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7일 미국 재무부는 국책 주택담보대출(모기지) 기관인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에 2000억 달러의 담보 제공을 발표했다. 16일에는 연방은행이 세계 최대 보험회사 AIG에 850억 달러 지원 계획을 밝혔고, 10월 3일 조지 부시 대통령은 7000억 달러의 구제 금융 법안 계획까지 공표했다. 이 일련의 사태는 불과 며칠 사이의 간격을 두고 연이어 발생한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우리는 왜 이런 구제 금융이 필요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이 이 지경에 빠진 원인, 베어스턴스와 리먼브러더스와 같은 대형 투자은행(IB)들이 사라진 원인,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가 아시아와 유럽 투자자들에게도 왜 치명적이었는지를 살펴보자.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의 소멸
먼저 미국 재무부가 베어스턴스나 리먼브러더스와 달리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을 구제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살펴보자. 답은 간단하다. 이 두 회사의 규모가 너무나도 컸기 때문이다.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이 미국 전체 주택 모기지론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990년 25%에서 2000년대 후반에 41%까지 증가했다. 이 가운데 주목할 부분은 2000∼2008년 두 회사가 구입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규모가 무려 1조9000억 달러에 이른다는 것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는 우량(프라임) 모기지에 비해 대출자의 상환 불능 위험이 더 큰 모기지다. 2000년부터 심지어 무서류 대출(사회보장번호나 세금신고서와 같은 최소한의 서류만으로 주택자금을 대출하는 제도)까지 출현하기 시작했다.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은 회사 수익 증대를 위해 위험도가 높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엄청나게 사들였다.
2000년대 들어 가파르게 오르던 집값이 떨어지고, 주택 구입자들의 연체 비율이 증가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물론 미국 집값이 떨어지는 현상은 1990년대에도 나타났다. 1990년대 집값은 실질 비율로 28% 하락했다. 최근 미국 집값 하락폭은 실질 비율 상으로는 1990년대와 비슷한 수준이다. 문제는 명목 비율이다. 1990년대 명목 집값 하락률은 5%에 불과했지만 이번 금융위기에는 21% 하락했다.
그렇다면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은 왜 이렇게 많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사들였을까.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은 각각 1938년과 1970년 주택자금 대출을 사들이고 이것을 증권화해서 유통시키는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미국 정부가 뒤에 버티고 있다는 암묵적 보증 때문에 두 회사는 돈을 싸게 빌릴 수 있었고, 수익도 빠르게 증가했다.
회사의 수익 증대를 위해서는 이들 회사가 사들일 주택 대출이 증가해야만 했다. 결국 더욱 많은 대출 상품을 사들이기 위해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대량 구입한 셈이다. 세금을 내는 납세자가 아니라 회사 주주들의 이익을 위한 의사결정이었다는 점에서 이는 전형적인 도덕적 해이다.
대형 IB의 소멸
그렇다면 세계 금융계를 쥐락펴락하던 베어스턴스와 리먼브러더스 등 대형 투자은행들은 왜 사라졌을까. 이 이유를 파악하려면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어떻게 쪼개고 증권화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림1에서 보는 것처럼 주택담보대출증권(MBS)의 상환 위험은 여러 개의 트랜치(모기지 업체에서 사들인 MBS를 한 곳에 넣어 재유동화한 다음 여러 형태로 쪼갠 것)로 나뉜다. 첫 번째로 발생하는 손실에 대해서는 첫 번째 트랜치가 감당하고, 첫 번째 트랜치가 감당할 수 있는 손실을 넘어선 손실에 대해서는 그 다음 트랜치가 감당하는 식이다.
패니메이와 프레디맥 MBS의 경우 대출 원금과 이자 등을 정부가 개입해서 보장한다고 보기 때문에 투자자들은 부도 위험이 ‘제로’라 생각하고 구입한다. 반면에 자산유동화증권(ABS)이나 자산담보부증권(CDO)은 철저히 신용 위험에 기반해 만든 상품이며 정부 보증도 없다.
CDO는 MBS에서 쪼개진 트랜치 중 비교적 위험한 트랜치, 즉 신용등급 BBB 이하의 트랜치들을 모아서 만든 상품이다. 이 CDO의 BBB 이하 트랜치를 다시 모아 또 다른 CDO2를 만들 수도 있다. 결국 CDO를 구입한 사람은 애초의 기초자산 투자 위험이 얼마이고 어느 정도인지를 전혀 추적할 수가 없다. BBB 등급 이하의 트랜치들을 모아 AAA 등급 트랜치를 다시 만들 수도 있었다. 이는 여러 ABS를 모아 다각화함으로써 가능해졌다.
그렇다면 이제 투자은행이 무엇을 했는지 살펴보자. 투자은행에는 ABS 풀을 늘려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늘릴 충분한 원인이 있었다.
<그림1>에서 ABS를 트랜치로 쪼개고 남은 부분, 즉 투자은행이 얻을 수 있는 잔존물(residual)은 기초자산 모기지 풀에서 받은 현금과 ABS 상환 금액의 차이다. 이 잔존물이 2%에 이르는 반면에 ABS 발행으로 투자은행이 얻는 연간 수수료는 ABS 규모의 0.15%에 불과했다. 0.15%의 10배가 넘는 2%의 이익을 노릴 수밖에 없으므로 당연히 IB의 선택은 전자로 기울어졌다.
그렇다면 BBB 등급 이하 트랜치의 고위험 부분은 누가 사들였을까. IB 산하의 헤지펀드들이 이에 대거 투자했다. 이들은 주로 기업어음(CP) 발행에서 마련한 돈으로 투자했다. 알다시피 CP는 만기가 짧기 때문에 부실 모기지로 인한 투자은행의 손실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결국 투자은행들이 스스로의 이익 증대를 위해 만든 구조에 자기가 빠진 꼴이다.
신용평가회사와 금융기관의 인센티브 문제
서브프라임 위기가 아시아와 유럽 투자자들에게 끼친 영향을 이해하려면 서브프라임 ABS와 CDO의 등급이 어떻게 매겨지는지,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를 알 필요가 있다.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첫 번째, 신용평가 회사들은 이 상품의 등급을 회사채처럼 손실 발생 빈도와 손실의 심각성에 기반을 두고 평가할 뿐 기초자산의 위험에 기반해 평가하지 않았다. 두 번째, 신용평가 회사와 금융기관 사이에 인센티브 문제가 존재한다. 신용평가 회사의 주 수입은 금융상품 발행기관에서 받는 돈이다. 게다가 신용평가 회사가 받을 수 있는 가장 높은 수수료의 상품은 단순 회사채가 아니라 투자 위험이 큰 CDO와 같은 상품이다. 때문에 금융기관이 더욱 많은 CDO 상품을 만들어 내야 신용평가 회사의 소득 또한 증가한다.
유럽과 아시아 투자자들은 단순히 신용등급, 즉 AAA로 매겨진 등급의 CDO를 우량 상품으로 생각해 투자했다. 신용등급은 똑같은 AAA지만 일반 AAA 회사채보다 더 높은 수익률을 올릴 수 있는 기회를 누가 마다하겠는가. 그러나 문제는 이 투자등급이 정말 믿을만한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편집자주 카이스트 금융전문대학원(MBA스쿨)과 동아비즈니스리뷰(DBR)가 세계 최고 경영 석학의 강의 내용을 생생하게 전해 드립니다. 카이스트 초청으로 방한한 금융 분야의 세계적 석학 4명은 지난 9월부터 10월까지 순차적으로 카이스트에서 강의했습니다. DBR이 부동산 금융 분야의 석학인 제임스 실링 미국 시카고 드폴대 교수가 진행한 10월 17일 강의 내용을 요약해서 전해 드립니다.
제임스 실링(James Shilling) 교수는 미국 퍼듀대에서 경제학(부동산 금융 전공)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2∼2007년 위스콘신주립대 부동산 및 도시토지경제학 연구소장으로 근무했으며, 현재 시카고 드폴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