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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랜드그룹이 홈에버 팔 수밖에 없었던 이유

옷 팔던 방식으로 대형마트 운영하다니…

김정욱 | 24호 (2009년 1월 Issue 1)
세계 유통공룡인 프랑스 까르푸가 2006년 한국을 떠나면서 한국까르푸는 이랜드그룹으로 넘어갔다. 이랜드는 당시 1조7500억 원에 한국까르푸를 인수한 뒤 이름을 홈에버로 바꿨다. 그러나 인수 초기부터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놓고 극심한 노사 갈등이 빚어지면서 2007년 648억 원의 영업 손실, 1939억 원의 순손실 등 대규모 적자가 발생했다.
 
또한 인수 금액의 절반 가까운 8000억 원을 금융권에서 빌리면서 막대한 부채에 대한 이자부담도 커졌다. 지난해 말 이랜드리테일의 부채 총계는 1조7300여 억 원으로 부채 비율은 651%에 이르렀다.
 
결국 20차례가 넘는 인수합병(M&A)으로 재계 26위로 수직 상승한 이랜드그룹은 인수 2년 만인 2008년 5월 영국계인 삼성테스코 홈플러스에 홈에버를 재매각했다. 그룹의 새 성장 동력으로 인수한 홈에버가 기대와 달리 노사 갈등으로 인한 영업적자로 이어지고 외부에서 끌어 쓴 차입금이 발목을 잡으면서 결국 대형마트 시장에서 손을 뗀 것이다. 홈에버의 조직 구조, 재무 상태 이외에 홈에버가 실패한 요인을 대형마트 시장의 특성을 기반으로 해 분석하고자 한다.
 
전장(戰場)을 착각하다
홈에버는 대형마트의 후발주자로서 상당한 핸디캡을 안고 출발했다. 이질적인 문화의 결합, 대형마트 업태와 시장에 대한 이해 부족, 구성원들에 대한 신뢰 결여, 엉성한 조직의 결집력 등이 문제점으로 쌓여 있었다. 홈에버는 이러한 문제점을 파악하고 해결책을 찾고자 애썼다. 그러나 끊임없이 나타나는 문제점에 부단히 집중하면서도 문제 해결의 주도권을 쥐지 못했다. 답은 간단한 곳에 있었다. 바로 홈에버는 전장(戰場)을 잘못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유통은 한번에 경쟁자를 무너뜨리고 시장을 장악할 수 있는 기술과 기법이 존재하지 않는 산업 분야다. 유통 산업의 특성상 한 기업이 오랫동안 고민하고 만들어낸 획기적인 기법은 바로 다음날 경쟁사가 똑같이 모방할 수 있을 정도다. 특별히 감추거나 비밀리에 개발해야 할 기술이 존재하지 않는 열린 시장이 유통 시장이다.
 
이 가운데에서도 특히 대형마트 시장은 훨씬 더 열린 시장이다. 아울렛 시장처럼 특별한 브랜드의 위력이 좀 더 강하게 드러나는 것도 아니고, 백화점처럼 진입 문턱이 높아 고객을 특정하는 시장도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고객이든 쉽게 진입할 수 있으며, 특정 브랜드의 힘도 크지 않은 곳이 바로 대형마트 시장이다. 전선을 압도하는 탱크나 미사일, 일당백의 특수부대 대신 지리적 이점이 큰 힘을 발휘하는 고만고만한 보병들이 뒤엉켜 백병전을 벌이는 전장이 대형마트 시장이다.
 
이러한 전장에서 한 방에 전세를 역전시킬 무기나 전략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는 것이 홈에버가 전장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었다는 증거다. 홈에버는 자신의 부진을 학습과 지식 부족에서 찾았다. 미처 발견하지 못한 대형마트의 성공 원리가 어딘가에 숨겨져 있으리라 생각하고는 편집적으로 자료를 긁어모으고 분석했지만 ‘알라딘의 요술램프’는 어느 곳에도 없었다.
 
성공 경험, 태생적 한계가 독(毒)
또한 과거 수차례 기업을 인수해 안정적인 궤도에 올려놓은 이랜드의 성공 경험과 기술이 오히려 독이 됐다. 과거 경험을 정리해 매뉴얼과 프로세스를 만들고, 논리를 붙여 ‘성공 원리’라는 이름을 지었지만 이번 대형마트 M&A에는 이것이 통하지 않았다. 과거 M&A 성공 사례를 통해 굳어진 확고한 믿음이 비참한 결과를 낳은 것이다.
 
독특한 조직 문화에서 기인한 자신감 또한 마찬가지였다. 기독교와 결합된 기업문화는 조직원들에게 무조건적인 순종과 헌신을 강요하면서 잘못된 의사결정에서 빠져나오는 데 많은 시간과 비용을 소비하게 만들었다.
 
패션회사로 출발한 태생적인 한계 또한 대형마트에 대한 기본적인 요소를 간과하게 만들었다. 패션회사는 패션 브랜드의 성격을 규정하고, 고객에게 노출시키는 일에 아주 능숙하다. 이번에도 홈에버라는 브랜드를 만들고, 브랜드의 성격을 규정하고, 이를 노출시키는 과정은 아주 깔끔했다. 그러나 대형마트 시장에서 브랜드가 갖는 의미에 대해 무지했다는 데 큰 문제가 있었다. 
대형마트은 패션과 같이 트렌드에 이끌려가거나 브랜드 성격에 따라 상품이 달라지는 시장이 아니다. 대형마트의 브랜드 성격은 지속적인 소비자 활동에 의해 자연스럽게 형성되며, 가격을 근간으로 움직인다. 또한 대형마트 브랜드 로열티는 패션에 비해 현저히 느슨하다. 대형마트 브랜드에 나름대로의 성격과 콘셉트를 부여해 노출하면 고객이 충성심을 보일 것이라는 홈에버의 안이한 생각이 잘못된 출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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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욱

    - (현) 홈플러스 일산점 인사SM
    - 홈에버 마케팅팀장
    - 한국까르프 potential manager 및 신선식품부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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