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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에이티브는 모험의 산물, 안정과 위험 사이에 길이 있다”

문권모 | 22호 (2008년 12월 Issue 1)
조한상 KT 미래사회연구센터 선임연구원, 문권모 기자

패션 디자이너 정구호와의 인터뷰 약속 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 제일모직 홍보팀에서는 그가 연락두절이라며 비명을 질렀다. 순간 애써 잡은 인터뷰가 무산될까 걱정하면서도 한편에선 언론 인터뷰를 과감하게 젖히고 행방을 감춘 ‘진짜 아티스트’에 대한 기대감이 조금씩 밀려 왔다.
 
무슨 일 때문이었을까. 어젯밤 디자이너 또는 아티스트들과 밤새 술이라도 마신 것일까. 쏟아져 나오는 창의적인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하고 아침까지 스케치북을 가득 메우다 어디서 단잠이라도 자고 있는 것일까. 이도 아니라면 기막히게 떨어지는 단풍과 낙엽에 취해 그렇게 좋아한다던 7번 국도변의 철 지난 바닷가에라도 찾아간 것일까.
 
이런 궁금증 속에 제일모직 ‘KUHO’ 브랜드 사무실이 있는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거의 다다랐을 무렵 홍보담당자가 연락을 해 왔다. 그는 단지 휴대전화를 잃어 연락이 안 되었을 뿐이란다. 이유 없는 궁금함이 실망감으로 뒤바뀔 무렵 약속시간보다 1시간 늦게, 가지런하게 정리된 하얀 치아를 제외하곤 온통 까만 패션 속에 웅크린 대한민국 패션 리더 정구호를 만났다.
 
카페 사장, 인테리어 전문가, 패션 디자이너
정구호. 그는 대한민국 고학력 전문직 여성들이 첫 손에 꼽는 최고의 패션 디자이너이자 선망 받는 대기업 임원(제일모직 상무)이다. 미국 휴스턴대에서 커뮤니케이션 디자인, 파슨스 디자인스쿨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각각 전공한 뒤 그래픽 디자이너, 뉴욕의 한인식당주, 카페 사장, 인테리어 디자이너를 전전했다. 결국 꼭 해보고 싶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뒤늦게 패션 디자인에 뛰어 들어 성공한 억세게 운 좋은 남자다.
 
언제부터인가는 영화판에도 뛰어 들어 ‘정사’ ‘스캔들’ ‘텔미섬딩’ 등 유명 작품의 아트 디렉터를 맡기도 했다. 하고 싶은 것을 다 해보면서 남 부럽지 않은 성공 가도까지 달리고 있는, 그러면서도 아직까지 자신의 넘쳐나는 끼와 재능을 펼치기엔 하루가 모자란 나날을 살고 있는 이 남자. 대한민국에 이보다 더 행복해 보이는 사람이 또 있을까.
 
첫 인사 후 그가 뒤돌아섰을 때 여러 갈래로 주름진 코트가 보였다. 참 독특한 디테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드럽게 인터뷰를 시작할 겸해서 그의 코트 뒷자락을 언급하며 ‘한국인 또는 한국 기업인들의 패션’에 대한 첫 번째 질문을 던졌다. 정구호의 답변은 예상 외로 진지했다.
 
“한국 기업인들의 패션은 사실상 없다고 봐야겠죠. 패션이라기보다 그냥 단체로 똑같이 입는 유니폼 개념에 더 가깝습니다. 우리나라 남성복 시장이 여성복 시장보다 협소할 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 비해서도 많이 낙후되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일본의 패션 거리에서는 남성복 매장이 여성복 매장만큼 많이 눈에 띕니다. 중국의 여성복 시장은 우리의 1980년대 수준에 불과하지만, 남성복 시장의 수준은 우리와 비슷합니다.
 
옷을 잘 입는다는 것은 비싸거나 고급스런 옷을 입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다양한 옷을 많이 입어 봤느냐, 남과 다른 시도를 해 봤느냐의 문제입니다. 우리 나라 사람, 특히 기업에 계신 분들의 패션이 뒤떨어지는 것은 늘 비슷한 형태의 옷을 유니폼처럼 입어 왔기 때문입니다. 남성복에 몇 가지 변화가 있었지만, 소재와 컬러가 조금 다양해지고 재킷의 단추가 두 개에서 세 개로 변한 정도에 불과합니다.
 
한국의 남성들은 옷을 많이 안 입어 봤기 때문에 패션을 어색하게 느낀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 어색함에서 벗어나는 용기를 내지 않는 한 한국인, 특히 한국 남자들의 패션은 ‘패션’이라는 용어로 불러주기가 어렵습니다. 우리나라의 기업 구성원들은 몰개성화된 집단 분위기에 지배당하고 있다고 봅니다.”
 
말씀하신 몰개성화는 단순히 기업인들의 패션 문제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기업의 크리에이티브와 관련해서도 역시 몰개성화에서 비롯된 문제점이 많아 보입니다. 기업 크리에이티브 창출능력의 문제점은 무엇일까요.
 
“크리에이티브 측면에서 국내 기업이 처한 가장 시급한 문제는 좋은 아이디어나 디자인을 확인(confirm)해 줄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국내 디자인 수준과 해외 디자인 수준 역시 결국 크리에이티브 자체보다는 이를 다룰만한 관리자의 역량에 따라 차이가 드러난다고 봐야죠.
 
국내 기업들도 이제는 세계적인 유명 디자이너와 작업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 한국 기업과의 작업에서 나온 결과물은 그들의 ‘베스트 작품’과 상당히 차이가 납니다. 저는 그 이유를 작업 과정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팅을 해 줄 수 있는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런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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