비결을 분석했다.
 
‘원하는 것’과 ‘필요한 것’은 다르다
구 차장은 마케팅에 관해 전문적으로 공부한 적이 없다. 처음 브랜드 매니저가 됐을 때는 STP와 같은 마케팅 기본 용어조차 잘 몰랐다. STP는 고객들을 소득, 연령대, 구매 액수 등에 따라 세분화하고(Segmentation), 표적 시장을 선택하며(Targeting), 업계 내 제품 위치를 설정하는(Positioning) 방법론이다. 그는 ‘고객의 잠재된 욕구를 파악하라’ 같은 마케팅의 기본 명제에도 전혀 공감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심리학 책을 읽다가 프로이트의 이론을 보며 무릎을 쳤다. “프로이트가 빙산의 예를 들어 인간의 자아와 초자아를 설명하는데, 그제야 잠재된 욕구가 무슨 말인지 알겠더군요. 우리가 보는 빙산은 실제 빙산의 10%에 불과하고, 나머지 90%는 수면 아래에 잠겨 있습니다. 이 10%가 자아, 나머지 90%가 초자아입니다. 마찬가지로 소비자가 ‘원하는 것(want)’은 눈에 보이는 10%, ‘필요로 하는 것(need)’은 나머지 90%입니다. 때문에 저는 설문조사를 맹신하지 않습니다. 물론 설문조사 결과를 아주 무시할 수는 없지만, 설문조사에 나타난 행간의 의미를 잘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자동차에 관한 설문조사를 했다고 생각해보죠. 고객들이 실제로 살 수 있는 차는 아반떼지만, 원하는 차를 물어보면 모두 벤츠나 BMW를 말할 겁니다. 이것이 바로 want와 need의 차이입니다. 마케터는 고객이 말로 표현하는 10%가 아니라 표현하지 않는 나머지 90%를 찾아내 제품에 반영해야 합니다.”
 
빼빼로 데이를 만드는 과정에서도 이 철학이 고스란히 반영됐다. 빼빼로 브랜드 매니저로 일하던 초짜 마케터 시절, 그는 지방의 몇몇 여학교에서 날씬해지자는 의미로 11월 11일 빼빼로를 선물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만일 구 차장이 겉으로 나타난 현상에만 주목했다면 ‘빼빼로 데이’가 아니라 ‘다이어트 데이’를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은 다이어트지만 ‘필요로 하는 것’은 우정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밸런타인데이나 화이트데이에는 연인끼리만 선물을 주고받습니다. 애인이 없는 사람은 참여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죠. 선물 가격도 상당히 비싸고요. 친구들끼리 날씬해지라고 빼빼로를 선물하는 행위의 이면에는 다이어트보다는 우정이 더 크게 자리잡고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우리, 같이 날씬해지자’라는 식의 직접적인 멘트를 삼가고 우정을 콘셉트로 한 감성 마케팅을 펼쳤더니 효과가 대단했습니다. 토종 이벤트라는 점, 가격 부담이 없다는 점도 많이 부각시켰구요. 10대들의 감성에 맞춰 주력 광고 매체도 온라인으로 결정했습니다. 2002, 2003년만 해도 온라인 광고가 지금처럼 활발하지 않았어요. 경영진의 우려도 적지 않았죠. 하지만 감성 마케팅 대상인 10∼20대 계층에 접근하려면 온라인 광고가 훨씬 효과적이라 생각하고 밀어붙였습니다.
 
빼빼로는 무려 26년 전인 1983년에 탄생한 제품입니다. 성숙기를 넘어선 제품이라도 고객의 숨겨진 욕구를 파악하면 얼마든지 신제품 못지않은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도 큰 애착을 갖고 있습니다.”
 

‘No’에 익숙해져라
구 차장은 빼빼로의 성공에 이어 독보적인 시장 1위 제품인 자일리톨 껌을 맡아 별 어려움 없이 사업을 확장했다. 겉으로만 보면 잘 다져진 기반 위에서 편안하게만 일했을 것 같다. 하지만 결재안 때문에 윗선의 질책을 받은 날이 부지기수였다고 한다. 좋은 마케터가 되려면 ‘노(No)’라는 단어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그는 설명했다.

“9년 동안 수백 번의 결재를 올렸습니다만, 제가 올린 결재안보다 많은 액수의 예산안을 허락받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90%는 제가 올린 예산안을 줄이고 또 줄여 최소한의 액수만 집행하라는 지시를 받았죠. 저도 사람이다 보니 처음에는 ‘내가 회사 돈을 흥청망청 쓰고 싶어 그러는 것도 아니고 다 필요해서 하는 일인데, 이리도 내 맘을 몰라주나’라고 생각했어요. 가끔 이 문제로 고민하는 후배들을 볼 때마다 ‘No라는 말을 듣는 일은 너무나 당연하다. 1명의 상사도 설득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수많은 고객을 설득할 수 있겠느냐. 10번 결재를 올려 1번만 허락을 얻어도 충분하다’고 조언합니다.
 
드라마 ‘대왕 세종’을 재미있게 봤는데, 세종은 어떤 정책을 결정하기 전에 항상 대의명분과 논리가 무엇인지부터 먼저 살피더군요. 명분과 논리가 맞느냐 틀리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명분과 논리가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하죠. 오너 입장에서 보면 마케팅 부서는 돈을 벌어오지도 않으면서 쓰기만 하는 곳입니다. 때문에 오너를 납득시킬 만한 명분과 논리를 제시해야 합니다. 명분의 옳고 그름은 전혀 중요하지 않아요. 시장에서 성공하면 옳은 논리고, 실패하면 잘못된 논리일 뿐이죠. 오너들도 마케터가 주장하는 제품 10개가 모두 시장에서 성공할 수는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성공 여부를 떠나 일단 오너에게 논리와 명분을 심어줘야 오너가 그 정책을 집행하지 않겠습니까.”
 
그는 마케터들이 마음을 비우는 훈련부터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남들이 반대하는 안건을 불도저처럼 밀고 나가기보다는 ‘내 명분과 논리가 부족했다. 다른 사람의 반발을 무마하려면 어떤 명분과 논리를 새로 개발해야 할까’부터 고민하라고 조언했다.
 
남보다 먼저 시장에 진입하라
구 차장은 소비재 시장에서는 누가 먼저 시장을 선점하느냐가 매우 중요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페놀 사태로 하이트맥주가 OB맥주를 추월하고 1위 업체로 등극한 사례는 지극히 예외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많은 마케터들은 기존 시장 질서를 바꿀 것이냐, 새로운 시장에 뛰어들 것이냐를 놓고 고민한다. 구 차장은 기존 시장을 무너뜨리려는 노력으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면 훨씬 큰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자일리톨도 먼저 충치 예방 껌이라는 시장을 선점했기 때문에 출시 후 꾸준히 압도적인 1위를 할 수 있었다. 해태나 오리온이라는 강력한 경쟁회사가 있지만 시장점유율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 이유는 선발주자의 이점이 강력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코카콜라와 펩시가 세계 각국 탄산음료 시장을 장악하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콜라보다 사이다의 점유율이 더 높습니다. 콜라보다 칠성사이다가 먼저 시장을 장악했기 때문이죠. 마찬가지로 코카콜라의 아성이 워낙 견고하기 때문에 100년의 시간이 흘렀어도 콜라업계에서는 유력한 후발주자가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선발주자가 확보해놓은 점유율을 후발주자가 뺏기란 정말 어려워요. 후발주자가 각고의 노력을 하면 2∼5% 정도의 점유율은 가져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전세를 완전히 역전시키기는 힘듭니다.
 
자일리톨을 개발할 때도 이 점에 주목했습니다. 껌을 씹으면 이빨에 안 좋다는 것은 상식인데, ‘씹으면 충치를 예방해주는 껌이 있네’라는 식으로 소비자에게 이 제품이 완전히 새롭다는 느낌을 준 거죠. 자일리톨이 실제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내기도 했지만, 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소비자가 그런 느낌을 가지도록 하는 게 마케터의 임무입니다.”
 

품질보다 제품 개성을 부각시켜라
구 차장은 마케터가 품질의 우수성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무조건 남보다 싼 가격에 더 맛있는 제품을 팔겠다’는 식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며 자신의 실패담을 털어놓았다. 그는 소비자에게는 품질의 우수성보다는 제품 고유의 개성을 부각시켜 ‘왜 이 제품을 꼭 사야만 하는지’에 대한 답을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제품은 그 어떤 제품으로도 대체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 만큼 독특한 개성을 찾아내라는 조언이다.
 
“몇 년 전 프리지아 향기가 나는 껌을 새로 만든 적이 있습니다. 맛과 향 면에서 개발자나 저 모두 만족했습니다. ‘품질은 우수하니 포장 형태만 달리해보자. 그러면 완전히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했죠. 마침 미국 껌 중 포장 형태가 매우 특이한 제품이 있어 한국 시장에 도입해보고 싶었습니다. 한국은 껌의 포장 형태가 비교적 단순합니다. 5개입, 10개입, 편의점에서 팔고 있는 통으로 된 제품 정도죠. 하지만 미국 껌의 크기와 포장 형태는 매우 다양합니다. 물건 하나를 살 때도 차를 몰고 몇십 분씩 나가야 하기 때문에, 많은 양의 제품을 오래 보관할 수 있어야 하거든요.

새 껌에 대한 시장 조사 반응도 좋았기에 많은 기대를 걸었습니다. 그런데 3개월도 못 버티고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껌 선택의 기준이 ‘맛’일 거라 생각했는데, 현실은 전혀 달랐거든요. 그 껌은 맛은 있을지 모르나 소비자를 설득할 만한 특징은 전혀 없는 무미건조한 제품이었습니다. 저는 새로운 포장 형태가 독특한 개성이라고 생각했지만, 정작 포장 형태를 부각시키는 마케팅을 펼치지도 않았습니다. 새로운 포장 형태와 프리지아 향이 무슨 관계가 있는지에 대해서도 깊이 고민하지 않았죠. ‘맛과 향이 좋으니 포장만 달리하면 소비자들이 좋아하지 않을까’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던 겁니다.”
 
마케터는 지휘자다
마케팅 업무를 하다 보면 종종 조직 내 다른 부서와 갈등을 겪는다. 생산, 유통, 구매, 디자인, 사후 관리 등 제품 제조의 전 과정에 관여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부서 간 갈등은 피할 수 없다. 이에 일부 마케터들은 종종 ‘싸움닭’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다양한 부서 사람들을 상대하려면 일단 기가 센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인식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구 차장은 협업과 배려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과거보다 마케팅 부서의 권한이 훨씬 커졌기 때문에 지휘자나 리더의 입장에서 반드시 다른 부서원들을 배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저는 공대를 졸업하고, 입사 후 8년 동안 공장 품질관리팀에서만 일했습니다. 8년간 공장 사람들과 어울려 지냈던 경험이 마케터로 성장하는 데 큰 도움을 줬죠. 공장의 분위기는 매우 훈훈해요. 외부에서 물품을 들여오는 분들과도 한 가족처럼 지낼 정도니까요. 처음 본사에 와서 가장 놀랐던 게 물품을 들여오는 분들을 대하는 직원들의 태도였습니다. 입사 1, 2년 차밖에 안 되는 후배가 자신이 다른 일을 한다는 이유로 물품 반입하는 분을 1시간씩 기다리게 하는 거예요. 너무 화가 나 꾸짖었죠. 지금 바쁘니 다른 때 오시라거나, 다른 담당자를 소개해주면 될 일을 왜 이렇게 처리하냐구요.
 
저는 잘 모르는 직원이라도 먼저 말을 거는 편입니다. 대화를 나눌 때도 어깨를 두드려주는 식으로 신체적 접촉을 자주 하죠. 마케팅 부서와 다른 부서의 시각 및 이해관계가 부딪힐 때가 참 많습니다. 서로의 업무를 중시하다 보면 피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구요. 불가피한 긴장 관계를 누그러뜨리려면 평소 돈독한 관계를 쌓아두는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에는 신제품을 내놓을 때도, 제품을 리뉴얼할 때도 마케팅 부서에 상당한 권한을 줍니다. 마케터가 생산, 구매, 디자인, 유통에 대해 잘 모르면 그 제품이 성공할 수 없습니다. 권한이 늘어난 만큼 이에 걸맞은 역량도 갖춰야죠. 대인 관계 능력은 마케터가 갖춰야 할 가장 기본적인 역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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