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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의 미래는 고객 속에 있다

김수욱 | 22호 (2008년 12월 Issue 1)
MOT는 진실의 순간(Moment of Truth)의 줄임말로 원래 투우에서 쓰는 용어다. 투우사가 황소를 데리고 재주를 부리다 마지막 순간 황소의 급소에 칼을 찌르는 찰나를 일컫는다.
 
기업 경영에서도 이 용어를 쓴다. ‘입소문 마케팅(Word of Mouth Marketing: How Smart Companies Get People Talking)’의 저자로 유명한 앤디 세르노비츠는 기업 경영에서도 가장 중요한 순간이 MOT라고 주장한다. 그 순간은 바로 기업의 직원이나 여러 자원이 고객과 처음 만날 때를 의미하며, 이때 그 고객이 충성 고객이 되는지 불만 고객이 되는지 여부가 결정된다고 설명했다.
 
MOT에서 기업과 처음 만난 고객이 만족하지 못할 경우 앞으로 기업 경영에선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MOT에서 만족하지 못한 고객이 평균 1015명의 다른 사람들에게 나쁜 경험을 하소연하고, 이 하소연이 입에서 입으로 퍼진다고 가정해 보자. 그 기업의 이미지는 추락하고, 시장은 그 제품과 서비스를 차갑게 외면할 것이다.
 
때문에 기업은 자사 서비스에 대한 칭찬과 불만을 실시간으로 청취할 수 있는 인터넷 게시판, 고객불만센터 등을 운영하는 등 불만 고객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고자 최선을 다하고 있다. 결국 경영학에서 MOT는 기업이 포기할 수 없는 고객을 위하는 마음, 즉 고객중심적 사고를 뜻한다. MOT에 대한 관심은 고객을 끊임없이 감동시켜야 지속적인 경쟁력을 보장할 수 있다는 기업 경영의 대원칙이기도 하다.
 
최근 민간기업뿐 아니라 공공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공기업에서도 MOT를 강조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공기업은 대규모 자본이 필요하고 그 투자의 회수 또한 장기간에 걸쳐 일어나는 사업이지만 공공 복지를 위해 꼭 필요한 사업을 국가를 대신해 수행하는 기업이다. 과거에는 공기업이 경쟁과는 거리가 먼 집단으로 여겨졌지만, 현재의 상황은 완전히 다르다. 특히 공기업의 경영 혁신과 민영화가 끊임없이 도마에 오르면서 이제 공기업도 경쟁선상에서 다시 출발해야 하는 처지다.
 
이런 세태를 반영하듯 공기업도 하나 둘 고객관계관리(CRM)를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공기업 중 CRM을 잘 하기로 유명한 한국전력을 보자. 한전은 고객 전용 시스템을 구축해 효율적인 CRM 실행 기반을 조성하고, 사이버 지점을 통해 모든 민원을 사내 영업정보시스템과 연계해 실시간으로 처리한다. 이에 힘입어 한전은 모든 고객 상담을 1시간 이내에 처리할 수 있는 시스템 환경을 갖췄다. 그러나 여전히 대부분의 공기업은 고객지향 마인드를 아직 정착하지 못하고 미결의 숙제로 남겨 두고 있다.
 
공기업이 사기업처럼 변한다는 것은 결국 지금까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던 고객지향적 마인드를 공기업 내에 새롭게 내재화시켜야 함을 의미한다. 실제로 기업 간 경쟁이 격화되면서 MOT에서 고객을 감동시키는 일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과연 지금까지 공기업 내부에서 큰 존재감을 지니지 않던 고객지향적 마인드를 공기업 전 구성원에게 정착시킬 수 있을까. 공기업 경영의 어려움과 도전은 이 질문에서부터 출발한다.
 
공기업이 고객지향적 마인드를 구축하려면 CRM의 의미부터 재조명해야 한다. CRM은 고객 정보와 과거 구매패턴을 데이터베이스(DB)화 하고 소비패턴에 대한 다양한 분석을 수행, 앞으로 자사에 최대 성과를 가져올 고객을 대상으로 마케팅 활동을 펼치는 것이다. 고객과의 관계 설정을 단기적 시각에서 보지 않고 장기적인 관계 구축을 위해 기업 내부에 고객 지향적 마인드를 심는 마케팅 기법이자 경영의 철학이다.
 
이 CRM의 철학이 제조업과 서비스기업,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막론하고 폭넓게 도입되고 있는 가운데 최근에는 신문사에서도 CRM 개념을 적용하고 있다. 미국 최대 전국 일간지인 USA 투데이의 경우 흥미, 상거래 가능성, 친목성의 기준을 적용해 고객을 분류하고 고객 욕구에 따른 세분화 전략을 수립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USA 투데이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여행, 스포츠 등 고객의 취향과 흥미에 따라 각 관심 영역을 그래픽·도표·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도구를 활용해 비중 있고 심도 있게 다루는 섹션을 도입했다. 독자를 위한 편집 의도를 확실하게 살리는 방향으로 독자적 이미지를 구축했다는 의미다. 이를 통해 USA 투데이는 기존 언론사가 가지고 있던 단순한 정보 전달자의 이미지에서 탈피, 고객에게 먼저 다가가는 고객 지향적 마인드를 지닌 언론사로 탈바꿈했다.
 
국내에서는 CRM을 기업과 고객을 연결해 주는 과학적 도구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한때 CRM, e-CRM이란 용어가 선풍적 인기를 끌었으며, 많은 기업이 앞다퉈 이 개념을 도입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CRM을 지속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기업은 매우 적다. 성공적인 CRM은 이론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실천력과 추가 성공 요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공기업은 특성상 사기업처럼 고객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내리기가 쉽지 않다. CRM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낮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공기업이 변화의 기로에 선 이상 자사와 직·간접적 관련성이 있는 협력 업체, 정부, 이해 관계자 모두를 고객으로 정의하고 MOT에서 고객의 마음을 확실히 장악하기 위한 체계화된 전략 수립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렇다면 공기업이 CRM 전략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첫 번째, 많은 기업은 CRM이 기법이자 시스템이며, 이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만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맹신한다. CRM은 기업의 경영 철학이다. 조직원 개개인이 자신의 업무에 이를 내재화시키고 체화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 고가의 CRM 시스템 도입은 아무것도 보장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국내 기업은 이 점에서 실수를 저지른다. 사용하지도 않고 사용하는 방법도 모르는 고급 CRM 솔루션을 애물단지처럼 보유하는 기업도 상당수다. CRM의 핵심은 조직원들의 고객 지향적 마인드 전환과 실제 업무에서 이 같은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두 번째, CRM은 각 기업의 특성에 맞게 이뤄져야 한다. 업무 특성상 고객 정보를 쉽게 수집할 수 있는 금융회사 및 인터넷 기업이 제조 기업에 비해 CRM에 대한 의존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공기업에도 고객 정보를 쉽게 취합할 수 있는 공기업과 그렇지 못한 공기업이 존재한다. 고객 정보를 취합하기 어려운 공기업은 투자비용 대비 효과를 거두지 못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도입 초기에 이를 잘 분석해 무조건적 도입과 적용보다는 자사의 실정에 맞는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중요하다.
 
세 번째, CRM은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한 전 사원이 동참해 지속적으로 추진해야만 한다. 기타 다른 경영 기업과 마찬가지로 CRM 역시 주로 CEO를 비롯한 임직원의 발의에서부터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이를 조직원들에게 체화시키려면 CRM 철학과 기법을 임직원부터 정확히 숙지해야 한다. 윗사람이 솔선수범하고 개별 조직 구성원에게 명확한 실천 방향을 제시해야 기업 전체에 고객 지향적 마인드를 심을 수 있다.
 
공기업의 CRM은 지금까지 없었거나 부족한 마인드를 새롭게 심는 과정이다. 씨앗을 뿌려 물을 주고 거름을 주며 햇볕을 가려 소중하게 키우는 농부의 마음으로 기업 내에 고객 지향적 마인드를 새롭게 싹 틔워야 할 것이다. 그 싹은 언젠가 자라나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공기업에 풍요로운 미래를 약속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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