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하는 가상현실 산업의 지형 바꾼다

3호 (2008년 2월 Issue 2)

정재영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영화나 SF소설에서나 보던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이 우리 생활의 일부가 되고 있다. 가상현실이란 실제에 가깝게 만들어진 가공의 세계를 말한다. 보통 컴퓨터를 통해 만들어지며, 사용자는 시각 촉각 후각 등의 감각을 통해 가상현실을 느끼고 몰입하게 된다.
 
물론 예전에도 가상현실 기술과 서비스는 있었다. 가상현실은 1980∼1990년대 군사적 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했으며, 일반 소비자들도 게임을 통해 초기적인 가상현실 기술을 체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 나타난 변화는 양과 질에서 이전을 압도한다. 세계적인 가상현실 커뮤니티 공간인 미국의 ‘세컨드 라이프(Second Life)’는 얼마 전 서울의 강남역 일대를 재현하기도 했다. 이곳에는 전 세계 사람들이 모여들어 현실과 유사한 사회활동을 하고 있으며 가상공간에서 기업을 운영해 돈을 버는 사례도 흔하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가상현실이 현재의 인터넷처럼 일상적이고, 편리한 도구로 발전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인터넷 등장이 유발한 것 이상의 파급효과를 가져올 것이란 예측도 있다. 이제 기업들은 미래의 새로운 시장이자 혁신 공간인 가상현실을 주목해야만 한다.
 
비용하락, 현실성이 확산 불러
최근 가상현실에 대한 관심과 이용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가상현실 대중화에 가장 큰 공헌을 하는 것은 정보기술(IT)의 급격한 발전으로 인한 비용 하락이다. 시각적, 물리적으로 현품? 비슷한 현실을 구현하는 비용이 싸졌다는 말이다.
 
중앙처리장치(CPU)와 그래픽 처리기술의 발달, 저장용량의 확대, 유무선 대역폭의 향상은 개인용 컴퓨터에서도 고품질의 3차원(D) 가상현실을 구현할 수 있게 했다. 게다가 PC 이외의 다양한 디지털 기기 가격이 빠르게 하락하면서 가상현실에 접근하는 것이 더욱 쉬워졌다.
 
또 가상현실 안의 경제·사회활동이 기대 이상으로 현실세계를 닮아가고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지난해 12월 현재 세컨드 라이프 안에서 유통되는 가상화폐는 약 42억 린든달러(Lindn Dollar·L$)로 이는 미국달러로 1600만 달러(한화 1조5000억원)에 이르는 거금이다. 린든달러는 실제 미국달러로 환전할 수 있다. 사용자들끼리 가상공간에서 연애를 하거나 결혼을 하는 등 현실과 같은 새로운 인간관계가 형성되기도 한다.
이런 현상은 가상현실 내 경제·사회활동이 향후 더욱 다양하게 전개될 것을 시사한다.
 
기업의 가상현실 활용 범위 확대
가상현실 기술은 산업적 측면에서도 이용이 급증하고 있다. 이전까지 가상현실 기술은 주로 대규모 장치산업 분야에서 3차원으로 제품을 설계하는 데 머물렀다. 소비자 부분에서와 마찬가지로 가상현실을 구현하는 장비의 가격이 매우 비쌌기 때문이다.
 
하지만 3D 장비의 가격이 하락하는 반면 성능은 향상되면서 가치사슬 상의 여러 분야로 가상현실 활용이 확대되고 있다. 일본 도요타 자동차는 설계 이외에 자동차 엔진의 작동 및 차체의 공기저항 측정, 모의 주행 등을 가상현실로 구현해 비용을 절감하고 있다.
 

건설, 의료, 교육, 전자, 엔터테인먼트 등 다양한 산업의 가상현실 활용도 활발하다. 프로미스(ProMiS)와 같은 기기는 의사나 수련의들이 복잡한 외과수술에 필요한 기술을 가상현실을 통해 배우게 해 준다. 국내에서도 한양대 등에서 가상현실을 이용해 고소(高所) 및 대인공포증 치료를 위한 가상현실 디스플레이 장치를 개발 중이다.
   
 
국내의 리바트, 까사미아 같은 가구회사들은 최종 제품의 형태, 배치 등을 가상현실을 활용해 미리 구현해 고객의 의견을 듣는다. 향후 고객 맞춤형 제품이 더욱 유행하게 되면 가상현실에 대한 수요가 더욱 증가하게 될 것이다.
 
B2C 기업들은 새로운 유통, 마케팅 채널로 세컨드라이프와 같은 일반 소비자 대상 가상현실 서비스를 이용하기도 한다. 이미 세컨드라이프에서는 IBM, 벤츠, 소니와 같은 글로벌 기업들이 마케팅 활동을 펼치고 있다.
 
가상현실과 웹이 결합하면서 협업과 혁신의 공간으로 활용도 또한 높아지고 있다. 항공, 우주 관련 기업들은 네트워크로 연결된 가상현실 협업 B2B 솔루션을 활용한다. 이제는 항공기 날개를 제작하는 일본 업체와 동체를 제작하는 이탈리아 업체가 직접 만날 필요가 없다. 가상공간의 항공기 모형을 통해 보다 쉽고, 직관적으로 개선점과 협력 포인트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아웃소싱이 일반적인 지금 가상현실을 활용한 이러한 형태의 협력은 매우 효과적이다.
 
협업은 기업 구성원들이 함께 일하는 방식도 바꾼다. 인텔이 개발 중인 3D 웹 서비스를 이용하면 지역적으로 떨어져 있는 기업 구성원들이 마치 게임을 하듯이 하나의 3차원 가상공간에서 정보를 저장 및 교환하고,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다.
 
이처럼 가상현실은 이미 기업 활동의 전반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 글로벌 선도 기업들이 이미 가상현실에서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들은 경쟁이 점증하는 기존 시장 공간을 벗어나 새로운 시장과 혁신 공간인 가상현실을 선점하기 위한 ‘가상의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
 
가상현실 확산과 새로운 사업기회
그렇다면 미래의 가상현실은 어떻게 발전하게 될까? 가장 분명한 것은 미래에는 가상현실이 일상화되고, 가상현실과 실제 현실이 공존하게 될 것이란 점이다. 실제로 노키아는 ‘휴대전화용 증강 현실(mobile augmented reality)’이란 기술을 개발 중이다. 이 기술은 실제의 영상에 가상현실을 덧씌워 사물에 대한 정보를 보여주는 것으로, 휴대전화 카메라에 잡힌 상품이나 건물에 대한 정보를 휴대전화 화면 위에 표시한다.
 

일각에서는 차세대 웹이 3D 웹의 형태로 진화하면서 가상현실 자체가 웹의 새로운 형태가 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인텔의 저스틴 레트너(Justin Rattner) 최고기술책임자는 지난해 9월 열린 ‘인텔 개발자 포럼’에서 “텍스트와 이미지 위주의 기존 인터넷이 정보를 더욱 간편하고 비주얼하게 조작할 수 있는 3차원 환경으로 바뀌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런 변화는 향후 가상현실이 누구나 쉽고 편리하게 이용하는 공간이 될 것임을 의미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가장 큰 시장 기회는 사용자들이 컴퓨터를 활용하는 방식이 변화할 때 나타난다”고 한 스티브 클레이한스(Steve Kleynhans) 가트너 부사장의 말은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기업들은 가깝게는 가상현실이 현실의 제품 및 서비스의 진화 방향에 미치는 영향을 주목해야 한다. 예를 들어 구글의 지리정보 서비스는 구글맵, 구글어스, 구글스트리트뷰의 순으로 가상현실의 경험을 풍부하게 하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선도적인 기업들은 이미 가상현실이 어떻게 소비자 행태를 변화시키는지 주목하고 있다. 그리고 여기서 나타나고 있는 새로운 기회와 혁신의 방향을 선점하고 있다.
 
또한 가상현실을 새로운 시장으로 활용하는 것도 중요해질 것이다. 2007년 한 해 동안 세컨드라이프 내 총 사용금액과 체류시간은 약 2.5배씩 증가했다. 총인구는 3.7배나 늘었다. 이는 가상현실을 새로운 시장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으며, 기업 입장에서는 보다 안정적인 사업을 할 수 있는 여지가 커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가상현실에서 사용되는 제품을 판매하거나, 가상현실을 새로운 유통, 판매채널로 활용하는 등 다양한 접근이 가능하다.
가상현실을 새로운 참여 혁신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다. 웹 2.0 시대를 거치면서 기업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소비자들이 등장했지만, 참여의 형태는 2D 텍스트와 그래픽을 통해 이뤄져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가상현실을 활용할 경우 얘기가 달라진다. 가상현실 속에서 미리 형태와 기능을 구현할 수 있는 등 보다 직접적 협업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MP3 플레이어의 경우 버튼의 크기와 위치, 미세한 질감과 모양, 기능의 추가 삭제 등 구체적인 부분까지 시각적 정보를 통해 쉽게 협업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이미 IBM은 세컨드라이프에 ‘3D Jam’이라는 아이디어 공유 공간을 열고 다양한 사람들의 참여를 독려 중이다. 이는 IBM 내부적으로 추진해오던 ‘이노베이션 잼(Innovation Jam)’이란 혁신 행사를 개방된 가상현실 공간에 맞게 적용한 것이다. 세컨드라이프를 이용하는 다양한 경제, 문화, 지역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로부터 시장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참신한 비즈니스 기회를 얻기 위함이다.
    
 
법적·윤리적 이슈의 향방 주시해야
1200만 가입자를 자랑하는 세컨드 라이프는 세계 최대의 가상현실 사이트다. 그러나 세계 각국 사람들 모두의 지지를 받고 있지는 못하다.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는 중국이나 중동권의 네티즌들은 가상현실 내에서 일어나는 사이버 섹스 등의 자유분방한 행동에 불쾌감을 느낀다.
 
모든 사회현상이 그러하듯 가상현실에도 어두운 부분이 존재한다. 특히 가상현실은 실제가 아니라는 점과 익명성이라는 특징 때문에 이런 부작용이 더욱 크게 부각되기도 한다. 현재 현실 사회의 규범이 가상세계에도 통용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명확한 합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가상현실에서 자신의 아바타(avatar·분신)를 조종하여 다른 사람이나 아바타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최소한의 윤리와 규범에 대한 제한이 나타나고 있다. 최근에는 세컨드라이프에서도 사이버 섹스와 도박을 금지하는 추세다. 다른 아바타에게 총격을 가해 살해하는 경우 어떻게 처리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논란도 커지고 있다. 현실 세계의 기혼자가 가상공간에서 다른 이성과 결혼할 경우 이혼 사유가 된다는 견해도 등장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향후 더 큰 이슈는 경제와 관련된 법과 규정의 적용 문제가 될 것이다. 특히 가상현실 내의 경제행위가 다양해지고, 규모가 커지면서 국가 간의 비즈니스 인허가 및 경제범죄의 처리가 향후 국제사회간 논란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경제행위와 관련된 과세 문제도 정치, 경제적으로 민감한 사안으로 떠오를 것이다. 새로운 비즈니스를 준비하는 기업들은 이런 이슈를 예의주시하고 사업을 전개해야 한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50호 Smart Worcation 2022년 08월 Issue 1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