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년 서울 종로에 국내 최초 영화관 단성사가 들어선 이래 양적 팽창과 시설 개선 위주로 성장해 오던 국내 극장산업은 1998년 최초의 멀티플렉스인 CGV강변11이 들어서면서 시스템적 혁신이 시작됐다.
CJ CGV 등장은 1999년 롯데시네마, 2000년 메가박스의 멀티플렉스 도입으로 이어지면서 기존 극장의 멀티플렉스 전환과 아직 시장에 진입하지 않은 대기업들의 멀티플렉스 산업 진출을 초래했으며 한국 영화산업 전반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CGV의 멀티플렉스 도입
2006년 현재 CJ CGV의 스크린 점유율은 다른 업체에 비해 압도적이며, 같은 모기업 자본인 프리머스까지 포함하면 격차는 더욱 벌어진다.(그림1) CJ가 선두적 지위를 지키고 있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다른 업체보다 한 발 앞서 멀티플렉스 사업에 진출했다는 점이다.
CJ그룹은 1993년 삼성그룹에서 독립한 뒤 독자적인 활로를 모색하며 식품, 생명공학, 엔터테인먼트, 신유통 사업 등을 4대 핵심사업 전략으로 수립했다. 1995년 제일제당 안에 만들어진 멀티미디어사업본부 극장사업팀이 엔터테인먼트 사업의 출발점이 돼 오늘날 CJ CGV가 되기에 이른다.
CJ CGV가 멀티플렉스를 도입하게 된 배경에는 여러 요인이 있다. 우선 1998년 당시 선진국 멀티플렉스의 성공 사례가 언론을 통해 알려져 있었으며, 1997년 명보극장(4개관)과 씨네월드(4개관) 등 기존 극장들이 스크린 수를 늘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멀티플렉스 사업에 진출하는 데에는 위험요소가 컸다. 먼저 멀티플렉스를 짓기 위해서는 교통이 편리하고 주변에 위락시설이 밀집하고 유동인구가 많아야 했다. 두 번째, 여러 개의 상영관을 동시에 지어야 했기 때문에 막대한 초기 투자금액이 필요했다. 세 번째, 극장 유지와 관리비용도 상당한 금액이었다. 마지막으로 국내 관람객이 ‘실제로’ 멀티플렉스라는 새로운 개념의 시스템 혁신에 잘 따라와 줄 것이냐 하는 것이었다.
CJ CGV는 많은 우려와 고민 끝에 드디어 1998년 CGV강변11을 개관했으며,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CJ CGV는 2005년 기준 매출액 2389억 원, 순이익 237억 원의 기업으로 성장하였다. 약 10년 만에 일개 사업 팀이 하나의 기업이 된 것이다. CJ CGV는 2004년 영화관 최초로 증권거래소에 상장한 데 이어 2006년 기준 전국 250여 개의 스크린을 보유하며 국내업계 1위를 고수하고 있다. 또한 2006년 2월 영화산업의 본고장인 미국에 진출한 데 이어 같은 해 상하이영화그룹과 멀티플렉스 영화관 사업을 위한 합작회사 설립 조인식을 체결하고 중국 멀티플렉스 사업에 본격적으로 진출했다.
CJ CGV가 미친 파급효과
제품 다양화와 서비스 차별화 CJ CGV의 멀티플렉스 도입은 국내 극장산업에 제품의 다양화와 서비스의 질적 향상 및 차별화를 가져왔다. 제품 다양화 측면으로는 관객이 영화관까지 와서 원하는 영화를 보지 못해도 차선책의 폭을 다양하게 함으로써 영화관에 왔지만 보지 못할 때의 심리적 부담을 줄였다. 이를 통해 많은 잠재적 소비자를 시장으로 끌어들였다. 또 주변에 다른 활동을 위해 왔던 잠재적 소비자도 남는 시간에 가벼운 마음으로 영화를 볼 수 있도록 유인해 관객 수를 늘렸다. 관객 수 확대는 영화 편당 기대 매출액을 높여 제작비를 높일 수 있도록 하는 등 영화제작 산업 전반의 시스템적 변화를 초래했다. 서비스의 질적 향상 측면으로는 젊은 고객층에게 어두침침하고 다소 유쾌하지 못한 극장 이미지를 청결하고 깔끔한 이미지로 바꿨으며, 이는 고객효용을 더욱 높였다.
거대화된 극장 사업 멀티플렉스 도입 이후 대규모 극장 시스템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해외 거대 자본이나 대기업이 아니면 진입할 수 없는 구조가 심화됐다. 메가박스나 롯데시네마 등의 대기업이 멀티플렉스에 진입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기존의 1극장 1영화 체제를 고수하던 대한극장, 단성사, 피카디리 등이 리노베이션을 통해 멀티플렉스로 새로 태어났지만 이미 산업 내에서 뒤처진 극장이 됐다. 뿐만 아니라 멀티플렉스를 도입한 기업들이 배급사와 극장을 수직적으로 통합하고 있어 비용면에서도 상당한 우위를 차지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