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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 Brief Case: 국내 최초 스마트항만 ‘동원글로벌터미널 부산’의 혁신 전략

해원(海原)을 누비던 동원,
해운을 품을 스마트항만 닻 올려

백상경 | 390호 (2024년 4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올해 3월 본격 개장한 동원글로벌터미널 부산(DGT)은 동원그룹이 야심 차게 선보인 국내 최초 완전 자동화 스마트항만이다. 4차 산업혁명 기술을 활용해 수동 작업과 인적 노동력에 의존했던 항만물류 업계의 한계를 극복했다. 장비 국산화로 유관 산업을 함께 활성화하겠다는 거시 어젠다를 내놔 사업 추진력을 강화했고 인공지능(AI)·디지털 트윈 등 전사적 기술 역량을 총동원해 까다로웠던 디지털 통합 관리 시스템을 완성했다. 무엇보다 일자리 상실에 대한 근로자들의 불안감을 고용승계·재교육 약속으로 정면 돌파했다. 동원은 2006년 로엑스(LOEX) 출범, 2017년 동부익스프레스 인수 등 연쇄적인 ‘체인 이노베이션’으로 물류라는 새로운 성장엔진을 달았다. 나아가 글로벌 선진 항만에 버금가는 한국형 스마트항만 조성에 성공하면서 확고한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했다.



고요함을 넘어 적막함까지 느껴진다. 흔히 항만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분주한 근로자, 다양한 차량의 모습이 사라진 까닭이다. 하늘 높이 솟은 컨테이너 크레인 상부에는 당연히 있어야 할 조종실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수많은 카메라와 센서로 무장한 컨테이너 크레인은 중앙 컨트롤타워에서 인공지능(AI) 솔루션을 활용해 조종한다. 컨테이너를 옮기는 차량에도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광활하게 펼쳐진 부두 위를 전기로 움직이는 자율주행 무인 화물차들이 질서 정연하게 오갈 뿐이다. 사람이 부대끼며 일하는 곳이라면 당연히 존재할 떠들썩함이 바로 이곳, 부산항 신항 서컨테이너부두 2-5단계 동원글로벌터미널 부산(DGT)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얼굴을 스쳐 가는 바닷바람의 소리, 인접 부두의 방송 멘트나 소음 같은 것들이 외려 귀에 흘러든다. 이곳이 완전 자동화 달성1 에 성공한 스마트항만이기 때문이다.

3월 13일 방문한 경남 창원시 진해구 DGT는 마치 거대한 스마트 물류센터와 같은 모습을 자랑했다. 푸르른 바다를 향해 뻗은 높이 93m 파란색 자동화 컨테이너 크레인2 9기가 선석에 접안한 화물선에서 쉴 새 없이 화물을 끌어올렸다. 크레인의 맨 끝에 달린 ‘프라이머리 트롤리(Primary Trolley)’가 크레인 중간에 위치한 라싱(Lashing, 화물고정) 플랫폼에 컨테이너를 내리면 다시 세컨드리 트롤리(Secondary Trolley)가 지상의 자동이송장비(AGV, Automated Guided Vehicle)에 화물을 차례로 실어줬다. 총 60대에 달하는 AGV는 바닥에 매립한 무인 차량 위치 감지 장비를 따라 일사불란하게 부두를 오가며 컨테이너를 날랐다. 이송 구역이 혼잡하면 알아서 잠시 대기하거나 우회 경로를 탐색해 효율적으로 움직였다. AGV의 종착지는 컨테이너를 적재하는 야드 구역. 형형색색 컨테이너가 몬드리안의 추상화처럼 가지런히 놓였다. 이 작품을 그려내는 건 완전 자동화한 46기의 높이 34m 주황색 야드 크레인이다. AGV에게 건네받은 컨테이너를 가장 효율적인 위치에 알아서 차곡차곡 쌓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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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만 구역에서 이뤄지는 이 모든 작업은 사람의 손 없이 이뤄진다. 부두에서 조금 떨어진 제어실이 자동화터미널운영시스템(TOS, Terminal Operation System)을 통해 모든 작업을 관리한다. 제어실 근무 인력은 비상 상황 대응 인력을 포함해 30여 명뿐이다. 네덜란드 로테르담항, 중국의 상하이항, 미국 롱비치항 등 유수 글로벌 항구와 비교해도 손색없을 정도의 최고 수준 무인화다.

이달 본격 운영에 들어간 DGT는 동원그룹이 미래 고부가가치 핵심 사업으로 야심 차게 선보이는 국내 최초 스마트항만이다. 4차 산업혁명 기술을 적극 활용해 수동 작업과 인적 노동력에 의존했던 항만 물류 업계의 한계를 극복하고 완전 자동화를 이뤄냈다. 국내에서도 스마트항만 요소를 부분 도입한 곳은 많다. 하지만 선진국 항만 수준의 완전 자동화에 성공한 것은 DGT가 처음이다. 기존 터미널 대비 생산성을 최대 20% 끌어 올리고 안전성과 친환경성까지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컨테이너·야드 크레인과 AGV 등 핵심 장비를 모두 국산화했다는 점에서 국내 산업의 활성화 효과도 예상된다.

DGT의 등장이 주목을 받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국내 최초의 스마트항만을 완성한 주인공이 동원그룹이라는 점 그 자체다. 참치 어획부터 시작한 동원은 오랜 기간 종합식품회사 정체성을 유지해왔다. 그랬던 동원이 이제 전문 기업들을 제치고 가장 발 빠른 혁신을 통해 국내 항만물류 업계의 선도적 기업으로 거듭났다. 2006년 동원산업 로엑스(LOEX) 출범, 2017년 동부익스프레스 인수로 기틀을 잡은 동원그룹의 물류사업은 지난해 매출 1조3000억 원을 돌파하며 견조한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여기서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한 주춧돌이 바로 DGT다. DGT의 개장으로 동원그룹은 글로벌 항만물류의 미래로 여겨지는 스마트항만을 보유한 기업이 됐다.

해원(海原)을 누볐던 김재철 명예회장과 동원의 꿈은 이제 세계 해운물류를 품을 스마트항만이라는 새로운 가지를 뻗어냈다. 본업에서 혁신의 고리를 찾아 미래 신사업과 사슬처럼 엮어가는 동원그룹의 ‘체인 이노베이션(Chain Innovation)’ 전략이 연 새로운 지평이다. DBR이 국내 최초 스마트항만 DGT의 강점과 사업 추진 배경, 그리고 새로운 성장 엔진을 찾은 동원그룹의 혁신 비결을 분석했다.


1. 팬데믹이 돌려놓은 부산신항 서컨테이너부두의 운명

당초 계획은 반자동화였다. DGT가 들어선 부산신항 서컨테이너부두는 당초 스마트항만 계획지역이 아니었다. 부두 개발을 맡은 부산항만공사(BPA)가 2021년 부산신항 2-5단계, 2-6단계와 피더 부두 운영사 입찰 공고를 할 때만 해도 완전 자동화는 구상에 없었다. 2012년 토목공사를 시작할 때부터 유인 설비를 전제로 기반 시설을 구축해왔다. 스마트항만이 선진적인 요소는 많았지만 국내에선 전례가 없었고 현실적으로 발목을 잡는 요인도 많았다. 기존 계획을 굳이 뒤집어가며 도전할 만한 것은 아니었다.

상황을 바꾼 건 동원의 입찰 제안서다. 동원은 운영사 입찰 과정에서 BPA에 먼저 완전 자동화 도입을 요청했다. 앞서 부산신항 운영권을 따낸 업체들 모두 완전 자동화는 엄두를 내지 못했는데 동원이 먼저 칼을 빼 들었다.

동원이 스마트항만에 도전한 이유가 있다. 첫째는 팬데믹이다. 2019년 말 확산을 시작한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수개월 새 전 세계 모든 국가와 대륙으로 퍼져나갔다. 국제적인 보건 위기 상황은 산업 전반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인적 노동력 의존도가 큰 사업일수록 피해가 컸다. 그중 하나가 바로 항만물류다. 근로자들이 코로나에 대거 감염되면서 세계 곳곳의 항구들이 마비되는 사태가 빈번하게 발생했다. 미국 서부 지역의 핵심 항만인 로스앤젤레스(LA)항과 롱비치항이 대표적이다. 세계 최대 컨테이너 항구인 상하이항은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한 봉쇄령으로 몇 달간 아예 폐쇄가 됐다. 이제 스마트항만은 더 이상 이상적인 모델 같은 게 아니었다. 당장 구현해야 할 지상 과제가 됐다. 팬데믹과 같은 사회적 재난 속에서도 얼어붙지 않는 부동항을 구축하려면 100% 무인화가 반드시 필요했다.

또 다른 이유는 동원이 동부익스프레스 인수로 확보한 부산 북항 신감만부두의 동원부산컨테이너터미널(DPCT)의 운영 경험에서 찾을 수 있다. DPCT는 지금의 서컨테이너부두에 비하면 턱없이 규모가 작지만 한때 연간 처리하는 컨테이너 수가 100만 TEU(1TEU=20ft 표준 컨테이너 1개)를 넘는 알짜 사업지였다. 그러나 부산신항 개항 이후 북항의 물동량이 줄면서 수익성이 악화하기 시작했다. 일감은 줄어드는데 물가 상승과 연봉 인상으로 인건비와 같은 고정비용이 계속 증가하면서 경영에 부담을 줬다. 동원은 신항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고 봤다. 인력에 기댄 전통적인 사업 구조로는 언제가 됐건 똑같이 고정비용 상승의 압박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답은 스마트항만뿐이라는 내부적인 공감대가 형성됐다. 초기 비용이 높아지는 문제는 있지만 완전 무인화를 달성할 경우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는 판단이 선 것이다. 사람이 직접 뛰지 않는 만큼 고질적인 안전사고 문제도 최소화할 수 있었다.

동원은 스마트항만 계획을 앞세워 2021년 9월 BPA와 가계약을 체결하고 2-5, 2-6, 피더 부두 운영사로 낙점됐다. 이듬해 6월 동원글로벌터미널(DGT)을 설립하고 본격적인 사업에 착수했다. 김창훈 DGT 대표는 “인력에 기반한 옛날식 항만물류 사업은 한계가 명백했다. 30년을 내다봐야 할 새로운 항만을 구축하면서 기존 방식을 답습할 수는 없었다. (국내에선)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이었지만 첫발을 내딛지 않으면 영원히 길은 열리지 않는다. 동원이 그 길을 개척하기로 했다. 팬데믹이 다시 오거나 인구절벽으로 인력난이 오더라도 스마트항만은 언제나 정상 가동이 가능하다. 기존 항만을 압도하는 월등한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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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장비 국산화’ 거시 어젠다 설정으로 추진력 강화

퍼스트 펭귄의 걸음걸음이 탄탄대로일 리 없었다. 당장 기반 시설 문제가 터져 나왔다. 스마트항만을 운영하려면 추가해야 할 시설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대표적인 게 AGV를 제어하기 위한 항만 바닥 면의 트랜스폰더(Transponder) 센서다. 바닥에 수만 개의 트랜스폰더를 심는 작업이 필요했다. 트랜스폰더의 원활한 작동을 위해 바닥의 소재 역시 개질 아스콘 재질로 바꿔야 했다. 이것만 해도 항만 설계를 변경하고 기존에 공사를 마친 바닥을 다시 뒤집어야 하는 작업이다. 여기에 모든 장비가 전기로 움직이는 스마트항만의 특성상 전력공급 설비 역시 대폭 확충해야 했다. 컨테이너 크레인이 설치될 외벽 지역의 기반도 문제였다. 이곳에 설치된 컨테이너 크레인의 총중량은 2281t에 달한다. 자동화 설비들이 추가로 들어가면서 유인 크레인에 비해 하중이 더 늘었다. 늘어난 하중을 버틸 수 있도록 보강하는 작업이 불가피했다.

기반 시설은 동원이 아니라 BPA의 영역이다. 이미 기반 시설 공사를 끝낸 상황에서 새로운 요소를 추가하는 건 족족 예산과 절차적인 문제로 이어졌다. BPA 입장에서도 스마트항만 구축이라는 방향성에는 공감했지만 이미 정해진 계획과 예산에 맞춰 진행하던 사업을 계속 바꿔야 하니 골치가 아플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우리나라 항만물류 산업을 한 차원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이참에 완전 자동화의 물꼬를 틀 필요가 있다고 보고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동원과 BPA는 ‘스마트항만 장비 국산화’라는 거시 어젠다를 세팅하면서 문제를 풀어냈다. 이 어젠다로 DGT 사업은 동원만의 것이 아니라 국가적인 의미를 갖는 주요 프로젝트로 입지가 더 공고해졌다. 그만큼 사업에 탄력이 붙은 것은 물론이다.

그간 항만 하역의 장비 시장은 중국과 유럽 일부 업체가 사실상 장악했다. 특히 핵심 장비인 컨테이너 크레인은 중국의 전문 업체 상하이진화중공업(ZPMC)이 전 세계 70%를 공급하는 실정이다. 국산 장비는 힘을 전혀 쓰지 못했다. 20여 년 전 부산 북항이 물류 중심이던 시절만 해도 국산 장비를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중국산 장비가 밀려오면서 사실상 씨가 말라버렸다. 당장 부산 신항 주요 항만하역장비에서 외국산 장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85%를 넘을 정도였다.

동원과 BPA는 DGT에 도입하는 장비를 100% 국산화해 국내 유관 산업의 활성화를 꾀한다는 목표를 세우면서 사업에 본격적으로 속도를 붙일 수 있게 됐다. 정부도 합을 맞췄다. 해양수산부는 DGT를 국내 최초 완전 자동화 항만으로 조성하기 위해 3400억 원 규모 하역 장비를 국산으로 채우는 통 큰 투자를 단행했다. 부두 내 컨테이너 크레인 9기는 현대삼호중공업이 만들었다. 46기의 야드 크레인은 한진중공업이 34기, 두산에너빌리티가 12기를 각각 제조했다.

무인 이송 장비인 AGV는 네덜란드 VDL사의 기술을 이용했는데 단순히 장비를 수입해온 게 아니라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기술을 이전받아 국내 제작 역량을 확보했다. 총 60기 가운데 17기는 네덜란드에서 제작한 것이지만 43기는 현대로템이 충남 당진 공장에서 직접 제작했다. 김 대표는 “항만 조성 일정이 촉박한 만큼 AGV는 수입해서 쓰는 게 어떻냐는 방안도 나왔다. 하지만 김남정 부회장이 강력히 반대했다. 국내 산업 전반에 미칠 후방 효과와 사후 유지보수 등을 고려해 국산 장비를 고집했다. 결과적으로 자동 항만 전체 시스템을 완전히 국내 브랜드만으로 운용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해수부에 따르면 이 같은 국산 하역 장비 도입은 생산 유발 6417억 원, 부가가치 유발 2110억 원, 취업 유발 2386명의 경제적 파급효과를 창출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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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끊임없는 소통, 전사적 기술 역량 총동원해 디지털 통합 관리 시스템 완성

스마트공장이 그렇듯 스마트항만의 핵심 목표는 디지털화다. 단순히 공정을 자동화하고 무인화하는 수준이 아니라 가상 공간(디지털 환경)과 물리 법칙으로 움직이는 물리적 세계를 하나로 통합하는 CPS(Cyber Physical System, 가상 물리 시스템) 구축이 중요하다. 스마트항만에서 이러한 두뇌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 바로 TOS(Terminal Operation System)3 이다. 관건은 컨테이너 크레인이 화물을 끌어올리는 STS(Ship to Shore), 화물을 이송하는 AGV, 화물을 적재하는 야드 등 크게 3개 영역으로 나뉜 항만물류 프로세스를 하나의 TOS 아래 물 흐르듯 매끄럽게 이어 붙이는 것이다.

이 과정에선 그룹 차원의 인공지능(AI) 기술 역량도 총동원됐다. 동원이 미래 기술 육성을 목표로 운영하는 동원산업 종합기술원이 지원군으로 나섰다. TOS 안정화와 생산성, 효율성을 위해 IT 업무 전반에 걸쳐 도움을 줬다. 특히 공력이 집중된 부분은 AGV 영역이었다. 가동 로직이 비교적 단순한 컨테이너 크레인, 이미 국내에서 상당한 수준의 자동화가 표준이 된 야드 크레인과 달리 AGV는 국내 어떤 항만에서도 제대로 적용하지 못한 요소였다.

김 대표는 “현대로템이 네덜란드 VDL이 제공한 기술로 AGV를 관장하는 FMS(Fleet Management System)를 만들었다. 그런데 항만의 특성, 그러니까 컨테이너를 항만에서 옮길 때 어떤 형태로 움직여야 하는지가 반영이 안 됐다. 현대로템도 스마트공장이나 병원 같은 곳에서 사용하는 로직엔 익숙했는데 항만은 처음 접하는 분야였다. 그 이해를 높이는 교육과 소통이 이어졌다. 경로가 교차할 때 어떤 컨테이너를 실은 AGV가 먼저 가야 효율적인지, 어떤 상황에서 컨테이너를 높게 들어 올렸다가 내려야 할지, 한 AGV에 컨테이너를 1개 실을지 2개 실어서 붙일지 등등 수많은 선택지가 있다. 여기에 대한 알고리즘 방향을 정하려면 해운과 항만에 대한 노하우가 있어야 한다. 이걸 이식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협력해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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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디지털 트윈 ‘버추얼 터미널’ 적극 활용

국내 최초의 스마트항만이라는 도전적이고 위험성이 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DGT는 디지털 트윈(Digital Twin)을 적극 활용했다. 현실 세계의 물리적 환경과 사물, 프로세스를 가상 환경과 통합해 디지털로 모델링하고 시뮬레이션하는 시스템이다. 사물인터넷(IoT), AI, 빅데이터 분석 등 다양한 기술이 접목돼 시스템을 모니터링하고 분석할 수 있다. CPS와 등을 맞댄, 스마트항만의 또 다른 핵심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CPS가 실제 현실을 제어하고 운영하는 데 주안점을 둔다면 디지털 트윈은 다양한 리스크를 사전에 제거하고 최적화 실험을 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정교하게 움직이는 가상 환경을 만드는 데만 수억 원이 투입됐다. DGT의 디지털 트윈인 ‘버추얼 터미널’은 컨테이너 터미널운영시스템(TOS), AGV 전체 선대를 조정하는 AGV 선대관리시스템(FMS)과 결합해 실제로 터미널에서 벌어지는 모든 상황을 시뮬레이션하고 예측할 수 있는 환경을 갖췄다. 특히 가장 많은 움직임을 필요로 하는 AGV 관련 요소에 공력이 집중됐다. 이렇게 한 번 제대로 만든 디지털 트윈은 기존 항만과 차별화한 DGT의 비밀 병기가 됐다. 현실 인프라와 비용에 대한 의존도가 줄어드니 운영을 효율화할 다양한 방법을 적극적으로 실험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운영자의 숙련도 역시 높아졌다.

김 대표는 “일각에선 준비 기간이 짧아 항만 운영의 안정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는데 스마트항만의 특징을 몰라서 하는 이야기다. 실제 항만에서 시험 운행을 시작하기 전인 지난해 10월부터 이미 버추얼 터미널을 통해 다양한 실험을 하고 효율성을 높일 로직 개선 작업을 꾸준히 해 왔다. 개장 이후에도 계속해서 시뮬레이션을 통해 개선점을 찾고 있다. 앞으로 물동량이 늘어나면 더 많은 장비를 동시 가동하는 상황이 올 텐데 차질 없는 운영을 위해 전담 부서인 ‘스마트랩’을 조직해 고도화 작업에 힘을 쏟고 있다”고 강조했다.

앞으로 DGT는 터미널 내부 및 주변 환경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해 실시간으로 운영 상태를 모니터링하고 여기에 기반한 데이터 중심의 의사결정을 내리는 시스템을 구축할 방침이다. 디지털 트윈에서 연결되는 개념, ‘디지털 스레드(Digital Thread)’4 구현을 목표로 한다고 볼 수 있다. 디지털 트윈 시스템을 활용해 터미널 내부와 주변 환경의 위험 요인을 실시간으로 감지하고 즉각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도 구축할 예정이다.


5. 고용승계·재교육으로 노사 대립을 넘다

스마트항만의 등장을 가로막은 가장 큰 벽은 사실 사람이었다. 정확히는 기존 항만에서 일하던 근로자다. 일부 근로자가 자동화가 곧 일자리 상실로 이어질 수 있을지 모른다는 공포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무인화는 고용의 양적 성장과는 함께 가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 문제를 해소하지 않고선 스마트항만 추진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실제로 많은 항만 운영사가 스마트항만을 검토하면서도 선뜻 도전하지 못하고 있는 것 역시 하역 근로자와의 갈등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동원은 정공법으로 문제를 풀어가고 있다. 근로자들의 불안감을 십분 이해하고 노조와 적극적인 협의에 나섰다. DGT는 기존 부산 북항의 DPCT를 이전하는 형태로 설립이 됐는데 기존 사업장 근로 인력의 고용승계를 전제로 전환 배치 및 재교육을 진행하기로 했다.5

김 대표는 “일자리의 질을 높이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는 점을 노조에 지속적으로 설득했다. 근로자 입장에서도 인력 고령화나 외국인 노동자의 유입, 안전한 근로 환경 등의 문제를 고려할 때 앞으로 고민하는 부분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쉬운 과정은 아니었지만 시대의 흐름에 맞춰 대승적인 차원에서 노조가 뜻을 함께해줬다. 회사 차원에서도 다양한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으며 보다 안전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우면서 서로의 니즈를 맞춰가고 있다”고 밝혔다.


6. 원양어업·식품-물류-스마트항만 연결한 ‘체인 이노베이션’

동원그룹이 자랑하는 신사업 확장 전략 ‘체인 이노베이션’6 의 핵심은 본업의 강점을 바탕으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영역을 찾고 사슬처럼 연결해 집중 공략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사업에 필요한 기술, 역량을 갖춘 기업을 적극적으로 인수합병해 DNA를 이식하고 ‘동원화(化)’하는 게 특징이다.

스마트항만 역시 이 혁신사슬의 첨단에 있다. 오랫동안 원양어업을 해온 동원그룹은 사실 물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었다. 원양어업에서 터득한 수산물 냉동 보관, 운반 기술은 어지간한 물류 기업의 콜드체인 시스템을 가볍게 능가했다. 식품 역시 신선도가 생명이다. 사업 원료 운송, 납품, 상품 배송 등 동원그룹의 사업 전반은 물류와 이미 긴밀히 연결돼 있었다. 기초체력은 이미 여기서부터 소리 없이 쌓였다.

동원그룹의 물류 사업은 1997년 본격적으로 닻을 올린다. 동원산업과 삼양사, 애경산업, 대한통운 등 한국 4개 기업과 일본 미쓰비시상사가 참여한 공동물류합작법인 ‘레스코’를 설립하면서다. 동원그룹은 레스코를 통해 3자 물류7 와 운송, 보관, 하역, 포장 등 다양한 물류 사업을 운영할 수 있었고 2006년 레스코를 흡수합병했다. 레스코의 합류로 모양을 갖춘 물류 부문은 새로운 이름 ‘로엑스(LOEX)’로 재탄생하며 본격적인 물류 전문 기업으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국제 물류, 물류 컨설팅 등으로 사업을 다각화하고, 특히 전국 저온창고 네트워크망을 앞세워 국내 저온 물류시장을 선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나라 원양어업이 60주년을 맞은 2017년. 마침내 국내 3위 물류 기업인 동부익스프레스8 가 동원의 대오에 합류한다. 4250억 원을 투입한 당시 기준 사상 최대 규모 인수합병이었다. 김 명예회장의 소신처럼 ‘잘나갈 때 다음 어장을 준비해’ 미래 먹거리 사업으로 키우기 시작한 것이다. 동원그룹은 동부익스프레스 인수를 통해 항만 하역과 산업재 수출입 국제물류 등 새로운 사업 포트폴리오를 대거 확보했다. 여기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게 부산 북항 신감만부두를 운영하고 있던 동부익스프레스 자회사, 동원부산컨테이너터미널(DPCT)이었다. 국내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상업항인 부산 북항은 부산 신항 개항 이전까지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하던 항구였다. 특히 2002년 개장한 신감만 부두는 컨테이너선 5만 t급 2척, 5000t급 1척을 동시에 붙일 수 있는 컨테이너 전용 부두였다. DPCT에 접안하는 선박만 한 달에 평균 100여 척에 달했고 1년간 처리하는 컨테이너 수는 약 100만 TEU에 달했다. 글로벌 물류 기업으로 나아가기 위한 핵심 거점을 확보한 것이다.

내친김에 동원그룹은 2018년 11월 부산신항 최대 물류기업인 BIDC(Busan International Distribution Company)까지 인수(지분 51.04%)했다. BIDC는 부산신항 배후 물류단지에 부지 14만1240㎡를 갖추고 6만7650㎡ 규모 물류센터를 운영하고 있었다. 대규모 물류센터까지 손에 넣으면서 항만물류로 가는 혁신 사슬은 끊임없이 이어졌고 마침내 스마트항만이라는 미래 신산업으로 가는 길이 열렸다.

동원은 DGT의 경험을 바탕으로 글로벌 터미널 운영사(GTO, Global Terminal Operator) 시장에 진출하는 것을 궁극적인 목표로 삼고 있다. 김 대표는 “먼 미래의 이야기가 되겠지만 동남아, 남미, 아프리카 등 개발도상국을 대상으로 한국형 스마트항만 모델을 이식하고 직접 운영하는 GTO 수출도 충분히 노릴 수 있다”며 “직접 터미널 개발을 해주고, 한국의 오퍼레이션 시스템을 접목하고 관련 운영 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각 국가의 해운 물류 활성화에도 도움을 주는 동시에 우리도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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